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ing as a Child Actor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940)
이번 생은 아역부터 (940)
1042회 우승자, 143대 챔피언으로 등극한 수현은 2주 뒤에 있는 1043회 촬영이 있고서야 간신히 프로그램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
물론 그동안 놀림을 받은 건 예견된 수순이었다.
“개봉한 지 한 달이 돼서 홍보하는 것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이미 천만 관객을 넘긴 작품을 홍보한다는 게 참…….”
“상일 형.”
“괜찮아, 그게 수현이 귀여운 점이잖아? 서른 넘어서도 초심을 잃지 않는 태도, 칭찬해.”
“…….”
1043회 촬영을 마치고 정체 공개와 ‘시크릿 에이전트’를 언급하고 돌아온 다음 날.
상일과 채민은 오늘도 수현을 위로하는 척 그를 약 올렸다.
사실을 늘어놓으며 간과했던 부분들을 언급하는 그들의 행동에 수현은 기가 막혔다.
‘이 사람들이…….’
총 여덟 번의 대결로 이뤄진 ‘시크릿 싱어’는 하루 녹화분을 2주에 걸쳐 방영했다.
수현의 경우 1041회 경연의 2부가 방영되는 주에 녹화를 진행했는데, 달리 말하면 그가 출연한 1042회 무대는 촬영을 진행한 지 12일이 지나 공개됐다.
영화 개봉을 기준으로 잡으면 3주…… 아니, 4주 차에 들어간 시점이었다.
‘게다가 난 1라운드를 통과할 계획이었으니 개봉 5주 차에 정체가 밝혀질 거였고.’
대부분의 천만 영화가 천만을 찍은 시점부터 화력이 서서히 죽는 것을 상기하면 상당히 늦다.
홍보팀이 제안하고 수현이 수락한 프로그램이나 따져 보면 홍보로서 영양가가 없었으리라.
여기까지 생각이 닿자 그는 슬쩍 눈을 흘겨 상일과 채민을 응시했다.
“정말로 다 알면서, 가만히 있던 거예요?”
제안서를 보고 수락한 건 수현이지만 말리지 않은 건 크라운이다.
소속 배우가 잘못된 선택을 하면 당연히 알려야 하거늘, 배신감이 치솟았다.
그가 살짝 원망을 담아 그들을 쏘아보고 있을 때.
상일이 담담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배우님, 노래 부르는 거 좋아하시잖습니까. 그저 무대를 깔아드렸을 뿐이죠.”
“그치, 수현이가 은근 춤추고 노래하는 거 좋아하는데, 이걸 드러내는 건 또 묘하게 꺼리니까. 홍보와 별개로 나가서 나쁠 게 없어 보이더라고.”
“…….”
둘의 답변을 들은 수현은 바닥을 노려봤다.
이래서 자신을 너무 잘 아는 사람은 싫다.
할 말 없게 만드는 은근하게 상냥한 배려가 너무 짜증 났다.
“그나저나 허 감독님은 상당히 본격적이더군요.”
놀릴 만큼 놀린 것인지 상일은 자연스럽게 화제를 전환했다.
수현에게 연락했던 허 감독은 이후 수현과 끊임없이 피드백을 나누며 대본을 수정하고 연출 방식을 정리했다.
틈틈이 투자자들을 모으고 촬영 장소를 고민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1년 꽉 채워서 부족함 없이 준비하시려는 것 같아요.”
요리를 할 때 미리 재료들을 준비하고 씻어 두는 것처럼, 작품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도 준비 과정이 존재했다.
이 과정이 깔끔할수록 촬영에 군더더기가 없기에 허제희 감독은 세심하고 세밀하게 바탕을 깔았다.
촬영까지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길었으나 수현은 그 점에 불만이 없었다.
‘그사이에 다른 작품을 짧게 찍는 것도 나쁘지 않고 작품에 필요한 몸을 만드는 것도 괜찮겠지.’
