Star-Embrac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43
봐라, 용이 쫓아온다 (1)
“아구구구······.”
마치 늙은이가 앓는 소리를 내며 블라드가 몸을 일으켰다.
“······죽을 뻔했네.”
[뱀의 가호가 없었다면 정말 죽었을 거다.]목소리의 말을 들으며 블라드가 갑옷을 내려다보았다.
그날 자신을 껴안았던 뱀의 가호가 이런 식으로 발현될 줄은 몰랐다.
“쓸만하네.”
[그러니까 나중에 한 번 더 가자.]블라드는 목소리의 말을 무시하며 자신이 이곳까지 온 목적을 상기했다.
점차 다가오고 있는 땅의 균열.
그 뒤를 쫓아오고 있는 루트거와 기사들.
그리고 저 아래에서는 자신이 굴러떨어진 것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당황해하고 있는 사제들과 기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어?”
[······이런.]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매우 낯익은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드드드드득-!
소년이 당황하는 순간에도 초원을 가르는 균열은 거침없이 뻗어져 나가고 있었다.
루트거와 기사들이 기를 쓰고 따라잡으려 노력하고 있었지만, 목소리의 말처럼 땅속에서 움직이는 데스웜의 속도는 야생마의 무리도 따라잡을 정도로 기민한 것이었다.
“젠장!”
그리고 가공할 속도로 뻗어져 나가는 초원의 균열은 정확히 앞을 향해 나가고 있었다.
정확히, 똑바로, 망설임 없이 순례자들의 무리를 향해서.
“어서 사제님들을 모셔라!”
“준비된 자들은 먼저 떠나라!”
히이이힝-
기사들이 외침과 말들의 울부짖음.
그리고 그 모든 소리를 삼키며 다가오는 악의 어린 균열.
항거할 수 없는 거대한 폭력이 그들에게 달려가고 있었다.
“설마······.”
그 급박한 상황에서 블라드는 다급한 움직임으로 달구지에 오르는 사제 하나를 알아보았다.
소년이 아는 유일한 사제였으며 잊어서는 안 되는 사람.
꽂히듯 들어오는 그의 모습은 소년의 눈을 아프게 찔러와 가슴 속까지 닿아 들어갔다.
“젠장!”
우연은 가끔 운명과도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 선택을 강요하고는 한다.
잔인하게 다가오는 그 순간 속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개를 숙이고 쉬운 길을 택하고는 하지만 소년은 그런 사람들과는 달랐다.
소년은 언제나 있는 힘껏 발버둥 쳐 온 사람이었다.
“······!”
이를 악물며 결심을 굳힌 블라드는 있는 힘껏 루트거를 향해 뛰어 내려갔다.
지금도 쉴 새 없이 쿵쾅거리고 있는 심장 박동 때문에 숨이 저절로 차고 있었지만, 소년은 멈추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소년이 품 안에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알리시아의 손수건.
그리고 또 하나는 안드레아가 보증해 준 소년의 신분패.
“사제님!”
아무것도 아닌 자신을 처음으로 보증해 준 사람.
소년이 세상에 내디딜 뿌리를 처음 뻗게 해주었던 사람이 저 아래에 있었다.
방금 언덕에서 굴러내렸던 놀람과 아픔도 잊은 채 소년은 균열이 다가오는 쪽을 향해 내달렸다.
누구라도 도망치고 싶을 거대한 폭력을 향해서 소년은 자신을 내던지고 있었다.
※※※※
“여기요! 여기입니다!”
두 손을 휘적이며 어떻게든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려는 블라드.
“······!”
그리고 달리는 말 위에서 그 모습을 확인한 검은 머리의 남자.
그러나 둘 사이에는 차마 건너기 힘든 거대한 간격이 있었고 그 간격을 따라 순례자의 일행을 덮치려는 어린 데스웜이 있었다.
시간은 어떻게든 맞췄지만, 공간이 맞지 않았다.
“안돼······.”
그 어떤 멈칫거림도 없이 자신의 옆을 스쳐 지나가는 균열을 보며 블라드가 멍하니 말을 내뱉었다.
“안 돼!”
블라드는 자신을 무시한 채 지나가는 데스웜을 향해 분노에 찬 일갈을 내질렀다.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세계 앞에서 또다시 이렇게 무력하게 있을 수만은 없다.
[블라드!]블라드가 무엇을 하려는지 눈치챈 목소리가 다급한 어투로 제지하려 했지만, 소년은 이미 결심했다.
