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Embrac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56
안개의 마을 (2)
어린것들은 죄가 없다.
그러나 언제나 가장 먼저 희생되는 것은 어린것들이다.
진창과도 같은 뒷골목에서 블라드는 보아왔었다.
살아남기 위해 혹은 더 많이 가지기 위해 어린아이들의 것을 빼앗아가는 어른들을.
빼앗긴 아이들은 굶어 죽고, 얼어 죽고, 자신들을 버린 엄마를 찾으며 울다 지쳐 죽고.
그 지옥 같은 곳에서 블라드는 제미나와 하벤을 껴안으며 결심했다.
저런 어른은 되지 않겠다고.
저런 식으로는 살아가지 않겠다고.
뒷골목의 삶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어린 시절 세웠던 삶의 규칙들은 여전히 블라드의 가슴속에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그것은 소년이 스스로 만들어 낸 규율이었다.
규율은 지켜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기사는 지키는 자들이다.
지금 이곳에 죽어가는 어린아이들이 있었다.
※※※※
블라드는 마을을 둘러싼 축축한 공기를 뚫으며 걷고 있었다.
회색빛 벽돌로 만들어진 건물들은 안개와 함께 주변을 어둡게 만들고 있었다.
[여기인 것 같다.]“······.”
블라드는 고개를 들어 앞에 있는 건물을 바라보았다.
주위에 있는 어느 건물보다도 거대한 건물.
마치 뿔처럼 높게 치켜든 종탑이 블라드의 눈에 들어왔다.
교회.
신과 가장 가까운 장소.
어린 자, 약한 자, 늙은 자, 병든 자를 보호하는 성스러운 곳.
그런 곳이어야만 하는 곳.
“갑니다.”
[그래.]블라드는 쓰고 있던 후드를 벗어 내리며 회색빛 건물을 향해 걸어 들어갔다.
지금 이곳에서 본래의 색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오직 블라드가 가지고 태어난 금발뿐이었다.
“······.”
아무도 없는 한낮의 교회.
마을에 있는 모든 사람이 각자의 생업에 종사할 시간이었기에 예배실에 발을 들인 사람은 오직 블라드뿐이었다.
‘수상한 거 안 보여요?’
[지금 당장은.]블라드는 천천히 예배실 주변을 거닐며 목소리가 사특한 징조나 불길한 증거들을 볼 수 있게 움직였다.
목소리의 세계는 색이 진한 세계.
소년의 세계보다 100가지 색은 더 품고 있을 그의 세계는 분명 신성한 곳에 어울리지 않는 색깔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목소리가 소년의 시선을 통해 사특한 징조를 찾는 동안 블라드는 천천히 교회의 구조를 파악하며 만약의 사태를 대비했다.
겉으로만 보았을 때는 2층짜리 건물이었으나 가능하다면 비슷한 구조를 가지려 노력하는 교회 건물의 특성상 분명 지하층도 존재할 것이다.
블라드는 가능하다면 그곳을 찾아보고 싶었다.
[누가 왔다.]그러나 모든 땅과 건물에는 주인이 있듯이 이곳 또한 마찬가지였다.
천천히 예배당을 둘러보던 블라드는 등 뒤에서부터 자신을 보고 있는 누군가의 시선을 느꼈다.
허락받지 않은 손님을 바라보는 눈빛이 무겁게 닿아 들어왔다.
“······.”
시선을 눈치챈 블라드는 자연스레 한쪽 무릎을 꿇으며 기도하는 자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이곳을 조사하는 것처럼 보여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언제든지 검을 뽑을 수 있도록 준비는 해놔야 한다.
이 마을은 불길한 안개에 휩싸여 있었으니까.
저벅- 저벅-
한쪽 무릎은 꿇었으나 두 눈은 부릅뜨고 있던 블라드는 발소리와 자신과의 거리를 가늠하며 검을 뽑을 준비를 하였다.
블라드의 푸른 눈동자가 조금씩 스스로의 색깔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처음 보는 분이시군요.”
그러나 등 뒤에서 다가온 남자는 블라드가 상상하는 최악의 상황을 만들지 않았다.
그저 푸근한 목소리로 낯선 이방인을 맞이했을 뿐이었다.
“······어제 아침에 이곳에 들어왔습니다.”
“아아. 그 용병분들이시군요. 들었습니다.”
단정하게 빗어넘긴 갈색 머리.
소중히 들고 있는 두툼한 성경책.
요제프만큼이나 호리호리해 보이는 그의 체형은 첫인상으로만 본다면 사제라기보다는 학자와도 같은 인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갑작스레 들어와서 죄송합니다. 사제님.”
“아닙니다. 신의 품은 언제 어디서나 열려있는 법이니까요.”
블라드는 자신을 향해 웃고 있는 사제를 보며 검 손잡이를 살짝 건드렸다.
[보이지 않는다. 적어도 지금은.]“······.”
그러나 들려오는 것은 부정.
소녀의 목걸이가 가리키는 곳을 따라 이곳에 왔건만 정작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괜히 제가 형제님의 기도를 방해한 것이 아닐지 모르겠군요.”