‘시크릿 에이전트’도 액션 영화이고 ‘우로보로스(가제)’에도 상당한 액션이 포함될 예정이지만 ‘길서’와 ‘윤호’는 전투 방식부터 행동 양식이 전부 다르다.
운동선수마다 체형이 다른 것처럼 수현도 ‘윤호’에게 맞는 몸매를 다시 짤 필요가 있었다.
‘감독님이 저렇게까지 벼르시는데 나도 그냥 괜찮은 정도면 안 되잖아?’
며칠 전 최선을 다하다가 계획이 어긋났음에도 수현은 태도를 고수했다.
계획을 생각하며 힘을 빼는 것보다, 노력을 쏟는 편이 미련과 후회가 남지 않았으니까.
어느새 자기들끼리 투닥거리는 채민과 상일을 보며 수현은 슬쩍 미소 지었다.
가끔 짜증 나고 열이 받긴 해도 역시 크라운에 있는 자신이 좋았다.
* * *
1042회 경연의 2부가 방영되는 날 수현은 예서와 함께 앉아 ‘시크릿 싱어’를 감상했다.
이미 결과를 아는 예서는 순순히 노래만 감상했는데, 수현은 그런 그녀 옆에서 자신이 무슨 생각으로 저 곡을 골랐고 녹화 당시 어떤 기분이었는지 하나하나 사족을 붙였다.
‘그대를 기다렸네’가 흘러나올 때도, 그는 자신의 마음을 덧붙였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남들 몰래 애정 행각을 하는 건 좋지 않다는 타박이 돌아오긴 했지만, 그런 말을 하는 예서의 눈시울은 붉었고 입가엔 미소가 감돌았다.
‘한가한 거 같은데 은근 정신이 없었어.’
1043회 ‘시크릿 싱어’ 2부가 방영되고 수현의 정체가 공개된 것은 ‘시크릿 에이전트’가 개봉 7주 차를 맞이한 시점이었다.
최단 기록 천만 관객을 달성한 작품이라 해도 볼 만한 사람들을 다 관람해 시들시들해질 시기였으며, 실제로도 ‘시크릿 에이전트’의 일일 관객 순위는 8위로 떨어진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이뤄진 수현의 영화 언급은 의외의 파장을 낳았다.
8위까지 떨어졌던 영화가 반짝 역주행하여 1위를 탈환한 것이다.
평일인 데다 고작 이틀뿐이긴 해도 유의미한 결과였고, 결국 ‘시크릿 에이전트’는 천만 영화들 중에서도 극히 일부만 가능하다는 1500만 관객을 달성했다.
최종 결과 1,632만.
제일 엔터테인먼트가 사력을 다했다던 ‘시크릿 에이전트’는 역대 영화 매출액 순위 1위이자, 관객 동원 순위 3위, 한국 영화로는 관객 동원 1위에 등극했다.
강수현이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는 말도 이곳저곳에서 터져 나왔다.
‘제2의 전성기 소리 들을 만큼 딱히 못 나갔던 적이 없는데…… 별로 쓸데는 없지만 이준현 그 사람에게서도 감사 인사를 들었고.’
제일 엔터테인먼트의 경영 리더로 자리 잡은 제일 그룹 재벌 4세 이준현은 수현이 예상대로 잘해 준 덕에 자신의 입지가 커졌다며 제일 식품에서 제작하고 유통하는 다양한 제품을 넉넉하게 소속사로 보냈다.
밥의 민족답게 식구들끼리 나눠 먹으라는 호의로 보이지만, 그 속에는 영화의 성공으로 제일 그룹의 핵심 사업인 식품에도 어느 정도 손을 뻗었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딱히 수현과는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그 사람이 어떻게 지지고 볶든 내 알 바 아니지. 난 영화에 출연한 걸로 충분히 보답했으니까. 끝난 거 아니겠어?’
준현과의 인연과 별개로, 올해 최고 흥행 영화를 찍은 수현은 예서와 함께 바쁜 스케줄을 소화해야 했다.
