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Embrac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49
돌아온다고 약속했기에 (2)
모든 검에는 각자가 가진 용도가 있다.
큰 검과 작은 검이 서로 쓸 수 있는 상황이 다르며 날카로운 검이 무딘 검보다 항상 좋다고만 할 수는 없는 것처럼.
언제나 요제프에게 구박받던 보르단 또한 그런 사람이었다.
늙고 뚱뚱하며 검조차 제대로 다룰 줄 모르는 기사였지만 요제프는 그를 옆에 두는 것을 선택했다.
그는 사용할 수 있는 용도가 확실한 사람이었으니까.
“다른 골목들까지 확실히 봉쇄하셨습니까?”
“물론이지요······. 최선을 다했습니다.”
쇼아라의 시장은 손수건으로 연신 땀을 닦아내며 눈앞에 있는 뚱뚱한 기사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고작 일개 기사일 뿐이었으나 어찌나 시정의 뒷사정에 대해 잘 알던지 시장은 그만 두 손을 들고 말았다.
도대체 어디서 구르다 온 사람인지 궁금할 뿐이었다.
“그러길래 애초에 일이 이렇게 될 때까지 키우시면 어떡합니까. 백작님이 아실 정도로 말입니다.”
“외팔이 잭이라는 자가 워낙 수완이 좋다 보니······. 그래도 오늘 이후로는 쇼아라의 암 덩어리가 제거될 것 아니겠습니까!”
백작의 권위를 등에 업은 기사를 보며 시장은 연신 곤혹스러운 감정을 드러냈으나 정작 보르단은 시장의 말에 그저 이죽거릴 뿐이었다.
‘암 덩어리는 네놈이겠지.’
동류는 동류를 알아보는 법.
외팔이 잭이라는 자가 어떻게 해서 뒷골목이라는 거대한 생태계를 주무를 수 있었겠는가.
전부 다 시장이라는 직함을 달고 있는 이 자의 묵인하에 일어난 일일 테다.
“그나저나 안으로 진입할 기사는 언제 오겠습니까? 바예지드 가문에서 특별히 보냈다는······.”
시장은 병사들뿐만 아니라 쇼아라에 파견 나와 있던 모든 기사들을 소집해놓았으나 보르단은 이 일을 따로 맡은 자가 있다며 거부했다.
이 일은 단순히 외팔이 잭이라는 뒷골목 보스를 처단하는 일이 아니었다.
바예지드 가문에서 마련한 블라드의 공식적인 데뷔전이기도 했다.
“마침 저기 오는군요.”
희미한 빛만이 비추는 뒷골목의 거리.
그곳을 따라 홀로 걸어오고 있는 사내가 있었다.
늘어뜨리고 있는 검에서 아직 마르지 않은 핏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한 명입니까?”
“······.”
시장은 아무리 보아도 한 명의 모습밖에 보이지 않자 의아한 표정을 지었으나 보르단은 그저 침묵으로 대답할 뿐이었다.
“왔는가?”
“네. 보르단 님.”
두르고 있는 망토에서 짙은 피 냄새가 흐르는 소년.
블라드를 처음 본 시장은 그가 가지고 있는 외모에 한 번 놀랐고 풍기고 있는 분위기에 한 번 더 놀랐다.
‘이렇게 안 어울릴 수가.’
곱상하게 생긴 얼굴 안에 짐승의 표정이 담겨 있었다.
누구나 동경할 법한 금발은 피에 젖어 번들거렸고, 선명한 푸른 눈동자는 밤에 보아도 새파랄 정도로 기이한 빛을 품고 있었다.
“준비는 해뒀네.”
“감사합니다.”
“그러지말고 지금이라도 병사들과 같이 진입하는 것이 어떤가? 자네가 크게 다치기라도 하면 나는 정말 요제프 님을 뵐 면목이 없어져.”
블라드는 보르단의 말을 듣고는 웃음을 짓고 말았다.
언제나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는 일관된 태도는 어떤 면에서는 믿음이 갈 정도였다.
“제가 다쳐도 보르단 경에게 피해 안 가게 할게요.”
“······그게 안 된다니까.”
소년의 결심을 확인한 보르단은 자신이 손수 움직여 블라드의 고유깃발을 꺼내 들었다.
아직 두 개의 문장밖에 박혀있지 않은 깃발이었으나 이것을 들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개인에게는 큰 영광인 물건이었다.
“저게 배너(Banner)인가?”
“이제는 사라진 전통인 줄 알았더니.”
블라드와 보르단이 걸어가는 옆으로 병사들이 조금씩 웅성대기 시작했다.
