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Embrac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91
너의 죄를 사하노라 (2)
신은 어디에나 있다.
그러나 그의 품은 모두에게 평등하게 닿지 않는다.
높이 있는 자에게 가장 먼저 내려오며, 많이 가진 자에게 더 많이 내어주는 것.
그것이 밑바닥 사람들이 여태껏 보아왔던 신과 교회의 모습이었다.
“그럼 이 자는 이제 무죄가 되는 겁니까?”
“물론입니다. 주교께서 직접 발행하신 면죄부이니까요.”
사제는 블라드의 물음에 답하고는 눈을 감으며 경건한 자세로 기도문을 읊기 시작했다.
누가 보아도 신실한 그의 모습은 정말로 신의 은총이 이곳에 닿은 것만 같은 기분이 들게 하고 있었다.
‘······고작 이거 하나로.’
블라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 사제가 들고 있는 종이 한 장으로 검은 곰의 모든 죄가 사해진다니.
거짓된 교회에서 죽어갔던 그녀들의 눈물이 겨우 이 종이 한 장으로 닦아질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안나가 흘렸던 검은 눈물은 도대체 누가 보상해준단 말인가.
“죄라는 것은 언제든지 신실한 마음으로 사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블라드 경.”
“······.”
분노와 당황, 그 사이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 있는 블라드를 보며 주교가 보냈다는 사제가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 나는 이제 무죄요.”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블라드는 멍하니 그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신께 용서받았으니까. 이제 된 거 아닙니까.”
“······용서?”
고개를 돌린 곳에는 검은 곰이 이제는 됐다는 듯 블라드를 바라보며 조금씩 미소 짓고 있었다.
이제 그는 교회와 면죄부에 의해 무고해졌으니 마땅히 웃을 자격이 있을 것이다.
그가 팔아넘긴 여인들은 어두운 곳에 갇혀 공포에 떨며 죽어갔지만 정작 그녀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자는 웃고 있었다.
이것은 잘못되었다.
“······정말로 신실한 마음만 있다면 누구나 용서받을 수 있는 것입니까. 사제님?”
“물론입니다. 기사님.”
정말로 신과 교회에게 용서만 받으면 그 어떤 죄를 지어도 결백해질 수 있단 말인가.
“그렇군요.”
그렇다면 나도 용서를 구해야겠다.
그날 차마 흘러내리지도 못했던 안나의 눈물을 닦아주면서 대신 값을 받아주겠노라고 약속했었으니까.
“블라드 경?”
“저의 죄를 고합니다. 사제님.”
있어야 할 자리에 아무도 없다면.
해야 할 자리에서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네가 해라.
그것이 소드마스터의 규율이므로.
촤악-
“커억-!”
순간, 사제의 하얀 법복 위로 검붉은 피가 튀어 올랐다.
아무도 예상치 못했기에 막을 수 없었다.
아니 설사, 예상했다 할지라도 막을 수 없는 단호한 일검이었다.
“끄으으······.”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부릅뜬 채 자신의 목을 움켜쥐고 있는 검은 곰.
억지로 붙잡고 있는 그의 목에서 쉴 새 없이 피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이, 이게······!”
“저는 죄인입니다. 사제님.”
경악하고 있는 사제의 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 자신의 죄를 고하는 기사가 있었다.
그는 사제 안드레아가 보증하는 신실한 이름을 지닌 자였으며 북부 교구 산 로지노가 선물한 빛나는 갑옷을 입고 있는 자였다.
“그러니 저에게도 죄를 사할 기회를 주십시오.”
신의 뜻은 낮의 태양과 같이 눈부시고 화려하게 다가오지만 때로는 지금과 같이 비스듬히 비춰야 할 때도 있다.
뒷골목과 같은 낮고 추한 곳에 임하실 때는 그조차도 고개를 숙이며 들어와야 할 테니까.
※※※※
모두가 잠들어 있어야 할 깊은 밤이었으나 요제프와 기사들은 진중한 표정으로 시장실에 모여 있었다.
“결국은 이렇게 되고 말았군.”
그레고리의 보고를 들은 요제프는 피곤이 내려오는 듯 눈두덩이를 짓누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로 면죄부를 받은 자를 죽였단 말이지?”
“죄송합니다. 요제프 님. 제가 말렸어야 했는데.”
