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Embrac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71
차가운 심장을 가진 용 (1)
하얀 사막의 언덕 위에서 기사들이 모여 한 곳을 주시하고 있었다.
매서운 북풍의 설한이 그들의 눈을 시리게 만들고 있었지만, 기사들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저 멀리에 있는 지평선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들은 기다리고 있었다.
차가운 숨결을 몰고 올 횃불들을.
“보입니다.”
그리고 횃불을 든 강철의 기사들은 자신들이 맡은 임무에 최선을 다했다.
저 멀리서부터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거대한 냉기의 뭉치.
그리고 안개와도 같은 냉기를 둘러싼 채 달려오고 있는 횃불을 든 기사들.
강철공 바라노프 가문의 기사들이었다.
“준비해라.”
“네.”
대장처럼 보이는 남자의 지시가 있자 언덕 위에서 지켜보던 기사들이 하나둘씩 말 위에 올라타기 시작했다.
각자 냉기에서부터 자신을 보호해 줄 마법 횃불을 들고서는 거친 입김을 내뿜으며 달려오는 몰락한 용의 잔재를 노려보고 있었다.
“지금!”
부관의 수신호와 함께 기사들이 언덕 아래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
기사들이 내달림과 함께 말총머리의 사내는 땅 위에 꽂혀 있던 창 중 하나를 뽑아내고는 조용히 왼쪽 눈을 감았다.
기사의 검은 날카롭지만, 상대에게 닿아야만 상처를 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상대하려는 몰락한 용은 너무나 빠르기에 쉽사리 닿을 수 없는 존재였다.
그렇기에 강철공은 이 일에 가장 적합하다 생각되는 기사를 이곳으로 보냈다.
투창의 볼코프.
그가 들고 있던 창이 새파랗게 물들기 시작했다.
“브레스다!”
자신에게 달라붙는 기사들을 보며 포효하던 하얀 용은 심사가 뒤틀렸는지 입을 벌리며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가슴팍이 크게 부풀어 오르고 하얀 비늘들이 곤두서며 다음에 일어날 일을 경고해주고 있었다.
파멸을 감지한 기사들이 재빨리 회피 기동을 시도하고 있었다.
“흐읍!”
숨결을 모으기 위해 잠시 멈춰선 용을 향해 볼코르가 창을 내질렀다.
오러에 가득 물든 창이 탄력적인 움직임과 함께 바람을 가르고 날아가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됐다.
이 거리에서라면 날아가는 투창을 눈치채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볼코프는 순간 저 멀리서 정확히 자신을 바라보는 푸른 눈동자와 마주치고 말았다.
“뭐?”
몰락한 용의 잔재. 린드부름.
차가운 냉기를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용이 늑대보다도 기민한 움직임으로 재빨리 몸을 뒤틀어대었다.
콰아악-!
그아아아아!
빨랐지만 늦었다.
그저 스쳐 지나가고 만 창이 땅속 깊이 파고 들어갔다
흩날리는 하얀색 비늘들과 함께.
“이런!”
볼코르는 자신도 모르게 분노어린 탄성을 내질렀다.
빠르다고는 알려져 있었지만, 지금처럼 예민할 거라고는 예측하지 못했었다.
“못 움직이게 해!”
“둘러싸라!”
볼코프의 실패를 눈치챈 기사들이 린드부름의 주위에서 쉴 새 없이 말을 몰며 퇴로를 차단했지만 몰락한 용은 자신이 이미 인간들이 파놓은 함정에 빠졌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아아아아-!
분노어린 포효와 함께 린드부름은 재빨리 기사들의 포위망을 벗겨내 고는 눈안개 속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때와 장소를 판단하는 것은 포식자가 갖춰야 할 기본적인 자세였으니까.
“쫓아가!”
“앞을 틀어막아!”
린드부름의 후퇴에 기사들은 말들을 채근했지만 빠른 속도로 가속해나가는 용을 따라잡는 것은 말들에게는 가혹한 일이었다.
용을 몰아오느라 지쳐버린 말들은 입에 거품을 물고는 하나둘씩 제자리에 멈추기 시작했다.
“젠장!”
포위망이 풀리는 것을 본 볼코프는 외마디 외침과 함께 쥐고 있던 투창을 내질렀지만 린드부름은 이미 새하얀 안개 속으로 사라진 뒤였다.
저 멀리 뿌연 눈안개에서부터 용이 내지르는 분노어린 포효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
장미의 미소에 마련되어 있는 마구간.
마담 마르셀라가 특별히 신경 써놓은 그곳에서 블라드는 멍한 눈빛으로 고트를 바라보고 있었다.
“제발 한 번만. 제발!”
마치 부탁이라도 하듯 두 손까지 모은 고트였지만 새까만 녀석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투레질할 뿐이었다.
