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el-eating Player RAW novel - Chapter 221
22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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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욱이 블랙 게이트 너머로 사라진 날, 일명 ‘엔딩’으로부터 어느덧 3년이 지났다.
그리고 오늘이 바로 그 3주기 되는 날이었다.
이곳은 서울의 남산, 한때는 제3 항마여단 1대대의 부지였으나, 이제는 망가진 지구를 재건하는 동시에 혹시 모를 외계의 침공에 대응하기 위한 의 한국지부가 위치한 곳이었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그 기능이 달랐으니…….
한 기자가 남산 중턱에 마련된 광장에서, 카메라를 앞에 두고 소리치고 있었다.
“……저는 지금 남산의 인류재건기구 한국지부, 스틸레인데이 행사장에 나와 있는데요, 보시다시피 엄청난 인파가 모여서 발 디딜 틈 없는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곳은 인류를 구한 영웅인 스틸레인의 행보가 시작된 곳이기도 하기에, 이현욱을 기리기 위한 ‘스틸레인데이’의 메인 행사가 열리는 장소였다.
그리고 오늘이 바로 그 ‘스틸레인데이’인 바, 며칠 전부터 꽤 큰 규모의 행사장이 마련되었고 전 세계에서 모여든 인파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와— 아빠! 저기 봐요, 스틸레인이에요!”
한 소년이 거대한 동상 앞으로 달려갔다.
그 동상은 왼손을 하늘을 향해 뻗고 있는 자세로써, 스틸레인, 이현욱의 모습을 닮아 있었다.
그리고 그 동상의 발아래 주변으로 스틸레인의 상징과 같은 거검 ‘모글레이’가 잔뜩 내리박혀 있었는데, 그건 전부 실제로 이현욱이 사용했던 모글레이였다.
한편, 가이드로 보이는 여자가 동상 앞에서 해설을 하고 있었다.
“자, 이 모글레이들은 스틸레인이 게임을 붕괴시키고 블랙 게이트로 사라진 날 두고 간 것들이에요. 총 14개가 남았는데, 그중에서 12개가 이곳에 전시되었고 나머지 2개는 라퓨타에서 연구 자료로 쓰고 있다고 합니다.”
“어? 왜 2개는 따로 빼 둔 거예요?”
한 꼬마가 질문했다.
“그곳에 스틸레인의 마나 패턴이 남아 있어서 혹시나 그가 돌아올 때, 알 수 있도록 연구 중이야.”
“헉! 그렇다면…… 그분이 지구로 돌아올까요?”
그건 아무도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기에, 가이드 역시 싱긋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분은 지금 인류를 괴롭힌 악당들을 심판하러 갔다고 해요. 그 일은 하루아침에 끝날 게 아니지만…… 언젠가 꼭 돌아올 거예요.”
그러나 그건 전부 다 추정일뿐이었다.
그가 사라진 날, 그가 남긴 말은 단 한 마디였다.
‘……제가 꽤 오랫동안, 어디 좀 다녀와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말에는 목적지나 귀환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었기에 그가 어디로 갔는지, 무엇을 하는지, 언제 돌아왔는지 추정할 수 없었다.
그저 추락한 관리자들의 비행체에서, 살아남은 관리자 몇몇을 포획하여 심문한 내용을 토대로 추정하기를, 그가 다른 차원의 관리자들을 섬멸하고 있다고 예상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때—
두두두두——
웬 헬리콥터들이 남산을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다. 이에 가이드의 설명이 도중에 끊어졌고 모두가 고개를 들어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내 헬리콥터 무리는 행사장의 가장 높은 곳, 남산 중턱의 본부 건물로 착륙했다.
“와, 저 헬리콥터에는 누가 타 있을까요?”
한 꼬마가 신이 난 듯이 물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꼬마가 손을 들며 대답했다.
“내 생각에는 제우스 엑스 마키나, 박준모 형이 타고 있을 것 같아!”