그들이 지금부터 보는 광경은 북부의 역사에서 잊혀져 가는 장면의 재현이나 다름없는 것이었으니까.
“깃발을 땅에 꽂게.”
“네.”
블라드는 보르단에게 넘겨받은 자신의 깃발을 땅바닥에 꽂아 넣었다.
이 땅은 지금부터 나의 영역이다.
나를 보증하는 명예로운 이름들 아래서 지금부터 스스로의 권리를 행사하겠다.
너희들의 목숨까지도.
“좋아.”
소년의 선언이 제대로 박힌 것을 확인한 보르단은 품속에서 양피지를 꺼내 펼쳐 들었다.
소년은 명예로운 깃발을.
뚱뚱한 기사는 백작의 명령서를.
두 개의 검은 각자 맡은 역할이 있었다.
“뒷골목의 무뢰배 외팔이 잭은 들어라! 너는 그동안 바예지드가 내건 규칙과 법을 무시하고 사람들의 고혈을 빨아왔다!”
예의와 절차에 약한 블라드를 대신하여 보르단이 양피지를 펼치며 그 안에 있는 내용들을 읽어내려갔다.
그를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당당하게 외치는 보르단의 모습을 보며 과연 기사는 다르다 손을 치켜들 모양새였다.
“이에 쇼아라의 정당한 주인인 나 페테르 바예지드는 너의 패악을 더는 지켜볼 수 없음에 나의 대리인인 블라드를 보내니 지금부터 그가 행하는 모든 권한은 쇼아라의 정당한 주인인 나와 신실한 교회가 동시에 증명하는 권리이다!”
요제프가 작성하고 페테르가 승인했으며 바예지드의 기사가 선언한 명령문이 끝나자 병사들의 함성이 요란하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바예지드! 바예지드!”
“외팔이 잭을 죽여라!”
“신께서 그를 보호하신다!”
“외팔이 잭과 그의 부하들은 문을 열어라! 정당한 대리자를 받아들여라!”
그러나 보르단의 근엄한 선언이 끝났음에도 장미의 미소는 여전히 굳게 닫혀있을 뿐이었다.
당연한 선택일 것이다.
문을 열든 열지 않든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그저 가혹한 파멸일 뿐일 테니까.
“내 일은 끝났네.”
“감사합니다.”
장식 없는 검의 손질을 마무리한 블라드가 보르단의 말을 듣고는 조용히 숨을 가다듬었다.
“다시 말하지만,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어. 안에 있는 인원이 50명은 된단 말일세. 그러니······.”
“제가 이렇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알겠네.”
굳게 결심한 소년의 푸른 눈동자를 보며 보르단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한 발짝 물러섰다.
자신만의 세계까지 가진 녀석이니 고집도 남다르겠지.
원래 스스로의 길에 확신이 있는 자만이 오러를 다룰 수 있는 법이었으니까.
움직일 수 없는 요제프와 자야르를 대신하여 소년을 보좌하기 위해 내려온 보르단의 일은 이제 끝났다.
그는 훌륭히 시장을 겁박했으며 쇼아라의 행정력을 동원해 외팔이 잭을 봉쇄하는 데 성공했다.
이제 남은 것은 정당한 대리자의 처형식뿐이었다.
“······.”
블라드는 가만히 장식 없는 검을 치켜든 채 눈을 감았다.
마치 기도라도 하는 듯한 블라드의 모습에 주위에 있던 병사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과연 정당한 대리자의 면모에 걸맞은 모습이라 다들 생각하고 있었으나 언제나 그랬듯이 실상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이미 준비하고 있을 거다.]‘알고 있어요.’
[시야를 넓혀야 해. 여태까지와는 전혀 다른 전투가 될 거다.]‘각오했어요.’
자신만의 세계를 갖춘 데 성공한 블라드.
소년은 더는 소리 내어 목소리와 대화하지 않았다.
세계와 세계의 경계에서 통하는 지평선이 있었으니까.
[시작은 화려하게 해라. 모든 전투에서의 기본은 기선제압이다.]목소리의 마지막 조언을 들은 블라드는 자신의 왼쪽 눈을 감았다.
장식 없는 검에 천천히 빛무리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오러다!”
“저 나이에?”
웅성거리는 병사들.
그리고 창가에서 동향을 살피고 있던 잭의 부하들도 화들짝 놀라며 커텐을 닫고 있었다.
일격필살의 묘리는 의외성에서 나온다.
그리고 지금 오러를 빛내고 있는 소년은 의외성 그 자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나는 쇼아라의 블라드다.”
자신의 세계 안에서 블라드는 생각했다.
그날 자신이 고딘을 불러오지 않았다면 호르헤는 살 수 있지 않았을까?
