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el Warrior RAW novel - Chapter 13
0013
“보통 늑대가 아니야. 어떻게 했는지 몰라도 아이들을 여기까지 유인한 것 같다.”
주변을 훑어보면서 더욱 확신을 가진 사냥꾼 게릭의 말을 드낙은 주의 깊게 들었다.
“물었다면 피가 났을 것이고, 상식적으로 세 명의 아이를 한 번에 여기까지 끌고 오는 건 불가능해. 피로 길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그런 게 전혀 없다.”
“여기까지 유인하고 급습해서 그 지경을 만들었다는 거죠?”
“그래. 영악한 놈이야. 원래 야생 늑대가 영악하다고 해도 정도가 있는 법인데, 이건···심해.”
인간을 유인하다니. 어린아이라고 해도 눈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숲의 무서움은 다양한 방법으로 전수되는 경험치였다.
〈검은 늑대(Mavros lyko)〉. 마브로스 리꼬라 불리는 몬스터.
“검은 늑대, 그놈에 대해서 잘 모르던 눈치시던데.”
“잠도 안 자고 조상님들의 메모장을 훑어보았다. 이게 정리한 거다. 그림뿐이지만, 이해하는데 어려움은 없었지.”
휙 하고 던져진 줄로 묶인 양피지를 잘라서 엮어만든 것을 드낙이 요령 좋게 받았다. 그곳에는 그림이 그려져있었다.
흉포하다기보다는 쭉 찢어져서 얌체 같아 보이는 눈을 하고 있는 검은 늑대의 모습이 그려져있었다. 눈을 크게 해서 일부러 부각시킨 것을 보니 그림을 그린 사람의 의도를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이건 본 적이 있네요. 사람의 옆구리를 앞발로 넘어뜨리고, 물러나서 어둠 속으로 끌고 간다.”
키텐의 죽음.
그것을 드낙은 현장에서 보았다.
“놈이 자주하는 공격법이야. 덩치가 크고, 스피드가 빠르지. 길쭉하고 균형이 쉽게 무너지는 두 발로 선 사람을 넘어뜨리는 건 습관이나 다름없어.”
네 발로 단단히 균형을 잡고 있는 사람을 넘어뜨리는 것보다는 두 발로 선 사람을 넘어뜨리는 것이 수월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을 검은 늑대는 잘 알고 있다는 반증이었고, 말 그대로 본능처럼 목을 물고 고개를 털어서 찢어버리는 육식동물의 움직임처럼 유전자적으로 내장된 공격 습관이라고 할 수 있었다.
드낙은 홀린 것처럼 그림이 그려진 양피지 메모장을 훑었다. 머릿속으로 뭔가가 빨려 들어오는 것 같았다.
“아.”
아찔함을 느끼면서 눈을 껌뻑였다.
“괜찮아? 왜 그래?”
“아뇨. 이거 보세요.”
드낙은 기묘한 감각에 휩싸인 채 중간 부분을 보여주었다. 그곳에는 화살이 꽂힌 검은 늑대의 그림이 있었는데, 화살이 바닥에 떨어지고 핏자국과 함께 있는 그림 다음에 멀쩡한 검은 늑대로 이어지고 있었다.
“부상을 빨리 회복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아요.”
그것을 본 사냥꾼 게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볼 수도 있겠는걸.”
“놈은 똑똑하고 영악하잖아요. 치사한 놈이 자신이 찔릴 수 있는 횃불빛으로 뛰어든 것부터 이상하잖아요. 어디가 꿰뚫리든 빠르게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거죠.”
그럴싸했다. 덤벼서 오는 리스크를 상쇄시킬 수단이 있다는 추측은 믿을만했다. 이렇게 유인해서 복수극, 철저한 감정을 해소하는 짓을 벌이는 놈이었다. 더군다나 〈몬스터〉로 규정되었으니 당연히 평범함과는 궤를 달리할 것이다.
“몬스터는 사실 난 본 적이 없어. 놈의 눈이 회복되었다면 추적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야.”
드낙도 인정하는 바였다. 덩치가 곰과 비슷한 놈이었다. 성인남성 2명이 발악을 해도 이기기가 힘들다. 차라리 여러마리였다면 〈킬 더 배틀〉을 통해서 승산을 획득했겠지만 검은 늑대는 하나였다.
