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Embrac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61
요즘 젊은것들은 말이야 (2)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조용히 타오르는 모닥불 소리.
“······.”
블라드는 바람결에 흔들리는 모닥불을 보며 생각했다.
마치 지금의 자신과 같다고.
꼿꼿이 서 있고 싶지만 바람이 부는 방향에 따라 흔들리고 마는 불빛은 마치 자신보다 거대한 존재들에 의해 이리저리 휘둘리고 다니는 소년의 모습과도 비슷해 보였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냐.”
뚫어지게 모닥불을 바라보고 있으면서도 정작 시선은 그곳에 맞추고 있지 않은 소년을 보며 그레고리가 물었다.
“그냥, 이런저런 생각이요.”
그레고리의 대답에 블라드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 세상에는 대단한 사람들이 너무 많네요.”
“그래?”
“그런 사람들 속에서 앞으로도 제가 버틸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그 날밤 소년은 졌다.
아마 목소리가 없었다면 죽고 말았을 것이다.
호르헤가 그랬고 외팔이 잭이 그랬고, 그리고 안나가 그랬던 것처럼.
그들처럼 대항할 수 없는 거대한 세계에 짓눌려 결국 부서지고 말았을 것이다.
“······살다 보면 딱 너 같은 고민을 할 때가 오지.”
소년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대충은 알 것 같았던 그레고리는 들고 있던 불쏘시개를 모닥불에 집어 던졌다.
태울 것이 주어진 모닥불은 아까보다 더 큰 소리를 내며 타들어 가고 있었다.
“잘 타지?”
“네.”
그날 어두웠던 교회에서.
소년은 비바람이 치는 종탑을 기어 올라가 아이들의 숨결이 맺혀 있는 곳을 향해 손을 뻗었었다.
그레고리는 그 모습을 지켜보지는 못했지만, 상상만으로도 소년과 잘 어울리는 광경이라고 생각했다.
밑바닥에서 태어났기에 높은 곳을 향해 간절히 손을 뻗을 줄 아는 소년은 언젠가 하늘 끝에 다다를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그곳에다 자신의 이름을 새긴 별 하나를 매달지도 모를 일이다.
“결국은 버텨내는 것이 중요한 거야.”
흔들리는 불꽃에서 빠져나온 블라드는 그제야 모닥불 너머에 앉아있는 그레고리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억센 수염의 기사가 자신을 바라보며 씨익 웃고 있었다.
“계속 타오르기만 하면 돼. 불길이 꺼지지만 않으면 언제든지 다시 타오를 수 있는 거니까.”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계속 불타올라야 한다는 것.
자신이라는 불꽃만 꺼지지 않는다면 아무리 세찬 바람 아래서도 다시 불타오를 수 있다.
그레고리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것만 같은 블라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네요.”
갑작스레 다가올 거대한 세계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자신 또한 거대한 불꽃이 되어야 할 것이다.
조용히 타들어 가는 모닥불을 바라보는 소년의 세계 안에 한줄기 색깔이 깃들기 시작했다.
고민하는 소년과 술병을 넘기는 그레고리와. 그리고 저 멀리 언덕에서 모닥불에 비치는 소년을 바라보고 있는 새까만 말까지.
각자가 부족한 무언가를 생각하며 고민거리들을 모닥불에 집어넣는 그런 밤이었다.
쇼아라로 향하는 마지막 야영이 그렇게 저물어가고 있었다.
※※※※
“수고했다.”
응접실에 앉아 임무에 복귀한 조사대를 맞이하는 요제프.
블라드는 몇 주 만에 마주친 요제프를 보며 눈 밑에 드리워진 그의 눈그늘이 더 짙어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단순히 햇빛을 등지고 앉아있기에 그런 것만은 아닐 테다.
“성실히 임무에 응한 태도에 대해 칭찬하고 싶군. 게다가 문제의 본질까지 다다른 자네들의 행동력을 높게 산다.”
피곤한 기색이었지만 차분히 조사대가 행한 임무를 평가하는 요제프.
그러나 입으로는 칭찬하고 있었어도 정작 일행을 바라보는 두 눈은 미동조차 없어 조사대 모두가 기묘한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다.
“······다만 다른 영주의 땅에서 바예지드의 검을 뽑은 것에 대해서는 쉽게 넘어갈 수가 없군.”
올 것이 왔다.
그레고리는 상벌에 확실한 기준이 있는 요제프가 이번 일에 대해 조용히 넘어가지 않으리라는 것을 이미 예상했다.
“죄송합니다.”
깊게 숨을 들이쉰 그레고리는 여태까지 돌아오면서 정리해두었던 말을 내뱉으려고 했다.
조사대의 책임자로서 가능하다면 자신이 다 끌어안을 수 있게 말이다.
“요즘 때가 어느 땐데 생각도 없이 남의 땅에서 경거망동을 하느냔 말이지.”
그러나 그레고리의 변명을 싹둑 잘라내는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있었다.
쌓아온 세월만큼이나 무게감이 있는 목소리였다.