“아니야, 바람이 엄청 부는 걸 보니까 바람의 여제 김세희일 거야!”
“이 바보야, 바람이 부는 건 헬리콥터 때문이야! 그리고 걔들보다 중력 마법사 이성윤이 더 멋있어!”
오늘, 스틸레인데이는 그와 함께 싸우고 엔딩으로 나아갔던 영웅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날이기도 했다.
그들을 보기 위해서 본부 근처에도 인파가 인산인해였으나 철통 보안 때문에 가까이 접근할 수는 없었다.
“이 이상 접근하시면 안 됩니다.”
“어어— 거기, 뒤로 물러나세요!”
이처럼, 이현욱은 지구에 없었으나 그가 남기고 간 유산들이 지구의 기둥이 되어서 미래를 지탱하고 있었다.
***
그날 오후, 스틸레인데이 행사장이—특히나 스틸레인 동상이 내려다보이는 본부 건물 주변을 두 사람이 걷고 있었다.
김세희와 이교준이었다.
“오늘 멤버들은 다들 오시는 거죠?”
이교준 팀장, 아니 이제는 이교준 실장이 물었다.
이에 김세희 총무가 고개를 대답했다.
“네, 해외 파견 갔던 팀도 오늘 오전에 인천공항에 도착했고, 태백 병기창에서도 출발했다고 하니까, 곧 도착할 겁니다.”
한편, 그녀의 어깨 위에서는 바람의 정령 하늬가 햇볕을 받으며 하품하고 있었다.
“그렇군요. 그분들이 빠지면 섭섭하죠, 이 행사의 두 번째 주인공들인데요. 그리고 여전히 가장 영웅다운 면모를 보여주고 계시기도 하지 않습니까?”
오늘날, 이현욱의 세운 는 이라는 이름으로, 자선 사업 및 복구 사업의 핵심 기관으로 활약 중이었다.
그리고 에는 드워프, 다크엘프, 에이션트 레드 드레이크 종족도 소속되어 있었는데, 이제 그들은 ‘몬스터’나 ‘NPC’라는 명칭 대신 ‘휴머노이드’라고 불리며 인류의 구성원으로 잡는 중이었다.
“하…… 영웅이라, 그런 말 듣기 좋아하는 인간들이니까, 너무 그러면 취해서 영웅담 늘어놓을걸요?”
“뭐, 그래도 오늘은 취해도 되는 날이고 추억팔이는 필수인 날이기도 하지 않습니까?”
“그렇죠, 그런 날이죠. 그나저나 우 실장님은 오늘 오시죠? 흠…… 작년에 갑자기 은퇴 발표하신 것도 아쉬운데, 그 뒤로 얼굴도 안 내비치시면 너무 섭섭한데요.”
한때 대한민국의 무소불위 권력이었던 우성문은 1년 전 오늘 이 자리에서 은퇴를 선언했다.
그러나 여전히 뒤에서 많은 것들에 힘을 쓰고 있기도 하고, 그가 스틸레인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는 점이 주목받으면서 차기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고 있었는데, 국민적인…… 아니 세계적인 지지를 받는 중이었다.
그래서 대통령 후보인 동시에 총재 후보이기도 했다.
“뭐, 어르신께서도 여전히 정정하시고 갈수록 더 건강해지셔서 이런 날 빠지시진 않겠죠. 그분은 은퇴하셔도 여전히 나라 걱정으로 밤잠 설치시는 분이라서요.”
이내, 본부의 헬기 포트로 헬리콥터들이 줄지어 착륙하기 시작했다.
“하— 아직도 이 덜컹거리고 시끄러운 헬리콥터는 적응이 안 되네, 빨리 비공정부터 고치든가 해야지…….”
그렇게 푸념을 늘어놓으며 가장 먼저 헬리콥터에서 뛰어내린 이는 강희설이었다. 그녀의 뒤로 강정두와 드워프들이 줄지어서 내렸다.