만약 외팔이 잭이 호르헤를 위협하지 않았다면 자신이 고딘을 불러왔을까?
“나는 정당한 대리인이기 이전에 정당한 복수자이기도 하다.”
그동안 수없이 고민했던 만약의 만약이 소년의 머릿속을 떠돌고 있었지만, 결국 이어지는 결론은 하나였다.
외팔이 잭을 죽여야 한다.
“우리의 항쟁을 마치러 이곳에 왔다.”
그의 세계는 자신의 세계를 좀먹고 있다.
요제프의 말처럼 너저분한 인연을 끊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내가 돌아왔다. 외팔이 잭!”
외마디 외침과 함께 깨어진 둥지, 장미의 미소를 향해 소년이 달려들었다.
내가 돌아왔다.
모든 것을 마무리 짓기 위해서.
콰아아앙-!
단단히 모아두었던 소년의 세계가 잭의 세계를 갈라내었다.
소년의 강렬한 두들김에 빼앗겼던 장미의 미소가 마침내 품을 열었다.
※※※※
끄아아아-!
뭔 놈의 힘이!
문을 틀어막고 있던 사내들이 뒤로 나자빠지며 형편없이 바닥을 구르고 말았다.
일개 조직원들에 불과한 사내들은 자신의 세계를 이룬 소년의 일검을 막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한 자들이었다.
“못 들어오게 막아!”
“내리쳐라!”
흩날리는 나무 파편 사이에서.
소년의 금발이 흩날렸다.
누군가의 핏방울과 함께.
장미의 미소를 들어서자마자 곳곳에서 번뜩이는 누군가의 칼날들.
문을 부수며 달려드는 소년을 향해 날카로운 칼날을 들이밀었으나.
텅-! 텅텅텅텅!
번뜩이는 소년의 반격기가 악의 어린 칼날의 빗속에서 길을 만들어내었다.
너희들의 내려침은 성벽 같았던 기사에 비한다면 미약하기 그지없다.
“끄아아악!”
“이 미친!”
블라드는 더이상 반쪽짜리 반격기를 쓰는 사람이 아니었다.
틈을 만들어냈다면 파고들어야 한다.
파고들기 위해서는 검을 뻗어야 한다.
자야르가 그렇게 말했었다.
고딘은 일검에 모든 호르헤의 단검들을 베어내었지만 블라드는 그렇게까지 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몇 명 정도라면 가능할 것이다.
“흐아아아!”
소년의 검이 순간 빛을 발했다.
순식간에 중심을 잃어버린 잭의 부하들은 그저 아무런 방도 없이 자신들의 여린 몸을 내줬을 뿐이었다.
소년의 검끝에서 그날과 같은 장미꽃들이 화려하게 피어올랐다.
“그물 던져! 쇠 그물!”
들소처럼 강렬히 전진하는 소년의 움직임에 잭의 부하들은 당황하고 말았다.
지금 눈앞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소년은 자신들이 알고 있던 블라드가 아니었다.
“빨리!”
이제야 사태를 확실히 파악한 잭의 부하들이 발악해대었지만 블라드는 그들의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촤악-!
거대한 로비, 그리고 그 로비를 네모나게 둘러싸고 있는 위층의 복도들.
그곳에서부터 던져지는 쇠그물들이 있었다.
소년이 있던 자리로 빈틈없이 떨어지는 그물들이었으나 블라드는 목소리의 조언에 따라 이미 시야를 넓게 퍼트려 놓았던 상황이었다.
“······!”
악의를 감지한 블라드는 눈을 감아도 걸을 수 있는 익숙한 현관을 따라 재빠르게 몸을 굴려댔다.
언제나 자신이 밀대질을 하던 현관이었다.
“너무 빨라!”
“우리 쪽에서는 안 닿아!”
빠른 움직임으로 그물들을 벗겨내고 교묘하게 기둥 뒤에 숨어 사내들의 사각에서 움직이던 블라드는 어찌할 줄 모르고 서 있는 자들에게 쉴 새 없이 검을 휘둘러댔다.
“으아아악!”
“저 자식 너무 빨라!”
타고났던 날렵한 기질에 고등의 훈련까지 받은 블라드의 움직임을 잭의 부하들은 감당할 수 없었다.
소년은 북부의 명문 바예지드가 주목하는 가능성이었다.
“계단만 막아! 여기 계단 하나야!”
“단단히 틀어막은 다음에 달려들게 만들라고!”
준비했던 수가 막히자 잭의 부하들은 재빠르게 중앙에 있는 계단 쪽으로 몰려들었다.
높고 좁은 곳을 선점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건 전략의 기본 상식 중 하나였다.