“게다가 앞으로의 일이 어찌 흘러가게 될지 뻔히 다 알고 있었다는 점에서 더욱 질이 나쁜 행동이었다고 나는 생각하네.”
처음 보는 노인이었지만 내뿜는 기세가 보통이 아니었다.
블라드는 노인의 기세에 압박되고 마는 자신을 느끼며 입술을 깨물고 말았다.
또다시 저 위에 있는 세계가 소년을 억누르고 있었다.
“······맞는 말이다. 한참 어수선한 시기에 민감한 문제를 제대로 건드리고 와버렸으니까.”
낯선 노인이 내뱉는 말에 응접실의 분위기가 바짝 얼어붙고 말았지만, 그의 의도를 잘 알고 있던 요제프는 잠시 숨을 고른 후 말을 이어갔다.
“지금도 각지에서 크고 작은 영지전들이 발발하고 있다. 왕실이 제대로 억제하지 못하니 모두가 그동안 쌓아두고 별렀던 것들을 터트리고 있지. 우리가 있는 북부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이 없다.”
노인이 그레고리를 따끔하게 질책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
제국이 헐거워지고 있었다.
초대 건국왕이자 소드마스터인 프라우센의 검 아래 모든 영주들이 검을 모았지만 이미 그 시기는 오래전의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이런 시기에 자그마한 명분 하나라도 내주는 것은 마른 짚에 불씨 하나를 떨구는 격이었다.
“지금 같은 때에 저주받을 옛것들까지 보이니 강철공(强鐵公)까지도 지금의 일을 주시하고 있다.”
북부의 또 다른 한 축을 맡고 있는 강철공조차도 주시할 만큼의 사건이었으니 요제프도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의도가 좋은 것은 인정하지만 너무 크게 불을 지르고 왔다는 요제프의 질책에 그레고리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러니까 적당히 빠져나왔어야지. 그곳에 산 로지노의 성기사까지 있었다면서? 그렇다면 그 자에게 넘기는 것이 당연한 절차일 텐데. 쯧쯧.”
“······.”
어째서 정해진 규칙을 지키지 않았냐며 끌끌대는 노인의 목소리를 들으며 블라드의 심장이 점점 달궈지기 시작했다.
거대한 세계에 대항하려는 소년의 본능 같은 것이었다.
‘그곳에 있지도 않았으면서!’
단순한 말 몇 마디만으로는 전할 수 없는 아이들의 가뿐 숨결과 부모들의 울부짖음이 그곳에 있었다.
블라드가 보았을 때 그레고리는 정말 최선을 다했고 용기 있는 결정을 했다.
이름 모를 노인이 함부로 깎아내릴 수 있는 그런 결정이 아니었다.
“하여간 요즘 것들은 뒷일을 생각 안 하고 그저······.”
“아이들이 죽었을 겁니다. 저희가 나서지 않았다면요.”
아무것도 모르는 당신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
이름 모를 노인을 노려보는 소년의 푸른 눈동자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뭐?”
자신의 말을 대차게 자르고 들어오는 소년을 보며 노인은 잠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호통을 치고 싶었지만 일렁이고 있는 소년의 푸른 눈동자가 노인의 기세를 잠시 멈춰 세웠다.
“그레고리 경은 아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산 로지노가 그 최선을 보증했습니다. 그리고.”
노인을 살짝 흘겨본 블라드는 가슴속에 차마 담아두지 못한 뜨거운 것을 뱉어내기 시작했다.
“당연히 저라도 그렇게 했을 겁니다. 저는 그레고리 경이 내린 결정은 질책이 아닌 칭찬을 받아야 하는 행동이라 생각합니다.”
미숙하기에 다듬어지지 않은 열기 덩어리였다.
그러나 오히려 다듬어지지 않았기에 진심이라는 형태로 다가올 수 있었다.
미사여구 하나 없이 솔직하게 자신의 속마음을 쏟아낸 소년을 보며 응접실에 있는 모두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
그러나 현실이라는 것은 오직 진심으로만 통할 수는 없는 법.
허락되지 않은 발언을 내뱉는 블라드를 보며 자야르는 눈을 질끈 감고 말았고 그레고리는 더욱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의도는 좋았으나 소년은 방금 선을 넘고 말았다.
“블라드.”
요제프 바예지드.
누구보다도 소년을 아끼지만 그렇기에 매섭게 다잡아줘야 하는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만해라. 더 이상 나의 인내심을 시험하지 마라.”
검을 다룰 수 없는 요제프였지만 그에게서 풍겨 나오는 기세는 이곳에 있는 모두를 압도하고 있었다.
바예지드의 핏줄 하나만으로는 그런 기세를 품을 수 없을 것이다.
“······네.”
요제프의 엄중한 경고에 블라드는 고개를 숙였다.
더는 나서지 말라는 자야르의 무거운 눈빛도 소년의 들끓는 기세를 억누르고 있었다.
“······그레고리 경도 이해할 거라 생각하네. 소드마스터의 두 번째 규율은 특히나 민감한 부분이니까.”
요제프는 자연스레 대화의 중심을 그레고리로 옮겼으나 그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지금 그가 억지로 화를 참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었다.