“키텐이 덮쳐진 것을 눈앞에서 봤어요. 우리 중 한 명만 뜯겨도 끝이죠.”
사냥꾼 게릭은 양피지 메모장을 다시 가져가서 뒤적거렸다. 그리고 마지막 그림을 보여줬다. 족히 10명이 넘는 사람들이 장창으로 쑤시고 있었고, 도끼날로 머리를 내려치고 있는 1명이 있었다.
“못해도 10명은 떼로 달려들어야지 잡는 놈이야. 이걸 왜 이제야 본 거지.”
졸면서 그렸는지 게릭은 한숨을 쉬었다. 혹은 열에 뻗쳐서 잊고 그대로 추적에 몸을 던진 것일 테지.
“놈은 불을 무서워할까요?”
“그야 짐승이니까 무서워하겠지.”
드낙은 그럼 됐다는 식으로 말했다.
“그럼 싸워보죠.”
“어떻게?”
“불로 둘러쳐서 태워버리는 거죠. 털이 그렇게 수북한 놈인데, 뛰쳐나와도 불에 아주 잘 탈걸요?”
“흠. 그게 될까···”
드낙은 입에 침을 발랐다. 그의 욕망에 불이 지펴졌기 때문이었는데, 양피지 메모장을 보면서 생긴 기묘한 현상을 접하면서 〈검은 늑대〉를 사냥하면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전생자의 힘〉. 그 검은 연기를 풀풀 내뱉는 문을 통과하면 얻어지는 스킬 같은 것.
하찮은 산골마을의 목장에서 태어난 차남이 이 세계에서 최소한의 문화를 영위하며 살기 위해서는 그 힘이 절실했다.
드낙은 몇 번이고 게릭을 설득하려고 애를 썼다.
“어둠 속에서 놈은 기고만장하겠죠. 그때 미리 함정을 마련해두고 오기를 기다리는 겁니다. 밤에 온다면 미리 함정을 쳐놓을 수 있잖아요?”
“〈화염 덫〉이라. 그럴싸한데···문제는 위험하다는 거야. 왼쪽 눈의 부상이 낫기 전엔 놈은 덤벼오지 않을 것이고 그전에 찾아낸다면 함정을 설치하지 못해.”
두 가지의 선택지가 있었다. 그중에서 〈검은 늑대〉의 상처가 빠르게 치유된다는 것이 확실하다면 함정을 파는 것이 좋았다. 더불어서 그런 리스크가 존재한다는 것부터 게릭을 위축시켰다.
결국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도망치거나, 함정을 파거나. 그 중에 결정날 수밖에 없었다. 드낙은 일부러 도망친다는 선택지를 제시하지 않는 뉘앙스를 풍긴 것이다.
‘애송이가 제법이야.’
락손에게 하도 언변으로 당해서 게릭은 속지 않을 수 있었다.
‘놈을 지금 놓친다면 다시는 붙잡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갑자기 튀어나온 놈이다. 분명 떠돌이가 틀림없었고, 지금 이 추격을 중단한다면 영영 보지 못할 경우가 생길 수 있었다. 그렇게 포기하기에는 적에게서 뽑아낸 피는 적었고, 자신이 얻어맞은 피는 많았다.
키텐의 죽음. 알렉의 자식 3명의 죽음. 어느 것 하나 게릭의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 것이 없었다.
‘드낙은 오죽할까.’
오래 살지 못하면서 세월의 풍파가 적은 드낙이다. 그 마음은 활화산이나 다름없을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드낙은 이미 냉정을 되찾은지 오래였다. 어두운 밤, 검은 늑대의 앞으로 한 걸음 내디디며 만용을 부린 드낙은 여기에 없었다.
오직 이득을 생각하는 드낙만 있을 뿐이었다.
“좋다. 해보자. 놈의 가죽이나 내장이라도 들고 마을로 돌아가야 하지 않겠냐?”
“남자가 칼을 빼어들었으면 뭐라도 잘라야죠.”
피의 추적은 간단했다. 눈이라는 것은 쉽게 지혈되는 곳이 아니었다. 하지만 검은 늑대 또한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진짜 괴물 같은 놈이네요. 이거 보세요. 점점 핏방울이 떨어지는 간격이 벌어지고 있어요.”
“달리는 속도가 빨라진다는 소리거나 지혈이 되고 있다는 것이겠지.”
