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Embrac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62
요즘 젊은것들은 말이야 (3)
야트막한 언덕 위에 뿌리내린 나무.
그 나무가 훤히 보이는 창가를 뒤로한 채 물빛 머리의 여인이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가이다르 백작가가 이제 북부로 통하는 교두보를 마련했군요.”
“정확히는 교두보를 마련할 수 있는 지역을 가져간 것이지요. 북부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결국 저희를 통과해야 할 테니까요.”
책상 옆으로 잔뜩 쌓여있는 서류 더미들이 들어오는 햇빛을 막으며 그녀의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우리에게 올까요?”
“······확신할 수는 없지만, 대비는 하셔야 합니다.”
알리시아 하이날.
하이날 남작가의 가주이자 데어마르의 주인.
지금 그녀 앞에는 지도 하나가 펼쳐져 있었으며 그 지도위에는 가이다르 백작 가문을 뜻하는 말이 놓여 있었다.
“온다고 생각하는 것이 맘 편하겠네요. 언제 올지는 모르겠지만.”
“맞습니다.”
가이다르 백작 가문은 이제 데어마르의 바로 밑까지 들이닥친 상황이었다.
새로운 서부의 패자는 끊임없이 확장하고 있었으며 이제 그 영향력이 북부와 중부에까지 미치고 있었다.
“······중부를 틀어막고 있었더니 어느새 서부가 다가오고 있었군요.”
알리시아는 예상치 못하게 흘러가는 정세를 보며 애써 속에 있던 불안을 뱉어내려 애썼다.
귀족의 피는 푸른색이어야 한다.
언제 어느 때라도 냉철한 판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알리시아는 그렇게 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발버둥을 치는 중이었다.
“바예지드 백작가에게 편지를 써야겠어요.”
알리시아는 지도를 내려다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다행히 이럴 때를 대비해 들어둔 보험이 있었다.
“그들이라면 우리를 도와줄 거예요. 그래야 할 의무도, 이유도 있을 테니까.”
“맞습니다.”
바예지드라면 데어마르를 도와줄 것이다.
위치상 자신들이 뚫리게 된다면 그다음 목표로 삼게 될 곳은 북부의 기둥 중 하나인 바예지드 백작령이 될 테니까.
중부와 북부의 대리전 같았던 명예 결투가 이곳에서 벌어진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였다.
“손수건을 주길 잘했네요.”
“맞습니다. 요즘 그 소년에 대한 소문이 계속 들려오더군요. 훌륭히 성장하고 있습니다.”
던칸의 입에서 블라드에 대한 칭찬이 들려오자 알리시아는 괜스레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을 이었다.
“이번에는 산 로지노와 인연을 맺고 온 모양이더라고요. 교회와 가까워져서 나쁠것은 없겠죠.”
던칸은 알리시아의 말을 듣고는 미묘한 표정으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쇼아라의 조사단이 우트만 남작가에서 불길한 징조를 발견한 것은 요즘 북부에서 가장 크게 회자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영주들이라면 흑마법사들의 흔적이나 우트만 남작과 바예지드간의 미묘한 동향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제가 그 소년한테 투자한 게 있잖아요.”
“이해합니다.”
그러나 알리시아는 그런 동향보다는 블라드의 행보에 더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블라드가 데어마르를 떠날 때부터 계속해서 그의 동향을 파악하다 보니 오히려 북부에 뿌려놓은 첩보망이 강화될 지경이었다.
“저도 잘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맞아요. 그의 이름값이 높아질수록 저희한테는 득이 되니까요.”
레이디 알리시아의 손수건을 받은 블라드는 그녀의 부름에 응해야 할 도의가 있었다.
그리고 소년이 손수건에 대한 명분과 함께 데어마르로 돌아올 때는 혼자만 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하기로 요제프와 약속을 했었으니까.
“정찰 범위를 좀 넓게 가져가도록 하죠. 수상한 동향을 빨리 알아챌 수 있도록. 군사력이 모자란 저희로서는 시간이라도 벌어야 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던칸은 재빨리 화제를 돌리는 알리시아를 보며 조용히 넘어가기로 했다.
한창 바쁘고 힘들 때이니 잠시라도 숨 쉴만한 틈 하나는 마련해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부디 무사히 지나갔으면 좋겠네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세상이 급격히 변하고 있었다.
여태껏 세상을 지배하고 있던 늙은이들이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늙은 기사는 이 변화무쌍한 세상 속에서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나가야 하는 젊은이들이 안쓰러울 뿐이었다.
언덕 위 나무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하얀 꽃들.
소년이 떠나간 직후부터 피기 시작한 그 꽃들만이 지금 데어마르에 존재하는 유일한 위안이었다.
※※※※
까앙- 깡-
요란하게 내려치는 망치 소리를 앞에 두고 블라드가 시근거리며 앉아있었다.