“안장 한 번만 차보자!”
히이이잉-
자꾸만 자신에게 귀찮게 달라붙는 고트를 향해 위협적으로 앞발을 치켜드는 새까만 말.
고트는 그 모습을 보며 다시금 뒤로 물러날 뿐이었다.
“성격 지랄 같네. 진짜!”
자신의 간원에도 들은 척도 않는 새까만 녀석이 더는 참기 힘들었는지 씩씩거리던 고트는 이번에는 고개를 돌려 블라드가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여기도 지랄 같은 녀석이 한 명 있었다.
“어떻게 좀 해 봐!”
둘 중에서 그나마 말이 통하는 놈을 향해 분노를 터트린 고트였지만 금발 녀석도 말을 안 듣기는 마찬가지였다.
“내 말도 잘 안 듣더라고.”
“이거 대장 말 아니야?”
어쩌겠냐는 듯 어깨를 으쓱거리는 블라드를 보며 고트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새까만 놈, 금발 놈.
잘들 만났다.
“······때려치우고 싶네.”
각오는 했었지만 이렇게까지 어려운 일일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야생마라 할지라도 사람을 따라온 녀석이니 어떻게든 될 거라 생각했지만 크나큰 오산이었다.
그러나 고트가 열 받는 것은 그저 안장을 채우지 못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제미나는 잘하던데. 너는 왜 못해? 그냥 실력이 부족한 거 아니야?”
“······!”
옆에서 이죽거리는 블라드의 목소리를 들으며 고트는 이를 악물었다.
‘왜 그 계집애 말은 잘 들으면서······!’
이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비록 난폭한 녀석이었지만 빨간 머리의 소녀 앞에서는 순진한 양의 모습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분명 얌전하게 길들인 사람이 있었으니 지금의 모습은 마구간지기인 고트의 실력을 의심케 하는 장면일 수밖에 없었다.
“······이름이 없어서 그런 거야.”
“뭔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야생성이 안 죽어서 그래. 이름을 지어줘야 자기 위치를 알지!”
분명 말도 안 되는 주장이었지만 의외로 그럴싸한 전직 사기꾼의 말에 블라드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그럴 수도 있겠다.
자신의 말에 우뚝 멈춰서 고민하는 블라드를 보고는 고트는 맥주라도 한잔하고 와야겠다며 장미의 미소로 들어갔다.
“······이름.”
블라드는 제 발로 마구간을 향해 걸어 들어가는 새까만 녀석을 보며 턱을 긁적였다.
“그렇네. 지어줘야겠네.”
초원을 달리던 녀석은 자신의 의무까지 넘긴 채 소년을 따라 이곳까지 찾아왔다.
그렇다면 녀석을 위해 새로운 이름 하나 정도는 지어줘야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여기 블라드 님 계십니까?”
새까만 녀석과 눈을 마주치며 이름을 고민하던 블라드는 등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요제프 님이 부르십니다.”
시청에서 자신을 찾아온 남자의 말을 들으며 블라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갔다 와서 보자.”
블라드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이는 새까만 녀석.
비록 이름까지는 아니었지만, 어디에서나 당당해질 수 있는 칭호를 준 남자를 위해 블라드는 발걸음을 옮겼다.
※※※※
요제프는 갑작스레 자신을 찾아온 사내를 보며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못 올 곳을 온 사람은 아니었지만, 굳이 자신을 찾아올 사람도 아니었으니까.
“역시 어머니의 안목은 대단하시단 말이야. 어딜 가도 이만한 차는 맛보질 못했거든.”
루트거는 요제프에게 들고 있던 찻잔을 치켜들며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의 말이 빈말이 아니었다는 듯, 찻잔을 들이켜고 있는 도로테아의 귀가 쫑긋 세워지고 있었다.
“어머니께 내어달라 하시지 그랬습니까. 크게 비싼 것도 아닐 텐데.”
“······그게 쉽지 않아.”
요제프의 말에 루트거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그런 게 있달까. 무슨 말인지 알지?”
요제프는 자신에게 미묘한 표정을 짓는 루트거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옥사나가 루트거의 작은 부탁 하나 들어주지 않을 사람은 아니었지만, 여러모로 둘 사이는 껄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같은 것을 놓고 경쟁할 수밖에 없는 사이였기에 루트거는 어렸을 적부터 옥사나에게 어머니의 역할을 기대할 수 없었다.
“······.”
자신이라면 내색하지도 않았을 민감한 부분을 당당히 말하는 루트거를 보며 요제프는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두 형제는 참으로 달랐고 또한 서로가 갖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여기까지 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뭐, 형제간에 꼭 이유가 있어야만 찾아오는 건 아니잖아.”
