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Embrac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73
차가운 심장을 가진 용 (3)
까드드득-
“끄어······으어어.”
힘없는 비명과 함께 야만인 사내의 눈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비명과 함께 그가 마지막으로 떨군 붉은 눈물조차 차가운 숨결에 의해 얼어붙고 말았다.
새하얀 눈밭 위에 흩뿌려진 강렬한 붉은 색.
그리고 그 위에 펼쳐져 있는 야만인들의 시쳇더미들.
아니, 아직 시체가 되지 못한 그들이 필사적으로 기어 다니며 하얀 용에게서 벗어나려 하고 있었으나 애처로운 그들의 발버둥은 허무할 뿐이었다.
정작 움직여줘야 할 팔과 다리들이 베어져 나가 눈밭 위를 구르고 있었으니까.
우드득-그득-
입가 가득히 새빨간 핏물들을 그득히 묻힌 용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치켜들었다.
질긴 맛의 오크들과는 다르다.
누린내 나는 몬스터들과는 다르다.
하얀 용 린드부름.
누군가의 의도에 의해 자신의 혀에 인간의 맛을 새겨버린 용은 크게 입을 벌리고는 포효를 내질렀다.
흩어지는 눈 안개조차도 미처 삼키지 못한 거대한 소리였다.
※※※※
“루트거 님이 오셨다!”
“문을 열어라!”
문지기들의 외침과 함께 굵은 쇠사슬에 매달린 성문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루트거는 눈앞에서 천천히 내려오는 성문을 바라보며 검 손잡이에 손을 얹었다.
초대받지 않은 손님, 용살 기사단.
여태껏 북부에는 관심도 없던 그들이 갑작스레 최북부에 있는 이곳까지 찾아온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책임자의 허락도 없이 요새 위에 깃발을 올린 데에도 그만한 이유가 있어야 할 것이다.
“루트거 님!”
“보고해라.”
평소와는 달리 굳은 표정과 빠른 걸음걸이로 해자 위 성문을 건너는 루트거.
그런 그에게로 기사 한 명이 다급히 뛰어나와 상황을 보고하기 시작했다.
“이틀 전쯤 중앙에서 보낸 용살 기사단이 도착했습니다.”
“이유는?”
삽시간에 변한 루트거의 기세에 기사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고는 입을 열었다.
“린드부름의 토벌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그놈들 정보 한번 빠르군.”
루트거는 기사의 대답에 혀를 쯧하고 차고는 사나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타 영지가 있는 곳에 무장집단을 보내는 것은 무례를 넘어 선전포고에 가까운 행위였지만 지금 베른헴 요새에 있는 용살 기사단은 그만한 명분을 갖추고 들어온 자들이었다.
“빨라도 너무 빨라.”
용살(龍殺) 기사단.
이름에 드러나는 것과 같이 용을 죽이기 위해 만들어진 이들은 제국 황제의 보증과 함께 중앙귀족인 용혈공이 운영하는 집단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용과 관련된 일이라면 황제의 보증과 함께 제국법에 의거해 활동을 보장받는다는 뜻이기도 했다.
깃발과 함께 명분을 세우고 들어온 자들이었으니 요새에 있던 기사들도 어찌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
블라드는 서둘러 나아가는 루트거의 뒤를 따르며 평소의 습관대로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주위에 나무가 없어 돌로 쌓아 올려진 베른헴 요새는 계단은 좁고 복도는 구불구불한 것이 한눈에 보아도 어떤 용도로 지어졌는지 알 수 있을 정도의 노골적인 구조로 지어져 있었다.
“베른헴 요새는 다른 말로 바예지드의 봉화대라고도 하지.”
“이곳 위에 봉화대가 있나 봐요?”
멀리서도 보일 정도로 큰 봉화대가 있느냐는 질문에 라문드는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여기 자체가 봉화대야. 불타오르면 멀리서도 잘 보이거든.”
“······아.”
블라드는 넌지시 건넨 라문드의 말에 다시금 주의 깊게 주위의 벽들을 바라보았다.
석회 반죽으로 애써 가리고 있었으나 곳곳에는 새까맣게 탄 흔적들이 보이고 있었다.
뺏기고 다시 빼앗고.
새까맣게 불타오른 요새를 다시 재건하고.
야만인과 몬스터들에게는 거대한 벽, 그리고 바예지드의 사람들에게는 불굴의 의지와도 같은 곳이 바로 베른헴 요새였다.
“저 앞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
그런 바예지드의 자존심과도 같은 곳에 누구의 허락도 받지 않고 자신들의 깃발을 올려놓았으니 루트거로서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애써 숨길 이유가 없었다.