“그 꼰대 같은 늙은이. 마음 같아서는 그 자리에서 한번 들이박고 싶었거든요.”
“······그래?”
자신 앞에서 늙은이를 욕하는 블라드를 보며 늙은 대장장이는 미묘한 표정을 지은 채 그저 묵묵히 망치를 내려칠 뿐이었다.
어린 녀석들도 짊어져야 하는 짐이 있겠지만 늙은이들도 못 본 척 눈 감아 줘야 할 때가 있는 법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도대체 뭘 베고 온 거냐.”
“이번에는 조금 버거운 놈이었죠.”
손 봐준 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다시 잔뜩 이가 나가버린 검을 보며 질책 삼아 한 말이었지만 소년에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목 없는 사내는 또 뭐냐.”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존재를 들으며 늙은 대장장이는 한숨 같은 말을 내뱉었다.
잔뜩 달궈져 있는 장식 없는 검이 오늘따라 애처로워 보였다.
“너는 가면 갈수록 버거운 놈들이랑 싸우는구나.”
“그런 운명인가 보죠. 뭐.”
어차피 편히 살 팔자는 아니었다며 너스레를 떠는 소년을 보며 노인은 묵묵히 장식 없는 검을 내려치기 시작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때려 넣은 녀석이지만 이런 용도로 만든 검은 아니었다.
“이제 검을 바꿔야 할 때가 된 거 아니냐.”
“네?”
노인이 넌지시 던진 말에 블라드가 당황하며 눈을 크게 떴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평온해 보이는 노인의 태도가 블라드에게는 오히려 더 낯설어 보였다.
“기껏해야 나가서 몬스터나 썰고 다니면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만든 녀석이다. 재료도 평범한 철일 뿐이고 만든 사람도 그저 그런 대장장이일 뿐이야.”
“하지만.”
“계속 이런 식으로 써먹다가는 언젠가 부러지고 말 거다.”
소년은 성장해가며 더 많은 난관에 부딪히게 되겠지만 장식 없는 검은 영원히 지금 이 모습에 멈춰있을 것이다.
늙은 대장장이는 자신이 만든 검이 소년의 발목을 붙잡지 않기를 바랐다.
지금 상처받고 누워있는 이 녀석도 그것을 원하지는 않겠지.
“지금 당장 바꾸라는 건 아니니까 한 번 생각해봐.”
“······주문 제작도 받아요?”
소년의 말에 늙은 대장장이는 그저 웃고 말았다.
평소에는 다 큰 척하다가도 이럴 때는 어린 티가 나는 것이 영 종잡을 수가 없는 녀석이었다.
“이놈이 내 마지막 작품이다. 나 말고 다른 대장장이를 찾아봐.”
이별을 아쉬워하는 것은 어리고 젊은 녀석들의 특권이다.
낡고 닮아버린 늙은이들에게는 그저 일상과도 같은 모습일 뿐이었으니까.
“오늘 들고 갈 거냐?”
“좀 이따 써먹어야 할지도 몰라서요.”
“그래.”
물통에 들어가 덥힌 몸을 식히고 나온 장식 없는 검은 다시금 매끈한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아직까지는 소년의 옆에 있어도 손색 없을 그런 모습이었다.
“뜨거우니까 조심하고.”
“네.”
노인은 불꽃 때문에 시큰해진 눈을 찌푸리며 대장간을 나서는 소년을 배웅했다.
‘······.’
밖으로 나서는 소년의 발걸음은 예전과는 달리 당당하고도 확실했다.
이제는 저 앞에 있는 진창 정도는 가볍게 빠져나갈 정도로.
“그래야지.”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끄덕인 늙은 대장장이는 쿨럭거리는 잔기침 소리와 함께 대장간의 문을 걸어 잠갔다.
오늘의 장사는 끝이다.
방금 소년의 검에 힘을 전부 다 쏟아 넣었으므로.
※※※※
블라드는 요즈음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었다.
단순히 요제프에게 근신 처분을 받아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
[뒤를 따라붙는 자가 있다.]목소리의 말대로 어제부터 블라드의 뒤를 따라오는 자가 있었다.
그 시선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 것만 같았던 블라드는 재빨리 익숙한 골목길을 벗어나 일부러 행로를 꼬아가기 시작했다.
매캐한 연기가 가득한 꼬치집 앞을 빠르게 걸어 거리를 벌리고는 사람 많은 대로를 스쳐서 기척을 감춰버린 블라드.
그리고는 어두운 골목길 앞에서 갑자기 사라진 소년을 보며 노인은 발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눈치가 빠르군.’
노인은 자신의 기척을 알아챈 것도 모자라 어느샌가 자신의 뒤에 서 있는 소년을 느끼고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역시 바예지드의 가죽 갑옷을 받은 이유가 있었다.