이어서 박철수, 여상민, 이정준 등 희망 길드의 원년 멤버들이 내렸다. 그들은 여전히 희망 재단의 중추로써 활약 중이었다.
그리고 이어서 착륙하는 헬기에서는 물의 정령왕, 소일러 와이어비어, 클라이페우스 그리세오, 아가이디카, 등의 휴머노이드 대표들이 내렸다.
또 다른 헬리콥터에서는 고준철 고진화 등, 인천 마계에 숨어지내던 마을의 간부들도 있었다. 그들도 이제는 양지로 나와서 활약 중이었다.
김세희와 이교준은 그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강 소장, 그…… 뭐 고치는 연구는 잘 돼 가?”
김세희가 강희설에게 물었다.
“아, 언니 이제 거의 다 됐어요! 제 신경계의 마나랑 마법공학 아이템이 액세스되기 시작했거든요!”
현재 에서는 강희설과 강정두를 필두로 하여 대장장이, 드워프들은 마나동력기관을 열심히 개발 중이고 게임 엔딩 이후 인류가 잃어버렸던 마나 동력을 곧 다시 얻게 될 듯했다.
“후— 시스템이 사라진 건 좋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정보는 남기고 사라져야 했는데 개고생이네요.”
엔딩, 그 순간에 시스템이 사라졌다.
그리고 시스템은 마나를 구속하는 족쇄인 동시에 플레이어들이 마나를 더욱 쉽게 운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일종의 ‘툴’이기도 했다.
이를테면 스킬이나 아이템의 작동 방식이 모두 시스템이 정한 공식대로, 한 번의 클릭만으로 발현되는 것이었다.
즉, 시스템이 사라지는 순간, 모든 플레이어가 능력을 잃고 만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미 전 세계에 퍼져있고, 플레이어들의 신경계에 체화된 ‘마나’가 사라진 것은 아니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둘씩 마나 운용 방법을 하나둘씩 개화하는 중이었고 일부는 자신의 특성과 관계없이 다양한 부분에서 마나를 통제할 수 있기도 했다.
이렇듯이 인류는 여전히 ‘마나’의 힘을 품고 그것을 발전시켜나가는 중이었다.
그때 웬 거대한 날개가, 본부를 향해 날아왔다.
훙—
그건 백색의 작은 드래곤, 헤츨링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강희설이 소리쳤다.
“오, 용 엄마도 오셨네요!”
그러자 김세희가 기겁하며 손사래 쳤다.
“큼, 은하 언니는 그 말 되게 싫어하니까, 조심해.”
“……아, 맞다! 하하— 하여튼 제 입은 방정이네요.”
이내 헤츨링이 건물 뒤편에 착륙했고, 그곳으로 다가가자, 어느새 거대한 드래곤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여자 한 명이 드레스를 입은 8~9살짜리 소녀 한 명을 붙들고 이야기 중이었다.
“……내 말 알아들었지? 응? 오늘은 안에서 불 뿜거나, 신성력을 방출하거나 둘 다 안 돼. 너 저번에 그랬다가 아가이디카 삼촌한테 혼났잖아.”
서은하, 그녀가 소녀의 팔을 붙들고 쓴소리를 내뱉고 있었다.
그런데 소녀는 뾰로통한 표정이었다.
“아, 알았다고…… 아침부터 대체 몇 번을 말해? 내가 이제 몇 살인데…… 나 날아오느라고 피곤하니까 잔소리 그만해.”
“너…… 남들 앞에서는 그렇게 반항적으로 말하면 혼난다.”
꽤 오래전에 서은하의 권속이 되었던 드래곤은 알이 2년 8개월 전에 부화했는데, 인간의 모습으로 폴리모프한 게 바로 저 소녀였다.
이에 김세희, 강희설, 이교준은 잠깐 쯤을 들이다가, 두 모녀(?)의 대화가 끝날 무렵에 다가갔다.
“서 실장님 오랜만이네요.”