“아닙니다. 차라리 허락을 받는 것이 마음 편하니까요. 기도를 마친후에 바로 나가겠습니다.”
쉽사리 보기 힘든 기도하는 용병을 목격한 사제는 손사래를 치며 미소 지었다.
“이곳은 교회입니다. 신을 찾는 모든 자들의 집입니다. 하고 싶은 것을 하시면 됩니다.”
비록 눈앞의 남자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었으나 안심할 수 없었다.
소년은 목소리의 도움을 통해 가려진 세계를 꿰뚫어 보았고 마을에 심상치 않은 존재가 깃들어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긴장을 놓아서는 안 된다.
“······감사합니다. 사제님.”
블라드는 일단 물러나기로 했다.
지금 당장 눈앞에 있는 사제의 목을 치고 교회 건물 곳곳을 쑤시고 다닐 것이 아니라면 더는 수상한 흔적을 발견할 수 없을 테니까.
솔직히 그렇게 하고 싶었지만 그레고리가 당부한 사항이 있었다.
“······그렇다면 이 기회에 저도 기도를 올려야겠군요.”
다시금 기도하기 위해 자리 잡은 블라드의 옆으로 사제가 소리 없이 다가와 무릎 꿇었다.
용병인 척하는 소년과 사제인지 확신할 수 없는 남자가 신의 앞에 나란히 무릎 꿇었다.
아무도 없는 예배당.
오직 신 앞에 무릎 꿇은 두 남자만이 있는 이곳.
“부디 이 근방을 휩쓰는 전염병이 형제님의 일행에게 닿지 않도록.”
‘전염병?’
당황하는 기색을 보이는 블라드를 보며 사제의 입술이 자그마한 호선을 그렸다.
“그리고 우리의 아이들을 위해서 말입니다.”
그 말과 함께 고개를 숙이는 사제.
수없이 많은 기도를 통해 정갈해 보이기까지 하는 그의 자세는 분명 신실한 사제의 모습 그 자체였다.
“······.”
그러나 블라드는 그 모습 속에서 한 줄기 위화감을 찾아낼 수 있었다.
종탑 위에 새겨져 있어야 할 교회의 문양은 안개 속에 가려져 있었다.
그러나 블라드가 교회에 들어와 처음으로 마주한 문양은 어딘가 이상해 보였다.
거꾸로 되어 있는 교회의 문양.
사제는 자신이 기도하는 신 앞에서 성경책을 거꾸로 들고 있었다.
※※※※
‘······.’
교회를 빠져나온 블라드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검은 곰의 제보와 잡아들인 사내들의 자백을 통해 조사단은 이곳 우트만 남작령에 있는 마을에까지 다다랐다.
그러나 실종된 임산부들의 흔적을 따라 도착한 마을에는 짙은 안개와 함께 흉흉한 소문이 일행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아이들만 죽는 병이라니······.’
사제의 기도를 듣고 이상한 점을 느낀 블라드는 재빨리 근처 주민들에게 전염병에 관해 물었다.
그리고 들려온 대답에 블라드는 입술을 깨물고 말았다.
쇼아라에서는 여인들이 실종되었다면 이곳에서는 아이들이 죽어 나가고 있었다.
마치 전염병과도 같은 양상을 보이는 이 변고는 안개로 뒤덮인 마을뿐만 아니라 우트만 남작령에 속해 있는 대부분 마을에서 일어나는 현상이기도 했다.
불길한 전조들은 이어지고 있었다.
“······증거를 찾아야 할 텐데. 이거 뭐 보여줄 수도 없고.”
전염병이 아닐 것이다.
강한 확신은 있었지만 정작 확신을 증명해 줄 증거가 없었다.
목소리의 세계에서 보았던 검은 손아귀를 일행들에게 보여줄 수는 없으니 말이다.
혹시나 싶어 쇼아라에서 챙겨온 성물을 여관의 아이에게 가져다 대보았지만 정작 기대했던 반응은 아무것도 없었다.
[성물에 반응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고매한 흑마법사가 만든 저주 같다. 적어도 확실히 교육받은 사제가 직접 판별해야 할 거다.]‘그렇게 대단한 걸 어떻게 알아봤대요?’
[······그건 나도 모르지.]여전히 뜬구름 잡는 목소리의 대답에 블라드는 머리를 세차게 헤집으며 답답한 마음을 토로했다.
아무리 알고 있다 해도 행할 수 없다면 아무 소용없는 일이다.
이제야 겨우 자신만의 세계를 가진 소년은 또다시 혼자의 힘만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영역 앞에 서 있을 뿐이었다.
“응?”
그레고리에게 어떤 식으로 말을 해야 이 사태를 전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골목 모퉁이를 나가려던 블라드는 그곳에서 수상한 광경을 목격했다.
마을 중심부에 있는 자그마한 광장.
그곳에서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는 사람이 어린 소녀의 앞에 서 있었다.
“이건 교회에서 준 거예요.”
