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Embrac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48
돌아온다고 약속했기에 (1)
마르셀라는 흐르는 눈물을 재빨리 닦아내고는 눈썹을 찌푸리며 눈앞의 소년을 바라보았다.
분명 그리운 얼굴이었지만 여기 있어서는 안 되는 얼굴이기도 했다.
“······빨리 나가. 빨리.”
있는 힘을 다해 필사적으로 입술을 굳힌 채 말을 거는 마르셀라.
“······빨리 나가라니까!”
조용히 속삭이듯 말하는 그녀의 어투에서 다급함이 전해져왔다.
미처 닦아내지 못한 눈물이 여전히 마르셀라의 볼에 걸려있었다.
블라드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그래 여기였다.
나의 둥지였던 곳은.
천박한 조명 아래서 애써 눈물을 참으며 눈으로 말을 거는 여인.
“······.”
저기 반짝이는 것이 떨어진다.
사내들이 만들어놓은 욕망의 진창 위에서 블라드는 애처롭게 흐르는 별빛을 바라보았다.
비록 땅에 떨어져 짓밟힌 꽃이라 할지라도 여전히 향기를 품고 있다면 그것은 꽃일 것이다.
소년은 오랜만에 느끼는 장미 향을 맡으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제는 그녀의 눈물을 닦아줘야 할 때다.
※※※※
“······.”
마담은 금발 사내와 마르셀라 사이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감지했다.
그러나 그녀 또한 뒷골목에서 살아남은 사람.
이런 돌발상황에 익숙한 마담은 조용히 손짓을 통해 저 멀리 테이블에 앉아있던 사내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끌어내!’
마담의 신호를 받은 사내들이 하나둘씩 일어서기 시작했다.
적어도 열 명은 넘어 보이는 사람들.
모두가 이곳으로 파견 나온 잭의 부하들이었다.
“······값을 드려야 할 텐데.”
그러나 심상치 않은 분위기 속에서도 금발 사내는 태연히 일어나 마담을 바라볼 뿐이었다.
새파란 눈동자 속에 새빨간 핏줄들이 일렁이면서.
“마담에게 100골드를 드리기 전에 나도 미리 셈해야 하는 계산이 있어서 말이지.”
마담은 놀라고 있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귀족 청년 같아 보였던 사내가 지금은 마치 굶주린 늑대 같아 보였으니까.
“······무슨 계산을?”
마담은 침을 꿀꺽 삼키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금발 사내가 뿜어내는 숨 막힐듯한 기세에 욕정에 물든 사내들이 조금씩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잭의 부하들이 조용히 자신들의 이빨을 꺼내 들며 다가오고 있었다.
마치 폭풍전야와도 같은 상황에서.
“외팔이 잭.”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린 사내가 입을 열었다.
“그 자한테 받아야 할 것이 있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람의 이름이 흘러나오자 당황한 마담은 그게 무슨 말이냐며 되묻고 싶었지만.
촤아아악-
갑작스레 자신의 얼굴에 와닿은 핏물을 느끼며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사내의 뒤로 몰래 다가오려던 잭의 부하 하나가 힘없이 쓰러지고 있었다.
“당신은 여기서 가만히 기다리고 있어.”
블라드의 장식 없는 검에서 한 줄기 핏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만약 이놈들한테서도 모자라면 당신한테도 받아낼 거니까.”
우리에서 풀려나온 늑대가 굶주린 침을 흘려대었다.
오랫동안 참아왔으며 반드시 해야 하는 일들이 자신의 앞에 있었기에.
“비켜! 비키라고!”
“저 새끼 뭐야!”
욕망을 내뱉는 장소에서 갑작스레 살육의 현장이 되고만 창관.
그 모습을 본 손님들이 기겁을 하며 비명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일단 들어가!”
“어디서 허튼 수를 배워가지고!”
도망치는 욕망들.
발악하는 짐승들.
악다구니를 쳐대며 달려드는 잭의 부하들을 보며 블라드는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이런 게 그리웠던 거 같아.”
블라드는 자신의 발끝이 또다시 더러운 진창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렇지만 상관없었다.
그 예전, 소년이 꿈꾸던 별은 지금 대장간 높은 곳이 아닌 자신의 손안에 쥐어져 있었으니까.
“이 새끼야! 너 누가 보냈어!”
“······누가 보냈냐고?”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대사에 블라드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 짓고 말았다.
그래서 대답해주었다.
오랫동안 가슴 속에 품어왔던 누군가의 이름을.
“호르헤.”
“뭐?”
그 말과 함께 블라드는 허리에 차고 있던 단검 한 자루를 뽑았다.
자신을 주워주었던 남자가 언제나 차고 다니라 했던 단검이었다.
“호르헤가 보냈다고.”
장식 없는 검과 함께 호르헤의 단검이 사내들의 목에 박혀 들어갔다.
