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Embrac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99
두더지는 함부로 건들지 마라 (1)
고트는 갑작스레 생긴 구덩이를 보고는 그만 허망한 목소리를 내뱉고야 말았다.
“이게 무슨 일이야······”
정말 예상조차 하지 못했다.
평범해 보이는 두더지가 이런 사태를 만들어낼 거라고는.
보리로 꾀어내겠다는 생각도 좋았고 벼락같이 뛰쳐나가 두더지를 낚아챈 블라드의 판단도 좋았었다.
그러나 블라드가 두더지를 움켜잡자마자 순식간에 바닥이 움푹 꺼질 거라고는 정말 상상조차 못 한 일이었다.
“······잡으면 안 되는 거였나?”
마치 잡아채지듯 깜깜한 어둠 속으로 끌려 들어가 버린 블라드.
그렇게 블라드는 고트의 눈앞에서 외마디 비명만을 남긴 채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대장! 괜찮아!”
이제야 제정신을 차린 고트는 블라드가 빨려 들어간 구덩이를 향해 크게 외쳐보았지만 들려오는 것은 그저 공허한 바람 소리뿐.
새까만 밤 아래 누아르와 함께 남겨져 버리고만 고트는 어찌해야 할지 당황할 뿐이었다.
※※※※
“으아······.”
블라드는 끝없을 것만 같은 추락이 끝나자마자 검을 빼 들고는 사방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여기가 어디야?”
바닥이 무너지며 끌려들어 왔으니 이곳이 땅속이라는 것은 알겠다.
“도대체 여기가 어디냐고 이 자식아!”
뀨이이익-!
블라드는 마치 화풀이를 하듯 두더지를 잡고 흔들어대었지만, 손안에서 바둥거리고 있는 녀석이 사람의 말로 대답할 리가 없었다.
분명 이 사태를 만든 원흉이겠으나 그래도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은 여전히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녀석의 모습 때문일 것이다.
“빌어먹을 정령 같은 놈만 아니었어도.”
입으로는 투덜거렸지만, 행동만큼은 기민하게 가져간 블라드는 오러를 일으키고는 새까만 어둠에 눈을 동화시키려 노력했다.
낮보다는 밤에 활동했던 쇼아라에서의 경험이 이럴 때 도움이 되고 있었다.
뀨익?
“닥쳐.”
블라드의 오러를 느낀 두더지가 놀란 듯 소리를 내었으나 돌아오는 것은 차가운 대답뿐.
그러나 두더지는 블라드의 차가운 대답과는 다르게 적잖이 안심하는 중이었다.
오러가 흐름과 동시에 갑옷과 호박석에서 느껴지는 정령들의 가호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세상에 쉬운 일이 없네.”
오러를 통해 시야를 어느 정도 확보한 블라드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자신이 굴러떨어졌던 구멍을 확인하는 것이었으나 아무리 살펴봐도 이곳으로 다시 올라가는 것은 요원해 보였다.
‘음,’
그다음으로 한 일은 지금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에 대한 탐색.
완벽히 시야를 확보한 것은 아니었지만 손끝과 발끝 감각까지 동원한 블라드는 지금 자신이 통로 같은 곳에 서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인 자신도 조금만 허리만 굽히면 서 있을 수 있을 정도의 통로.
자그마한 몸체를 가진 두더지들이 만들었다기에는 기이하게 넓은 곳이었다.
‘일단은 나가야겠는데.’
어쨌거나 지금 손안에서 바둥거리고 있는 녀석도 밖으로 나가 보리를 훔쳐 왔으니 분명 자신이 나갈 길도 있을 것이다.
블라드는 손가락 끝에 침을 묻히고는 혹시라도 바람이 통하고 있는지를 확인해보았다.
“있네.”
희미하지만 느껴지는 바람이 있었다.
작든 크든 분명 밖으로 통하는 구멍이 있다는 증거였다.
“내가 오늘 안에 여기서 못 나가면 너는 내일의 아침밥이 되는 거야.”
꾸우우우–
혹시나 싶은 마음에 두더지에게 협박해놓은 블라드는 찾아낸 방향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블라드의 푸른 눈동자가 길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
“이걸 어쩌지 이걸······.”
목청이 터져라 구덩이를 향해 소리지르던 고트는 더는 혼자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임을 깨달았다.
눈앞에 있는 구덩이를 파내든지 아니면 다른 길을 찾든지 간에 일단은 사람이 더 필요할 것이다.
푸르르륵-
“응?”
서둘러 고삐를 붙잡고는 마을로 내려가려던 찰나, 고트는 오히려 자신이 누아르의 움직임에 이끌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디 가냐? 임마 어디가?”
가만히 블라드가 빠진 구덩이를 내려다보고 있던 누아르는 이쪽이라는 듯한 발걸음으로 마을이 아닌 깜깜한 숲을 향해 들어서기 시작했다.
마치 블라드가 어느 곳에 있다는 건지 알고 있는듯한 모습이었다.
“······미치겠네.”
