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Embrac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44
봐라, 용이 쫓아온다 (2)
크아아아아-!
“······.”
저 멀리서부터 울려 퍼지는 데스웜의 포효를 들으며 루트거는 자신의 왼쪽 눈을 깊게 닫고 있었다.
좀 더 깊은 곳에 있는 자신을 보기 위해서, 좀 더 굳건하고 강인한 자신의 세계를 불러오기 위해서.
루트거의 세계는 붉은색.
활화산과 같은 분노와 열정을 간직하고 있는 세계.
“이마에 박혀 있는 반짝이는 것이 수상합니다. 마법과 관련된 것 같아요.”
지친 몸을 이끌고 내려온 자신의 마법사가 말했다.
누군가 데스웜을 조종하는 자가 있다고.
감히 바예지드의 땅에서 사특한 술수로 내 선조들의 땅을 어지럽히는 자들은 누구인가.
“······오는군.”
왼쪽 눈을 감은 채 분노어린 세계를 갈무리하고 있던 루트거.
크아아아아아-!
“으아아아아아-!”
소년의 함성과 함께 그의 눈이 떠졌다.
그와 동시에 천천히 치켜 올려지는 루트거의 검.
그의 검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
“······!”
[준비가 끝난 것 같다!]달 없는 밤을 타며 데스웜을 유도하고 있던 블라드는 저 멀리서부터 흉폭하게 불타오르는 누군가의 세계를 느꼈다.
“······이건!”
[일시적으로 세계를 넓혔다. 내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기사군.]블라드는 루트거에게서부터 시작되는 기세를 느끼며 자신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여태까지 보아왔던 그 어떤 기사보다도 거칠었으며 무엇보다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기에.
‘격이 달라!’
자신의 미약한 세계 정도는 얼마든지 삼켜버릴 수 있을 것만 같은 붉게 들끓고 있는 루트거의 세계.
목소리의 판단대로 루트거는 깊은 명상을 통해 일시적으로 자신의 세계를 넓혔다.
오직 스스로를 깊게 관조할 수 있는 기사만이 쓸 수 있는 방법이었다.
나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자.
그만큼 단단하게 뿌리내린 사람은 없을 테니까.
—–!
그리고 블라드를 쫓던 데스웜도 루트거의 세계를 눈치챘다.
이 자리에 아무리 무지한 자가 있다 하더라도 루트거가 내뿜는 기세를 눈치채지 못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데스웜이 서서히 속도를 늦추며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젠장!”
데스웜의 집중이 흐트러졌다는 것을 깨달은 블라드는 이를 악문 채 장식 없는 검을 높게 치켜들었다.
그러나 소년의 세계는 아직 미약한 빛으로 둘러싸여 있을 뿐이었다.
찬란히 타오르고 있는 루트거의 기세에서 데스웜의 시선을 빼앗아오지 못하고 있었다.
푸르르륵-
“어?”
상황을 파악한 새까만 녀석이 갑자기 몸을 돌려 데스웜을 바라보았다.
갑작스러운 반전에 블라드는 그저 갈기를 꽉 움켜쥘 뿐이었다.
[······이야.]“야 임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블라드는 빽하고 소리를 질렀지만, 목소리만큼은 어이가 없다는 듯 감탄사를 내뱉을 뿐이었다.
달리던 기세를 그대로 이어 빠르게 뒷걸음질 치면서 데스웜을 노려보는 새까만 말.
블라드는 몰랐겠지만, 목소리는 볼 수 있었다.
새까만 녀석의 이마를 향해 모이고 있는 희미한 안개의 움직임을.
히이이잉-!
뒷걸음질 친 것도 모자라 아예 양옆으로 빠르게 몸을 흔들며 데스웜을 도발하는 녀석의 움직임에 블라드도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새까만 녀석의 의도는 성공했다.
희미하게 반짝이는 안개가 데스웜의 감각을 어지럽히는 데 성공했다.
크아아아아아!
감히 자신을 도발하는 녀석의 움직임에 데스웜은 말 위에 올라타 있는 블라드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달려 있는 눈은 없지만 그런 느낌이었다.
‘내가 한 게 아닌데!’
핏물을 질질 흘리며 달려드는 데스웜을 보며 블라드는 당황했지만 어쨌거나 의도는 성공했다.
