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Embrac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66
레이디 제미나 (1)
요제프는 찻잔을 내어주며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수녀를 바라보았다.
깔깔해 보이는 옷을 반듯하게 다려 입은 노년의 여인.
수녀원의 원장이 요제프가 내어준 차를 마시며 말을 이었다.
“시장님께서 그 종자를 키워보실 생각이라는 것은 잘 알겠으나 조심하셔야 할 겁니다.”
수녀원의 원장은 고개를 꼿꼿이 세운 채 요제프와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앉아 있는 자세만으로도 그녀의 고지식함이 드러나고 있었다.
“제가 직접 지켜본 바로는 타고난 신분이 천해서 그런지 심성이 급하고 포악하기 그지없었습니다. 분명 문제를 일으킬 아이입니다.”
그날 블라드는 제대로 된 절차도 밟지 않은 채 제미나를 수녀원 밖으로 끌어내었다.
조금이라도 후일을 생각했다면 그렇게 해서는 안 됐겠지만 살다 보면 때로는 이성보다는 감정이 앞설 때가 있는 법이었다.
“저는 혹시라도 시장님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말씀드린 겁니다.”
“······그렇습니까.”
요제프는 이미 블라드가 수녀원에서 나름의 무례를 범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와 그 행동을 문제 삼고 경고한다는 것은 다분히 의도적인 면이 있었다.
원장 수녀가 사제 안드레아와 산 로지노의 인정을 받은 소년에게 이러는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일 것이다.
“요제프 님.”
“무슨 일이지?”
요제프가 원장 수녀의 뒤에 있을 누군가를 고민하던 찰나 자야르가 노크와 함께 문을 열고는 시장실 안으로 들어섰다.
들어오라는 허락이 없었으며 손님과 면담 중인 것도 알고 있던 자야르였지만 이렇게 해야 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
“라문드 경과 함께 보냈던 마구간지기가 돌아왔습니다.”
요제프는 자야르의 표정이 심상치 않은 것을 보고는 눈을 가늘게 떴다.
“혼자서 돌아왔습니다.”
“이유는?”
요제프는 자야르의 눈빛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들여보내라.”
바로 앞에 원장 수녀가 앉아 있었지만 자야르의 태도는 긴급을 요하고 있었다.
“요, 요제프 님. 큰일났습니다.”
자야르의 고갯짓과 함께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고트가 다급한 발걸음으로 걸어들어왔다.
땀과 흙먼지로 범벅이 된 얼굴이 고트가 얼마나 다급하게 움직였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말해 봐라.”
고트는 요제프의 허락에 침을 꿀꺽 삼키고는 재빨리 생각해놓았던 말들을 내뱉기 시작했다.
“야만인들이 나타났습니다.”
고트의 입에서 야만인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오자 원장 수녀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고 말았다.
오래 살아왔던 그녀이기에 야만인들이 가져오는 공포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디서.”
“쇼아라와 바르나를 잇는 가도입니다. 그곳에서 사람들을 습격하고 있었습니다.”
일어날 리 없는 상황이었으나 고트라는 사내는 그동안의 경험으로 비추어 볼 때 나름 신뢰를 갖춘 자였다.
그의 보고는 귀 기울여 들을만한 가치가 있다.
“영감님께서 저보고 사람을 데려오라 말씀하셨습니다.”
고트는 자신을 바라보는 요제프의 눈빛이 부담스러운지 아니면 다급한 상황 때문에 그러는지 말라가는 입술을 혀로 핥으며 입을 열었다.
“영감님과 블라드가 지금 야만인들의 대장을 인질로 붙잡고는 버티는 중입니다.”
“······.”
고트는 말하고 있었다.
라문드와 블라드가 습격당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야만인들의 대장을 붙잡고 농성하고 있노라고.
오직 단둘이서 말이다.
“······자야르. 지금 당장 기병들을 꾸려 나서게. 자네가 직접.”
“네.”
“고트. 방금 돌아온 너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자야르를 위한 길잡이가 되어줘야겠다.”
“알겠습니다.”
“가 봐라. 신속하게 움직여라.”
둘을 내보낸 요제프는 마치 기도하듯 양손을 이마에 댄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러나 요제프는 기도를 하기 위해 고개를 숙인 것이 아니었다.
감히 바예지드의 땅을 더럽히는 야만인들과 자신에게 경고를 날리는 누군가를 생각하며 화를 억누르는 중이었다.
“······참으로 기특하지 않습니까?”
