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Embrac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65
이어지는 옛 모습들 (3)
기마술을 몰라도, 안장 위에 앉아 있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크아아악!”
“어서 말에 올라타!”
히이이잉-!
소년이 바라보면 다가가 있었고 검을 휘두른 후에는 어느새 지나가 있었다.
세계와 세계.
오러와 뿔로서 연결된 둘은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을지라도 같은 곳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이거야!’
블라드는 얼굴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을 느끼며 크게 웃음 지었다.
온몸을 통해 느껴지는 새까만 녀석의 고동 소리.
자신보다 두 배는 거대할 것 같은 격렬한 심장 박동을 느끼며 블라드는 검을 휘둘렀다.
이 거대한 심장을 불태우기 위해서는 더 많은 피가 필요할 것이다.
“아까처럼 웃어봐라!”
새까만 밤이 스쳐 지나갈 때마다 야만인들의 피가 자욱하게 퍼져나갔다.
전리품에 눈이 멀어 땅으로 내려온 자들은 다시는 말 위에 오르지 못했다.
“저 녀석이 사람을 태웠다!”
“······도련님도 거부한 놈인데!”
한참 상인들을 약탈하던 야만인들은 빠르게 다가오는 블라드를 보며 당황하고 말았다.
너무나 빨라서, 휘두르고 있는 검의 기세가 흉포해서 그런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놀랐던 것은 여태껏 자신들이 쫓아왔던 녀석이 사람을 태웠다는 사실이었다.
신령한 핏줄을 타고난 초원의 아들을 탈 수 있는 자들은 오직 같은 초원의 자식인 자신들뿐.
그러나 굳게 믿고 있던 상식은 지금 새까만 녀석에게 올라타 있는 블라드에 의해 깨져나갔다.
그들의 생각과는 달리 새까만 녀석은 누구의 소유도 아니었고 오직 스스로의 의지로 소년을 선택했다.
“제국의 애송이 따위에게 초원의 자식을 넘겨주지 마라!”
마치 자신들의 것을 빼앗긴 것만 같은 광경에 야만인들은 이를 갈며 말을 몰았다.
자존심을 넘어 영혼까지 짓밟힌듯한 감각에 야만인들은 빛나는 금화도 내버려 둔 채 소년을 쫓아오기 시작했다.
비록 제국에 의해 밀려나고만 야만인들이었으나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마지막 선이라는 것이 있었다.
‘따라온다!’
한참 약탈하던 자들을 베던 블라드는 어느새 자신에게 몰려오고 있는 자들을 보며 어찌해야 할지 당황하고 있었다.
그들이 행렬에서 떨어져 나왔기에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었지만 점점 포위되고 있는 형국은 경험 없는 소년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
블라드가 멈칫하며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사이 어느새 야만인들이 달리고 있던 블라드를 에워싸기 시작했다.
날카롭게 찌르듯이 들어오는 야만인들의 눈빛.
열 명이 넘는 무리 속에 갇혀 버린 블라드는 이를 악물고는 다가올 악의를 대비했다.
“당장 그 말에서 내려라. 애송이!”
“감히 네가 탈 수 있는 말이 아니다!”
비수처럼 찌르듯이 들어오는 사내들의 눈빛 속에서도 블라드는 위축되지 않았다.
“······내가 이놈을 타든 말든 너희가 뭔 상관이야!”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거다.
그렇게 하기 위해 여기까지 기어 올라왔고 너희들 따위가 나를 막을 자격은 없다.
“까고 있네. 새끼들이.”
“죽여!”
푸르게 타오르는 소년의 눈동자를 본 야만인들이 기다렸다는 듯 사방에서 검을 뻗어댔다.
“······!”
블라드는 서둘러 오러를 일으켜 대항하려고 했지만, 어느새 사내들의 검은 저 앞에서 허우적대고 있을 뿐이었다.
“어?”
히이이힝-
블라드는 혼자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교묘하게 속도를 줄인 새까만 녀석이 순식간에 야만인들이 내뻗는 검을 피해냈다.