지금은 해야 할 때다.
해야 한다면 망설이지 않는다.
블라드는 목소리의 외침을 무시한 채 꾸깃하게 쥐어든 각인을 공중으로 높이 내던졌다.
하얀색의 종이가 하늘 아래서 나풀거리고.
“여기다 이 새끼야!”
장식 없는 검이 만들어 낸 단호한 검의 궤적이 소년의 결심을 그려냈다.
종이가 찢기고 그와 동시에 장식 없는 검을 채워가는 빼곡한 문양들.
검은색으로 빛나는 각인을 따라 검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데스웜을 향한 소년의 분노와 함께.
[······모자라다. 너의 세계도 불러내라.]가능한 한 말리고 싶었으나 누구보다도 블라드를 잘 이해하고 있던 목소리는 소년을 위한 조언을 해주었다.
어차피 시도한 일이라면 그 일에 후회가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진동을 증폭 시켜야 한다!]도로테아의 각인술은 훌륭한 것이었지만 이미 사냥감을 눈앞에 두고 있는 데스웜의 시선을 끌어당기기에는 부족한 것이었다.
그러니 그녀의 각인에 힘을 보태주어야만 했다.
“흐읍!”
목소리의 조언에 따라 블라드는 검을 땅에 내리꽂았다.
그리고는 왼쪽 눈을 감았다.
영혼 속에 있는 아직은 어설픈 자신의 세계를 꺼내기 위해서.
지금 상황에서라면 설사 이곳에 자야르가 있다 할지라도 소년의 행동에 대해 뭐라 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직 이것만이 최선이었으니까.
“······나와라.”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신 앞에서 고한 그 날.
오색 창연한 색유리들을 통과해 자신의 어깨로 내려앉았던 그날의 햇빛을 소년은 기억하고 있었다.
따뜻하고 푸근했으며 무엇보다 자신을 보며 웃어주는 사제의 웃음이 보기 좋았다.
“나와!”
소년의 외침과 함께 울고 있던 장식 없는 검에서부터 희미한 빛들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하얀색, 초록색, 그리고 푸른색.
아직 자신만의 색을 찾지 못한 소년의 세계는 그를 둘러싸고 있는 기사들의 색깔로 가득했다.
미약했지만 아름다운 색깔들이었다.
웅-우웅-웅
도로테아의 각인이 소년의 세계와 맞물려 거대한 진동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했다.
떨림은 없었으나 공기를 물결치게 했고 소리는 없었으나 이곳에 있는 모든 존재가 들을 수 있었다.
마치 내가 이곳에 있노라 외치는 소년의 함성 같았다.
“······!”
입에 피거품을 문 채 순례자들을 향해 달려가고 있던 어린 데스웜.
그것 또한 소리 없는 소년의 함성을 들을 수 있었다.
그 어떤 것보다도, 자신의 이마에서 앞으로 나가라 외치는 소리보다도 더 울림 있는 목소리였다.
그렇기에 고개를 돌렸다.
크르르르르르-
균열이 멈췄다.
거대한 세계가 소년의 세계를 알아보았다.
소년을 느낀 데스웜의 심장이 세차게 뛰고 있었다.
“······.”
“······.”
그리고 이곳에 있는 모두가 빛나고 있는 소년을 바라보았다.
웅-우웅-웅
아주 잠시였지만 소년의 존재감은 이곳에 있는 모든 것을 지배했다.
내가 이곳에 있다.
“······도망쳐라!”
“블라드! 검을 나에게 던져라!”
계속해서 멈춰있을 것만 같던 데스웜의 고개가 살짝 움직인 순간 루트거의 외침이 들려왔다.
소년이 만들어 낸 존재감은 아주 잠시 초원의 시간을 멈췄지만 지배하지는 못했다.
그렇게까지 하기에는 아직 소년의 세계는 미약한 가능성일 뿐이었으니까.
그러나 목적에는 충분히 부합할 수 있었던 몸부림이었다.
크아아아아-!
목표물을 재설정한 데스웜이 땅속에서 튀어나와 소년을 향해 달려들었다.
목소리의 예상보다도 훨씬 빠른 움직임으로.
마치 지금을 기다렸다는 듯이.
[피해라!]“끄으으······.”
목소리의 다급한 외침에도 블라드는 감은 눈을 쉽게 뜨지 못했다.
