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Embrac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50
내가 너희들을 찾을 때 (1)
희미하게 밝아오는 여명이 소년을 비추고 있었다.
장미의 미소.
소년이 만들어낸 화려한 화원.
화려한 붉은색으로 물든 소년이 힘겨운 걸음걸이를 옮기고 있었다.
자신이 피워낸 수많은 장미꽃을 뒤로 한 채.
“······.”
달콤한 쾌락의 끝에는 언제나 허무함이 깃들고는 하는 법이다.
복수는 달콤했으나 기어이 그것을 먹어 치우고 난 뒤의 허탈함만은 그 누구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쇼아라의 병사들은 멍한 표정으로 피칠갑이 된 채 건물을 빠져나오는 소년을 보고 있었다.
설마 했으나 정말로 50명을 베고 나와버린 소년.
자신들이 감히 다가갈 수 없을 정도의 업적을 쌓고 온 소년을 보며 병사들은 경의와 함께 두려움을 나타내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을 책임지기 위해 내려온 보르단마저도.
정당한 권리를 행사한 처형인이자 복수자는 그렇게 홀로 걸어 나가고 있었다.
오직 장식 없는 검만을 의지하면서.
그 순간.
“블라드! 블라드–!”
병사들의 뒤에서부터 누군가가 애타게 부르짖는 소리가 있었다.
“블라드! 여기다! 나 하벤이야!”
아직 자신만의 세계에서 완벽히 빠져나오지 못했던 소년은 그리웠던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으며 고개를 돌렸다.
소년의 푸른 눈동자에 맺힌 모습.
볼품없는 지팡이 하나가 병사들의 머리 위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하벤.”
지평선 끝에 서 있던 소년의 시선이 점점 현실로 돌아오고 있었다.
볼품없는 하벤의 지팡이.
그것은 절뚝이며 걷는 하벤을 위해 소년이 직접 깎아준 것이었다.
“하벤?”
블라드는 자신을 애타게 찾는 갈색 머리의 남자를 향해 자그맣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 모습을 본 병사들이 재빨리 자신들의 뒤에 있던 갈색 머리 남자에게 길을 열어주었다.
“야 임마······.”
시야가 트이고 길이 열리고.
하벤은 그렇게 열린 길 앞에서 정말로 자신이 찾고 있던 소년이 눈앞에 있자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오랜만에 만났다는 반가움보다도 새빨갛게 물들어 처참해 보이기까지 하는 소년의 모습이 하벤의 가슴을 아프게 뚫고 들어왔다.
“괜찮, 괜찮냐?”
서둘러 절뚝거리는 발걸음으로 병사들 사이로 헤치고 나오는 하벤.
“······아아, 아이고.”
블라드는 기대고 있던 장식 없는 검을 집어넣으며 다가오는 하벤을 껴안았다.
소년을 꽉 조이고 있던 긴장을 풀고 안고 있던 허탈함을 내던진 채 진실로 자유로운 모습으로.
“아······씨. 진짜 아파. 여기저기 막 아파.”
“이게 뭐야. 뭐가 어떻게 된 거야.”
하벤은 자연스럽게 자신에 안겨 오는 소년을 받쳐주기 위해 들고 있던 지팡이를 놓을 수밖에 없었다.
장식 없는 검에 의지하던 블라드.
볼품없는 지팡이에 의지하던 하벤.
둘은 스스로를 지탱하던 것들을 내려놓은 채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서로가 서로를 의지한 채로 그렇게 세상에 서 있었다.
하나의 담요로 서로를 의지하던 그때의 모습처럼.
“······이제야 돌아온 것 같네.”
블라드는 하벤의 품 안에서 두 눈을 감았다.
※※※※
밤하늘의 달이 지고 오늘의 태양이 떠오른 쇼아라의 아침.
어제 있었던 난리는 오간 데 없다는 듯 도시의 뒷골목은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이제는 밤이 아닌 낮에 활동해야 하는 소년은 점점 번져오는 햇살을 맞으며 눈을 떴다.
‘······적응이 안 되네.’
잘 적응이 되지 않았다.
소년이 눈을 뜬 장소는 뒷골목이 아니었으니까.
쇼아라는 소년의 고향이었으나 뒷골목을 벗어난 지역은 여전히 낯설기만 할 뿐이었다.
“오오오. 천천히 일어나라고 대장.”
블라드가 눈을 뜨자마자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는지 고트가 재빨리 물을 떠다 주었다.
“······삭신이 다 쑤시네.”
“그렇지. 그럴 만도 하지.”
마실 물도 모자라 세숫물까지 준비해 놓은 고트는 마치 자신이 집사라도 되는 양 수건을 팔뚝에 걸치고는 싱글싱글 웃고 있었다.