앞에 앉아 있던 원장 수녀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린 요제프.
“비록 신분이 비천하고 성정은 급할지라도 신의 뜻을 따라 어린 양들을 지키고 있다 하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원장 수녀의 눈에 비치는 요제프는 그날 보았던 소년보다 더 위험한 눈빛을 풍기고 있었다.
문제를 일으킨다면 소년보다는 오히려 이쪽일 것 같은 그런 눈빛이었다.
“그분께 제 말을 전해주십시오. 원장 수녀님.”
도시 쇼아라는 두 명의 손에 의해 움직인다.
핏줄로서 인정받은 정당한 쇼아라의 시장인 요제프 바예지드와.
“저를 걱정해주셔서 고맙다고.”
신의 말씀에 따라 인간들을 보살피는 쇼아라의 주교. 이 두 사람에 의해서.
“그리고 제가 조만간 찾아뵙겠노라고 말입니다.”
비록 다른 영역에 속해있지만 서로 같은 도시에서 움직이는 두 사람은 결국 한 번은 마주쳐야 할 운명이었다.
인간의 권력과 신의 권력은 결국 모두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것이니까.
시장실의 창밖 너머로 기병들이 뛰쳐나가는 말발굽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퍼졌다.
※※※※
평범한 마적단이었다면 두목이 잡히는 순간 도망쳤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마적단이 아닌 부다야트라는 야만족 부족의 전사들이었고 아게는 부족장의 아들이자 그들의 대장인 사람이었다.
“점점 더 많아지는 것 같지 않아요?”
“······꽤 많은 수가 남하해 있었군.”
블라드의 말에 라문드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야만인들은 자신들의 대장을 포기하지 않았다.
사람들을 이끌고 천천히 남하하는 라문드와 블라드를 압박하며 계속해서 그들을 따라 내려오는 중이었다.
쇼아라의 성벽이 희미하게 보이는 지금까지도.
“고트라는 녀석이 제대로 도착한 모양이군.”
그러나 하루를 넘긴 이 지리한 대치상황은 지금 이 순간부터 끝났다.
라문드는 아게의 목에 검을 들이댄 채로 저 멀리서 피어오르는 흙먼지를 바라보았다.
쇼아라의 병사들이었다.
“······우리가 조금 늦었군.”
“이곳이 바예지드의 땅이라는 것을 잊지 마라.”
아게는 쇼아라에서 달려오는 병력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자신이 데려온 전사들이 조금이라도 더 일찍 모여들었다면 아무리 오러를 쓰는 두 명이라 할지라도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을 지켜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적어도 풀려날 수는 있었겠지.
“훌륭한 판단이었소. 노인장.”
자신을 붙잡아 압박하는 동시에 사람들을 이끌고는 쇼아라로 돌아간다는 결정.
혹시라도 따라잡힐까 염려하여 적절한 거리와 시기를 계산해 고트를 쇼아라로 보낸 판단.
둘 중 하나라도 어긋나거나 시도할 수 없었다면 일행은 쇼아라를 보는 대신 낯선 야만인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을 것이다.
“도대체 이곳에는 왜 온 거냐? 왜 이렇게 깊숙한 곳까지 들어온 거지?”
이제야 의도를 달성한 라문드는 그동안 품고 있던 의문들을 내뱉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작 아게의 시선은 자신을 위협하는 검 끝보다도 저 앞에서 새까만 말을 탄 채 자신의 동료들을 노려보는 소년을 향해 있을 뿐이었다.
“우리는 초원의 아들이 필요했소. 그래서 여기까지 따라온 것이었지.”
“말을 따라온 놈들이 사람들을 약탈해?”
“그것은 겸사겸사 용돈 벌이였달까.”
아게는 비록 블라드에 의해 땅으로 굴러떨어졌지만, 당당한 태도를 잃지 않았다.
“그런데 초원의 아들이 우리가 아닌 제국의 소년을 택할 줄 몰랐군.”
오직 혼자뿐이었지만 소년은 여기까지 오는 동안 훌륭하게 야만인들의 돌격을 저지해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초원의 아들이 자신보다 소년을 택한 것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번 일에 대해서는 자세히 설명해야 할 거다.”
무언가 사연이 있어 보이는 듯한 표정이었지만 라문드의 검 끝은 흔들리지 않았다.
어쨌거나 이들은 허락도 없이 바예지드의 땅에 들어와서 약탈을 자행한 녀석들이었으니 사정을 봐줄 필요는 없을 것이다.