수많은 매체에서 그들의 성공을 다루기 위해 달려들었으니까.
천만 영화를 여럿 찍은 수현도 이번 열기는 전과 다르다고 느낄 정도였다.
해외 영화의 인기가 압도적인 요즘, 한국 영화가 거대 자본으로 폭격하듯 밀고 들어오는 할리우드 영화를 꺾고 천만 관객 최단 기록을 달성했으니 대중이 흥분하는 것도 이해는 됐다.
‘제일이라고 홍보 폭격과 스크린 점령을 안 한 건 아닌데 나한테 나쁜 결과는 아니니까.’
영화의 대성공은 안 그래도 높았던 수현의 몸값을 한층 더 높였다.
예서 또한 엄청난 인기를 얻으며 수억의 출연료를 받고 차기작에 들어갔다.
두 사람의 연애를 은근슬쩍 비난하던 반응은 어느 순간 사라지고 없었다.
“오빠, 진열장 안이 빼곡한데 정말 내 것도 놔도 괜찮아?”
“괜찮아. 이미 새로 주문했으니까. 공간이 부족하면 이사하지 뭐.”
타이 매듭을 확인하며 수현은 예서에게 답했다.
‘윤호’에게 어울리는 몸을 만들며 다양한 프로그램에 얼굴을 내밀던 수현은 10월에 들어서자 한층 더 바빠졌다.
그해 최고의 영화를 꼽는 다양한 시상식에서 ‘시크릿 에이전트’를 초대했으니까.
10월부터 12월까지 수현은 예서와 함께 한국에서 이름 좀 있다는 영화 시상식을 전부 방문했다.
하 감독을 포함해 세 사람의 상복은 미칠 듯이 터졌고, 수현의 트로피 수집장도 순식간에 좁아졌다.
옷차림을 정돈한 수현은 예서에게 다가가 진열장을 응시했다.
‘제70회 창룡 영화상 남우주연상 강수현’.
‘제71회 태종 영화제 남우주연상 강수현’.
27살, ‘휴가’가 만들었던 상황이 다시 한 번 재현됐다.
‘오늘, 이제 백종만 잘 끝나면…….’
‘휴가’와 ‘7월의 협주’가 이리저리 경쟁했던 과거와 달리, 작년 수현이 출연하고 흥행한 작품은 ‘시크릿 에이전트’밖에 없다.
이변이 벌어지지 않는 이상 천만 영화이자 최고의 화제작인 ‘시크릿 에이전트’가 백종 예술 영화상을 휩쓸 것이 분명하니 수현의 남우주연상 수상도 안정적이리라.
정말로, 그랜드슬램이 눈앞에 있었다.
“……갈까?”
“응, 가자.”
수현은 예서의 손을 잡고 인하가 모는 차량에 올라탔다.
연인이자 더블 주연이었기에, ‘시크릿 에이전트’로 초대받은 자리라면 두 사람은 항상 같이 레드 카펫에 올라섰다.
압도적인 기록을 눈앞에 들이밀자 대부분의 대중은 두 사람의 연애를 인정하고 축하했다.
인터넷에도 서운하다거나 세금을 더 내라는 반응은 있어도 어느 한쪽을 일방적으로 욕하고 깎아내리는 이들은 상당히 적었다.
대중에게 알려진 지 반년도 되지 않은 관계이나 둘의 사이는 안정적이었다.
“……올해 남우주연상은 작년도 수상자이신 이서한 씨와 박서현 씨가 발표해 주시겠습니다.”
레드 카펫 행사를 포함한 백종 예술대상의 1부 행사가 끝나고 2부에 접어들자, 드디어 영화 부문 남자 주연상의 발표가 시작됐다.
수현은 긴장이 서린 표정으로 스크린을 응시했다.
영화의 스틸 컷과 함께 후보들의 얼굴이 차례차례 흘러간다.
