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Embrac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7
검에 묻은 핏방울 (2)
어두운 밤. 도시 쇼아라의 성벽 밑.
성벽의 그림자를 타고 움직이는 두 명의 인영이 있었다.
“여기요.”
“······내가 통과 할 수 있긴 한 거야?”
블라드는 스탕가를 쳐다보는 대신 주위를 경계하며 대답했다.
“갑옷을 벗으면 될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왜 이 지랄까지 하면서 몰래 들어가야 하지?”
잠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한 스탕가는 별수 없다는 듯 갑옷을 벗고는 자그마한 땅굴을 향해 몸을 들이밀었다.
“여기 진짜 괜찮은 거 맞아?”
“제가 2년 전까지 썼던 굴이에요.”
“2년 전?”
상업도시인 쇼아라는 많은 상인과 물자들이 오고 가는 도시였고 그만큼 검문검색도 심한 곳이었다.
자격 없는 자들에게 관세를 메겨야만 했기 때문이다.
바예지드 백작에게 허가받은 상인들의 경우는 아니었지만 평범한 행상인들은 꼼짝없이 관세를 내야만 했다.
그 과정 중에 경비병들에게 이리저리 뜯기는 것은 이제는 하나의 관행처럼 되어 있을 정도.
그래서 몇몇 행상인들은 이리저리 뜯기지 않고 쇼아라로 들어갈 방법을 강구했고 그 방법 중 하나가 뒷골목의 어린아이들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블라드는 몇 년 전만 해도 그런 아이들 중 한 명이었다.
“적어도 제가 써먹을 때는 걸리지는 않은 곳이니 안심하셔도 돼요.”
“퍽이나 안심되겠다.”
블라드의 태연한 말과는 다르게 손만 가져다 대도 흙이 바스러지는 땅굴을 보며 스탕가의 표정이 굳어졌다.
“제가 도시에서 나올 때도 여기로 나왔거든요. 보기와는 다르게 겁이 많으시네.”
“······좋아.”
이미 한번 써봤다는 블라드의 말을 듣고는 용기를 낸 스탕가가 땅굴 속으로 사라졌다.
가 다시 고개를 빼꼼히 쳐들었다.
“갑옷 가져가면 죽여버린다. 애송이.”
“여태까지의 여정으로 신뢰감을 주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네요.”
전혀 안타깝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블라드가 어깨를 으쓱하자 스탕가는 인상을 구기며 땅굴로 들어갔다.
“······.”
스탕가가 땅굴로 들어가자 블라드는 재빨리 몸을 숙여 땅에 귀를 가져다 댔다.
남들보다 민감한 감각을 가지고 있던 블라드는 땅으로부터 울리는 발자국 소리를 통해 주변에 사람이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애송이였던 시절 밀수를 단 한 번도 실패하지 않았던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기도 했다.
‘좋아.’
들려오는 것이라고는 오직 스탕가의 나지막한 욕지거리뿐인 것을 확인한 블라드는 벗어놓은 갑옷들을 가죽 포대에 넣고는 땅굴로 몸을 옮겼다.
‘여기도 오랜만이네.’
블라드는 자신보다 덩치가 큰 스탕가가 들어갔어도 무너지지 않았으니 안전하리라 생각하며 땅굴로 기어들어 갔다.
블라드가 땅굴을 빠져나오자 기다리고 있던 스탕가가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기분 더러워. 거지같아.”
“이제 다 왔잖아요.”
“뭔가······뭔가야. 기분이 그래.”
“여기 갑옷이요.”
스탕가에게 갑옷을 건네준 블라드는 재빨리 길목을 살피며 자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확인했다.
도시 밖에서 외팔이 잭의 눈을 속이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그가 아무리 뒷골목을 지배하는 보스 중 하나라 해도 쇼아라라는 도시 전체로 본다면 그리 큰 존재는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장미의 미소로 향해야 하는 지금부터는 이야기가 달라졌다.
“적당히 더럽혀진 편이 더 좋아요. 기사보다는 거지같아 보이는 것이 더 그럴싸하잖아요.”