“돌아가라! 모두 돌아가!”
이제 상황이 끝났다는 것을 인지한 아게는 큰소리로 외치며 자신의 동료들에게 외쳐댔다.
“가만히 있어!”
갑작스러운 아게의 돌발행동에 라문드의 검이 그의 목을 파고들어 새빨간 핏방울이 맺히고 있었지만 아게는 외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돌아가!”
아게의 목소리를 들은 야만족 전사들은 잠시 머뭇거렸지만, 저 멀리서 달려오는 쇼아라의 병사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들의 대장은 실패했고 붙잡히고 말았다.
쇼아라의 앞마당에서 병사들과 정면충돌을 할 수는 없으니 후일을 기약해야 할 것이다.
“나중에 봅시다. 대장!”
날카로운 말 울음소리와 함께 고삐를 돌리는 야만인들.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도망치듯 내달려온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기사님!”
“저희를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흐느끼는 소리와 함께 주저앉듯 무릎 꿇는 사람들.
이곳에 있던 모두가 목숨을 부지한 채로 쇼아라로 돌아올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만큼 야만인들이 주는 압박감은 강렬했고 위협적이었으며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그러나 그런 야만인들을 틀어막은 채 자신들을 이곳까지 인도해준 사내들이 있었다.
“······끝났네.”
멀어지는 야만인들을 보며 이제야 끝났다며 조그맣게 혀를 빼무는 소년.
사람들을 돌아보는 블라드의 금발 머리가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쇼아라의 블라드라고 했다.
※※※※
“뭐가 어찌 된 거냐?”
“모르겠어요. 갑자기 야만인들이 튀어나오더라고요.”
사건의 당사자였으나 내막까지는 모르겠다는 블라드의 말에 자야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수고했다.”
쇼아라로 근접했을 때 아게가 데려온 야만인들의 무리는 거의 40명에 근접해 있었다.
오직 둘만으로 그들을 저지해내고 있었으니 블라드로서는 충분히 진이 빠질만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 말은 어디서 난 거냐?”
자야르의 시선이 블라드를 태우고 있는 새까만 말에 닿았다.
다른 말들과 비교해 덩치도 커다래 보이는 녀석은 한눈에 보아도 범상치 않아 보였다.
“아 이 녀석이요?”
마치 그 물음을 기다렸다는 듯 블라드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때 데스웜을 상대했을 때 봤었던 녀석인데요. 어떻게 저를 찾아왔더라고요.”
“음.”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으나 이제야 말을 탈 수 있게 되었다며 어깨를 으쓱거리는 소년.
특히 자야르의 앞인지라 더 생색내고 싶어 하는 티가 간절해 보였다.
“잘난 척 그만해.”
“돌아가자마자 안장부터 맞춰야겠어요.”
“······.”
자신의 말을 무시하며 형편없이 들떠있는 블라드.
그 모습을 보며 한 대 걷어차 주고 싶은 자야르였으나 지금도 뒤에서 간간이 소년의 이름을 외쳐대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일단은 참아주기로 했다.
“이제야 밥값 하는 건 줄 알아라.”
그저 귓속말로 조금 으르렁거려줬을 뿐이었다.
야만인들로부터 사람들을 구해냈고 그동안 소문이 무성하던 유령마의 정체도 밝혀냈다.
이 정도면 요제프에게 깎인 점수를 회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고개를 까닥이던 블라드였으나 아직 일이 끝난 것이 아니었다.
“응? 야. 왜 이래.”
히이이힝-
방금까지만 해도 블라드의 말을 잘 따르던 새까만 녀석이었으나 쇼아라의 성문에 가까이 오자마자 투레질을 하며 더는 다가가는 것을 거부하고 있었다.
“응? 응?”
갑작스레 보이는 녀석의 이상행동에 블라드는 당황하기 시작했고 주위의 병사들은 서둘러 자리를 피하기 시작했다.
“안장부터 맞출 거라며.”
“아니, 이거 왜 이러지?”
자야르는 눈을 가늘게 뜨고서는 새까만 말의 이상행동을 파악해보기 시작했다.
어쩐지 병사들이 가까이 붙을 때부터 녀석의 심기가 불편한 것 같아 보였다.
“······타는 놈은 말들이 싫어하고 태우는 놈은 인간들을 싫어하니 그야말로 끼리끼리 모였구나.”
뒤로 물러나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아예 앞발을 들고 발광을 하는 새까만 녀석을 보며 자야르는 참으로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