모든 후보 소개가 끝나고 수현을 비롯한 이들의 얼굴이 스크린에 크게 클로즈업된 그 순간, 서한의 입이 열렸다.
“남우주연상 수상자는…… [시크릿 에이전트> 강수현 씨. 축하드립니다.”
제 이름이 호명된 순간 수현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올해 백종 예술대상의 최고 관심사 중 하나였던 만큼, 수현이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기 무섭게 주변에서 축하가 쏟아졌다.
어깨를 두드리고 악수를 청하고 하이파이브를 바라는 이들에게 일일이 응답하며 수현은 무대 위로 올라섰다.
환한 조명 아래서 기다리던 서한이 꽃다발과 함께 트로피를 건넸다.
“축하해.”
“……감사합니다.”
트로피를 받아 든 수현은 자신도 모르게 트로피를 잡은 팔을 높게 들어 올렸다.
사람들의 박수와 환호 속에서 반짝이는 트로피는 더할 나위 없이 눈부셨다.
에필로그
“강수현 씨,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 무엇이라 생각하세요?”
20대 정도로 보이는 젊은 MC의 질문에 수현은 미소를 지었다.
꾸준한 관리와 꼼꼼한 메이크업 덕에 주름은 없지만, 그의 눈빛에서 느껴지는 깊이엔 세월이 묻어났다.
“아내와 결혼한 거죠. 예서야, 사랑해.”
수현은 손가락으로 하트를 만들며 정면 카메라를 바라봤다.
영화 로케이션 때문에 집에 없는 그녀가 조금 그리웠다.
“두 분은 여전히 사이가 좋으세요.”
“다시 태어나도 예서와 결혼하고 싶네요.”
작게 웃으며 예서를 향한 사랑을 털어놓은 수현은 이후 이어지는 질문에도 차분하게 답했다.
어린 진행자는 수현의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한국 최고 배우이자 할리우드에서도 상위 출연료를 받으며 작품 활동을 하는 유일한 동양인 배우.
그가 이뤄 둔 업적들은 살아 있는 전설과 같았기에, 흥미본위로 그를 건드리는 이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강수현 씨를 롤모델로 연기를 시작하는 후배들이 매년 늘고 있다는 거 알고 계신가요?”
“네, 부끄럽지만 그렇다고 들었네요.”
“배우를 시작하려는 이들에게, 또 해외 진출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한마디 해 주세요.”
반짝이는 눈빛으로 저를 보는 진행자를 바라보던 수현은 시선을 카메라로 돌렸다.
다섯 살부터 다시 시작한 2회 차 인생은 후회하던 과거를 바로잡고 그가 이 자리까지 올 수 있도록 엄청난 기회를 제공했다.
그러나 인생의 마지막 순간 연기라는 재능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이 정도로 굳건하게 앞을 바라보고 달리진 못했다.
“제가 다른 사람들보다 빠르게 시작하기도 했지만, 가장 중요한 건 매 순간 작품과 역할을 위해 최선을 다한 거라 생각합니다. 기회가 왔을 때 잡으려면 자신의 강점을 잘 파악하고 목표를 위해 노력해야 하죠.”
“강수현 씨는 정말 어린 나이부터 아역으로 활동하셨는데, 데뷔 당시 다섯 살이셨죠? 힘들진 않으셨나요?”
연달아 이어진 질문에 수현은 말을 골랐다.
그리고 천천히,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물론 쭉 연예계에서 사는 게 쉽진 않았죠. 아역으로서 고충도 많았고요. 하지만, 어렸기에 얻을 수 있던 것들이 정말 많았다고 생각하네요. 아역을 시작으로 쭉 달려온 길엔 어떠한 후회도 없습니다.”
수현은 심지가 단단한 목소리로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회귀 전 재능을 발견하고 아역부터 시작한 2회차 인생.
그의 이번 생은 아역부터 시작했고, 앞으로도 쭉 배우로서 살아갈 것이다.
50이 넘은 지금도 수현의 눈은 열정으로 반짝였다.
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