“왜 따라오는 겁니까.”
“난 내 갈 길을 가고 있었을 뿐인데 무슨 소리냐.”
노인의 태연한 대답에 블라드가 더는 참을 수가 없었는지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어제부터 시작해서 저를 너무 건드시는 것 같은데.”
‘······날카로운 기세 좋고.’
분노하고 있었으나 거기에 휩쓸리지 않는 소년을 보며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스스로를 제어할 줄 아는 것으로 보아 그릇이 넓은 녀석이다.
그렇다면 그때의 반항은 분명 의도한 것이겠지.
고얀 놈 같으니.
“그러길래 처음부터 멍청한 짓거리를 하지 말았어야지. 그때 내가 뭐 틀린 말 한 게 있느냐.”
“······.”
블라드는 눈앞에서 이죽거리고 있는 노인을 보며 눈치챘다.
노인은 지금 자신을 도발하고 있다.
분명 목적이 있을 것이며 자신에게 원하는 것이 있다.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으면 그냥 말로 하시지 그래요. 괜히 이리저리 돌리지 말고.”
으르렁거리며 천천히 검 손잡이를 붙잡는 소년을 보며 노인이 미소 지었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날것의 느낌이 소년에게 있었다.
그리운 것이었고 또한 반가운 것이기도 했다.
“꼬우면 덤벼봐라. 이놈아.”
블라드는 자신을 향해 손을 까닥이는 노인을 보며 각오를 굳혔다.
누군지 몰랐으며 왜 이러는지도 모르겠지만 노인은 요제프가 보증하는 사람이었다.
지금 이런 행동을 하는 것도 분명 의도가 있는 것이겠지.
“······그쪽이 먼저 시작한 겁니다.”
블라드는 의도가 있다면 그 의도조차 깨부술 각오로 재빨리 검을 뽑아 들었다.
숱한 전장에서도 살아남은 노인은 분명 자신보다 강한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무시당하는 것은 곧 죽음인 세상에서 살아온 소년은 언제든지 누구에게라도 덤벼들 각오가 되어있는 사람이었다.
채앵-!
일격필살의 묘리에 따라 예측을 뛰어넘는 속도로 검을 뽑아 든 블라드.
‘재주 좀 부릴 줄 아는군!’
피할 공간 따위 없는 좁디좁은 골목길을 날카롭게 가르며 다가오는 검을 보고는 노인의 주름이 펴졌다.
어린 주제에 검 하나에 이렇게 자신의 특징을 담아낸 소년이 나름 기특할 지경이었다.
그러니 자신도 뭐라도 하나 보여줘야겠지.
“어서 빼내 가지 않고 뭐 하고 있는 거냐?”
“······!”
블라드는 당황하고 있었다.
자신이 날린 일격이 허무하게 막혀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 정도는 이미 예측하고 있었으니까.
오른쪽으로 움직이면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움직이면 왼쪽으로.
계속해서 따라오며 기묘하게 자신의 검 끝을 누르는 노인의 검을 보며 블라드는 이미 움직임이 읽혀버렸다는 것을 눈치챘다.
‘젠장!’
신기와도 같은 노인의 검 놀림을 보며 블라드는 재빨리 왼쪽 눈을 감았다.
예상이야 했지만 역시나 뭔가를 잴 대상이 아니었다.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건데!”
거대한 세계들은 항상 소년을 압박하고 걷어차기 일쑤였다.
이제 그런 취급에 진절머리가 나고만 블라드는 여태까지 쌓아왔던 분노를 터트리며 이름 모를 노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훌륭하군!’
노인은 자신의 검 아래서 부르르 떨고 있는 소년의 기세를 느끼며 입술 끝을 올렸다.
자신이 활약하던 시절에도 이 나이대에 이토록 선명한 오러를 다루는 자는 몇 없었다.
“내가 그렇게 만만해!”
까앙-!
비좁은 골목 안에서 소년과 노인의 검이 맞부딪혔다.
이번만큼은 기교만으로 억누를 수 없었던 소년의 기세는 거친 불꽃과 함께 노인에게 달라붙었다.
“기세 좋구나!”
기세만 좋은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무슨 수를 쓰지 못하게 최대한 달라붙으려 애쓰는 소년은 지금 생각이라는 것을 하고 있었다.
기술이나 경험은 따라잡지는 못하겠지만 젊은 내가 힘 정도는 압도할 수 있겠지.
상대방의 약점을 분석해 물고 늘어지는 소년의 움직임은 분명 승리를 갈구하고 있었다.
끼기기긱-!
거친 쇳소리와 함께 벽 끝까지 밀려나는 노인.
과연 세월의 흐름은 가혹해서 자신을 밀쳐내는 젊은 녀석을 저지할 수가 없었다.