“······왜 이래.”
“왜냐니. 원래 이랬잖아.”
수상쩍은 고트의 행동을 보며 블라드는 눈썹을 찌푸렸다.
“작작 해.”
“······알았어.”
어색하게 웃고 있는 고트를 보며 블라드는 생각했다.
조급할 만도 하겠지.
쇼아라에 남아있던 블라드의 인연들이 하나둘 보이고 있었으니까.
고트에게 있어서는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존재들처럼 느껴질 것이다.
“일만 잘하면 적당히 챙겨줄 테니까.”
“······.”
자신의 속셈 정도는 이미 알고 있다는 소년의 말을 들으며 고트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아직 고트는 소년이 정한 선 안에 들어서지 못했다.
소년이 생존을 위해 쳐 놓은 선 안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지금이 언제야?”
“벌써 점심이 지났어.”
고트의 말을 들은 블라드는 멍하니 창밖으로 새어 들어오는 빛을 바라보았다.
과연 햇빛의 색깔이 짙은 것이 늘어지게 자고 일어난 것이 맞는 모양이었다.
“몸 상태가 괜찮으면 보르단 경이 잠깐 보자고 그러던데.”
“그래야지.”
외팔이 잭은 죽었다.
그의 부하들 또한 소년이 전부 죽여버렸다.
그렇다 할지라도 외팔이 잭의 그림자가 한 번에 지워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오랫동안 뒷골목에서 뿌리내린 자였으며 모든 것을 지배했던 사람이기도 했으니까.
“······보르단 경이 바쁘기는 하겠어.”
블라드는 그동안 조직의 보스들이 패배하거나 밀려나는 과정들을 바로 옆에서 보아왔기에 잘 알고 있었다.
뭐든지 새로운 물결이 일어날 때마다 가장 부산스러워지는 법이었다.
“끄응······. 도와주기는 해야 하겠네.”
블라드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침대에서 내려왔다.
모든 일에는 언제나 마무리라는 것이 중요한 법이었으니까.
※※※※
“마르셀라라는 여자는 잘 보호해두었다. 좀 시달렸던 모양이야.”
“감사합니다.”
“나중에 알아서 꺼내 가라고.”
“네.”
블라드는 마르셀라의 상태가 괜찮다는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보르단 앞에 놓인 간식들을 보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하나 줄까?”
“······혹시 혼자 다 드셨나요?”
잔뜩 쌓여있는 각설탕들, 흔적조차 남지 않은 디저트들.
뚱뚱한 기사가 해치워버린 달달한 것들의 시체가 책상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이렇게 먹으면 죽어요.”
“안 먹으면 죽을 거 같아.”
대답을 하면서도 마시고 있던 커피에 각설탕을 집어넣는 보르단을 보며 블라드는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앞으로 어쩔 거냐?”
“······글쎄요.”
자신만의 집무실을 갖춘 보르단의 모습은 정말 그럴싸해 보였으나 그의 본모습을 알고 있던 블라드로서는 그저 신선할 뿐이었다.
“너 때문에 예상보다 일이 빨리 끝났어. 뭐 나야 뒷일을 처리하느라 바쁠 테지만 공식적으로 너의 할 일은 끝났다 볼 수 있지.”
“도와드릴게요.”
보르단은 두툼한 턱살을 쓰다듬으며 미소를 지었다.
“그 말 안 했으면 실망했을 거야.”
“원래 하려고 했어요.”
늙은 기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서랍 안에서 양피지 하나를 꺼냈다.
“이거 들고 다니면서 내가 부탁한 일들을 적당히 처리해 주면 돼.”
“이게 뭔데요?”
글자를 읽을 줄은 알았으나 익숙하지 않았던 소년은 더듬더듬 양피지 안에 쓰여 있는 글자들을 읽어내려갔다.
“경비대······장 권한······대리.”
“체포권이다.”
“음. 체포권.”
“적당히 쥐어패도 된다는 허가증이기도 하지.”
무슨 말인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소년에게서 양피지를 돌려받은 보르단은 재빨리 그 안에 서명을 적어넣었다.
그러나 정작 쓰고 있는 이름은 자신의 것이 아닌 쇼아라 시장의 이름이었다.
“외팔이 잭의 잔재들이 아직 뒷골목에 남아있지. 요제프 님은 이번 기회에 쇼아라의 뒷골목을 손보고 싶어 하신다.”
거대한 잡초가 뿌리뽑혀 나갔으니 빈자리가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
잡초를 뿌리 뽑은 것도 큰 성과이긴 했으나 그 안에 그럴싸한 것들을 채워 넣는다면 더한 성과가 될 것이다.