등받이에 양팔을 젖힌 채 요제프를 바라보던 루트거는 미동도 없이 자신을 보고 있는 동생을 보고는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그렇게 보지는 마라. 이유가 있어서 왔으니까.”
본론에 들어가기 전 잠시 건넨 농담조차도 받아주지 않는 요제프였지만 루트거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평생을 보아왔던 그런 모습이었으니까.
“네가 보낸 보고를 받은 아버지가 나에게 야만인들의 지역에 대한 조사를 맡기셨다. 그리고 그곳에서 특이한 동향을 발견했지.”
요제프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루트거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용이 내려오고 있어. 아무래도 네가 데리고 있던 야만인 녀석이 하는 말이 맞았던 모양이야.”
“······린드부름.”
요제프는 단어 하나를 내뱉고는 깍지를 낀 채 이마를 기댔다.
결국 아게의 말이 맞았다.
북풍의 설한 속에서도 가장 추운 곳에서 살아가는 용이 내려오고 있었다.
“내려오기에는 아직 계절이 이를 텐데······. 게다가 겨울이라고 해서 무조건 움직이는 녀석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지.”
서부에 땅을 파고드는 데스웜이 있다면 북부에는 눈보라 속에서 살아간다는 린드부름이 있었다.
가장 차갑고, 그리고 가장 빠른 용.
데스웜이야 거대한 덩치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를 제외하고는 딱히 인간들을 공격하지는 않았지만 린드부름이라는 용은 달랐다.
몇십 년마다 돌아오는 혹한기를 따라 인간들의 영역으로 내려오고는 하는 린드부름은 그때마다 마을 두 세 개 정도는 작살 내고는 하는 흉악한 녀석이었다.
몰락한 용의 잔재들은 인간들에게 있어 자연재해와 같은 존재이기도 했다.
“어느 쪽으로 내려오고 있습니까?”
“몰라. 너무 빨리 움직여서 그런지 흔적을 찾는 데 어려움이 있어.”
차를 다 마신 루트거는 언제나와 같은 여유로운 미소가 아닌 진지한 표정으로 자신의 이복동생을 향해 말했다.
“그래서 아버지께서는 나로 하여금 린드부름에 대한 방비와 함께 토벌을 명하셨다.”
“쇼아라의 시장으로서 최대한의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루트거의 말에 요제프는 자세를 단정히 하며 대답했다.
그의 형은 단순한 부탁이 아닌 바예지드 백작의 지엄한 명과 함께 왔다.
다음 대의 가주직을 놓고 경쟁하는 두 형제였지만 이런 위기 상황에서만큼은 힘을 합쳐야 할 것이다.
수단을 위해 목적을 잊어서는 안 된다.
두 형제가 원하는 것은 그저 가주라는 자리가 아닌 강인한 바예지드 그 자체였으니까.
“무엇을 도와드리면 되겠습니까?”
“쇼아라의 확실한 정찰과 함께 기사의 차출을 요구한다.”
루트거의 말에 요제프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의 요구사항은 상식적이었을뿐더러 이미 예상하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기사는 몇 명을······.”
“한 명이면 된다.”
루트거의 대답에 옆에 서 있던 자야르조차도 조금은 놀란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용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강인한 검들이 필요할 터.
쇼아라에 있을 모든 기사들을 끌고 나가도 할 말이 없을 일에 루트거는 그저 한 명의 기사만을 요구하고 있었다.
“한 명만으로 되겠습니까?”
“린드부름은 데스웜과는 달라. 충분히 검이 통하는 상대지.”
루트거의 말이 맞았다.
린드부름은 데스웜처럼 땅으로 숨는 녀석도 아니거니와 분명 토벌에 성공한 적이 있는 녀석이기도 했다.
그러니 이번에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린드부름의 빠른 움직임에 검이 닿을 수만 있다면 말이다.
“누구를 내어드리면 되겠습니까.”
요제프의 물음에 루트거는 의뭉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네가 아끼는 금발 애송이.”
“······블라드 말씀이십니까?”
자야르나 그레고리가 아닌 종자 블라드를 요구하는 루트거를 보며 요제프는 잠깐 눈썹을 찌푸렸다.
독특한 장점을 가진 소년이었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아직 기사의 초입부에 다다랐을 뿐이었으니까.
“그래. 그 녀석 말이다.”
루트거는 기억하고 있었다.
여름날 초원에서 데스웜을 상대로 당당하게 소리치던 소년을.
“그 녀석은 내가 아는 최고의 용 몰이꾼이니까.”
새까만 말과 함께했던 그 날의 소년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그 정도의 존재감이라면 분명 얼음과도 같은 심장을 가지고 있는 린드부름도 시선을 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빛나던 소년을 붙잡기 위해 자신도 모르게 땅속에서 튀어나왔던 데스웜이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