서은하는 산하의 정예 부대인 ‘전략공략실’의 실장 직책을 맡고 있었다.
오늘날, 시스템이 사라졌으나, 게임이 만들어낸 것들은 모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즉, 인간들에게 적대적인 몬스터가 세계 각지에 도사리고 있었기에 그것들을 토벌한 병력도 필요한 것이었다.
물론, 대화가 통한다면 평화적인 교류를 최우선으로 했으나 안타깝게도 지능이 떨어지는 난폭한 몬스터들은 제압할 필요성이 있었으…… 서은하가 그러한 임무를 수행 중이었다.
“아, 우리가 제일 늦은 건 아니지?”
“네, 다들 바쁘다 보니까 이제야 도착하고 있어요.”
그때—
두두두두——
저 멀리, 한 대의 거대한 군용 수송기가 다가오고 있었는데, 그것의 하단부에 거대한 인영—거신병 한 기가 매달려 있었다.
“아, 탈로스가 왔네요.”
「”(^▽^)」
그 녀석은 이쪽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었고, 그럴 때마다 군용 수송기가 아슬아슬하게 흔들렸다.
***
“하— 와이트 홀이 있었을 때가 좋았는데, 종일 비행기 타는 것도 힘들단 말이지…….”
그렇게 푸념을 내뱉는 건 세계수의 관리자 도널드 해리스였다.
그는 와이트 트리 가드 단장, 이제는 차드 공화국의 국방부 장관이 된 피터 클라크와 마주 앉아 있었다.
“하하— 영감님은 워낙 방구석에만 계셔서 위그드라실 시티에 마실 나오는 것도 힘들다고 하시지 않습니까?”
“…… 뭐, 이 자식아?”
“이 자식이라니, 저도 이제 한 나라의 장관 되는 사람입니다.”
“쯧쯧 권력의 맛에 취하지 마라, 애송아. 그나저나 에밀리아 뮐러, 그 계집애는 어디 간 거야?”
그 물음에 피터 클라크는 한숨을 내쉬었다.
“……같이 왔는데, 사라졌습니다.”
그러자 도널드 해리스가 킬킬 웃었다.
“쯧쯧— 아직도 술에 찌들어 사는군?”
그의 말처럼, 에밀리아 뮐러는 도착과 동시에 아직 시작도 안 한 행사장 한쪽에서 홀로 소주를 까고 있었다.
“……그래도 술에 망가지는 간을 힐로 복구할 수 있어서 다행이죠, 뭐.”
그때, 두 남자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들은 모두 제복 차림이었는데, 다름 아닌 김강석과 최정철이었다.
“아 두 분 먼저 오셨군요?”
김강석이 다가오며 악수를 청했다.
“한 반년만입니다. 이제 그쪽은 평안하죠?”
“예, 다 정리되고 안정화되고 있습니다.”
김강석은 이제 준장 계급장을 달고 있었다. 그리고 최정철 장군은 이제 별 4개, 대장 계급으로서 한국의 AMT 부대의 최고 지휘관이 되었다.
“자자— 곧 파티가 시작될 것 같으니 안으로 들어가시죠.”
그렇게 참석자 모두가 모이자 파티가 시작되었다.
이 고결한 영웅들이 우아할 것 같지만…….
“—여기, 소주 한 병 더 주세요!”
“후…… 성녀님, 체면을 차리시죠.”
“내가 왜 성녀야? 크— 나 이제 성녀 아니야!”
이곳에 모이는 영웅들 상당수가 한국인이었기 때문인지, 첫해에는 우아한 요리들이 가득했으나, 작년부터는 삼겹살에 소주가 대표 메뉴였다.
그렇게 삼겹살 굽는 연기가 자욱한 행사장 안에서는 익숙한 얼굴들이 모여서 대화를 나누었다.
“그때는 정말 대단했죠. 그가 그렇게 등장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을 겁니다.”
