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ing as a Child Actor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939)
이번 생은 아역부터 (939)
회귀 전. 보이그룹 END의 성적은 그룹명만큼이나 처참했다.
차트 인은커녕 곡을 내도 아는 사람이 없었으며, 소속사 사장의 사비와 지방을 뱅글뱅글 돌아 번 행사 수익으로 간신히 호흡기만 붙이고 생명을 연명했다.
수현이 배우로서 이름을 알리기 전까지 사정은 나아질 줄 몰랐다.
‘내가 뜨고 그룹도 재발굴 되긴 했는데…… 어느 정도 성공은 이룰 수 있었겠지만 톱급까지 올라갔을 거 같진 않아.’
사실 END는 중소 기획사 무명 아이돌치곤 기회를 많이 얻은 축에 속했다.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블랙스타와 친분이 있던 데다, 센스가 부족한 것과 별개로 허 사장의 인맥은 썩 괜찮았기 때문이다.
공중파 음악 방송에도 꼬박꼬박 얼굴은 내밀었으니 특출한 재능이 있었다면 4년이란 시간 동안 누군가는 알아 줬으리라.
달리 말하면 END엔 수현을 포함해 아티스트로서 인정받을 만한 가창력을 지닌 멤버가 없었다.
‘아이돌 평균보다 조금 나은 정도? 마케팅이 적절하면 그럭저럭 인기를 얻을 수 있어도 의상이나 비주얼 없이 노래만으로 승부하기엔 살짝 부족했지.’
수현은 자신의 실력을 냉정하게 평가했다.
일반인들보단 낫고 가수로 대성하기엔 조금 아쉬운 가창력.
그러한 본인의 위치를 알기에, 그는 ‘시크릿 싱어’에서 매번 최선을 다했다.
‘나는 배우치고 잘 부르는 거고 다른 사람들은 가수니까. 아름다운 패배라도 하려면 당연히 풀 악셀을 밟아야 하는 게 맞잖아…….’
누군가에게 하는 건지 모를 변명을 중얼거리며 수현은 몇 시간 전 과거를 회상했다.
1라운드 두 번째 무대에 올라선 수현은 ‘멜로디 공주’와 조우하여 자웅을 겨뤘다.
수현이 꺼낸 카드는 R&B 장르에서 추앙받는 가수 이우신의 ‘풀벌레 소리’로, 가사 전달력을 위해 상당한 기교를 요하면서도 고음도 적지 않아 난이도가 있는 곡이었다.
감정선이 그와 정말 잘 맞는 영혼의 단짝 같은 곡이었고…… 덕분에 수현은 87대 13이란 압도적인 표차이로 ‘멜로디 공주’의 베일을 벗겼다.
—와, 누구지?
—저 울었어요. 이 곡이 이렇게나 슬픈 건 처음이야…….
—인디 밴드인가? 아니면 유성진? 어어, 이호중?
—아아! 모르겠다!
수현의 노래를 들은 판정단은 그를 배우가 아닌 가수라 확신했으며, 신예로 꼽히는 가수들을 언급했다.
이때만 해도 수현은 자신이 잘못된 단추를 꿰었다는 걸 몰랐다.
—9대 31로 로맨틱 뱀파이어, 승리!
1라운드 세 번째, 네 번째 무대가 끝나고 저녁을 먹은 뒤 갖은 2라운드 첫 번째 무대에서, 수현은 또다시 자신의 경쟁자인 ‘라면 박스’를 꺾었다.
그는 현도가 낸 솔로 앨범 ‘리베라(Libera)’의 수록 곡 ‘펜네(Penne)’를 불렀는데, 몽환적이면서도 파워풀한 포인트가 가장 현도답다고 일컬어지는 노래였다.
노래방에서 현도와 수십, 수백 번 부른 곡답게 수현은 이번에도 원(原)가창자에 버금가는 실력을 뽐냈다.
—현도가 미국에서 돌아왔나?
—풀소리도 좋았는데 파스타도 괜찮네.
익숙한 노래답게 두 번째 곡 또한 판정단의 좋은 평가를 얻었다.
처음 불렀던 ‘풀벌레 소리’에 비해 아쉽다는 반응도 없지 않았으나, 앞서 보인 임팩트와 겹쳐져 수현은 ‘라면 박스’의 정체를 밝힐 수 있었다.