누군가의 물음에 자랑스럽다는 듯 저주받은 목걸이를 들이대고 있는 소녀.
정체를 알 수 없는 자가 소녀의 목걸이를 받아들고는 만지작대고 있었다.
※※※※
블라드는 전직 소매치기였다.
전직 도둑이기도 하고 가끔은 강도였기도 했지만 어쨌거나 가장 오래 몸담고 있던 일은 남의 손에서 지갑을 빼 드는 일이었다.
나름의 자부심도 가진 일이었건만.
[아무래도 눈치챈 것 같다.]‘나도 그른 거 알아요.’
로브를 뒤집어쓴 수상한 자를 뒤쫓던 블라드는 자신이 점점 마을 외곽으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유인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돌아가야겠는데.’
블라드는 혀를 빼물며 나아가던 발걸음을 멈췄다.
소년은 자신의 실력을 과신하지 않았다.
그동안 수많은 실력자들을 봐왔기에 자신이 아직 하룻강아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이런 수상한 마을에 있었으니 행동을 조심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
‘그레고리에게 보고를 해야겠군.’
인상착의는 확인했으니 상관에게 보고하면 될 일이다.
어쩌면 이 사람을 통해 마을의 수상한 점을 알릴 수 있을지도······.
[온다!]그러나 인생은 언제나 자신의 의도대로만 흘러가지 않는 법이었다.
서서히 뒤로 물러나려는 블라드의 의도를 눈치챘는지 로브를 뒤집어쓴 자가 갑작스레 돌격해왔다.
‘이렇게?’
아직 민가가 있는 길목에서 빠져나오지도 않았다.
그러나 여태까지의 조심스러운 행동과는 다르게 정체 모를 자는 블라드에게 저돌적으로 달려들고 있었다.
‘젠장!’
예측하지는 못했지만 대비할 시간은 있었다.
블라드는 침착하게 검을 뽑아 들고는 정체 모를 자를 받아들였다.
까앙-!
검과 검이 맞부딪히고.
예상보다 무겁게 들어오는 검의 무게에 소년이 놀랄 때쯤.
[왼쪽!]튕겨 나오는 반탄력을 이용해 어느새 하늘 높이 세워진 검이 블라드를 파고들어 왔다.
“······!”
차마 검을 들어 올릴 수 없는 짧은 순간 속에서 블라드는 자신도 모르게 유연한 발걸음을 통해 사각에서 빠져나왔다.
애꾸눈의 스승이 소년에게 박아넣듯이 전수한 그 발걸음이었다.
콰앙-!
거칠게 패여지는 땅바닥을 보며 블라드는 확신했다.
‘기사다!’
이제는 검만 맞대어 봐도 알 수 있었다.
소년을 제압할 수 있을 만한 실력을 갖춘 자들.
그런 사람들은 오직 기사밖에 없었다.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물처럼 자신의 공격을 흘린 소년을 보며 정체 모를 자가 잠시 당황하는 동안.
전직 기사일지 아니면 현직 기사일지 모를 사람을 향해 블라드가 재빨리 한쪽 눈을 감았다.
소년의 세계가 장식 없는 검을 통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일격필살의 묘리는 의외성에서 나온다.
소년은 먼저 자신의 패를 공개했으므로 기회는 오직 지금 이 순간뿐이었다.
단 한 번의 기회.
“흐읍!”
짧은 함성과 함께 눈앞에 있는 자를 향해 블라드가 튀어 나갔다.
정체 모를 자가 소년의 의외성에 당황하며 서둘러 검을 치켜들었다.
[······블라드!]무거운 안개를 밀어내는 밝은 빛이 있었다.
까아아앙-!
아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소년을 마주하며 정체 모를 자가 다급히 블라드를 막아 세웠다.
그러나 블라드는 멈추지 않았다.
아이들을 노리는 자들이 곳곳에 숨어있었지만, 아무런 손도 쓰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 소년은 화가 나 있었다.
마치 어린 날의 자신처럼.
더는 아무것도 아닌 채로 살고 싶지 않다.
스스로의 다짐을 어기고 만 소년의 분노는 더욱 날카로워지고 흉포해져 눈앞의 상대를 향해 날아들었다.
멈추지 않는 연격.
언제나 다음 수를 생각하라던 자야르의 가르침에 따라 블라드는 쉴 새 없이 눈앞의 상대를 몰아치고 있었다.
[멈춰라! 멈춰!]검과 검 사이에서 불꽃이 튀어 나가고.
정체 모를 자가 뒤집어쓰고 있던 로브들이 잘려 나갔다.
그리하여 마주 본 상대방의 모습은.
[저자는 성기사다!]푸른 초원에서 보았던 녹색.
옥사나가 떠오르는 녹색의 눈동자.
출렁이는 머리카락 사이에서 자신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여인이 있었다.
블라드는 내면 안에 있는 자신의 세계를 보기 위해 한쪽 눈을 감았지만, 여인의 두 눈은 오롯이 소년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의 세계는 이미 세상 위에 있었으니까.
신의 말씀 아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