히이이잉-!
새까만 녀석이 힘껏 울부짖으며 앞발을 치켜들었다.
소년의 갑옷에서 떨어지는 가호를 받으며.
소년의 세계에서 흐르는 오러를 모아서.
힘차게 달리는 새까만 녀석의 이마 위로 반짝이는 안개가 점점 형체를 갖추기 시작했다.
목소리의 세계에서뿐만 아니라 모두가 볼 수 있는 현실의 세계에서도.
이제는 잊히고만 신비가 다시금 세계의 기억 속에서 일어서고 있었다.
“가자!”
히이이잉-!
일각수의 가능성을 표출해 낸 달 없는 밤이 다시금 반전하며 데스웜을 꼬리에 매달고는 달리기 시작했다.
저 앞에서 불타오르고 있는 활화산을 향해.
빛나는 소년을 태우며 달리는 달 없는 밤의 모습.
여기 이곳에서도 넓혀지는 세계가 있었다.
너와 내가 맞닿는 지평선에서.
나는 우리가 된다.
뿔 없는 일각수와 말 없는 기사는 서로의 세계를 통해 조금 더 완벽해지고 있었다.
새까만 밤하늘 위로 마침내 새하얀 별 하나가 떠올랐다.
크아아아아-!
“간격을 좁혀!”
“애송이! 지금 빠져나가라!”
적절한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던 루트거의 기사들이 순식간에 달려들어 데스웜의 양옆을 포위하기 시작했다.
크아-!
혹시 모를 데스웜의 이탈을 막기 위해 서서히 목을 조이듯 간격을 좁혀오는 바예지드의 기사들.
각자의 세계를 꺼내든 기사들의 도움으로 블라드에게는 잠시 한숨 돌릴 수 있을 만한 공간이 마련되었다.
“루트거 님!”
“······수고했다.”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별과 불이 서로의 시선을 마주쳤다.
소년을 집어삼키기 위해 입을 크게 벌리고 있던 데스웜은 기사들의 도움을 받아 갑작스레 행로에서 이탈한 말을 보며 당황하고 말았다.
자신을 도발하던 새까만 말과 소년.
그러나 그들이 빠져나간 지금, 데스웜의 앞에 서 있는 것은.
“내 차례로군.”
루트거 바예지드.
바예지드의 적자이자 장자이며 스스로를 불태우고 있는 기사.
“이곳은 바예지드의 땅이다.”
이 사태를 주도하고 있을 누군가를 향해서 루트거가 조용히 분노를 내뱉었다.
“너희들 따위가 어지럽혀서는 안 되는 땅이지.”
붉게 타오르는 바예지드의 검이 하늘을 향해 높게 치켜세워졌다.
루트거의 검이 기이한 울림을 내며 주위에 있는 모든 것들을 불태우고 있었다.
크아아아아-!
영혼 깊숙한 곳에서부터 터져 나온 새빨간 용암이 이 세계를 향해 터져 나왔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검을 내려치는 기사의 검 끝을 통해서.
그의 검과.
검에 맺혀 있는 분노와.
그리고 데스웜과 루트거 사이에 존재하고 있는 공기까지도.
모든 것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니 꺼져라!”
루트거의 일갈과 함께 푸른 하늘 아래에서 붉은 섬광이 쏘아 올려졌다.
타오르는 분노는 기사의 절제된 움직임을 통해 정확하게 거대한 세계를 베어내었다.
크아아아아-!
몰락한 용의 그림자가 반으로 갈라지며 비통한 울음을 내질렀다.
푸른 초원에 길게 울려 퍼지는 어린 데스웜의 단말마.
용암보다도 더 끈적하게 타오르는 불꽃에 의해 데스웜의 이마에 달려 있던 반짝이던 것이 서서히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
“크윽!”
등 뒤에서부터 느껴지는 흉폭한 열기에 블라드는 몸을 움츠렸다.
[해치운 것 같군.]“······.”
뒤를 돌아본 소년의 시야로 보이는 광경.
크에에에에-!
그곳에는 불타고 있는 몸통을 휘젓고 있는 데스웜이 있었다.