‘······!’
그리고 그 상식은 소년 또한 잘 알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계단으로 몰려드는 잭의 부하들을 보며 블라드가 눈을 빛냈다.
일격필살의 묘리는 전장을 통제하는 데서 나온다.
의외성으로 적을 부수고 전장을 통제해 상대방을 자신의 세계 안에 가둔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상대에게 치명적인 일격을 날릴 수 있다.
“저게 뭐야!”
블라드는 재빨리 입구부분에 있던 창문 쪽으로 달려가 창가에 매달려 있는 커다란 커튼의 끈을 베어내었다.
그리고는 자연스레 따라 올라가는 줄을 잡고는 2층을 향해 뛰어올랐다.
키가 작았던 붉은 머리 소녀를 위해 대신 걷어주었던 커튼이었다.
“미친! 날아왔잖아!”
“무기 들어! 달려든다!”
소년의 의도에 갇히고 만 잭의 부하들이 달려오는 블라드를 막기 위해 벽을 세우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이것밖에 안 되나! 개자식들아!”
블라드가 사납게 외쳐대며 사내들을 베어내었다.
사내들이 들이미는 칼날은 날카롭기 그지없었으나 정작 다가오는 방향은 무딜 뿐이었다.
차라리 자야르와의 대련이 훨씬 위협적이었다.
“으아아악!”
“활! 활 가져와!”
예상보다 너무 빠른 등장이었으나 활을 쏠 줄 아는 몇몇이 3층에서 내려와 블라드에게 시위를 메겼다.
“······!”
1층은 로비, 2층은 창관.
“쏴!”
소년은 재빨리 방의 문을 열어젖히며 화살로부터 자신을 보호했다.
초가 짧다며 억울하게 얻어맞았었던 안나가 있던 방의 문이었다.
타다다당-!
좁은 복도였기에 피할 수 없었던 화살들은 창녀들의 방에 달려 있던 문에 의해 가로막히고 있었다.
마르셀라가 특별히 주문했던 방문은 지금 잭의 부하들에 의해 걸레짝이 되고 말았지만, 그녀라면 용서해줄 것이다.
“으악!”
블라드는 열려있는 방문들 안으로 아직 자리를 벗어나지 못한 잭의 부하들을 난폭하게 집어넣었다.
갑작스레 좁은 곳에 갇혀버린 사내들이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죽어!”
“으아아아!”
창녀들 대신 침대에 던져지고 만 사내들이 날카로운 검에 꿰뚫리고 있었다.
한 방에 창녀는 한 명씩.
초팔이인 블라드는 착실하게 장미의 미소의 룰에 따랐다.
타다다당-!
문을 열어젖혀서 화살을 막고.
누군가를 잡아채서 찌르고.
단순하기 그지없는 작업을 반복하며 블라드는 전진하고 있었다.
4층에 있을 외팔이 잭을 향해서.
20실버짜리 짧은 초는 욕정을 토해내기에는 짧은 시간만을 주었으나 이제는 그 누구도 불평하지 못할 것이다.
블라드가 방 안으로 밀어넣은 사내들은 언제까지나 축축한 침대 위에 누워있을 테니까.
“올라가! 올라가!”
“저런 미친 새끼가!”
“저거 블라드 맞아?”
1층에서도 2층에서도 소년을 막지 못한 잭의 부하들이 3층을 향해 뛰어 올라가고 있었다.
초반에 짜놓았던 진형 따위는 이미 무너진 지 오래였다.
[······스무 명은 넘게 벤 것 같군.]목소리는 자신의 예상보다 훨씬 뛰어난 몸놀림을 보이는 소년을 보며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가지고 있는 재능과 치열한 노력, 그리고 하고자 하는 강렬한 의지까지.
소년은 사람을 죽이는 데 있어 그 누구보다 타고난 존재였다.
“계단 막아!”
“괜찮아! 이번에는 커튼 없어!”
다시 한번 계단을 틀어막은 잭의 부하들은 마지막 기회라 생각했는지 들고 있던 무기들을 치켜든 채 소년을 바라보고 있었다.
“들어와 봐! 개새끼야!”
“······후우.”
쉴 새 없이 검을 휘둘렀던 블라드는 잠시 숨을 고르며 상황을 판단했다.
아무리 자신만의 세계를 갖췄다 할지라도 저런 좁은 틈을 향해 몸을 내던지는 것은 사양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이쯤이었던가?’
블라드는 위를 쳐다보며 시체만이 즐비한 2층 복도를 천천히 걸었다.
찾아야 하는 흔적들이 있었다.
‘여기다!’