목에 닿아있던 단추 하나를 조용히 풀어 내린 요제프의 모습이 그것을 증명했다.
“맞습니다. 요제프 님. 저의 불찰이었습니다.”
그레고리는 자신을 변호해주는 소년에게 더는 불똥이 날리지 않게 재빨리 잘못을 인정했다.
“민감한 문제들이 겹쳤어. 그쪽에서 직접적인 항의를 보내오기 전에 우리가 먼저 행동으로 보여줘야 하네.”
요제프는 잠시 블라드를 노려보고는 뒷짐을 지고는 창가로 다가갔다.
밖에 보이는 쇼아라의 풍경을 보며 요제프가 입을 열었다.
“기사 그레고리를 무기한 근신에 처한다. 그동안 봉급은 지급되지 않을 것이며 바예지드가 보증하는 그 어떤 기사의 권리도 누릴 수 없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여기서 끝나기를 빌며 그레고리는 고개를 숙였다.
“······.”
그러나 말을 마친 요제프는 이번에는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소년과 눈을 마주쳤다.
모든 일에는 절차와 규정이 있기 마련이며 그것은 소년에게도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종자 블라드.”
자신의 부름에 조금은 미묘한 각도로 쳐다보는 소년은 여전히 반항기 넘치는 그때의 모습 그대로였다.
“······.”
그동안 그렇게나 먹이고 입히고 잘 대해줬거늘 아직도 길들여지지 않았다니.
처음 본 모습에서 조금도 변함이 없는 소년을 보며 요제프도 마음 한구석에서 어찌할 수 없는 서운함이 올라오고 말았다.
“허락되지 않은 발언으로 나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너에게 깊은 유감을 표한다.”
블라드는 요제프의 깊은 눈빛을 보며 고개를 숙였다.
언제나 자신에게 편안한 얼굴을 보였던 청년이었지만 지금만큼은 날카로운 군주의 모습일 뿐이었다.
“너에게도 일주일간의 근신을 명한다. 당분간은 내 눈에 띄어서는 안 될 것이다.”
“······알겠습니다.”
대답과 함께 고개를 들어 올린 블라드는 자신에게 차가운 명령을 내리는 요제프를 보며 일부러 그의 눈빛을 피했다.
명령을 받아 최선을 다했건만 돌아오는 것은 근신 명령이었으니 소년 또한 서운함이 올라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다들 나가봐라. 나는 지금부터 우트만 남작에게 상황을 설명하는 편지를 써야 하니까.”
보고를 마치고 처분까지 달게 받은 조사대가 요제프에게 인사를 마치고 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 모습을 지켜보던 노인은 그 와중에도 기세를 잃지 않은 푸른 눈동자를 보며 웃고 말았다.
네 놈이구나.
굳이 소개해주지 않아도 알겠다.
“네가 블라드라는 놈이냐.”
“······.”
이제 막 방문을 나서려 했던 블라드는 노인의 말에 우뚝 멈춰서고 말았다.
잠시간의 침묵이 응접실을 휘감고 있었다.
“어른이 부르는데 대답도 안 하는구만. 예절 교육은 못 받은 모양이군.”
노인의 빈정거림을 듣는 블라드의 눈빛이 점점 일렁이고 있었다.
예절 교육은 충분히 받았다.
어머니의 눈빛을 지닌 귀부인으로부터.
자신을 함부로 재단하는 노인을 향해 몸을 돌린 블라드는 그 어떤 때보다 정중한 태도로 자신을 소개했다.
“맞습니다. 제가 블라드입니다.”
기세를 꾹꾹 눌러 담은 채 똑바르게 인사하는 소년의 모습은 마치 검을 뽑기 전의 기세와도 닮아있었다.
“저 또한 존함을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정중하지만 흉포한 기세를 내뿜는 블라드를 보며 노인은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짜릿함을 느꼈다.
마치 대결을 시작하기 전 서로의 이름을 물어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 내 이름이 궁금하더냐.”
노인은 요즘 젊은것들에게는 느끼기 힘든,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날것의 느낌을 내뿜는 소년을 보며 미소 지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지금은 내가 너에게 말해 줄 수 있는 이름이 없구나.”
“······.”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소년을 향해 노인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나는 가장 낮은 길을 걷는 자라서 말이다. 아직 의무를 다하지 못했거든.”
이해할 수 없는 말에 표정이 굳고만 블라드는 이제야 노인의 뒤에 꽂혀있는 낡은 깃발을 볼 수 있었다.
자신의 깃발과 비슷하지만 두 개의 문장밖에 새겨져 있지 않은 것과는 달리 노인의 깃발에는 열 개는 넘는 문장들이 새겨져 있었다.
죽지 못해 늙고 만 기사들이 있었다.
명예로운 전장에서 은퇴하지 못했으니 그들은 가장 낮은 곳을 따라다니며 그동안 흘리고 다녔던 명예를 주워야만 했다.
최초의 소드마스터가 보인 마지막 모습과도 같이 말이다.
블라드가 바라보고 있는 이름 모를 노인은 지금 명예로운 은퇴식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