—어, 혹시……. 강수현 씨 아니에요?
—아! 둘이 친구니까, 그럴지도.
—이 정도면 가수인데, 강수현은 배우…….
—수현 씨 뮤지컬도 했잖아. 수현 씨 같다.
그와 함께 본인의 정체도 추측 당했지만 말이다.
현도와의 진한 우정은 대중에게도 유명했기에, 판정단은 ‘로맨틱 뱀파이어’ 뒤에 있는 얼굴이 수현일 것이라 확신했다.
한번 정체를 특정한 그들은 매의 눈으로 수현을 살피며 그의 가면을 벗기고 싶어 했다.
그러나 결승전에서도, 수현은 여전히 ‘로맨틱 뱀파이어’라 불렸다.
‘왜, 이겼지……?’
그의 정체를 확인하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판정단만큼이나 수현도 남은 한 명을 꺾고 챔피언전에 도전하는 자신의 상황이 당혹스러웠다.
분명 계획은 2라운드 탈락이었는데 10시간짜리 녹화의 마지막까지 남아 있게 되었으니까.
가면을 벗고 ‘지금 개봉 중인 [시크릿 에이전트>도 많이 사랑해 주세요.’라 말해야 할 타이밍이 훌쩍 지나 버렸다.
‘아니, 왜? 결승은 내가 좀 못 부르지 않았어? 왜 8표 차로 이긴 건데.’
최선을 다할 생각으로 선곡해 오긴 했지만 수현도 결승에선 정체를 밝히려 나름 노력했다.
그러나 앞서 보인 곡들의 인상이 너무 강렬했고, 설상가상으로 상대가 약간의 실수를 하면서 수현은 54표로 1042회 우승자란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전혀 바라지 않던 위치였다.
“자! 이제 드디어 오늘의 하이라이트! 142대 챔피언 스콜피온 킹! 그에 맞서는 1042회 우승자! 로맨틱 뱀파이어!”
“와아아!”
“먼저 도전자인 로맨틱 뱀파이어의 무대를 함께 감상하시겠습니다!”
“오오오!”
환호하는 대중들의 앞에서 수현은 수런대던 마음을 진정시켰다.
앞서 만났던 경쟁자들의 실력도 나쁘지 않았으나 4연승 중인 챔피언 ‘스콜피온 킹’은 누가 뭐래도 ‘진짜’였다.
수현이 최선을 다한다면 그에게 ‘아름다운 패배’, ‘졌지만 잘 싸웠다’를 선사해 줄 수 있는 상대.
상대의 실력에 믿음을 얻은 그는 마이크를 움켜쥐었다.
발도 직전의 검사처럼, 그의 분위기는 비장했다.
‘이 곡을 부를 줄은 몰랐는데…….’
작게 숨을 고른 수현은 입술을 열었다.
타이틀 매치까지 갈 것이라 생각하지 않은 탓에, 마지막 곡은 애절한 사랑을 담은 발라드, 호연의 ‘그대를 기다렸네’로 선정했다.
무대가 아닌 예서의 앞에서 부르려고 준비하던 노래였다.
“한 발짝을 내딛고 뒤를 돌아봤어— 다시 앞을 봤지만 또 뒤돌았지.”
수현은 연인 때문에 발이 떨어지지 않는 심정을 떠올리며 독백 같은 가사를 흘렸다.
‘그대를 기다렸네’는 예서를 향한 사랑을 자각하고 머뭇거리며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던 과거의 그의 모습과 꼭 닮았다.
어떻게 보일지 몰라 꾹꾹 눌러 숨겼던 진심과 비슷했고,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던 사랑을 말로 푼 것 같았다.
‘풀벌레 소리’가 회귀 전 우울하고 침전된 수현의 감정과 맞닿아 있었다면, ‘그대를 기다렸네’는 예서의 고백을 들은 뒤 사랑을 자각한 그를 비췄다.
‘그래서 나름 고백이자 커플 이벤트 겸 들려주려 했지. ……뭐, 공개적인 것도 나쁘진 않아.’
아무도 모르겠지만 이것은 숨겨 왔던 사랑 고백이다.
가사와 음색이 깊어질 때마다 수현은 한 층 더 노래에 이입하며 자신의 감정을 쏟았다.
이 무대가 타이틀 매치라는 것도 잊은 채, 그는 남아 있던 에너지를 전부 노래에 바쳤다.