요제프는 언제나 다음을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거라면야·········.”
블라드는 턱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일이라면 소년에게 맡기는 것이 가장 탁월한 선택일 것이다.
블라드는 누구보다 뒷골목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일단 요제프 님이 오실 때까지는 너는 공식적으로 대기인 상태야. 가끔 내가 하는 일만 도와주면 되니까 말이지.”
보르단은 옆에 놓여 있던 캐러멜들을 들이밀며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당분간은 쉬면서 옛 친구들 찾아가서 회포도 좀 풀고 그래라. 수녀원에 있다던 여자친구도 꺼내오고.”
“······친구라니까요.”
말로는 부정했으나 손으로는 캐러멜 몇 알을 챙긴 블라드는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오늘은 일단 쉬어라. 나는 할 일이 많아.”
“도와드린다니까요.”
지금 당장이라도 수녀원에 가고 싶은 블라드였으나 그곳은 자신이 가고 싶다 해서 마음대로 갈 수 있는 장소가 아니었다.
엄연히 세속과 떨어져 있는 경건한 장소였기에 들어갈 수 있는 날짜와 시간이 정해져 있었다.
고트가 따로 방문을 신청해놓기는 했지만 아마 이번 주 안에는 제미나를 찾아갈 수 없을 것이다.
“그럼, 지금 감옥에 외팔이 잭의 자잘한 잔챙이들이 있거든? 적당히 심문하고 와. 잭이 숨겨놓은 재산이라던가 뭐 이런 거.”
“······.”
외팔이 잭의 자잘한 잔챙이들.
그 소리를 들은 블라드는 자신이 쇼아라를 탈출했던 그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언제나 아쉬움 없이 당당하게 살고자 했던 소년이었으나 삶이란 것은 결국 누구에게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고는 했다.
“잘됐네요.”
보르단이 건네준 양피지를 품에 챙긴 블라드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저도 그곳에서 찾아야 할 사람이 있었거든요.”
쉽사리 끊기지 않았던 주고받는 관계에서 이번에는 소년이 내주어야 할 차례였다.
※※※※
경비대에 마련되어 있는 지하 감옥.
이번에 잡혀들어온 잭의 끄나풀들은 제대로 빛도 들지 않는 곳에서 다닥다닥 붙어 앉아 있었다.
점점 따뜻해지는 날씨와 함께 서로에게 닿는 체온이 심히 불쾌했지만,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그저 아무 말 없이 앉아만 있을 뿐이었다.
거리에 쓰레기처럼 굴러다니는 자신들에게는 그 어떤 구원도 없을 것이라는 걸 모두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들어오려면 허가가 있어야······.”
“여기. 이거 방금 받은 겁니다.”
“······확인했습니다.”
철컹-
횃불 말고는 빛 한점 없던 공간에 잠시 오후의 햇살이 비치고.
어두운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색 하나가 발을 내디뎠다.
갑작스레 들어온 사내를 보며 창살 안에 갇혀 있던 몇몇이 조금씩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이곳에 있던 몇몇은 지금 들어오고 있는 소년의 얼굴을 알고 있었으니까.
“······.”
그러나 창살 안에 있던 남자들은 쉽사리 창살 밖을 걷고 있는 소년을 향해 말을 걸지 못하고 있었다.
분명 얼굴은 익숙했으나 풍기는 기세는 그렇지 않았다.
같이 뒷골목을 구르던 사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당당한 기세였다.
“여기 있었네.”
무언가 애타는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남자들을 무시한 채 소년은 창살 안에서 자신이 찾던 누군가를 발견하고는 미소를 지었다.
“가뜩이나 까만 녀석이 수그리기까지 하니까 알아볼 수가 없잖아.”
창살 안에 있던 남자들은 블라드가 시선을 보내는 곳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
소년의 목소리에 검은 피부의 남자가 감옥 안 어두운 곳에서 조금씩 고개를 들고 있었다.
검은 사내는 멍한 눈빛으로 눈앞에 있는 소년을 바라보았다.
시궁창에서 살아왔던 인생 중 그 누구도 웅크리고 있던 자신을 찾아준 적이 없었으니까.
“오타르. 40실버만 줘봐. 그러면 여기서 꺼내줄게.”
장난스레 창살 안으로 손을 내미는 소년.
그 손을 오타르는 멍하니 쳐다보고만 있었다.
굳이 자신과 다른 피부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외상도 받아준다.”
어두운 감옥 안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존재.
쓰레기 더미 속에서도 푸른 빛을 잃지 않았던 그때의 소년이었다.
“······고맙다.”
오타르는 그 빛을 따라 난생처음 누군가가 내밀어주는 손을 잡았다.
마주 본 소년의 눈동자는 여전히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