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Embrac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68
레이디 제미나 (3)
“블라드 님을 뵈러 왔습니다만.”
“······.”
마르셀라는 아직 개장하지도 않은 여관에 몰려든 사내들을 보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한참 장미의 미소를 정비하던 전직 창녀이자 현직 종업원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평생을 창녀로서 살아왔던 그녀들은 지금처럼 반듯한 손님들을 본 적이 없었다.
“어, 블라드······님은 업무가 있어서 방금 나가셨거든요.”
굳이 님자까지 붙일 필요는 없었지만, 마르셀라는 가능하다면 지금은 블라드라는 존재를 높게 띄워야 할 때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들을 상대하며 평생을 갈고 닦아왔던 그녀의 감각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으니까.
“요즘 한참 바쁘시네요. 아무래도 시장님께서 아끼시는 인재다 보니.”
“오오. 그렇지요. 그러실 테죠.”
생긋 웃으며 상황을 설명하는 마르셀라를 보며 여관으로 몰려든 사내들은 연신 고개를 끄덕여댔다.
기품있는 자세로 접객하는 마르셀라의 모습은 그저 미소만으로도 사내들에게 신뢰를 주고 있었다.
“그럼 언제쯤 돌아오실지?”
“그건 저도 잘 모르겠네요. 이름을 남겨드릴까요?”
하루가 넘는 야만인들과의 대치상황에서 늙은 기사는 칼로써 위협했고 어린 종자는 기세로써 틀어막았었다.
바르나로 향하던 상인들과 그곳에있던 사람들은 두 명의 분전을 두 눈 똑똑히 지켜볼 수 있었고 그 결과가 지금의 모습이었다.
그동안 흘러나왔던 블라드에 대한 소문은 이제는 실체 있는 근거가 되어 쇼아라에 사람들에게 퍼지는 중이었다.
“제미나.”
블라드에게 전할 자신들의 이름과 함께 선물들을 놓고 간 사내들.
그들이 떠나자 마르셀라는 2층에서 지금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소녀를 불러내었다.
“네. 마담.”
제미나는 살짝은 기죽은 모습으로 마르셀라의 부름에 답했다.
소년이 빛날수록 제미나는 기가 죽어갈 수밖에 없었다.
볼품없는 자신이 계속 블라드의 옆에 있어도 될지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블라드에게 오는 손님들은 네가 다 담당하도록 해.”
“네?”
그리고 제미나가 기가 죽은 이유를 잘 알고 있던 마르셀라는 소녀에게 기회를 주기로 했다.
마르셀라는 진심으로 소녀를 응원하는 사람 중 하나였으며 제미나에게 그럴 만한 자격이 있다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르셀라의 말에 제미나는 당황하고 말았다.
그녀의 말이 파격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보니까 다들 한자리하는 사람들 같던데······그냥 마담이 하시는 게 맞을 것 같아요.”
분명 훌륭한 기회였지만 제미나는 목을 움츠리며 마르셀라의 제안을 거절했다.
자신의 능력을 믿을 수 없는 것도 있었지만 혹시라도 실수를 해 블라드에게 폐가 갈까 두려운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제미나.”
의기소침해 있는 제미나를 보며 마르셀라는 단호한 어조로 말을 건넸다.
“만약 블라드의 손님을 맞이할 자격이 있다고 한다면 이 자리에서 너만한 자격을 가진 사람이 없어. 안 그러니?”
“······.”
마르셀라의 물음에 주위에 있던 여자들이 무언으로 긍정했다.
붉은 머리의 소녀가 없었다면 어쩌면 지금의 블라드는 없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니 제미나는 블라드의 성공에 대해 조금은 더 당당해질 필요가 있었다.
“제가······해요?”
“그래. 해.”
“분명 실수할 텐데. 잘 모르기도 하고.”
동그랗게 눈을 뜬 채 자신을 올려다보는 제미나를 보며 마르셀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하라고 해서 바로 훌륭히 일을 수행할 수는 없을 것이다.
중요한 손님들을 대접하기 위해서는 나름의 경험과 지식을 쌓아야 할 것이고 제미나는 아직 그런 것들에 익숙지 않았다.
“실수 좀 하면 어때. 블라드가 그 정도는 부담해 줘야지.”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지금 이곳에는 접객에 대해서만큼은 최고의 실력을 가진 여인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이번에는 말을 끌어달라고 부탁까지 했다며? 이것 봐. 아직 블라드에게는 네가 필요해.”
귓가에 조용히 울려 퍼지는 마르셀라의 말에 제미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소년은 분명 소녀에게 갚아야 할 빚이 있었다.
지금에 와서 그것을 요구한다고 할 지라도 전혀 경우 없는 행동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가 소년의 옆에 서기 위한 발버둥이라면 더더욱.
마르셀라는 골똘히 생각에 빠져있는 제미나의 머리를 살며시 들어 올리며 모양을 만들어보았다.
과연 생각처럼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이따가 내 방으로 가자.”
“네?”