“그럴싸한데.”
“언제까지 웃나 봅시다.”
노인의 여유로운 미소를 보며 바짝 약이 오른 블라드는 장식 없는 검을 힘껏 밀어젖히며 노인의 목을 향해 들이밀고 있었다.
“수는 좋았는데 상대를 잘못 잡았어.”
“······?”
그러나 여전히 여유로운 노인의 미소를 보며 블라드가 불길한 감각을 느낀 순간.
“뭐?”
노인의 검이.
아니 노인의 팔이 빛나고 있었다.
검이 아닌 팔에 오러를 주입하는 노인을 보며 블라드가 기겁하고 말았다.
여태껏 보아왔던 기사 중 무기가 아닌 신체에 오러를 주입하는 기사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꽤 쓸만하지? 신체를 강화하는 거다.”
마치 장난감을 소개하듯 너스레를 떨던 노인은 이제는 내 차례라는 듯 블라드의 검을 힘껏 밀어젖히기 시작했다.
“으, 으으······.”
아까와는 전혀 다른 힘을 느끼며 블라드의 검이 점점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늙은이가 젊은이를 힘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응용하면 이런 것도 가능하지.”
“······!”
기이하게 흘러가는 흐름에 당황할 틈도 없었다.
이번에는 노인의 손바닥이 빛나더니 소년의 검을 거침없이 잡아챘다.
방금 수리를 마치고 나온 검이기에 날카로울 것이었지만 정작 노인의 손에는 피 한 방울 맺혀 있지 않았다.
강철보다 단단해진 노인의 손바닥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이게 뭐야!’
블라드는 속으로 소리 없는 비명을 질러대었다.
여태껏 쌓아왔던 상식 한 조각이 깨어지며 내는 비명이었다.
[······.]일부러 그러는 것인지 목소리조차 조언해주지 않는 상황에서 블라드는 본능적인 판단으로 스스로 검을 포기했다.
그리고는 재빨리 호르헤의 단검을 뽑아 들고는 노인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하!”
노인은 블라드의 기민한 판단을 보며 감탄사를 내뱉고 말았다.
체면이고 자존심이고 상관없다는 듯 검을 버리고 달려드는 소년.
오직 짐승의 심장을 가진 녀석만이 행할 수 있는 과감한 움직임이었다.
다시 한번 느끼는 거지만 이 녀석은 타고났다.
“이놈!”
제대로 배운 기사라면 하지 않을 변칙적인 움직임에 노인은 자신도 모르게 오러가 실린 주먹을 강하게 날리고 말았다.
“커억!”
그저 한 방이었을 뿐이다.
나름 치열한 힘겨루기였으나 노인이 안겨주는 한 방에 블라드는 우당탕 소리를 내며 뒤로 나가떨어지지 말았다.
어찌나 강하게 때렸는지 소년의 어깨 쪽에 있던 갑옷 부분이 터져나갈 정도였다.
저번의 전투로 깨져 버린 뱀의 가호는 더는 소년을 지켜주지 못했다.
“······이런!”
그러나 그저 주먹 한 방이었다 할 지라도 하룻강아지 주제에 노인의 진심을 이끌어낸 블라드의 발악은 분명 칭찬할 만한 것이었다.
아마 시청에 있을 요제프나 자야르가 지금의 상황을 본다면 놀라고 말 그런 정도로 말이다.
“괜찮으냐?”
힘 조절을 하지못한 자신을 자책하며 소년을 향해 외치는 노인이었지만 정작 대답해야 하는 대상은 저 멀리서 널브러져 있을 뿐이었다.
아마 너무 강한 충격에 기절이라도 한 모양이었다.
“······맷집은 좀 떨어지는군.”
이제야 흠결을 하나 잡아낸 노인은 실로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쓰러져 있는 소년을 향해 다가갔다.
어쩐지 자야르가 의뭉스럽게 웃은 이유가 있었다.
“······!”
그러나 소년을 일으키기 위해 다가간 노인은 순식간에 달려드는 푸른 눈동자를 보며 기겁하고 말았다.
그레고리가 말했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불꽃이 꺼지지만 않으면 된다고.
그리고 소년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뒤져!”
“······이런!”
블라드는 자신을 일으키려는 노인을 온몸으로 붙잡고는 박치기를 날렸다.
딱 달라붙어 있어 딱히 피할 공간이 없었던 노인은 고스란히 지금의 공격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퍼억-!
아무도 없는 뒷골목에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분명 블라드의 의도는 성공했다.
“씨······.”
몽롱해지는 정신 속에서 블라드는 나지막한 욕지거리를 내뱉고 말았다.
정신을 잃기 전 블라드의 시야에 마지막으로 잡힌 장면은 오러로 인해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노인의 주름진 이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