누아르가 자신의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자 당황한 고트였으나 적어도 이 녀석이 아무런 이유 없이 이럴 녀석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야만인들도 신성시하던 말이며 어떨 때는 사람보다 더 머리 좋아 보이는 녀석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 가보자.”
블라드의 세계와 맞닿아 있던 것은 목소리만이 아니었다.
누아르 또한 맞닿은 경계를 통해 세계를 공유해 본 존재이기에 땅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블라드의 움직임을 알아챌 수 있었다.
때로는 동물들이 사람보다도 더 날카롭게 반응하기도 하는 법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소리가 났다고 하던데.”
깜깜한 숲으로 들어서던 고트는 문득 마을 주민들이 말했던 이야기 하나가 떠올랐다.
소녀가 사라진 날, 몇몇 마을 주민들은 숲속에서 들려오는 기이한 울음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사람도 짐승도 아닌 것이 처음 듣는 소리였음에도 모골이 송연해지는 그런 느낌이었다고 했다.
※※※※
“······나무 같은 데 이거.”
빛나는 두더지를 손에 쥔 채 어둠 속을 걷던 블라드는 지금 자신이 걷고 있는 바닥이 흙바닥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분명 땅속으로 빨려들어 왔으니 밟고 있는 것은 흙바닥이어야 할 터.
그러나 지금 바닥을 가득 메우고 있는 것은 부드러운 흙이 아닌 딱딱한 나무뿌리 같은 느낌이었다.
마치 바짝 말라 있는 그런 나무뿌리 말이다.
‘나가보면 알겠지.’
좁고 어두운 땅굴에서 혼자 길을 상태였으나 블라드는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대담한 성정 때문이기도 했지만 쇼아라에서 개구멍을 헤집던 때보다는 지금의 상황이 그나마 나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점점 바람이 가까워져 오고 있다는 점은 블라드에게 자그마한 희망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뀨이익- 뀨익.
바람이 가까워지고 공기가 신선해질수록 블라드의 얼굴에는 미소가 맺혀갔지만 정작 붙들려 있는 빛나는 두더지의 발버둥만큼은 심해지고 있었다.
“도대체 뭐가 불만이야.”
뀨이이익-!
양팔을 크게 벌리며 무언가를 이야기하는 듯한 모습이었으나 애초에 타고난 종(種)이 다르니 말이 통할 리가 없었다.
어쩌면 목소리가 지금 있었다면 통역 정도는 해주지 않았을까?
“일단은 나가고 보자고.”
문제는 차근히 하나씩 해결해야 한다.
두더지 놈이 발버둥을 치든 말든 일단 가장 우선시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이곳에서 벗어나는 일일 것이다.
평생을 땅굴 속에서 헤매며 살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음?’
점점 밖으로 나가고 있다는 확신이 들 무렵, 블라드의 귓가에 들려오는 괴이한 소리가 있었다.
터엉-! 텅-!
마치 무언가에 강하게 부딪히는 것만 같은 소리.
블라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를 들으며 가만히 방향과 거리를 가늠해보았다.
울려 퍼지는 느낌으로 보아 지금 자신이 있는 땅굴이 아닌 밖에서 나는 소리 같았다.
“조용히.”
뀨-
블라드의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알아서 얌전해진 빛나는 두더지.
블라드는 재빨리 갑옷 속 주머니에 두더지를 욱여넣고는 양손으로 검을 든 채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터엉-! 터엉-!
앞으로 나아갈수록 소리는 커지고 이제는 바닥을 밟고 있는 나무뿌리를 통해 진동까지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천장에 있는 흙더미까지 부서지며 떨어지는 것으로 보아 모르긴 몰라도 가공할 만한 힘으로 무언가를 내려치는 것만 같았다.
‘보인다.’
알 수 없는 소리와 진동 속을 헤매던 블라드는 마침내 통로 한가운데서 자그맣게 내리쬐는 달빛을 찾을 수 있었다.
그곳으로 다가가니 사람 하나는 드나들 수 있을 정도의 크기로 천장이 뚫려있었고 그곳을 통해 오늘의 달이 비치고 있었다.
‘좋아.’
확실한 길을 찾았으니 망설일 이유는 없다.
블라드는 검을 집어넣고는 조심스레 도약하며 달빛을 향해 기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빛나는 두더지도 지금만큼은 상황을 확실히 인식했는지 블라드의 품 안에서 웅크리고 있을 뿐이었다.
터엉-!
부서지는 천장의 흙더미 속으로 손가락을 꽂아가며 기어오르던 블라드는 올라갈수록 선명해지는 파공성에 숨을 죽이고는 가만히 숨을 죽였다.
도대체 정체가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이곳에서 나가기 위해서는 나름의 각오가 필요할 것 같았다.
‘도대체 쉬운 일 하나가 없네. 없어.’
그러나 후회해도 이제는 어쩔 수 없다.
설사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는 것을 알았다 할지라도 두더지를 향해 손을 뻗었을 테니까.
블라드는 나름의 각오를 하고는 심호흡을 크게 한 채 손가락 끝에 힘을 주었다.
‘흡!’
그렇게 단단한 각오와 함께 밖을 향해 빼꼼히 내민 고개.