그레고리는 정말로 할 말이 없다는 듯 고개를 숙인 채 서 있을 뿐이었다.
비록 이번 작전의 제 일(一) 책임자는 블라드였으나 그레고리 또한 선배로서 해줘야 할 나름의 책임이 있었다.
“검은 곰이라는 자가 면죄부를 받아올 거라고는 정말이지 상상도······.”
“네 말이 맞다.”
깍지를 낀 채 가만히 앉아 있던 요제프는 조용히 고개를 들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일개 뒷골목의 우두머리 따위가 주교가 내리는 면죄부를 받을 수 있을 리가 없지.”
“하지만 그는 분명······.”
“내어준 것이겠지. 받아낸 것이 아니라.”
깊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듯 요제프의 검은 눈동자에는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았다.
다만 명확한 시선은 없었을지라도 요제프의 눈빛은 이곳에 있는 그 누구보다 빛나고 있었다.
“바예지드를 엿으로 보는군.”
요제프의 눈동자는 분노로 빛나고 있었다.
이 세상 누구나 그렇겠지만 특히나 귀족들은 자신의 것을 침범당하는 것에 분노하는 자들이다.
하나씩 내어주다 보면 결국 모든 것을 빼앗기게 되는 운명을 지니고 태어났으니까.
“블라드는 지금 어디에 있지?”
“문밖에서 대기하고 있습니다.”
“잘됐군.”
비록 어리석은 선택이었으나 그 행동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일부러 검은 곰에게 면죄부를 내어준 것으로 보아 주교는 처음부터 블라드를 노리고 있던 것이 분명했다.
그렇기에 이렇게 해야 한다.
“지금 당장 기사 블라드를 체포해라.”
갑작스레 집무실에 울려 퍼지는 요제프의 명령.
그 명령을 듣고 있던 그레고리와 보르단은 당황한 눈빛으로 자신들의 주군을 바라보았다.
“요제프 님, 지금 블라드를······.”
“죄목은 살인죄다.”
단호하기에 냉정한 명령.
이미 결정했다는 듯 요제프의 목소리에는 그 어떤 떨림도 없었다.
“알겠습니다.”
충격적인 명령에 모두가 쉽사리 움직이지 못했지만, 오직 자야르만큼은 요제프의 명에 망설임 없이 밖으로 나서고 있었다.
“자, 자야르 경. 차라리 내가.”
“못나게 키운 것은 내 잘못이니 내가 책임지도록 하지.”
요제프의 명령만큼이나 자야르의 태도 또한 단호했다.
소년에게 벌을 내리고 매를 들어야 한다면 그가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누가 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보다야 스스로 하는 것이 더 마음 편할 테니까.
“······이런.”
그레고리는 문밖에서 벌어질 상황을 상상하며 한탄을 내지르고 말았다.
스승이 제자를 체포하는 상황이라니.
상황이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절대 블라드를 혼자 위로 올려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그레고리 경.”
“네.”
그러나 그레고리에게는 후회를 할 만한 여유가 없었다.
“자네도 이번 일의 당사자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
“맞습니다.”
입으로는 그레고리에게 말을 걸고 있었지만 손으로는 쉴 새 없이 끄적거리며 무언가를 적기 시작하는 요제프.
“그러니 지금 당장 바르나로 가라.”
“네?”
그레고리는 요제프가 건네주는 편지를 받아들고서는 멍하니 서 있었을 뿐이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바라본 편지 봉투에는 사제 안드레아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알, 알겠습니다.”
무언가 사태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그러나 요제프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행동을 취하고 있으니 그레고리로서는 그저 명령에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보르단 경은 마법사를 불러와라. 아버지와 산 로지노에게 연락을 취해야겠다.”
“알겠습니다.”
“막심과 케이드에게도 알려라. 지금부터 그들이 행하는 모든 임무를 취소하고 이곳에 대기 시켜라.”
“네.”
전쟁이라는 것은 오직 칼과 창의 맞부딪힘 만으로 시작되는 것은 아니었다.
쇼아라의 주교는 지금 블라드를 미끼로 정당한 바예지드에게 선전포고를 날린 셈이었고 요제프는 그에 대한 대답으로 항복이 아닌 결전을 선택했다.
“······결국, 먼저 움직이시는군.”
알고는 있었다.
결국은 이렇게 될 것이라는 걸.