아직 자리 잡지 못한 미약한 세계.
그 세계를 빠르게 여닫기에는 소년의 성취가 부족했으니까.
주춤거리고 있는 블라드의 머리 위로 새까만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것은 절망을 뿌리려는 거대한 몸짓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안돼!”
모두가 다음의 상황을 예측하고는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루트거만큼은 어떻게든 소년을 구하기 위해 달려갔으나 둘 사이의 공간은 시간의 흐름만큼이나 좁힐 수 없는 것이었다.
[갑옷에 오러를······!]목소리의 외침조차도 집어삼키는 거대한 존재감.
자신을 향해 짓쳐 드는 거대한 세계 앞에서 무의식적으로 소년이 장식 없는 검을 내지르려는 순간.
“······!”
데스웜이 만드는 절망의 그림자보다 더 새까만 것.
달 없는 밤의 색깔처럼 고우며 어두운 것이 소년의 눈가를 가렸다.
콰가가가강-!
거대한 세계가 소년을 깔아뭉개려 하기 전에.
※※※※
“······.”
귓가를 스쳐 지나가는 바람 소리.
소년의 손을 통해 느껴지는 거대한 심장 소리.
따뜻하다 못해 뜨거운 피가 약동하는 근육들의 움직임이 소년의 손끝으로 전해지고 있었다.
“······.”
블라드의 등 뒤로 자욱한 흙먼지가 밀려 들어왔다.
그러나 더러운 흙먼지들이 소년을 감싸 안기도 전에 이미 블라드는 반경에서 벗어난 참이었다.
너풀거리는 그것들로는 소년이 달리는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었으니까.
감격과 놀람 그 어딘가.
눈 깜짝할 사이 어느새 말의 등 뒤에 올라타 있는 자신을 느끼며 블라드는 감고 있던 눈을 떴다.
[흐아아아······.]“······말이다.”
이제야 한숨 놓았다는 목소리의 신음도 듣지 못한 채 블라드는 허리를 일으켰다.
바람 소리와 함께 주위에 모든 것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소년은 맹세코 태어나서 지금과 같은 속도감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
블라드는 손바닥을 펼쳐 다가오는 바람을 맞이했다.
무겁게 다가오는 공기의 흐름이 손가락 사이로 세차게 빠져나가고 있었다.
“하! 하하하!”
방금까지만 해도 죽음의 위기에 시달렸던 블라드였지만 지금만큼은 크게 웃고 있었다.
그동안 꿈꿔왔던 풍경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기에.
크아아아아아-!
“······!”
아주 잠시였지만 현실을 잊고 만 소년의 뒤로 데스웜의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의도는 성공했으나 아직 끝나지 않았다.
“블라드! 블라드! 괜찮으냐!”
데스웜의 포효와 함께 달리고 있는 소년에게로 검은 머리의 기사가 말을 타며 다가왔다.
“괜찮은 것 같습니다!”
“······좋다!”
데스웜을 저지하기 위해 달려오던 루트거와 기사들은 소년이 스스로 자신의 검에 각인을 부여했다는 것을 눈치챘다.
남을 위해 희생할 줄 아는 자세.
그것은 소드마스터의 두 번째 규율과 관련된 것이기도 했다.
소년은 비록 종자에 불과했지만, 이곳에 있는 어떠한 기사보다도 훌륭히 자신의 의무를 수행했다.
“훌륭하고 용감한 결정이었다. 물론 칭찬받지는 못할 행동이었지만.”
“······.”
나중을 대비하지도 않고 일단 저질러버린 블라드의 행동을 지적한 루트거는 소년과 함께 나란히 말을 타고 달리며 이곳으로 다가오는 균열을 바라보았다.
“그 녀석 움직일 수 있겠나?”
“네?”
이제야 겨우 말에 올라탄 것에 성공한 소년에게는 가혹한 요구였지만 루트거는 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총기가 흐르는 새까만 말의 눈빛이 그런 확신을 갖게 했으니까.
“저 수상한 녀석을 베어내야만 순례자들이 안전해질 수 있을 거다. 우리는 여기서 승부를 걸어야 해.”
“하지만 저건 데스웜······.”
“나는 할 수 있다.”
그 순간, 블라드는 볼 수 있었다.
루트거의 두 눈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는 불꽃의 잔재를.
“너는 도로테아의 각인을 가지고 있고 훌륭한 말 또한 타고 있지. 그러니 저 녀석을 유도할 수 있을 거다.”