고개만 내민 블라드의 모습은 마치 자신이 잡아놓은 두더지와 같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모습은 우스웠을지라도 그렇게 한 판단 자체는 훌륭한 것이었다.
‘······저게 도대체 뭐야.’
달빛 아래 보이는 광경은 충분히 아름다웠다.
마치 푸른 평원의 잔디처럼 쫙 깔린 이끼들의 무리.
그리고 그 무리 가운데 고개를 들고 있는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언덕 위에 서 있던 하이날의 나무처럼, 알리시아의 호박석에서 보았던 단풍나무처럼 한 눈으로 보아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참나무였다.
터엉-!
그아아아아!
그리고 참나무 앞에서 흉포한 기세로 도끼를 휘두르는 존재.
두 발로 서 있었으나 사람이라 하기에는 너무 커다란 몬스터가 쉴 새 없이 소리를 치며 들고 있던 도끼로 참나무를 마구 내려치고 있었다.
두더지는 얌전히 웅크리고 있던 것이 아니었다.
블라드의 품속에서 떨고 있던 것이었다.
지금 보이는 정체 모를 몬스터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빌어먹을······.’
사태를 파악한 블라드는 재빨리 고개를 숙이고는 어찌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피아의 식별일 것이다.
무슨 연유로 정체 모를 몬스터가 나무를 내리치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자신과 연관이 없다면 굳이 상대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
다시 한번 고개를 내민 블라드는 이번에는 왼쪽 눈을 감고는 세계를 통해 나무와 몬스터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비명을 지르고 있는 참나무와 검은 그림자에 휩싸여 있는 듯한 몬스터의 모습이 보였다.
‘노란색이네.’
그리고 블라드의 세계에 남아있는 목소리의 잔재는 지금 비명을 지르고 있는 나무가 노란색 빛을 띠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정령으로 의심되는 두더지와 같은 색을 띠는 빛이었다.
‘여기서 쫓겨난 거였군.’
블라드는 자신의 품에서 떨고 있는 두더지를 느끼며 자그맣게 한숨을 내쉬었다.
정확한 연유는 모르겠으나 녀석은 저 미쳐있는 몬스터 때문에 쫓겨나 마을까지 떠밀려온 것이 아닌가 싶었다.
“······하긴 해야겠네.”
뀨우?
사고가 있기는 했지만 어찌 되었거나 정령의 본원(本院)은 찾았다.
비록 선객이 있는 모양이지만 블라드 또한 그 못지않게 급한 사람이었으니 먼저 양보를 받아도 괜찮을 것이다.
“후우.”
일격필살의 묘리는 의외성에 있다.
자신의 빠른 발이라면 기습이라는 형태의 의외성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천천히 심호흡을 통해 자신의 세계를 떠올리기 시작하는 블라드.
진하게 떠오르는 오러를 통해 라문드의 강체술로 각력을 높이고 목소리의 잔재를 검에 담았다.
그리고 아직 색을 갖지 못한 자신의 세계는 눈동자에 담아내었다.
터어엉-!
그아아아아!
‘지금!’
몬스터가 나무를 내려찍고 함성과 함께 도끼를 들어 올린 그 순간.
자그마한 구멍 속에서 폭발과도 같은 돌격과 함께 하얀색 벼락이 뛰쳐나가기 시작했다.
그아?
뀨우-!
몬스터가 예상치 못한 각도와 빛나는 두더지도 예상하지 못한 속도로.
“흐아압!”
허를 찌르는 날카로움을 통해 의외성을 완성시킨 블라드의 일격이 몬스터를 향해 빠르게 다가갔다.
서걱-
하얀색으로 물든 블라드의 검이 미처 눈동자도 돌리지 못한 몬스터의 목을 그어내고 있었다.
이제는 홀로 설 수 있는 기사의 혼신의 일격을 담은 검이었다.
굴러떨어지는 목.
허물어지는 육체.
그리고 고통에 찬 비명을 멈추고는 놀랐다는 듯 블라드를 바라보는 참나무 한 그루.
블라드의 검 아래 모든 것이 고요해진 달빛 아래 풍경이 있었다.
“이런 씨발······.”
그러나 정작 고요함을 만들어 낸 블라드는 서둘러 다시금 검을 치켜들었을 뿐이었다.
아직 색을 정하지 못한 블라드의 세계가 검을 향해 거칠게 뻗쳐 나오기 시작했다.
베어냈으나 베어내지 못했다.
왜냐하면, 베어내었던 목은 사실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었기에.
“또 너희들이냐.”
으르렁거리는 블라드의 목소리와 함께 허물어져 있던 몬스터의 육체가 다시금 일어서기 시작했다.
저 멀리 떨어져 나간 목 따위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이.
거대한 몸체, 베어졌으나 이미 매끈하게 닫혀버린 단면.
북부에서 활동하는 몬스터가 아니기에 블라드는 몰랐으나 중부에서는 이 몬스터를 향해 공포와 경의를 담아 트롤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었다.
그아아아아-!
바닥에서 구르던 있던 목에서부터 거대한 함성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마을 주민들이 들었다던 소름 끼치던 함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