“아니 내 모습이 아니라 기분이 거지 같다니까.”
뒤에서 스탕가가 툴툴대든 말든 블라드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대답했다.
“움직이죠.”
“그래.”
스탕가는 더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은 채 블라드의 뒤를 따라 움직였다.
어두운 쇼아라의 뒷골목.
두 보스가 만들어내는 폭풍을 피하기 위해 골목 전체가 숨죽이고 있었다.
“따라오세요.”
빛 한점 없는 어두운 골목이었으나 블라드는 마치 눈에 훤히 보인다는 듯 거침없는 발걸음으로 스탕가를 인도했다.
“뭔가 이상한데.”
그러나 블라드가 걷고 있는 골목길은 예전에 알고 있던 모습과는 조금 달라 보였다.
평소와는 다르게 묘하게 어지러진 번화가의 골목.
곳곳에 부서진 담벼락들과 그 위에 흩뿌려진 핏자국들.
“원래 이런 곳이냐?”
“아니요.”
불길한 흔적들.
그것들을 본 블라드는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앞으로 나아갈수록 흔적은 확신으로, 확신은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미 크게 한 번 붙은 모양이군.”
스탕가의 말처럼 장미의 미소로 나아갈수록 엉망이 되어가는 길목은 그 누가 보더라도 방금 큰 충돌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젠장.”
험악한 뒷골목에서 나고 자라 웬만한 돌발상황에는 익숙한 블라드였지만 그래봤자 아직 16살밖에 안 되는 애송이에 불과했다.
냉정해지려 애쓰고 있었지만, 시야가 좁아지는 것만큼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순간 서둘러 나아가려는 블라드의 귓가로 스탕가의 말이 꿰뚫고 들어왔다.
“무턱대고 앞으로 나아가기 전에 지금 네가 어디 서 있는지부터 확인해라.”
무거웠으나 날카로운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는 블라드의 좁혀진 시야를 넓혔고 뿌연 안개 속에 있던 판단력을 밝혔다.
“후우.”
블라드는 스탕가의 조언에 따라 길모퉁이에 등을 기대며 숨을 골랐다.
그리고 보았다.
‘감시하는 놈들이 있어.’
냉정을 되찾은 블라드의 눈에 새로이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어둠 속에 숨어 서성이는 남자들.
걔 중 몇몇은 낯이 익은 자들이었다.
“장미의 미소를 감시하는 자들이 있어요.”
외팔이 잭의 부하들이었다.
엉망이 된 골목.
굳게 닫혀 있는 장미의 미소.
그리고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그곳을 노려보고 있는 잭의 부하들.
주어진 조각들이 소년의 머릿속에서 맞춰지기 시작했다.
“습격이 있었지만, 아직 넘어가진 않았나 보네요.”
“좋아.”
블라드의 말을 들은 스탕가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검에 재능이 있고 영민한 머리를 가지고 있다 해도 실전에서 그것을 써먹지 못한다면 벽에 걸려 있는 장식품과 다름없는 것.
그러나 눈앞의 애송이는 그저 한마디 말로 주의를 환기시켜줬을 뿐임에도 침착하게 자신을 가다듬었다.
‘가능성이 있는 애송이다.’
기사는 소년을 제대로 키워보고 싶은 욕구가 생겼지만 지금 맡은 임무로 인해 데려갈 수 없음이 아쉬울 뿐이었다.
“따로 움직이죠. 우리 조직원들만 아는 뒷문을 알려드릴게요.”
“너는?”
“정문으로 갈게요. 지금은 시선을 분산시키는 게 맞을 테니까.”
블라드는 침착하게 다음의 행동을 결정했다.
기사 출신의 스탕가가 자신보다 모든 면에서 낫겠지만 장미의 미소로 그를 데려가는 것은 온전히 블라드의 몫이었다.
“그럼 이따 봬요.”
“······그래.”
스탕가에게 뒷문의 위치를 설명해 준 블라드는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이런 건 또 처음인데.”
길 건너에 있을 잭의 부하들을 생각하며 블라드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언제나 숨어 사는 것에 익숙한 인생이었으나 지금 순간만큼은 자신을 드러내야 했다.