둘 모두일 수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좋지 않았기에 보다 빠르게 추적했다. 드낙이 〈대충잡이〉를 맡았고, 게릭이 〈자국잡이〉를 맡았다. 대충잡이가 하는 일은 빗방울의 방향으로 무작정 향하면서 혈향을 맡거나 계속해서 족히 50걸음까지 멀리 빨리 진행하는 것이었다.
자국잡이가 하는 일은 꼼꼼하게 하나하나 추적해서 움직이는 것이었다.
두 개 모두 필요한 작업이었다. 자국잡이가 길을 놓치면 대충잡이가 빠르게 주변을 멤돌면서 또 다른 흔적. 그중에서도 굵직한 것을 찾아내서 이어지게 만드는 것이다.
자세히 보는 것과 멀리 보는 것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이 추적술의 기본이었다.
나뭇잎의 피.
때때로 피를 토한 흔적 그리고 토사물.
희미해져가는 발자국과 반대로 깊어지는 발자국 등, 컨디션의 난조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거 은근히 쪼이는 맛이 있네.’
드낙은 그 속에서 재미를 느꼈다. 공포 영화의 클라이막스 직전의 고조감이 그의 뇌리를 흥분시키게 만들었다. 변태 같았지만 이런 중세 판타지 세계의 삶은 현대의 자극적인 삶과 차원이 다를 정도로 밋밋했다.
마약의 강렬함을 느끼다가 어느 순간 시골, 무인도에 떨어진 격이나 다름없었다. 미치고 팔짝 뛸 노릇에서 느끼는 짜릿함은 각별할 수밖에.
“끊겼다. 뭐 찾은 거 있나!”
“여기요!”
드낙이 단번에 소리쳤다. 허투루 주변을 매섭게 둘러보며 선행하여 간 것이 아니었다. 몇몇 의심스러운 포인트를 미리 포착해두고 있었던 것이다.
수풀을 헤쳐보고 킁킁거리며 숨을 들이켠 사냥꾼 게릭은 후각을 보다 농밀하게 하기 위해서 수영하듯이 코를 막고, 입으로만 호흡했다. 계속 냄새를 맡으면 후각이 그 냄새에 대해서 마비되고 무뎌지듯이 구강호흡만 해야 할 때가 사냥꾼에게는 많았다.
‘혈향이 느껴진다.’
입으로만 호흡하며 드낙이 보여주는 흔적을 보았다.
“나무를 타고 올라갔군.”
코맹맹이 소리를 냈지만 드낙은 웃지 않았다. 훌륭한 사냥 기법이었다. 특히나 후각을 예민하게 관리할 수 있다는 것이 대단했다.
마치 미식가가 한 입 먹고, 맹물로 입을 헹구는 것과 같았다.
사냥꾼 게릭이 한숨을 한 번 쉬었다. 그런 덩치로 나무를 타고 움직였다는 것은 몸을 움직일만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드낙은 되려 희망적이었다.
“할 만하네요.”
“왜?”
“그때, 깊은 숲에서 대낮에 어슬렁거리던 놈이에요. 그런 놈이 나무를 탄다?”
“부상을 입고, 상태가 안 좋다는 뜻이구나. 되려 발악하는 것이었어.”
상대의 심리를 단번에 꿰뚫는 드낙을 보며 사냥꾼 게릭이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드낙을 바라보았다.
“너, 대단한데? 검은 늑대라도 된 거냐? 예리해.”
“뭘요.”
드낙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그리고 하나를 깨달을 수 있었다. 사냥꾼 게릭에게는 그저 쓸만한 〈양피지 메모장〉이었지만 드낙에게는 달랐다. 보다 완벽한 〈정보 전달〉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상해. 나한테 너무 많은 힘이 있는 것 같아.’
괴이한 기분은 거부감마저 들었다. 왠지 위가 아파졌고, 배를 문질렀다. 그것을 못 알아차린 게릭은 성큼 나무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손으로 나뭇가지를 살살살 건드리면서 아래로 당겼다.
후두둑.
하나가 굵기에 비해서 너무나도 쉽게 꺾였다.
“당첨이군.”
덩치 큰 놈이 지나갔으니 나뭇가지의 윗부분이 당연히 상했을 것이고 적은 힘에도 꺾이는 것이다. 그 방향을 확인한 사냥꾼 게릭이 나무에서 내려와서 천천히 확인하고 움직였고, 손으로 가리켰다.