마르셀라의 말에 제미나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녀는 그저 미소지을 뿐이었다.
전장에 나가는 것은 남자만이 아니다.
여자도 여자만의 전장이 있는 법이었다.
그리고 마르셀라는 오늘 제미나에게 여자의 무기를 들려줄 생각이었다.
호르헤가 블라드에게 단검을 쥐여준 것처럼.
※※※※
“가이다르 백작가문이 바로 북부로 오지는 않을 겁니다.”
라문드는 요제프가 내어준 차를 마시며 자신이 경험으로 쌓아 올린 판단을 들려주고 있었다.
“팽창에는 안정이 필요한 법이죠. 비록 뻗어나가는 기세가 매섭지만, 기존의 맹주였던 로마노브 가문의 잔재들이 아직 서부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요제프는 라문드의 말을 주의 깊게 경청하고 있었다.
북부의 기사였지만 가장 낮은 자로서 활동할 때는 서부에서 활약했던 라문드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의 뒤에는 드워프 해방 전선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만약 순서가 있다면 북부나 중부로 진출하기보다는 뒤에 있는 근심거리들부터 해결하지 않겠습니까.”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요제프의 앞에는 누군가가 보낸 편지 한 통이 놓여 있었다.
하이날 가문의 인장이 박혀 있는 편지였다.
“그러나 걱정이 되는군요.”
당분간은 걱정할 것 없다며 요제프를 안심시킨 라문드였지만 정작 본인은 의자에 깊게 등을 기대고는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무엇이 말입니까.”
요제프의 물음에 라문드는 힘없이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제게 남은 두카트는 이제 한 닢뿐이고 그 한 닢을 바예지드의 종자들에게 써야겠다는 생각을 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명예와 의무에서 해방되어 순수한 자연인으로 돌아가기 위한 은퇴식이었건만 가련한 기사는 결국 마지막 순간까지도 바예지드를 떠올리고 말았다.
충성했고, 평생을 지켜왔고 또한 사랑한 곳이었으니까.
“서부의 기사들은 이미 북부를 뛰어넘었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러나 아무리 애정 있는 곳이라 할지라도 평가는 냉정해야만 했다.
라문드는 그렇게 하는 것이 진정으로 바예지드를 위한 일이라 굳게 믿었다.
“그동안 너무 안일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서부의 기사들을 본 순간 제가 할 일을 다 마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말과 함께 라문드는 가만히 눈을 감고 예전의 북부를 떠올려보았다.
쉴 새 없이 몰려드는 야만인들과 몬스터.
그리고 북풍의 설한보다도 차가운 중앙에서의 차별.
북부의 기사들은 그 모든 것들에 대항하며 싸워온 사람들이었다.
그렇기에 그 어떤 지역의 기사들보다도 강인하며 명예로운 자들이기도 했다.
“개척지의 기질 때문인지 그곳의 기사들은 언제나 배고파하고 빼앗고 싶어 합니다. 도련님께서는 그들을 대비하셔야 할 겁니다.”
그러나 시간은 흐르는 법이고 사람들은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다음 시대를 맞이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제국은 헐거워지고 거칠었던 북부는 안정되었으며 그에 반해 서부는 팽창하고 있었다.
지금은 힘의 균형이 바뀌는 시대였다.
“······.”
요제프는 라문드의 말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멋들어지게 세워져 있는 쇼아라의 정경은 언제나 그의 발걸음을 창가로 인도하고는 했다.
“······그래도 북부는 여전히 강인한 열매를 맺어내지 않습니까.”
그리고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요제프의 답답한 마음을 위로해주고는 했다.
라문드는 조용히 읊조리는 요제프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물론이지요.”
창밖 저 멀리 보이는 쇼아라의 성문으로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비록 노인의 시대는 저물었을지라도 새로운 시대는 또다시 떠오르는 법이었다.
※※※※
“왜 이렇게 사람들이 몰려드는 거야.”
[재미있는 볼거리가 왔는데 당연히 나와보겠지.]겨우겨우 씌운 고삐로 새까만 녀석을 잡아끌던 블라드는 목소리의 대답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재밌다구요?”
[그럼 재밌지. 그동안 네가 한 일들을 생각해봐라.]“······.”
목소리의 말에 며칠간의 행적을 곰곰이 생각하니 과연 그 말이 이해되었다.
블라드는 그동안 새까만 녀석을 쇼아라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발악 같은 시도를 해왔었다.
눈도 가려보고, 힘으로 끌어보고, 먹을 것으로도 유도해보고, 제발 부탁한다며 머리도 조아려보고.
심지어는 고트의 제안에 따라 암말을 이용해 유혹까지 해보았으나 새까만 녀석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한참 이름값을 올리는 소년이 말을 상대로 되지도 않는 기행을 해대고 있었으니 사람들의 시선이 쏠릴 법도 했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몰릴 일은 아니지 않나.”
그리고 오늘이 그 시도의 방점을 찍는 마지막 순간이었다.