“이제야 오셨군. 기다리고 있었소.”
비록 복도는 좁았지만, 기사들이 모여야 하기에 넓게 지은 로비.
한 계단, 한 계단 바예지드의 피로 쌓아 올린 그곳 가장 높은 곳에 서서 일행을 맞이하는 남자가 있었다.
“처음 뵙겠소. 나는 용살 기사단의 단장인 미르셰아라고 하오.”
반짝이는 은빛 갑옷을 입은 남자는 마치 이곳이 자기 집이라도 되는 양 여유로운 미소로 로비에 다다른 일행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비록 거만해 보였지만 귀족적으로 생긴 외모는 다른 사람이라면 거부감을 일으킬 표정조차 어울리게 만들고 있었다.
“······나도 모르는 새 귀한 분이 찾아오셨군.”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미르셰아와 눈이 마주친 순간 루트거의 심장이 거칠게 뛰어올랐다.
감히 주인 된 자에게 기세를 제압하려 하는 미르셰아의 태도에 분노했기 때문이다.
“루트거 바예지드. 베른헴 요새의 임시 대장이오.”
조금의 물러섬도 없이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는 루트거의 검은 눈동자를 보며 미르셰아의 미소가 깊어졌다.
두근-
그리고 미르셰아라는 남자를 보고 있던 블라드 또한 가슴이 요동치고 있었다.
마치 데스웜을 보았을 때와 같은 감각이 저 위에 있는 사내에게서 느껴지고 있었으니까.
심장이 뛰는 것은 의지로 조종할 수 없는 문제였다.
그것은 오직 본능으로서 움직이는 것이었으니까.
“······!”
억지로 심장을 진정시키며 고개를 들어 올린 블라드는 그곳에서 자신을 마주 보고 있는 미르셰아를 보며 놀라고 말았다.
본능에 의해 움직인 사람은 소년뿐만이 아니었다.
“밖에 있던 야만인들의 시체는 용살 기사단이 만든 것인가?”
“······그렇소. 필요한 일이었지.”
루트거의 물음에 자연스레 표정을 정리한 미르셰아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그의 물음에 답했다.
끔찍한 상처와 함께 눈밭을 뒹굴던 야만인들의 시체가 있었고 그들의 죽음은 우악스러운 이빨이 아닌 날카로운 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린드부름은 몰락한 용의 잔재 중 가장 빠른 개체요. 따라잡아서 벨 수가 없다는 뜻이지.”
요제프는 아게를 통해 루트거에게 린드부름에 대한 정보를 전하려 했다.그러나 눈앞에 있는 미르셰아는 아게라는 존재가 없이도 이미 린드부름에 대한 정보를 쥐고 있는 사람이었다.
건국왕 프라우센의 허가 아래 만들어진 용살 기사단은 몇백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쌓아온 자신들만의 경험이 있었으니까.
“따라잡을 수 없으니 불러오는 수밖에. 밖에 있는 시체들은 그것을 위한 미끼들이오.”
“이 개자식이!”
미르셰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게가 울분의 함성을 내지르며 앞으로 뛰어들려 하고 있었다.
“제국의 개자식들! 씹어 죽여도 시원찮을 놈들아!”
포로의 신분이기에 미리 검을 회수하지 않았다면 뽑았을 것이다.
그를 주시하고 있던 라문드가 발을 걸지 않았다면 이미 미르셰아를 향해 뛰쳐 올라갔을 것이다.
“끄으으! 비켜 영감!”
“······한마디만 더 하면 목을 벨 거다.”
아게의 분노는 정당한 것이었다.
동족을 미끼로 삼았다는 말에 울분을 토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아무리 정당한 분노라 할지라도 합당해지기 위해서는 그만한 힘이 있어야 했다.
힘없는 야만인들의 분노는 지금의 아게처럼 땅바닥에 뒹구는 하찮은 존재일 뿐이었다.
“바예지드의 아들께서는 버릇없는 개를 키우시는군.”
미르셰아는 차가운 눈빛으로 자신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아게를 바라보았다.
“고양이도 키우시고 말이지.”
도로테아는 자신에게 와닿는 차가운 눈빛을 보며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미르셰아의 눈빛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자신의 존재가 루트거에게 폐가 될까 봐서였다.
“조련은 잘하셨는지 모르겠군. 비천한 것들은 가끔 제 주제를 잊어버리고는 하지 않소.”
“······.”
미르셰아의 말에 루트거는 조용히 침묵했다.