쿠웅- 쾅-
그리고는 옆에 달리고 있던 야만인들의 말을 거칠게 밀어내면서 그들이 만들어 놓은 포위망을 찢어발기기 시작했다.
새까만 녀석도 이들에게 갚아야 빚이 있었다.
—-!
오직 서로 이어져 있는 소년만의 세계에서 볼 수 있는 하얀색 뿔.
그 뿔과 함께 빛나기 시작하는 새까만 눈동자가 주위의 말들에게 거부할 수 없는 압박감을 주기 시작했다.
초식동물이 내뿜었다기에는 믿을 수 없는 그런 기세였다.
“워워!”
“젠장! 뒤를 잡혔다!”
거대한 그물 안에 갇힌 형세였던 블라드는 어느새 그물을 찢고 뛰쳐나와서는 야만인들의 뒤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오직 추격자이자 포식자만이 잡을 수 있는 그런 위치였다.
“올가미를 날려!”
순식간에 뒤바뀌어 버린 위치에서 블라드가 당황하고 있는 동안 야만인 중 몇몇이 재빨리 들고 있던 올가미를 날리기 시작했다.
어젯밤 새까만 녀석을 사로잡기 위해 날렸던 주술이 새겨진 올가미였다.
히이이힝-
자신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악의가 담긴 올가미를 보며 새까만 녀석이 울부짖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올가미가 날아들던 그 날의 밤하늘이 떠올랐다.
“어딜 감히!”
그러나 새까만 녀석이 대항할 수 없는 부분을 이번에는 소년이 대응하고 있었다.
블라드가 감고 있는 왼쪽 눈에서부터 담아두고 있던 세계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 자식들이 끝까지 치사하게 구네!”
블라드는 사방에서 날아오는 올가미들을 시선에 새겨두고는 정확한 순간에 맞춰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다양한 각도에서 날렸다면 모르겠으나 소년은 이미 그들의 뒤를 잡은 상태였고 다급하게 날린 올가미들은 그저 소년의 정면을 향해 날아올 뿐이었다.
스걱-
빛나는 일섬과 함께 야만인들의 주술이 허무하게 잘려 나갔다.
새까만 녀석이 어찌할 수 없었던 인간들의 악의와 함께.
“이놈도 오러를 쓴다!”
“어린놈도 기사였어!”
당황하는 야만인들을 보며 소년과 말이 사납게 미소 지었다.
“이제부터 내 차례냐!”
소년의 손에 들려진 장식 없는 검이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야만인들보다 빠르며 날카로운 밤하늘이 그들의 뒤에서부터 덮쳐들고 있었다.
※※※※
으아아아-!
말들이 겁먹었어!
“······.”
행렬의 바깥에서 대치하고 있던 또 다른 무리.
그 무리 속에 있던 노인과 야만인들의 대장은 뒤에서부터 들려오는 기이한 비명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고개를 돌렸다.
“블라드?”
“······이런.”
평생을 누군가를 쫓고 사냥하며 살아왔던 야만인들이었다.
그러나 지금 보이는 광경에서 그들은 오히려 누군가에게 쫓기는 입장이었다.
새까만 말과 함께 검을 휘두르고 있는 금발 소년에 의해.
“막고 있어봐라!”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 야만인들의 대장은 그를 따라 나온 무리에게 라문드를 맡을 것을 명하고는 재빨리 비명이 난무하는 곳으로 뛰쳐나갔다.
“어딜 가냐. 이놈아!”
라문드는 그가 블라드를 향해 움직이려는 것을 눈치채고는 서둘러 따라나서려 하였으나 고작 달구지를 몰던 짐말로서는 순간적으로 치고 나가는 그를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남아있던 무리들이 라문드의 진로를 방해하며 그를 붙잡아댔다.
“무슨 일이냐!”
도망치고 있던 부하들을 향해 뛰쳐나간 야만인들의 대장.
그곳에서 그가 본 광경은 충격적인 것이었다.
“아게······아게 님!”
피를 흘리고 있던 부하 중 하나가 달려온 아게를 보고는 한쪽밖에 남지 않은 팔을 허우적댔다.
“이런!”
어느새 절반으로 줄어버린 자신의 부하들.