삼자가 볼 땐 우승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아름답고 처절한 모습이었다.
“수현이가 이렇게 노래를 잘했다고?”
“아닌 거 같은데, 진짜 강수현 씨 맞아요? 아닌 거 같은데.”
“쓰읍, 헷갈리네…….”
“아, 너무 좋다.”
수현의 노래를 들으며 판정단은 점점 더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체 파악은 뒤로 넘겨둔 채 감상에 집중하는 이도 있었다.
그야말로 1042회 우승자다운 마무리였다.
“이건 로맨틱 뱀파이어의 [그대를 기다렸네>라 말해도 틀리지 않네요. 차이 있는 부분조차 원래 그랬던 곡 같아요. 너무 절절해.”
노래가 끝나자 연예인 판정단원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원로 가수, 호연이 울먹이며 수현을 칭찬했다.
‘그대를 기다렸네’의 원곡자이자 원가창자인 그녀는 편곡이 마음에 든다며 정말 좋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엄청난 극찬이었으나 그 말을 듣는 수현은 기쁘면서도 미묘했다.
‘괜찮……겠지?’
예서를 향한 감정을 힘껏 쏟은 수현은 무대를 마치고서야 본인이 너무 힘을 줬다는 것을 깨달았다.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과 실력을 200퍼센트 발휘하는 건 다른 말인데, 결과가 너무 좋았다.
‘이제 믿을 건 정말 스콜피온 킹 밖에…… 제발 파이팅해서 날 꺾어 주길.’
가면 뒤에 표정을 숨긴 채 수현은 긴장한 태도로 무대에 선 챔피언을 응시했다.
분위기를 타고 베스트 오브 베스트를 찍긴 했지만 ‘스콜피온 킹’이라면 그런 자신도 꺾을 수 있다.
‘스콜피온 킹’의 정체는 30대 최고 가수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전유희였으니까.
회귀 전에도, 회귀 후에도 엄청난 명성을 구가 중인 가수가 배우로 밀린 수현에게 질 리 없었다.
“노래가 좋네요.”
“근데 살짝 스콜피온 킹과는 맞지 않는 느낌이…….”
수현이 희망적인 상상을 하고 있을 때, ‘스콜피온 킹’은 과거 보인 적 없던 잔잔하고 서정적인 노래를 꺼내 들었다.
그의 강점인 고음과 샤우팅을 전혀 뽐낼 수 없는 곡이었다.
당연히 판정단의 반응은 어정쩡했고.
“63대 37! 1042회 우승자 로맨틱 뱀파이어가 143대 챔피언으로 등극했습니다!”
“와아아!”
수현은 4연승을 이어가던 ‘스콜피온 킹’을 꺾은 실력자가 되었다.
예상을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결과에, 수현은 박수를 치고 리액션을 보이면서도 멍한 정신을 수습하지 못했다.
“스콜피온 킹! 이제 가면을 벗어 주세요!”
“안녕하세요, 가수 전유희입니다.”
무대에서 등을 돌린 ‘스콜피온 킹’이 가면을 벗자 모두가 예측하던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유희는 웃는 얼굴로 드디어 자신을 공개할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6월 5일부터 월드 투어가 있을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열심히 무대를 향한 감상을 떠들던 유희는 마지막으로 본인의 월드 투어를 홍보하곤 정면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4연승을 이어 오던 챔피언의 퇴장에, 현장의 이들이 박수로 그를 배웅했다.
‘아니, 잠깐 그거 내가 해야 하는 말인데……?’
홀가분하게 떠나는 유희의 뒷모습을 보며 수현은 입을 벌렸다.
박수 칠 때 퇴장해야 하는 사람은 분명 그였거늘, 패배를 바라는 두 사람이 붙어 수현이 이기고 말았다.
실질적인 패배였다.
“그럼 이제, 로맨틱 뱀파이어의 축하 무대로 1042회 [시크릿 싱어>를 마무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모두가 기뻐하고 전주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수현은 떨리는 손으로 마이크를 들었다.
자신의 실력을 알아 준 이들이 고마우면서도 어쩐지 눈물이 나서, 노래를 부르는 그의 눈 앞은 한동안 뿌옇게 흐려졌다.
모두를 믿고 최선을 향해 달린 자의 최후는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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