비록, 그날은 숨죽이며 달아났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소년은 스스로의 이름을 외치기 위해서 많은 강을 해쳐왔다.
그래서 오늘, 이 자리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를 자격을 가지고 돌아왔다.
“너희가 찾던 블라드가 여기 있다!”
마르셀라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터져 나오는 탄성을 억지로 틀어막았다.
그녀는 기억하고 있었다.
돌아서는 푸른 달빛의 기사 뒤에서 울부짖던 소년을.
“그날처럼 나를 죽이러 와라!”
블라드는 쉼 없이 내려치고 있었다.
그녀의 발목에 감싸인 족쇄들을.
“저 새끼 블라드였어!”
“용케도 살아남았었구나!”
소년의 외침을 알아들은 짐승들이 날카로운 이빨을 번뜩이며 달려들었다.
“덤벼 이 새끼들아!”
붉은 핏줄기와 함께 맨 앞에서 달려오던 남자가 소년의 세계에 베어지고 있었다.
검 한 번에 비명 한 번.
비명 한 번에 목숨 하나.
블라드는 시뻘게진 눈으로 잭의 부하들을 베어내고 있었다.
한 명도 살려두지 않겠다.
눈물을 흘리는 마르셀라를 위해서라도.
블라드는 자신에게 달려드는 자들을 향해 기사가 알려준 발걸음으로 피하고 뒷골목에서 배운 대로 귀를 물어뜯었다.
난잡했지만 오직 효율만을 추구한 움직임으로.
기사도 아니고 짐승도 아닌 것이 지금 이곳에서 날뛰고 있었다.
“히이익!”
소년의 흉폭한 기세에 몸을 돌리는 자들도 있었으나 그들을 위한 배려 따위는 필요 없었다.
블라드는 도망치려 했던 사내의 등을 후려치고는 쓰러져있던 그의 머리채를 잡아당겨 단검으로 목을 그었다.
분수처럼 쏟아지는 피가 창관의 바닥을 차갑게 적시고 있었다.
“아니야! 우린 아니야!”
“살려주세요! 제발!”
욕망에 이끌려 이곳으로 온 자들이 벽에 바싹 붙어 울부짖고 있었다.
비록 자신들을 향한 분노가 아니었을지라도 도저히 참아낼 수 있는 기세가 아니었기에.
“끄아아악!”
그 사내들 속에 숨어있던 잭의 부하를 끄집어낸 블라드가 망설임 없이 관자놀이에 호르헤의 단검을 박아넣었다.
사내의 눈이 빙글빙글 돌아갔다.
“흐아아! 흐아!”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문 앞까지 다다른 사내.
부들거리는 손놀림으로 계속해서 손잡이를 돌리고 있었으나 야속하게 문은 열리지 않았다.
마치 밖에서 누군가가 막고 있기라도 한 듯이.
“······싸움을 걸었으면 대가를 치러야지.”
콰아아앙-!
거칠게 내뻗은 소년의 발길질과 함께 문이 터져나갔다.
“커억! 쿨럭!”
형편없이 구르기는 했으나 드디어 원하던 밖으로 나온 마지막 남은 잭의 부하.
살고자 하는 본능으로 가슴팍을 부여잡고는 일어서려 했으나 정작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창관을 둘러싸고 있던 쇼아라의 경비병들이었다.
“그냥 안에서 끝냈으면 서로가 좋았잖아.”
등 뒤에서 들려오는 블라드의 목소리.
묘하게 침착해진 목소리였으나 그것을 듣는 사내는 오히려 소름이 돋고 말았다.
“······살려, 살려줘.”
“싫어.”
블라드는 땅바닥을 굴러다니던 잭의 부하를 짓밟고는 목에 단검을 들이대 사정없이 그어버렸다.
쉴 새 없이 흘러나오는 피를 막기 위해 목의 상처를 부여잡는 남자였으나 아무 의미 없는 발버둥일 뿐이었다.
“너희들도 그날 나를 붙잡았으면 살려주진 않았을 거야.”
그랬을 것이다.
죽이지 못하면 죽고 마는 것이 뒷골목의 법칙 중 하나였으니.
“끄윽······끅.”
오직 침묵만이 가득한 뒷골목에서 호르헤의 단검이 누군가의 마지막 비명을 집어삼켰다.
※※※※
장미의 미소.
쇼아라 뒷골목 상징 중 하나였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돈벌레들의 소굴이 되어버린 곳에서 한 남자가 술을 들이켜고 있었다.
“······한잔 더.”
왼쪽 팔에 달린 갈고리로 얼음을 부숴낸 그는 자신의 앞에 놓여있던 술잔 안으로 차가운 덩어리를 밀어 넣었다.
“보스. 너무 많이 마셨습니다.”
“······.”