그리고 그 뒤를 쫓아오는 금발의 소년과 자신이 눈여겨 두고 있던 신령한 피를 이은 말까지.
상상조차 못 한 광경을 보며 무리의 대장인 아게는 눈을 크게 뜨고 말았다.
“이 자식이 감히!”
보고 있기만 해도 피가 솟구치는 광경을 보며 아게가 화살을 메겼다.
멀리서도 본연의 존재감을 내뿜는 소년을 향해 냉혹한 화살 하나가 쏘아져 나갔다.
그와 동시에 새까만 녀석의 귀가 쫑긋거렸다.
—-!
“으아!”
블라드는 순간 기우뚱하는 새까만 녀석의 갈기를 잡으며 자신도 모르게 몸을 바짝 붙이고 말았다.
슈육-
순간 귓가를 스쳐 지나가는 스산한 바람 소리.
아게가 쏘아낸 화살이 방금 블라드의 머리가 있던 곳을 꿰뚫고 지나가며 만들어낸 소리였다.
블라드는 재빨리 고개를 치켜들고는 화살이 날아왔던 방향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다른 야만족들과는 다르게 형형색색의 끈으로 머리를 묶어놓은 야만인 사내.
“너 이 자식 아까 그놈이지!”
언덕 위에서 자신을 향해 화살을 쏘았던 냉정한 눈빛의 사내를 기억하며 블라드가 이를 갈아댔다.
“······!”
아게 또한 자신의 화살을 피해버린 말을 보며 황망할 뿐이었다.
신령한 피를 타고난 말이라 범상치 않다는 것은 알았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 몰랐었다.
‘여기서 잡아야 한다!’
소년과 신령한 말.
함께 있기에 완벽해지고 어리기에 더욱 강해질 그들을 보며 아게는 등골이 섬찟해 지고 있었다.
지금 여기서 이 녀석들의 기세를 끊어놔야 한다.
“어서 저 녀석들을 포위해라!”
“하지만 아게 님!”
“마무리는 내가 한다!”
소년을 바라보는 아게의 눈동자가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온몸에 새겨져 있는 그의 문신까지도.
야만인들의 주술로 새겨진 아게의 세계가 피부 위로 떠오르고 있었다.
다시 한번 진형이 좁혀지고.
“그래 와 봐!”
그 사이를 뚫고 들어오는 사내가 있었다.
그를 바라보는 소년과 말의 눈동자가 날카롭게 번뜩이기 시작했다.
서로의 눈동자에 비친 자신들의 모습까지도 확인할 수 있는 거리에서 둘은 기다렸다는 듯 사납게 울부짖었다.
“죽어라!”
“뒤져!”
검과 검이 맞부딪히고 눈과 눈이 서로를 불태우고 있었다.
말들로서 만들어진 움직이는 결투장이 그들의 주위를 맴돌았다.
‘젠장.’
검으로서는 할 만하다.
아게와 맞부딪혀 본 블라드는 그렇게 생각했다.
여태까지 터무니없는 강자들과 싸워온 소년이 보았을 때는 아게라는 초원의 전사는 충분히 해볼 만한 상대였다.
그러나 문제는 자신이 지금 말 위에 올라타 있다는 것.
[너는 안장이 없다. 시간이 갈수록 불리해.]목소리의 말처럼 도구의 힘을 빌릴 수 없는 소년은 지금의 상황이 길어질수록 불리할 뿐이었다.
점점 떨리고 있는 소년의 허벅지를 느낀 새까만 녀석이 최대한 상체를 고정시켜 부담을 줄이려 했으나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악의들이 그것을 방해하고 있었다.
[······빠져나가야 한다!]‘어떻게!’
블라드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돌려가며 빠져나갈 곳을 찾아내려 애썼다.
그러나 주위에 있는 것은 야만인들 뿐이었으며 이번에는 새까만 녀석조차 쉽게 포위망을 찢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것밖에 안 되는 주제에 신령한 말을 탔단 말이냐!”
바로 옆에 있는 아게의 기세가 소년과 말을 억누르고 있었으니까.
“······!”
순간 블라드의 시야로 뒤에서 따라오고 있는 라문드의 모습이 비쳤다.