몸통의 절반은 이미 잘려져 초원 위에서 힘없이 꿈틀거리는 채로.
바람을 타고 뒤늦게 도달한 매캐한 냄새가 이제야 소년의 코끝으로 닿았다.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 거예요?”
블라드는 얼이 빠진 모습으로 목소리에게 물었다.
꿈꾸어왔던 기사들의 세계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 눈 앞에 펼쳐진 모습은 자신이 상상했던 그 어떤 모습보다도 거대하고 또한 압도적인 광경이었다.
푸른 달의 기사도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
자신을 받아준 성벽 같은 기사도 데스웜을 갈라낼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이 기사들의 진정한 세계인가.
[······너의 세계가 어떤 것에게도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굳건하다면.]상식을 뛰어넘는 광경을 보며 소년은 깊은 상념에 빠져있었다.
올라도 올라도 끝이 없는 산과도 같은 기사들의 세계.
소년은 자신이 이제야 겨우 출발 선상에 서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시뻘겋게 달아오른 대지 아래로 검을 꽂은 채 한쪽 무릎을 꿇고 있는 루트거.
바예지드의 검이 소년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
“어서 와라.”
“······.”
감상은 끝났다.
이제는 현실로 돌아가야 할 때.
새까만 녀석이 이끄는 대로 터벅터벅 걸어간 블라드는 말 등 위에서 뛰어내렸다.
“괜찮으십니까?”
“······시원한 맥주 한잔이 마시고 싶군.”
후끈하게 열기가 느껴지는 땅 위에서 겨우 검으로 지탱하며 일어서려던 루트거.
“어이쿠.”
그러나 힘이 빠진 모양인지 모양 빠지게 땅 위로 철퍼덕 넘어지고 말았다.
세계를 일시적으로 넓힌 대가가 지금 찾아오고 있었다.
“······끄응, 안 잡아주나?”
“저도 죽겠습니다.”
지금도 간헐적으로 꿈틀거리는 데스웜의 사체.
그 거대한 것을 앞에 두고 블라드도 땅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뜨끈하게 덥혀지는 엉덩이를 느끼며 블라드는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이러려고 휴가를 온 것이 아닌데.
“말 잘 타던데.”
“제가 문제가 아니었거든요.”
능청스러운 소년의 대답에 루트거는 그저 웃어주었을 뿐이었다.
블라드에게 빠져나갈 기회를 만들어주기 위해 데스웜을 몰이하던 기사들도 서서히 루트거의 주위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애송이 주제에 제법인데.”
“나중에 한번 보자.”
“잘했다. 짜식.”
곱게 말로 해도 되련만 굳이 등을 치고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소년을 지나치는 바예지드의 기사들.
“······.”
블라드는 자신에게 거리낌 없이 친밀감을 표시하는 기사들을 보며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이 있었다.
아무리 살벌한 곳에서라도 웃을 수 있다면 그것은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온기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뒷골목에서도.
그리고 불타오르고 있는 데스웜의 사체 앞에서도.
데스웜이라는 강적을 앞에 두었던 소년과 기사들은 오늘만큼은 전우나 마찬가지였다.
“루트거 님! 괜찮으십니까!”
삐걱거리는 달구지 소리와 함께 달려오는 또 다른 기사들.
저 앞에서 순례자들을 지키며 대기하고 있던 기사들이 상황이 끝났음을 파악하고는 사제들을 이끌고 루트거에게 다가왔다.
“······흐.”
블라드는 달구지에 실려 오는 안드레아 사제를 보며 미소 지었다.
자신이 지켜낸 세계가 저곳에 있었으니까.
“블라드?”
창백한 안색으로 달구지 위에서 헛구역질하던 안드레아가 블라드를 알아보고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네. 사제님.”
부들거리는 허벅지를 붙잡으며 일어난 블라드가 안드레아에게 다가갔다.
긴장이 풀려서인지 비척거리며 움직이는 소년의 모습은 당황하고 있던 사제들의 눈으로 보아도 안쓰러워 보이기 충분한 것이었다.
“오오······그랬군.”
안드레아는 힘 빠진 표정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소년을 두 팔을 벌려 맞아주었다.
“······수고했네. 고맙고.”