그의 사수이자 선배인 버레이는 요령은 좋았으나 천성이 게으른 자였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버레이는 뭐든지 대충 때우는 데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던 사람이기도 했다.
그것이 소년에게 길을 열어주었다.
어쩌면 후배를 위한 마지막 배려일지 모를 흔적이었다.
콰직-!
“······뭐야?”
“저게 왜 뚫려?”
그저 검 끝만 가져다 대었을 뿐인데 2층 천장이 뚫리고 있었다.
버레이가 수리한 곳이었다.
멍청히 무기를 들고 있는 잭의 부하들을 향해 블라드가 미소를 지었다.
“들어갈게. 새끼들아.”
“저놈 막아!”
“올라온다. 저 미친놈이 올라온다!”
사내들의 발작 같은 외침을 뒤로한 채 블라드는 검을 집어넣고는 빠르게 복도를 내달렸다.
“막아–!”
거기서부터 얻은 추진력을 이용해 뛰어올라 능숙하게 구멍이 뚫린 바닥에 자신의 손을 얹어놓았다.
자유로워진 양손을 이용해 솟구치듯 구멍을 오른 블라드는 다시금 재빨리 검을 빼 드는 데 성공했다.
“하아······.”
정당한 복수자.
타고난 살육자.
3층으로 올라오는 데 성공한 블라드는 마치 제집에 돌아오기라도 한 듯 여유로운 모습으로 창녀들의 방에 놓여있던 물 주전자를 꺼내왔다.
“······.”
그런 블라드의 모습을 보며 잭의 부하들은 압도당하고 말았다.
도대체 무슨 일을 겪어야만 저렇게 사람이 변할 수 있단 말인가.
“잠깐 쉴까? 나는 계속할 수 있긴 한데.”
“이······런 씨발!”
물 주전자의 입구를 들이켜며 웃고 있는 소년.
자신들을 죽이면 죽일수록 진해지는 미소를 보며 잭의 부하들은 공황에 빠져들어 갔다.
“그동안 집 빌려준 값은 받아야지. 새끼들아.”
잭의 부하들은 이곳이 자신들의 영역인 줄 알았겠지만, 그것은 오산이었다.
이곳은 장미의 미소.
소년의 둥지였다.
장미꽃을 피운 소년
뒷골목의 밤은 도시의 낮보다 밝다.
오직 어둠 속에서만 살아갈 수 있는 자들이 모인 곳이었기에 뒷골목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은 밤에 활동하기 마련이었다.
그중에서도 밀수업을 주업으로 삼는 캡틴 후버의 조직원이라면 두말할 필요 없는 이야기일 것이다.
캡틴 후버의 조직원 중 하나인 절름발이 하벤.
그는 지금 서류 하나를 집어 든 채 골머리를 앓는 참이었다.
“외팔이 잭이 미쳐가는구만······.”
지금 그가 들고 있는 장부는 곳곳이 비어 있었지만 정작 그것을 채워 넣어야 하는 하벤은 서류에 무엇을 써넣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뒷골목을 지배한 것이나 다름없는 외팔이 잭.
창녀들의 기사는 무너졌고 다른 조직들도 심하게 쪼그라들고 만 상황에서 이제 감히 그에게 고개를 들 수 있는 조직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나마 밀수업이라는 특별한 업에 종사하고 있던 캡틴 후버 정도나 잭의 견제에서 조금 자유로운 정도였지만 그것도 이제 옛말이었다.
“······자꾸 이렇게 대놓고 약탈을 해버리면 어쩌라는 말이냐.”
하벤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쥔 채 한숨을 푹 내쉬고 말았다.
외팔이 잭은 언제나 선을 지키는 자였다.
마른걸레를 쥐어짜 한 방울의 은화를 만드는데 도가 튼 그는, 자신이 쥐고 있는 채무자들을 막다른 곳까지 밀어 넣으려 하지 않던 사람이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까지는 아니었으나 적어도 쥐 정도는 되는 사람들의 배를 가르지 않으려 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외팔이 잭은 호르헤가 죽고 난 뒤부터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시정잡배도 이렇게까지는 하지 않을 정도로 악랄하게 사람들을 수탈했고 그로 인해 뒷골목의 경제 자체가 무너지고 있었다.
누군가는 아예 잭이 술독에 빠져 사느라 조직을 관리하고 있지 않다고 했는데 하벤은 정말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견제할 사람이 없어진 돈벌레들은 점점 망가지고 있었다.
“일단 보고를 올려야 되겠네.”
결국, 하벤은 오늘도 잭의 부하들에게 약탈당하고 만 물품들을 적어 후버에게 보고할 수밖에 없었다.