옆에 있던 부하가 조심스레 그만 마실 것을 권유했지만 외팔이 잭은 아무 말 없이 술잔을 내려다볼 뿐이었다.
창녀들의 기사 호르헤.
그가 없어진 후로 쇼아라의 뒷골목은 자신의 것이나 다름없게 되어버렸지만, 외팔이 잭은 기뻐하지 않았다.
오히려 하루하루 지나갈수록 술독에 빠져 지낼 뿐이었다.
점점 망가져 가는 그만큼이나 뒷골목의 생리도 무너져가고 있었다.
“내가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이런 것밖에 더 있나? 잔말 말고 술이나 따라.”
“······네, 보스.”
비처럼 떨어져 내리는 술을 보면서 외팔이 잭은 가만히 고개를 돌려 저 아래에 있는 자신의 부하들을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 왁자지껄 떠들고 있는 녀석들.
저놈들은 알까.
우리의 인생이라는 것은 그저 저 위에 있는 자들에 의해 결정되는 것일 뿐이라는 것을.
“개 같은 인생.”
아무리 처량한 뒷골목에서 살아간다 할지라도 외팔이 잭은 야망이 있는 사람이었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겠다.
나는 이곳에서 멈추지 않을 사람이다.
그렇기에 남의 것을 뺏는 데 주저하지 않았고 적들의 시체를 발판삼아 기꺼이 위로 올라가는 계단을 만들었다.
승자는 위에 패자는 아래에.
모든 것은 승리해야만 얻을 수 있다 굳게 믿었던 인생이었지만 자신은 패배했음에도 지금 이 자리에 있었다.
그날 자신은 호르헤에게 졌다.
그러나 결국 죽은 자는 호르헤였다.
“엿 같은 세상.”
언젠가는 나도 그렇게 될 테지.
저 위에 있는 누군가가 나의 운명을 결정짓고 말 테지.
그날 허무하게 죽어갔던 호르헤처럼.
“결국은 아무 의미가 없다 이 말이야.”
외팔이 잭은 쓰디쓴 술을 한입에 털어 넣으며 끓어오르는 취기에 몸을 떨었다.
취하지 않고는 잠들 수 없는 밤이었으니까.
쾅-!
“보스! 보스!”
순간, 이곳에 있던 모두가 돌아볼 정도로 거칠게 문을 연 남자가 있었다.
“보스! 큰일났습니다!”
“뭐야?”
“왜 그래? 뭔 일이라도 생겼어?”
헐레벌떡 4층으로 뛰어 올라가는 남자를 보며 잭의 부하들이 한마디씩 물어보았으나 갑작스레 등장한 남자는 그저 숨이 턱 끝에 찰 때까지 계단을 뛰어오를 뿐이었다.
“보스!”
“뭐야.”
잭을 앞에 두고서야 가쁜 숨을 몰아쉰 남자는 간신히 정리한 호흡 안에서 한마디를 내뱉을 수 있었다.
“포위되었습니다!”
“······뭐?”
예상치 못했던 남자의 말에 잭의 눈썹이 찌푸려졌다.
“여기가?”
“여기뿐만이 아니라······.”
보고하던 남자가 침을 꿀꺽 삼키고는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뒷골목 전체가 포위되었습니다. 병사들이 저희를 둘러쌌어요.”
“······비켜봐.”
심상치 않은 보고에 이제야 술잔을 내려놓은 외팔이 잭이 거칠게 앞에 있던 남자를 밀치고는 일어섰다.
“보스!”
“괜찮으십니까?”
휘청이며 계단을 내려오는 잭을 부축하기 위해 다가오는 부하들.
“······이런.”
잭은 계단을 내려가면서도 몽롱한 시선을 통해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둠이 내려앉은 쇼아라의 뒷골목.
밤이기에 불을 밝힐 수 있는 거리에서 손님들을 유혹하는 빛들이 걸려있어야 할 자리에 다른 형태의 빛들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문 열어!”
마침내 1층에 도착한 잭의 외침에 서둘러 문을 여는 부하들.
“······이런.”
“이게 뭐야.”
밖으로 나선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수많은 횃불이었다.
그 횃불들 아래 질서정연하게 서 있는 병사들의 모습이 있었다.
“하.”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외팔이 잭은 한숨일지 감탄일지 모르는 소리를 내뱉고 말았다.
“보스, 포위, 포위되었습니다.”
“나도 안다.”
그러나 위협적인 광경 앞에서도 외팔이 잭은 태연할 뿐이었다.
“······손님이 오려나 보다.”
“네?”
“여기서 이러지들 말고 손님맞을 준비나 하고 있어.”
끝을 가져올 불빛들을 뒤로하며 외팔이 잭은 안심한 듯한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불안보다는 바로 앞에 보이는 파멸이 더 마음 놓이는 법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