그저 그 시기가 언제가 될지, 아니면 자신이 먼저 움직여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가주인 페테르가 이곳 쇼아라에 장남인 루트거가 아닌 요제프를 보낸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그의 둘째 아들은 비록 검에 대한 재능은 가지지 못했지만, 그에 못지않은 날카로움을 지니고 태어난 사람이었으니까.
“차라리 잘 됐군.”
아무도 없는 집무실 안에서 짙은 눈그늘의 청년이 까맣게 눈을 빛내고 있었다.
이제는 온전히 가질 때가 왔다.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을 온전한 바예지드의 도시를.
※※※※
높이 솟은 종탑은 하늘에 있을 신과 가까움을 의미하고 넓게 자리 잡은 건물은 그의 품이 넓음을 상징한다.
비록 종교적인 색채가 강한 바르나보다는 작았지만 쇼아라의 교회 역시 이 도시에서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큰 건물이었다.
무지한 사람들에게 있어 크기만큼 확실히 와닿는 것은 없을 테니까.
“망설임 없이 베어냈다고?”
“그, 그렇습니다. 주교님.”
검은색과 흰색의 타일들이 반복되어 깔려있는 주교의 알현실.
교회를 지은 장인들이 가장 신경 써 만든 그곳에서 쇼아라의 주교는 자신이 보낸 사제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
“듣던 것 보다 더 화끈한 놈이었군.”
붉은 법복을 입고 있는 사내.
바짝 마른 몸이 볼품없어 보였으나 2m는 되어 보일 듯한 큰 키는 분명 다른 사람들에게 위압감을 줄 법했다.
“역시 그 녀석을 흔드는 게 맞았던 모양이야.”
검은 곰에게 직접 면죄부를 전달해주었던 하얀 법복의 사제는 감히 주교와 눈도 마주치지 못한 채 고개를 조아린 채로 서 있었을 뿐이었다.
쇼아라의 주교. 피에르.
지금이야 평온한 미소를 짓고 있는 그였으나 주교가 되기 전 그는 자비 없는 이단심문관으로 유명한 자였으니까.
“그 녀석의 보증인이 사제 안드레아라지?”“그렇습니다.”
주교 피에르는 들려오는 대답에 실로 만족스럽다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았다.
여태껏 자신이 눈엣가시처럼 생각했던 자들 모두가 블라드라는 기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으니까.
“잘하면 한 번에 날려버릴 수도 있겠군.”
고위 성직자가 아님에도 북부에 있는 모두가 알고 있을 정도로 신실한 사제. 안드레아.
비록 이 도시가 아닌 바르나에 있는 안드레아였으나 피에르는 언제나 그가 불편했었다.
하나의 목적에 따라 뭉쳤다 할지라도 조직이 커지고 넓어질수록 이리저리 이합집산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들의 습성.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안드레아와 피에르는 서로 반대편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사람들이었다.
“교황청에 계실 양반들이 좋아하겠어.”
신의 뜻은 하나이지만 그 뜻을 전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다.
그리고 피에르는 자신이 걷는 길만이 진정으로 신의 뜻에 닿을 수 있는 길이라 굳게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이었다.
“새로 온 시장에게 사람을 보내라. 나의 면죄부를 무시한 어리석은 기사를 인도받아야겠다고.”
새로운 시장인 요제프는 그동안 나름의 각오로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해 왔겠지만 더이상은 봐줄 수 없다.
이제는 날카로운 경고와 함께 자신의 존재감을 알려줘야 할 때다.
“이단심문관들에게도 준비해 둬라 일러라.”
“알겠습니다.”
블라드는 지금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피에르의 계략에 빠져들었을 것이다.
어리며, 경험 없고, 그렇기에 어리석을 어린 기사는 예전부터 피에르가 눈여겨보던 자였으니까.
“어디 한 번 얼굴 좀 볼까.”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평생을 이단 심문관으로 활동하며 뼈저리게 느꼈던 진리가 바로 그것이었다.
“검은 벼락을 맞았다는 그 녀석 말이지.”
아무리 가진바 재능이 뛰어나다 할지라도 고작 1년 만에 오러를 내뿜고 기사가 되었다는 것은 피에르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어쩌면 소년이 그동안 만들어 냈던 빛나는 업적에는 피에르가 기대하던 대로 어두운 그림자가 깃들어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