역정이야 듣겠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것이 하벤이 맡은 업무였으니까.
끼이이익-
겨우 책상 하나 들어갈 만한 방에서 빠져나온 하벤은 때마침 안으로 들어오고 있는 젊은 조직원과 마주쳤다.
“하벤! 들었어?”
“뭐를?”
구역 순찰을 담당하던 조직원은 무언가 큰 것이라도 물고 왔는지 상기된 표정으로 하벤에게 입을 열었다.
“뒷골목이 봉쇄되었다는데?”
“왜?”
“외팔이 잭을 잡으려고 스투르마에서 사람이 왔대. 쇼아라의 경비병들이 죄다 여기를 둘러쌌다니까.”
“아아······.”
하벤은 그 말을 들으며 탄식을 내뱉고 말았다.
결국, 이렇게 되었구나.
외팔이 잭은 결국 선을 넘고야 말았구나.
하벤은 그럴 만도 하지라고 생각하며 짚고 있던 지팡이에 힘을 주었다.
그가 잡혀 나가고 난 뒤에는 정말 많은 일이 쏟아져 들어올 것이라 생각하며.
“그런데 말이야. 너 그 녀석이랑 친하지 않았나?”
“누구 말이야?”
후버의 집무실로 가려던 하벤의 등 뒤로 조직원의 말이 들려왔다.
“블라드 말이야.”
“······블라드는 왜?”
오랜만에 듣는 그리운 이름이 흘러나오자 하벤은 등을 돌려 자신에게 말을 거는 조직원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그 녀석은 왜?”
“아니, 직접 보지는 못했는데 말이지······.”
조직원은 머리를 긁적이며 확실하지 않다는 투로 입을 열었다.
“스투르마에서 온 집행인이 금발이라고 하더라고. 거기다 자기를 쇼아라의 블라드라고 했다던데. 그럼 그 녀석 아니야?”
“뭐?”
익숙한 단어들이 들려오자 하벤은 지팡이를 짚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진짜야?”
“그렇다니까. 지금 장미의 미소 앞에다가 깃발을 꽂았다고 하더라니까?”
“······.”
금발, 블라드, 그리고 장미의 미소.
모두가 누군가와 연관이 있는 단어들이었다.
하벤의 가슴이 뛰고 있었다.
“이거 받아.”
“어?”
하벤은 들고 있던 서류뭉치를 조직원에게 넘겨준 뒤 서둘러 밖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어디가!”
“가봐야 해. 가서 확인해 봐야 해.”
정보와 소식에 민감했던 하벤은 이미 쇼아라의 블라드라는 존재에 대해 알고 있었다.
데어마르의 결투에서 오러를 발휘하고 이번 데스웜 사냥에서 활약했다는 바예지드의 어린 종자.
‘진짜일지도 몰라!’
그러나 들리는 풍문만으로는 자신이 알고 있는 블라드라고까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너무나 대단한 일들을 해왔으니까.
자신이 알고 있는 블라드는 분명 가능성이 있는 녀석이었지만 그렇게 큰일을 했다기에는 쉽게 믿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또 채찍 맞는다고!”
“좀 늦는다고 그래!”
자신이 알고 있는 금발인지 확인하기 위해 봉쇄된 거리를 나서는 하벤.
지팡이를 의지한 채 걷는 그의 절뚝거리는 발걸음은 분명 예전보다 더 비틀어져 있었다.
※※※※
“그동안 이빨이라도 좀 채워 넣지 그랬어.”
“흐으······.”
블라드는 자신의 발밑에서 힘없이 시선을 맞추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호르헤의 초팔이였던 시절 외팔이 잭과 함께 들어와 초 상자를 엎은 녀석이었다.
그때 후려쳤던 녀석의 이빨이 여전히 텅 비어 있었다.
“이제는 필요 없긴 하겠네.”
블라드는 조용히 쓰러져 있는 남자의 가슴에 천천히 검을 밀어 넣었다.
“끄으으······.”
폐를 찔려서인지 제대로 된 신음 한번 못 지른 남자는 피거품을 문 채로 천천히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하아······.”
블라드는 잠시 한숨을 쉬며 자신이 걸어왔던 길을 되돌아보았다.
피로 가득한 복도.
부서져 있는 계단.
침묵하고 있는 창녀들의 방.
50명이 넘었던 외팔이 잭의 부하들 모두가 소년의 검에 꿰뚫린 채 쓰러져 있었다.
모두가 숨죽인 채로.
“······.”
목소리의 말을 들으며 블라드는 장식 없는 검을 휘둘러 피를 털어내었다.
소년은 굳이 스스로를 고난의 길로 몰아넣었다.