누군가의 앞에 당당히 나서 자신을 보인다.
그런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던 소년은 모르고 있었다.
“해봐야지 뭐.”
자신이 태어날 때부터 그런 것에 재능이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스스로 빛나는 것에.
뿜어져 나오는 입김과 함께 블라드가 모퉁이를 돌았다.
후드를 벗자 가려져 있던 화려한 금발이 뒷골목의 희미한 불빛들 사이로 너풀거렸다.
‘저기 봐!’
‘호르헤의 애송이다.’
‘어디를 다녀온 거지?’
황금은 영원하며 또한 고귀한 것.
뒷골목에는 어울리지 않는 색깔이 장미의 미소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걸음걸이로.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당당하다 생각할 것이고 아는 사람이 본다면 대담하다 말할 발걸음이었다.
장미의 미소를 지켜보고 있던 자들의 시선이 순식간에 블라드에게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 누구도 알아챌 수 없었다.
어둠을 틈타 장미의 미소 뒤편으로 향하는 누군가의 움직임을.
“후우······.”
어둠 속에 서 있던 외팔이 잭의 부하들이 잠시 부산스러워지는 틈을 타 블라드는 무사히 장미의 미소 앞에 멈춰 섰다.
그을리고 여기저기 부서졌으나 굳게 닫혀 있는 문 앞에.
확신했으나 확인하지는 못한 상황.
문고리를 붙잡은 블라드의 손길이 살짝 떨렸지만 망설이지는 않았다.
끼이익-
어긋난 경첩에서 듣기 싫은 소리가 들리고 장미의 미소가 문을 열었다.
그 안에서 블라드를 가장 먼저 반겨준 것은.
“여어. 후배. 왜 이렇게 늦게 왔어?”
머리에 붕대를 둘둘 두른 버레이의 모습이었다.
※※※※
부서진 탁자, 피가 흥건한 바닥.
그리고 곳곳에 늘어져 있는 시체들.
비록 창관이었으나 고풍스러운 멋까지 풍기고 있던 장미의 미소는 지금은 마치 전쟁터라도 된 듯 엉망이 된 상태였다.
‘마르셀라가 기절하겠군.’
참혹한 현장을 뒤로 한 채 블라드는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누군가를 찾기 위해서.
“너의 레이디께서는 안전하시니 걱정 마시고.”
“보스 찾은 거야.”
“보스야 언제나 4층에 있는데 뭘.”
전부 다 안다는 듯 빙그레 웃는 버레이를 보며 블라드는 인상을 찌푸렸다.
난리통에 무언가가 어긋났는지 끼이익 소리를 내는 계단을 오르자 저 앞에서 물씬 피비린내가 풍겨왔다.
그것은 죽음의 냄새이자.
“호르헤. 저 왔어요.”
“어. 그래. 수고했다.”
또한 승리의 증거와도 같은 것이었다.
4층에 오르자 수많은 시체들 사이에서 웃통을 벗고 있는 호르헤의 모습이 보였다.
시뻘겋게 물든 그의 등이 마치 거대한 산 같아 보였다.
비록 상처 입었으나 멀쩡해 보이는 호르헤를 보며 블라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도움이 못 되어서 죄송해요.”
“아냐. 각자가 할 일을 한 것뿐이지.”
입으로는 사람 좋게 말하고 있었지만, 호르헤의 상체에 둘러진 붕대들은 이미 시뻘겋게 변해있었다.
격렬했을 전투가 블라드의 눈에 선했다.
“괜찮으세요?”
“오랜만에 기사급을 상대하려니 이렇게 됐지. 뭐 그래도 할 일은 했다.”
호르헤의 등 너머 검에 의해 벽에 꽂혀 있는 시체가 하나 있었다.
호르헤처럼 멋진 흉갑을 입은 시체였으나 머리만은 어디로 갔는지 목에서 쉴 새 없이 피를 꿀럭거리며 뱉어내는 중이었다.
아직까지 경련하는 시체의 발끝이 이 난리가 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돈벌레가 먼저 선수를 쳤어. 역시 돈을 버는 놈들은 행동력이 남달라.”