멀리서 있어 자세한 사정까지는 몰랐지만, 블라드의 얼굴에 나 있는 자잘한 상처들이 말해주고 있었으니까.
소년이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이리 오게. 쇼아라의 블라드.”
자신을 향해 두 팔을 벌려주는 사제를 끌어안으며 블라드는 눈을 감았다.
신 앞에서 이름을 고했었던 그 날의 햇볕만큼이나 따뜻한 체온이 전해져왔다.
“신이시여. 오늘 여기서 당신의 뜻을 받은 소년이 스스로의 의지로 행했으니 그를 긍휼히 여겨······.”
안드레아가 읊는 기도문을 들으며 블라드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장미의 미소에서는 지켜낼 수 없었다.
그때의 소년은 미약한 존재였으니까.
그러나 오늘 소년은 스스로의 선택으로 안드레아를 지켜냈다.
자신의 세계를 이루고 있는 뿌리 하나를 지켜낸 소년은 위로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다.
지금 이 순간을 위해서 소년은 발버둥 쳐왔으니까.
푸른 초원 위 조용하게 울려 퍼지는 사제들의 기도 소리를 들으며 기사들이 가만히 눈을 감았다.
※※※※
황혼이 지는 스투르마.
바예지드의 저택에서 뒷짐을 진 채 창밖을 바라보던 페테르를 향해 라그무스가 입을 열었다.
“백작님. 도로테아가 수정구를 통해 보내온 전서입니다.”
페테르는 무심한 표정으로 라그무스가 전해준 쪽지를 받아들고는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그의 새까만 눈썹이 꿈틀거리며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설마 해서 보내놓았더니만.”
자그마한 종이에 적혀 있는 글자들.
그 글자들에는 불길한 소식을 전하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또다시 흑마법인가?”
“북부에 자리 잡은 녀석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라그무스의 말에 페테르는 고개를 돌려 성벽에 걸쳐있는 붉은 해를 보았다.
스투르마.
바예지드의 피로 쌓아 올린 도시.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성벽은 가문의 역사와도 같은 것이었다.
“제국이 헐거워지니 저주받을 옛것들이 슬며시 고개를 쳐드는군.”
“······.”
페테르의 한탄과도 같은 말에 라그무스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시간은 흐르고 시대는 변한다.
그리고 페테르 바예지드는 어쩌면 가문의 역사 중에서도 가장 혼란한 시기에 가주를 맡고 있는 사람일지도 몰랐다.
“그래도 위안이 되는 소식이 하나 있지 않습니까?”
“······그래. 그 종자 말이지.”
페테르는 쪽지에 적힌 마지막 문장에 있던 이름을 떠올렸다.
자신의 아들이 데려온 종자 블라드.
“요즘 들어 자꾸 그 녀석의 이름이 들려오는군.”
“특출난 녀석들은 어디에 있건 튀어나오기 마련이니까요.”
종자들과의 대련에서도 자신의 시선을 잡아끌었던 종자.
지난해 겨울에 이루어졌던 몬스터 토벌에서부터 지금 순례자들의 일에 이르기까지 그 녀석이 없었다면 바예지드는 곤욕을 겪었을지도 몰랐다.
기특한 녀석이었다.
“자격 있는 것들은 마땅히 누릴 권리가 있지.”
그 말과 함께 페테르는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자그마한 종을 울렸다.
은빛 종이 청명한 소리를 내며 집무실 바깥까지 울려 퍼졌다.
“부르셨습니까. 백작님?”
“요제프를 불러와라.”
“알겠습니다.”
명을 들은 집사가 집무실을 빠져나가고.
“허가해주실 생각이십니까?”
“자격이 있으니까.”
마음 같아서는 크게 칭찬해주고 싶었지만 기특한 종자 녀석은 어디까지나 요제프의 것이었다.
후원을 해줘도 보상을 해줘도 어디까지나 요제프를 통해서 해주는 것이 맞을 터였다.
금발 소년의 공은 곧 요제프의 공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
페테르의 시선이 다시금 창밖에 있는 성벽에 닿았다.
붉게 물드는 황혼을 머금은 스투르마의 성벽.
피의 역사 속에서 세워진 성벽은 흔들림이 없었다.
지금 뒷짐을 진 채 서 있는 페테르의 모습과 마찬가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