중앙의 귀족들, 그리고 중부의 영주들.
자신들이 세상의 중심이라 믿는 자들은 이런 식으로 바깥에 있는 자들을 냉소하고는 했었다.
야만인, 수인족 뿐만 아니라 북부의 사람들한테도 마찬가지로.
“······그래도 저들은 자기 자리에 서 있지 않나.”
루트거는 결심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숨을 내쉬었다.
의도한 것이든 혹은 그렇지 않은 것이든 상관없다.
눈앞에 귀족 녀석은 선을 넘었고 루트거는 이곳에 있는 모든 북부인을 대표하는 자였다.
언제나 여유로운 미소로 숨기고 있던 그의 가슴 깊은 곳 분노들이 조금씩 밖으로 새어 나오고 있었다.
루트거의 세계는 활화산과도 같은 뜨거운 붉은색.
바예지드가 있어야 할 곳에 서 있는 미르셰아를 향해 용암과도 같은 진득한 분노가 풀어 헤쳐지기 시작했다.
“그러니 당신도 자리를 찾으셔야 하지 않겠소. 미르셰아 단장.”
한 발자국, 한 발자국씩.
바예지드가 만든 계단을 밟으며 가장 높은 곳을 향해 올라가는 루트거.
자격 있는 자의 당당한 발걸음으로 미르셰아를 향해 나아갈 때마다 주위에 있던 용살기사단원들이 한 명씩 검 손잡이에 손을 가져다 대기 시작했다.
“누구의 허락을 받고 깃발을 올렸나?”
마침내 이마가 맞닿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선 루트거는 조금의 미동도 없이 미르셰아의 푸른 눈을 바라보았다.
“내가 요청했소. 아무도 움직이지 않기에 나의 부하들이 올렸지.”
아게처럼 으르렁거리지도 미르셰아처럼 미소로써 상대방을 압박하지도 않은 채 그저 그렇게 가만히.
“누구의 허락을 받고 이 자리에 올라왔나?”
“······이런.”
예상을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대놓고 힘겨루기를 시도하는 루트거를 보며 미르셰아는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재앙과도 같은 용을 상대하는 용살 기사단은 제국법에 따라 제국령에 있는 모든 시설과 인원들을 합당히 사용할 권리가 있소.”
“주인에게 허락을 받는다는 전제하에 말이지.”
마주치는 기세에 따라 천천히 몸을 돌리는 루트거와 미르셰아.
정당한 자격을 갖춘 루트거의 기세는 미르셰아를 계단 쪽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협조하지 않겠다는 뜻인가?”
“협조할 생각이다.”
루트거의 손가락이 저 밑에 있는 로비를 가리키고 있었다.
“합당한 절차를 거친다면 말이지.”
루트거의 의도를 이해한 바예지드의 기사들이 서둘러 로비의 문을 열고는 요새 가장 높은 곳을 향해 뛰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깃발을 올려달라 부탁하시오. 미르셰아 단장.”
“······.”
요새 가장 높은 곳.
단단한 성벽이 새겨진 바예지드 깃발 옆에서 나부끼던 용이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바예지드의 땅에서 용을 잡을 수 있게 협조해 달라 부탁하시오.”
자격 있고 정당하며 충성을 바친 자신들의 주군이 용살자들을 향해 이빨을 들이밀었다.
“아무도 움직이지 마라.”
“이곳의 주인이 허락하지 않으셨다.”
날카로운 경고를 내뱉은 바예지드의 기사들이 어느새 용살 기사단을 에워싸고는 그들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루트거와 미르셰아.
바예지드 기사단과 용살 기사단.
그들이 만들어내는 날카로운 기세가 북풍의 설한보다 더한 차가움으로 로비를 감싸고 있었다.
“저기서부터 다시 시작하지.”
미르셰아는 고개를 돌려 루트거가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로비의 중앙.
루트거를 바라보기 위해서는 고개를 들어올려야 하는 그런 위치.
“후회할 텐데.”
“어차피 인생은 무엇을 선택해도 후회뿐이야.”
미르셰아의 나지막한 협박에 루트거는 나지막한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그리고 어차피 후회할 거라면 할 일은 하고 후회해야지.”
바예지드의 핏줄을 타고 내려온 검은 눈동자가 용암처럼 새어 나오는 진득한 오러와 함께 눈앞의 사내를 바라보았다.
금발에 푸른 눈.
그리고 귀족적인 외모.
살아있는 사람조차 용의 미끼로 쓰는 차가운 심장을 지닌 남자를 향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