야만인들에 의해 가려져 있었지만 반짝이는 라문드의 이마는 멀리서 스쳐보아도 알아볼 수 있었다.
‘몇몇 전사들을 제외한다면 감히 기사까지는 상대하지는 못할 녀석들이다. 야만인들 특유의 기동력만 죽이면 돼.’
경험 많은 기사가 전해준 말이 있었다.
야만인들은 말에서만 떨어뜨리면 상대할 수 있다고.
뒤에서 따라오는 라문드와 벗어날 곳 없는 포위망을 보며 블라드의 눈동자가 시퍼렇게 빛나고 있었다.
“너희는 말 위에서 태어났다며?”
“뭐?”
아게는 사뭇 달라진 블라드의 기세를 느끼고 있었다.
점점 올라가는 소년의 입꼬리까지도.
“나는 여태까지 저 아래 처박혀 있었거든.”
쇼아라의 뒷골목에서 태어난 소년은 단 한 번도 진창 위에서 벗어나 본적이 없었다.
“내가 여기까지 해줬으면 너희도 한번은 내가 원하는 대로 해줘야지!”
다시 말해 소년은 진흙탕 싸움에 익숙하다는 뜻이었다.
그곳에서 태어났으니까.
“이런 미······친!”
아게는 말에게서 뛰어올라 자신에게로 달려드는 사나운 눈동자를 보며 당황하고 말았다.
“내려와 이 새끼야!”
달리는 말 위에서 막무가내로 아게를 붙잡은 블라드.
마치 같이 죽자는 듯 온몸으로 뛰어든 소년의 행동에 아게는 크게 당황하며 몸을 비틀어댈 뿐이었다.
맹세코 살아오면서 이런 말도 안 되는 공격을 받아 본 적은 없었다.
“크헉!”
의외성의 화신이나 다름없는 소년의 행동에 의해 땅으로 추락하고 마는 야만족의 전사.
곧이어 격렬한 통증이 그의 등을 덮쳤다.
“······!”
점점 까맣게 다가오는 땅을 보며 블라드는 빛나던 노인의 이마를 생각했다.
찰나의 순간 속에서 그날 보았던 광경을 떠올린 블라드는 최초로 땅과 맞닿을 어깨를 향해 사정없이 오러를 밀어 넣었다.
배우지는 못했지만 보았고 느꼈었다.
“흐윽!”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흙먼지 속에서 땅에 맞닿은 소년의 왼쪽 어깨가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
“이놈······이놈!”
뒤늦게 따라온 라문드는 저 앞에서 야만족의 대장을 붙잡고는 땅으로 굴러떨어진 소년을 보고는 기겁하고 말았다.
아무리 튼튼한 몸을 지닌 기사라 할지라도 저렇게 떨어진다면 목숨을 장담하기 힘들 터.
그러나 자욱해진 흙먼지가 걷히고 라문드의 눈에 들어온 광경은 예상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나는 부다아트 족의 아게다.”
여기저기 흐르는 피와 함께 장식 없는 검을 치켜든 소년.
그리고 그 소년 밑에 깔려 있는 야만족의 전사.
“네놈 따위에게 말해줄 이름은 없어.”
소년은 배웠었다.
자신의 이름을 당당하게 말하기 위해서는 명예와 함께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자신에게 깔려 있는 야만족 사내는 바예지드의 사람들을 약탈하고 죽인 마적단일 뿐이었다.
“······.”
라문드는 눈앞의 광경을 보고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지금도 희미하게 빛나고 있는 소년의 왼쪽 어깨.
이리저리 터져나간 바예지드의 갑옷 속에서 빛나는 오러를 보며 라문드는 침을 꿀꺽 삼키고 말았다.
“······알려주기도 전에 훔쳐 가면 어떡하냐 이놈아.”
이곳에 있는 모두가 소년을 보고 있었다.
야만인들의 옛 전통을 따라 신령한 말을 타고 달린 소년.
바예지드의 옛 전통을 입고는 자신의 오러를 따라 한 소년.
소년 세계 안에서 이어지는 두 개의 옛것들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