시체들을 보며 혀를 끌끌 거리는 호르헤에게 마르셀라가 다가와 수건으로 정성스레 피를 닦아주었다.
영역을 지켜준 수사자에게 이 정도의 대접은 당연한 것이었다.
“데려왔어?”
아직 살기가 가시지 않은 눈이 블라드에게로 꽂혀 내렸다.
다행히 블라드는 그 살벌한 질문에 당당히 답할 자격이 있었다.
“네. 모셔왔어요. 지금쯤 뒷문에 와 있을 거예요.”
“좋아!”
언제나 무던한 표정을 짓고 있던 호르헤였으나 지금만큼은 달랐다.
“내일 돈벌레 놈을 친다. 이번에야말로 결판을 내야겠어.”
아직 가시지 않은 흥분과 누군가에게 쏟아내야 할 분노를 간직한 호르헤의 눈은 블라드가 여태껏 보아온 것 중에서도 가장 흉폭한 것이었다.
“그런데 어때 보였어? 검은 잘 쓸 것 같더냐? 어디 하나 날아가지는 않았지?”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변수를 걱정하는 호르헤.
과연 기사 출신은 다르다.
타오르는 자신을 다잡으며 내일을 걱정하는 호르헤를 보며 블라드는 그렇게 생각했다.
“멀쩡해요. 비록 이틀뿐이었지만 사람은 괜찮아 보였고.”
“스탕가가 호탕한 면이 있지.”
“몸도 날렵해 보이고.”
“살을 뺐나? 하긴 오래 살려면 관리를 해야지.”
“네 그리고.”
달빛 아래 보았던 광경을 떠올리며 소년이 웃음 지으며 대답했다.
“오러까지 쓸 줄 아는 기사니까요. 분명 내일은 우리의 날이 될 거예요.”
외팔이 잭은 승부수를 띄웠고 그것에 실패했다.
흐름이란 것은 파도와도 같아서 밀려왔을 때 잡지 못하면 다시 쓸려나가는 법이었다.
게다가 호르헤가 비록 부상을 당했어도 아직 강건했고 거기에 예전의 인연이었던 기사 출신의 검사까지 데려왔으니 누가 보아도 호르헤의 승리라 할 것이다.
눈에 보이는 대로라면 말이다.
“올라오나 보네요.”
“뭐?”
끼이익-
블라드의 말이 끝남과 아래에서 누군가가 올라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긋난 계단의 판자에서 듣기 싫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방금 뭐라 그랬지. 블라드?”
“네?”
계단으로 내려가 스탕가를 안내하려 했던 블라드였으나 호르헤의 질문에 멈춰설 수밖에 없었다.
아니, 일그러져 있는 호르헤의 표정이 블라드를 붙잡아 두게 했다.
“방금 뭐라고 했어.”
“올라온다고요.”
“아니 그 전에.”
질문을 하는 호르헤의 표정이 굳어져 가고 있었다.
“오러를 쓰는 기사니까······내일은 우리의 날이 될 거라고······.”
블라드의 말을 들은 호르헤의 표정에 낭패함이 찾아들고.
끼이이익-
그와 동시에 불길한 삐걱거림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내 뒤로 와라. 블라드.”
호르헤는 시체와 함께 꽂아두었던 검을 빼내며 말했다.
호르헤의 발밑으로 기사였던 자의 시체가 허물어져 내려왔다.
“하지만 안내를······.”
“정말 오러였어?”
블라드는 호르헤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뒤를 돌아보았다.
4층으로 올라가는 유일한 계단으로 아무도 모르는 남자가 올라오고 있었다.
그는 조직원들만이 아는 뒷문으로 들어온 자였으며
손에 들고 있는 검에는 채 마르지 않은 핏방울이 떨어지고 있는 사내였다.
“그럼 네가 데려온 놈은 스탕가가 아니겠군.”
호르헤의 시선 끝에서.
블라드의 믿음 끝에서.
누군지 알 수 없는 자가 올라왔다.
“스탕가는 오러를 쓸 줄 모르니까.”
그는 미소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