사람들의 삐뚤어진 관심에 입술을 깨문 블라드는 그래도 이번만큼은 다를 거라 확신하며 새까만 녀석을 성문 앞으로 끌어당겼다.
“언제까지 기다리게 할 거야!”
결심을 굳힌 블라드의 귓가로 쨍하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린 곳에는 붉은색 드레스를 입은 채 천으로 머리와 얼굴을 가린 제미나가 성문 앞에 서 있었다.
“드레스는 도대체 왜 입은 거야.”
[드레스는 여인의 전투복이지. 만반의 준비를 갖춘 모습에 나는 감탄했다.]본인이 부탁했음에도 궁시렁대던 블라드는 고개를 돌리고는 이제 준비가 되었다며 큰소리로 외쳤다.
“제미나! 됐어!”
“······.”
블라드의 말에 제미나뿐만 아니라 구경하던 사람들도 숨을 죽이고 있었다.
“좋아.”
심호흡을 하며 숨을 고르던 제미나는 블라드의 신호에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럽고 새까만 말의 덩치가 생각보다 너무 커다랬지만 제미나는 입술을 꽉 깨물고는 뒤집어 쓰고 있던 천을 벗어내었다.
두려움에 망설일 뿐이라면 소년의 옆에 서 있을 자격 따위는 없을 테니까.
“······오오.”
“이야. 과연 꽁꽁 숨길만 했네.”
소녀의 각오와 사람들의 감탄과 함께 내리쬐는 햇살 아래 화려한 붉은 꽃이 피어올랐다.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제미나의 붉은 머리는 과연 의도대로 새까만 녀석의 시선을 잡아끌고 있었다.
“······귀걸이는 왜 한 거야.”
“드레스랑 세트야!”
반짝이는 귀걸이와 함께 화려한 드레스를 갖춰 입은 소녀는 그동안 블라드가 보아왔던 제미나와는 전혀 딴판인 모습이었다.
블라드도 제미나의 화려한 모습을 보고는 할 말을 잃고는 잠시 멍하니 바라볼 정도였으니까.
“여기야. 여기.”
그러나 제미나는 블라드의 핀잔 따위는 무시한 채 앞에 있는 새까만 녀석을 노려볼 뿐이었다.
블라드는 몰랐겠지만 제미나는 나름의 각오를 하고 나온 상태였다.
“착하지. 이리 온.”
비장한 각오로 등 뒤에 숨기고 있던 장미 꽃다발을 흔드는 붉은 머리 소녀.
자그마한 몸 안에 붉은색 장미꽃들을 가득 채운 소녀를 보며 새까만 녀석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움직인다!”
“이게 되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손뼉을 치며 지금의 상황을 감탄하고 있었다.
바예지드가 주목하는 가능성인 소년.
누가 보아도 당당해 보이는 새까만 말.
그리고 감히 뒷골목에서 태어났다 믿을 수 없는 화려한 빛깔의 소녀까지.
화려한 볼거리들을 가득 담은 세 명의 행진에 모여있던 사람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히이이힝-
고삐를 붙잡은 소년과 함께 마침내 새까만 녀석이 성문 안에 들어서자 사람들이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다.
“할 일들도 되게 없구만!”
블라드는 구경거리가 된 자신의 모습에 푸른 눈을 부라리며 윽박을 질러댔지만 이미 상황은 소년의 손을 떠난 뒤였다.
“그래 계속 끌어당겨!”
“잘한다!”
사람들은 이 기이한 광경에 열광하고 있었다.
자그마한 소녀가 한치의 물러섬도 없이 거대한 말을 끌어당기고 있었으니까.
매섭게 치켜뜬 눈으로 한 손으로는 치맛자락을 움켜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붉은색 꽃다발을 치켜든 소녀.
누가 보아도 당당해 보이는 그 모습은 마치 검을 빼어든 기사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것이었다.
“제미나! 레이디 제미나!”
소녀의 당당한 모습에 열광하는 사람들 사이로 누군가가 큰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그녀는 붉은색의 레이디! 쇼아라의 장미요!”
목발과 함께 절뚝거리며 걷는 갈색 머리의 청년이 모두가 들으라는 듯 큰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레이디 제미나!”
“제미나! 붉은색의 레이디!”
하벤의 선창과 함께 주위에 몰려나온 사람들이 크게 외치기 시작했다.
하벤은 그 모습을 보며 목청이 떠나가라 큰 소리로 웃어대었다.
언제 한번 뒷골목 녀석들이 이렇게 사람들의 주목을 받아본 적이 있었나.
언제 한번 이렇게 박수받으며 사람들의 열광을 받아본 적이 있었나.
그러나 오늘만큼은 쇼아라가 소년과 소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쇼아라의 성문.
이곳은 소녀의 전장.
꽃다발을 무기로 세계의 경계를 허문 레이디 제미나는 자신을 따라오는 새까만 녀석을 보며 화사하게 웃음 지었다.
반짝이는 그녀의 귀걸이보다도 더욱 빛나는 미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