“저도 그때 그 전장에 있었는데, 하…… 진짜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만 계속 나오더라고요.”
그렇게 옛 영웅담과 추억들이 오고 가며 파티의 분위기가 고조되어가자 영웅들의 얼굴도 하나둘씩 붉게 물들어갔다.
그중에서도 가장 빨간 얼굴은 단연 박준모였다.
“윽— 현욱이 형…… 제가 그분을 형이라고 불러본 적이 없어요…… 언제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왠지 모르게 무섭기도 해서…… 끅—”
그는 벌써 얼큰하게 취했는데, 그렇게 정신을 못 차릴 때마다, 손에서 전류가 흘러나오곤 했으니…….
파지지지——!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의 손아귀에서 흘러나온 전기가 식탁을 타고 흐르는 바람에 곳곳에서 비명이 터졌다.
그리고 옆에 앉아 있던 김세희가 기겁하며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악! 썅! 이 새끼는 취하기만 하면 피카추가 되고 지랄이야! 야! 들어가서 자!”
그러자 박준모는 비틀거리며 자신의 양손을 들어 보였다.
“어— 어…… 드디어 제 능력이…… 돌아온 걸까요.”
그는 오래전부터 쌓아온 둔한 천재라는 이미지답게, 여전히 마나 활용 능력의 복구가 더딘 편이었다. 그런데 술만 마시면 능력이 제멋대로 발현되곤 하는 것이었다.
그때, 누군가 박준모를 일으켜 세웠다.
“야야— 일어나 바람이라도 쐬자.”
그는 다름 아닌 안민태였다.
그는 어느덧 중사 계급장을 달고 있었다.
그는 평소에는 서은하 휘하에서 한 개의 작전 팀을 지휘하고 있었고, 오늘은 이 행사장의 경비 총책임자를 맡았다.
“아, 끅— 이게 누구십니까, 안민태 상병님…….”
“하, 상병? 이 자식이 아직도 과거에서 헤어나오지를 못하고 있네?”
“힉— 끅— 제가 항상 감사드리는 거, 알고 계시죠?”
“그래그래, 저기 태용이도 왔으니까 같이 바람 좀 쐬자.”
그의 뒤에는 한때 같은 중대에서 함께 싸웠던 최태용이 있었다. 그도 역시나 중사 계급장을 달았고, 여전히 안민태와 같은 팀에서 임무를 수행 중이었다.
세 사람은 테라스로 나갔다.
“후…….”
박준모가 난간에 기대더니, 비틀거리며 어딘가로 손짓했다.
“……저기, 보, 보이십니까?”
그곳은 남산의 중턱, 산등성이였다. 그리고 잘 보이지는 않았으나 아마도 AMT 초소가 있는 곳이었다.
“저 초, 초소 근처에서 현욱이 형이랑 제가 근무를 서는데 고블린 게이트가 나타났었습니다.”
이에 안민태와 최태용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랬었지? 그리고…… 4차 웨이브도 저기에서 시작했었잖아?”
“예, 근무 교대 중에 갑자기 현욱이 형이 잠깐— 하고 우리를 멈춰 세우더니 어디에선가 고함이 들렸다면서, 저보고 나이트 비전으로 위병소 쪽을 확인해보라고 했는데……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렇게 말하며 최태용은 킬킬 웃었다.
“와— 진짜 생각해보면 귀신 같은 감각 아닙니까?”
이곳 남산 전체가 ‘언럭키 이벤트’로 봉쇄되었던 날이었는데, 그게 바로 4차 웨이브의 전조였다.
그러자 안민태 역시 감상에 젖은 표정으로, 남산을 훑어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강철비가 처음으로 쏟아졌었지…….”
“그게 클라이맥스였죠. 와, 진짜 어마어마했어요.”
“그래, 내 인생 최고의 장면이었던 것 같다.”
그간의 여정을 떠올리면서, 그들은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들의 시선은 이내, 저 멀리, 스틸레인 동상에 향했다. 이현욱은 다른 형태지만, 여전히 남산에 서 있었다.