블라드는 루트거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 수 있었다.
그는 블라드를 미끼 삼아 데스웜을 한 번에 베어낼 생각이었다.
“할 수 있겠나?”
“······.”
블라드는 대답 대신 새까만 녀석의 목을 쓰다듬어 보았다.
살짝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보는 녀석의 눈빛이 묘하게 믿음직스러웠다.
그렇구나.
너도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이곳에 있는 거구나.
“할 수 있습니다.”
“좋다.”
블라드의 확신 어린 대답을 듣자마자 루트거는 재빠르게 손가락을 들어 진행 방향을 설명했다.
“······이렇게 돌아 나에게로 와라.”
블라드가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지만 사실 루트거는 소년보다 그가 타고 있는 말에 시선을 맞추고 있었다.
자신의 손가락을 보며 새까만 말이 고개를 끄덕인 것만 같았다.
“조심해라.”
고개를 끄덕이는 소년과 말을 보며 루트거와 기사들이 떨어져 나가고.
크아아아아-!
대신 빛나는 먹이를 놓치고만 데스웜이 다시 땅으로 파고들어 소년을 쫓아오고 있었다.
“가자!”
안장도 없는 말 위에서 소년은 허벅지에 힘을 주며 새까만 녀석의 갈기를 붙잡았다.
히이이이잉-
아까와는 다른 울음소리.
죽어 나가는 무리를 향한 애타는 울음이 아닌 한 방 먹이고야 말겠다는 다짐이 담긴 소리였다.
각오와 함께 새까만 녀석이 빠르게 가속하기 시작했다.
“으아!”
방금과는 또 다른 속도감.
이제는 공포마저 느껴지는 속도에 블라드는 말의 목을 껴안은 채 그만 눈을 감고 말았다.
소년은 기마술 따위는 모르는 초보였으니까.
[검을 내려라. 확실히 저놈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너의 존재를 진동을 통해 알려줘야 한다.]그러나 소년은 임무를 맡은 자였다.
그것도 스스로의 의지로 말이다.
“······”
세차게 몰아치는 바람에 눈을 뜨기에도 버거웠지만 블라드는 저 멀리서 말에서 내려 검을 빼 들고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루트거를 바라보았다.
해야만 했다.
그렇게 하기로 약속했으니까.
“흐아아!”
난생처음 맛보는 속도감.
말에게서부터 느껴지는 아찔한 지면의 박차.
모든 것이 처음이었음에도 블라드는 최선을 다하기 위해 땅을 향해 검을 늘어뜨렸다.
“한번······더!”
거의 옆으로 눕듯 쏠려있는 소년의 자세를 배려하며 새까만 녀석이 대신 균형을 맞춰주었다.
뒤에서 쫓아오는 균열을 힐끗 본 블라드는 장식 없는 검을 땅에 가져다 댔다.
까강- 까가가강-
땅과 쇠가 맞부딪히며 만드는 마찰열에 의해 장식 없는 검에서부터 요란한 불꽃이 튕겨 나왔다.
“봐라! 내가 여기 있다!”
그 불꽃들과 함께 희미하게 새어 나오는 소년의 세계.
오러를 실은 도로테아의 각인이 장식 없는 검을 통해 지하에 진동을 퍼트리기 시작했다.
깊숙이, 깊숙이.
베어 물지 않고는 도무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하게.
크아아아아아-!
균열에서부터 땅이 갈라졌다.
그 아래에서부터 모습을 드러내는 거대한 데스웜.
진동을 쫓아 나온 거대한 세계가 또다시 소년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그래 여기다!”
그러나 지금의 소년은 혼자가 아니었다.
달 없는 밤 위로 빛나고 있는 별 하나.
그 별을 쫓아 달려오는 몰락한 용의 그림자.
불합리하고 거대한 세계를 향해 소년이 목청 높여 부르짖었다.
자신이 이곳에 있노라고.
크아아아아아-!
“으아아아아아-!”
초원을 찢어발길 듯 용의 잔재가 크게 울부짖었다.
그 존재감에 맞서 소년 또한 크게 함성을 내질렀다.
한 치도 양보 없는 두 개의 세계.
모든 세계는 마땅히 존재할만한 가치가 있지만, 서로가 부딪히고 말 운명이라면 더욱 빛나는 세계만이 살아남을 테다.
봐라, 소년아. 용이 쫓아 온다.
빛나는 너를 향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