푸른 달빛의 기사를 목표로 삼고 있는 이상 블라드도 그가 남겨놓은 발자취에 어떻게든 따라붙어야만 했다.
“그래요. 이 정도면 어느 정도는 된 것 같네요.”
그리고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블라드는 그날의 광경을 어느정도는 재현해 낼 수 있었다.
곳곳이 소년이 피워낸 장미꽃들로 가득했다.
“······마무리는 지어야지.”
땀인지 피인지 알 수 없는 것을 이마에서 훔쳐낸 블라드는 잠시 벽에 기대 4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바라보았다.
1층은 로비. 2,3층은 창관.
그리고 4층은 조직원들의 공간.
그곳에는 언제나 똑같은 모습으로 앉아 정해진 식단을 해치우던 창녀들의 기사가 있었다.
“······.”
블라드는 4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하나하나 밟아 올라갔다.
끼이이익-
그날의 불길한 소리는 여전히 이곳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수리가 필요한 계단이었으나 반년이나 방치해놓았다는 이야기는 장미의 미소가 그동안 제대로 된 관리를 받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마르셀라가 기겁을 하겠는데.’
그리웠던 계단을 오르며 블라드는 무심코 예전과 같은 생각을 하고 말았다.
그러나 계단을 올라가는 소년은 더 이상 초를 파는 블라드가 아니었다.
“······저 왔습니다. 보스.”
정당한 복수자이자 명예로운 자의 대리인이 마침내 마지막까지 올라왔다.
“오, 그래. 유망주. 어서 와라.”
3층에 모든 부하들을 밀어 넣었는지 4층에는 오직 외팔이 잭 혼자만이 앉아 있었을 뿐이었다.
잭은 반갑다는 듯 고개를 돌려 옆자리를 두들겼지만 블라드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재미없게스리.”
블라드가 흉흉한 기세로 아무 말 없이 서 있기만 하자 외팔이 잭은 고개를 돌려 홀로 술잔을 들어 올렸다.
아마 이것이 잭의 마지막 잔이 될 것이다.
“네가 진짜 쇼아라의 블라드였구나. 소문을 듣긴 했었지.”
“여기까지 퍼졌었나요?”
“재작년에 너를 데려왔어야 하는 거였어. 그때 담당자가 누구였더라.”
외팔이 잭은 눈썹을 찌푸리며 생각하다 그만 웃어버리고 말았다.
“하긴 그 새끼도 이미 뒤졌겠지.”
들고 있던 잔을 입안으로 털어넣은 잭은 천천히 일어나 소년 앞에 마주 섰다.
“그래도 아는 사람이라 다행이구만.”
허리춤을 추켜세우며 복장을 단정히 한 잭은 한 손에는 커틀러스처럼 보이는 짧은 검을. 그리고 다른 한 손에는 갈고리를 빼든 채 블라드를 바라보았다.
“그동안은 하기 싫어 내버려 두긴 했는데 나는 원래 마무리는 확실히 하는 사람이야.”
너절한 인연.
자신의 세계를 좀 먹는 세계.
“······.”
하지만 직접 마주한 외팔이 잭은 소년이 우러러보았었던 그때의 존재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가 추락한 것도 있겠지만 그만큼 소년의 세계가 넓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외팔이 잭의 세계는 더 이상 소년을 가둘 수 없었다.
“갑니다.”
비록 원수와도 같은 자였지만 블라드는 외팔이 잭에게 마지막 예우를 다해주기로 했다.
까아앙-!
비록 뒷골목식 예우라 거칠기 그지없었지만 말이다.
“크윽!”
잭은 칼과 갈고리를 교차해 블라드의 검을 막아내었다.
이 정도는 해야 막지 않겠나 싶어서 두 손으로 막은 것이었지만 직접 마주한 블라드의 기세는 자신의 예상을 가뿐히 뛰어넘었다.
“그래! 이 정도는 했으니까 거기까지 기어 올라갔겠지!”
소년의 성장을 보며 잭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잭도 꿈이라는 것이 있었다.
그 또한 형태는 다를지라도 별이라는 것을 품었던 사내였다.
그렇기에 소년이 겪어온 역경을 이해할 수 있었다.
“훌륭하다!”
“······!”
검과 검의 맞부딪힘 속에서 터져나가는 불꽃들.
자신을 오랫동안 옭아매고 있던 세계를 향해 소년이 발버둥 치고 있었다.
더는 잭의 세계가 자신을 가둘 수 없음을 알기에.
“끄으응!”
잭은 최선을 다해 소년의 검을 받아주었다.
비틀거릴지라도, 추해 보일지라도.