“예예.”
드낙은 〈대충잡이〉였으므로 선행했다. 추적하고 시야를 넓게 해서 혹시 모를 적을 탐지하는 것이 드낙의 임무였다.
주홍빛으로 물들어가는 숲에서 두 사람은 새로운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포식했군.”
“실제로 많이 먹은 건 아니네요.”
노루 하나가 죽어있었다. 〈가시털 노루〉 〈가시털 사슴〉이라고 불리는 동물이다. 그중에서도 새끼였다.
“새끼 혼자 다녔을까요?”
“아니. 어미도 있었어. 어미 외에도 제법 무리를 이루고 있었네.”
주변 수풀을 확인한 사냥꾼 게릭이 대꾸했다. 부러지고, 헤쳐졌으며 입으로 잎을 뜯어먹은 흔적도 한 곳에 집중되어 있지 않았다. 초식동물의 경우 한 가지에 있는 잎을 다다닥하고 생선을 한 입에 집어넣고 뼈만 남기고 뽑아내듯이 묘기를 부리면서 싹쓸이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것이 여러 곳에서 다채롭게 발생되었다면 숫자가 많았다는 뜻이었다.
“새끼만 먹은 것은 큰 놈을 사냥할 여력이 없었다는 것이겠죠.”
내장 빼고 살이 두툼하고 집어삼키기에 적당한 허벅지를 뜯어먹었고, 그 외에는 등짝과 목을 비롯해서 갈빗살을 뼈째로 뜯었다. 내장은 그대로였고, 내장이 있는 곳에는 벌써부터 파리가 꼬이고 있었다.
“드낙. 머리를 봐.”
드낙의 시선이 옮겨갔다. 머리는 온전하다고 할 수 있었는데, 기괴한 것은 왼쪽 눈알만 쏙 빼먹었다는 것이다.
“꺼림칙한데요.”
그가 인상을 찌푸리며 괜히 팔뚝을 쓸었다. 미친 괴물 녀석을 추적하는 기분이 크게 마음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이래도 계속 추적할래?라고 오함마로 마음의 문을 쾅쾅쾅 두드리면서 소리 지르는 살인광처럼 느껴졌다.
“뭔가 의미가 있을지도.”
주홍빛으로 물들어가는 숲이었기에 조금 떨어진 곳에서 야영을 하기로 했다. 하지만 드낙은 두려움을 떨쳐내기 어려워했고, 그건 사냥꾼 게릭도 마찬가지였다.
“장작을 뭘 그렇게 모아놔?”
“혹시 나타나면 어쩌려고요. 이걸로 그냥 사방팔방 불 지를 거예요.”
“겁쟁이 놈. 흐흐!”
물론 게릭도 엉거주춤 굵직한 장작을 모아왔다. 던지기 쉬운 것들이었다. 만약을 대비하고 나서는 어둠이 내려앉았다. 드낙은 품에서 치즈 한 덩이를 꺼냈다. 목장을 운영했기에 가져오는데 무리가 없었다.
가족 사이에 장사를 하면 도매금으로 가져올 수 있는 것이 혈연의 힘이다.
치이이이.
나뭇가지에 꽂아서 그대로 구웠다. 고소한 향이 퍼져나가자 게릭이 군침을 꼴딱였다.
“육포랑 바꿔 먹을래?”
“향신료 쳤어요?”
“훈제향에다가 3종류의 향신료에 소금은 필수적으로 넣은 아주 자극적인 맛이지.”
드낙의 눈이 조금 커졌다. 그것을 거부하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향신료를 쏟아부은 사냥꾼 게릭만의 육포였다. 거래는 성사되었다. 아주 고소한 맛이 나는 치즈는 몰캉하게 구워놓고 자극적인 육포를 한 입하고 입가심으로 넣으면 아주 맛깔이 났다.
자고로 매운맛에는 치즈만큼 어울리는 것이 없다고 말하듯이 향신료와 소금이 들어간 육포와 고소한 치즈의 조합은 최강이나 다름없었다.
사사사사사-!
밤바람이 크게 불어와서 수풀을 헤집었다. 그 속에서 드낙과 게릭은 음식의 향을 가르고 맡아지는 혈향과 늑대의 노린내를 맡을 수 있었다. 누가 뭐라고 할 것 없이 몸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