“…….”
그런데—
“어!”
별안간, 최태용이 그렇게 탄식을 내뱉었다.
“야, 왜 그래? 네가 그렇게 소리치면 놀란다고, 나!”
최태용은 예나 지금이나 사수 계열이었기에 눈이 좋았고, 항상 다른 이들보다 먼저 위기를 감지하곤 했다.
그리고 그와 항상 함께해온 안민태로서는 반사적으로 전투 모드에 돌입할 수밖에 없는 신호였다.
“안 팀장님, 저기, 도, 동상 앞에…… 모글레이가 움직입니다.”
그 말에 안민태는 콧방귀를 뀌었다.
“뭐? 이 새끼가, 너 행사장 경비 총괄하니까 몰래 술 퍼마셨냐?”
“에이, 아닙니다! 잘 보십시오!”
그리고 정말로—
훙——!
한 자루의 모글레이가, 분명히 단단히 지면에 고정되어 있을 모글레이가 허공으로 치솟더니, 건물 뒤편으로 날아가 버리는 게 아닌가?
“……..”
그 순간, 세 사람은 멍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저 모글레이는 가짜가 아니었다. 즉 개당 2t…… 혹은 50t이 나가는 진짜도 있었다.
그게 혼자서 허공으로 날아갈 일은 없으니, 누군가 마나를 이용해서 들어 올렸다는 게 될 테고 그 정도의 힘을 가진 이는…….
“…….”
단 한 명 밖에 없다는 걸, 세 사람 모두가 직감했다.
“—와, 왔다!”
결국, 안민태가 저도 모르게 꽥하고 소리쳤다. 그러자 행사장 안에 있던 이들이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는 그들을 바라보며 확신에 찬 표정으로 외쳤다.
“……스, 스틸레인이 왔어요!”
그러자 영웅들이 테라스로 우르르 몰려나왔다.
“—응? 그게 무슨 말이야?”
“뭐야, 안 중사도 취했나?”
그러자 안민태는 고개를 내저으며 항변했다.
“저, 저기 동상 아래에 박힌 모글레이가 갑자기 치솟아서 어디론가 날아가는 걸 저희 셋이 봤습니다.”
“예, 저도 봤습니다!”
“끅— 저, 저도요…….”
세 사람이 연달아서 공통된 진술을 하자, 영웅들 사이에서 술렁임이 퍼졌다.
“음…… 그런데 어디로 간 거야?”
“그게 사실이라면, 저 모글레이를 움직일 정도의 마나 운용력을 가진 플레이어는 거의 없긴 한데…….”
그러자 그들은 모두 고개를 들어 올려서 하늘을 보았다.
만약, 스틸레인이 등장한다면 언제나 그랬듯이, 강철비와 함께 하늘에 떠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늘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이내 곳곳에서 한숨을 흘러나오며, 헤프닝으로 끝나려던 찰나—
“……그런 등장은 이제 안 합니다.”
등 뒤에서, 익숙하고도 오래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자 영웅들이 하나둘씩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곳에 서 있는 한 명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
이 파티의 주인공이거늘, 3년째 참석하지 않았던…… 스틸레인, 이현욱이 정말로 그곳에 서 있었다.
“제가 위에서 내려다보는 건, 더 잘 쓸어버리기 위함이었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요.”
그 말뜻에는 여러 가지가 함축되어 있었다.
그리고 손에는 모글레이가 들려 있었는데, 그게 서서히 작아지더니 손바닥만 한 크기로 변했고, 그는 그걸 주머니에 넣었다.
“…….”
그는 영웅들을 바라보며 멋쩍게 웃더니, 입을 열었다.
“아…… 무슨 파티인지는 모르겠지만, 계속 진행해도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도 참석하고 싶네요.”
그는 한 명의 사람으로, 세상에 돌아왔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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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을 먹는 플레이어 (完)
221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