아마 이것이 자신이 택할 수 있는 마지막 모습이자 선택일 것이다.
“호르헤가 봤으면 좋아했겠군!”
“닥쳐!”
감히 원수 주제에 호르헤를 들먹이는 잭을 보며 블라드는 사납게 소리 질렀다.
그는 용서받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호르헤를 죽이는 데 일조하고 깨어진 장미의 미소를 집어삼켰으며 마르셀라를 팔아치운 개자식이었다.
너는 비참하게 죽어야만 한다.
“흐······하하!”
고통과 후회, 허탈함과 담담한 그 사이에서 잭은 왼팔에 있는 갈고리를 휘둘러댔다.
그가 쥐고 있던 커틀러스는 이미 오른팔과 함께 땅바닥을 구르고 있었으니까.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 알고 있었다.
다만 오늘이 마지막이 아닐 거라 믿으며 치열하게 살아왔을 뿐이었다.
‘차라리 이게 낫겠지!’
외팔이 잭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호르헤처럼 거대한 세계에 깔려 죽는 것보다야 자신을 밟고 올라가려는 어린 세계에 밟혀 죽는 것이 나을 테니까.
어차피 자신의 인생이 여기까지라면 스스로의 선택으로 끝내고 싶을 뿐이었다.
“너는 나보다는 높게 올라가겠구나!”
“닥치라니까!”
아직 세월의 깊이를 간직하지 못한 소년은 잭이 하는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채 그저 분노에 찬 일격을 휘두를 뿐이었다.
그러나 소년의 심장은 뜨거웠을지라도 들고 있는 검은 차갑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크윽!”
그 서늘함이 잭의 내장을 꿰뚫고는 등 뒤로 튀어나왔다.
피를 머금은 검 끝에서 선홍빛 핏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너절했던 인연을 끊고 진실로 자유로운 모습으로.
“마지막으로 할 말은?”
“······.”
형편없이 숨을 헐떡이는 소년.
있는 힘을 다해 이곳까지 기어 올라온 소년을 보며 잭은 조용히 갈고리를 들어 자신이 앉아 있던 곳을 가리켰다.
“······쉬다 가라. 수고했다.”
“······뭐?”
알 수 없는 말과 함께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천천히 뒤로 물러나며 블라드의 검을 빼내는 외팔이 잭.
“흐으윽!”
내장이 뽑혀 나가는 아픔에도 그는 억지로 일어서 난간을 향해 뒷걸음질 쳤다.
“······이 정도면 됐지.”
잭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았다.
화려한 샹들리에 안에서 스쳐 지나가는 주마등을 보며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았다.
“이 정도면 잘했지.”
그는 만족했다.
악하게 살았으나 그의 인생은 치열했다.
비록 마지막은 거대한 세계에 짓눌려 형편없이 구겨지고 말았으나 그의 잘못만은 아닐 것이다.
“······.”
마지막으로 잭은 결국 자신이 가질 수 없었던 건물을 향해 큰 소리를 내질렀다.
“잘 놀다 갑니다. 호르헤!”
블라드는 천천히 뒤로 넘어가는 외팔이 잭을 보았다.
난간을 넘어 로비로.
4층에서 1층으로 떨어져 내리는 그의 마지막 모습을.
쾅-!
그날의 호르헤와 마찬가지로 떨어져 내린 세계.
죽음과도 같은 고요함 속에서 오직 떨어지는 핏방울만이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고 있었다.
“······.”
복수는 달콤한 것.
그렇기에 마땅히 해야 하는 것.
그러나 소년의 혀끝에 맴도는 씁쓸한 만큼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자신이 해야 할 모든 일을 마친 블라드는 이제야 지친 발걸음으로 잭이 앉아 있던 테이블을 향해 걸어갔다.
“······이런.”
그곳에는 소년을 기다리고 있던 술잔 두 개가 있었다.
블라드는 잭이 비워버린 잔 옆으로 가득 담겨 있는 술잔 하나를 보았다.
방금 잭이 무엇을 말했는지 눈치챈 블라드는 가만히 앉아 자신을 위해 따라놓은 술잔을 바라보았다.
고개 숙인 소년이 앉아 있는 자리.
비어 있는 술잔 두 개.
“······돌려줄게요. 보스.”
그리고 반짝이는 금화 하나.
소년은 그날 외팔이 잭이 주었던 금화를 다시 돌려주었다.
기사는 오직 정당한 대가만을 받아야만 하므로.
이곳은 장미의 미소.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 잠시 고여있는 곳.
오늘 고여있던 물방울 하나가 세상 밖으로 흘러내렸다.
소년의 세계의 작은 파문을 남긴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