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el Warrior RAW novel - Chapter 188
0188
길을 떠나면서도 이실레아는 새벽 수련을 빠짐없이 했다. 물론 드낙도 함께였고, 부대장 두 명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이스핀은 〈자유기사 이실레아〉의 등장으로 억지로라도 새벽에 일어났다.
출세욕하면 이스핀도 빠지지 않는다.
이것저것 딴생각을 했을 정도였는데, 지금은 좀 나아지긴 했다. 물론 그건 이스핀이 알아서 자제한 것이 아니었다. 자유기사라는 사회적 지위가 그의 정수리에 정을 박아 넣은 것과 같았다.
대놓고 일을 벌이든, 몰래 일을 벌이든 어느 것이든 하기가 두려운 것이다.
“후욱! 훅!”
특히나 이실레아는 비전과 검술의 연습보다는 육체의 단련에 집중했다. 가을이 시작되면서 이 빌어먹을 개-같은 여성의 육체는 다시 살이 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과학적인 육체 단련이 없는 세상이었기에 효율이 낮은 단련으로 목표지점에 도달해야 했다.
그것은 매우 고된 일임은 틀림없었다. 체지방률이 남자보다 높았기에 이실레아는 적어도 드낙보다 3배는 더 수련에 매진해야지만 나란히 설 수 있었다. 물론 그것은 체중에 따른 근육 비율에 불과했다.
몸무게가 격이 달랐기에 무조건 붙으면 드낙이 우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후우!”
드낙은 땀을 크게 빼고 난 뒤에 이실레아가 단련을 하면서도 육포를 입에 물고 있는 것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최근 몇 번 대련하면서 우-직하게 힘으로 찍어누르는 방법을 자주 사용했더니 자신도 체중을 크게 늘릴 생각인 듯했다.
‘저러다가 체하면 어떡하려고.’
무식했지만 그녀의 눈동자에 깃든 독기를 보고, 말리지는 않았다. 소설에서나 볼법한 근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기야 그러니까 여자의 몸으로 무인(武人)이 된 것일 테지.
날씨가 선선해졌기에 자연스럽게 드낙의 수련시간도 늘어났고, 그것에 영향받은 이실레아의 수련시간도 더 늘어났다. 항상 꼴찌로 마무리를 하는 그녀였다.
부대장들은 가장 늦게 일어나 가장 일찍 단련을 끝냈다.
거기에 대해서 드낙은 별말 하지 않았다. 조금씩이라도 새벽 수련을 하는 것 자체로 의미가 있었다.
촤악!
전날에 찾은 샘물에서 퍼 온 물을 엎어 쓰면서 드낙이 땀을 씻겨보냈다. 물이 아주 차가워서 짜릿했다. 땀과 열이 한 방에 씻겨내려갔다.
대충 옷을 말리기 위해서 바위에 걸터앉아 있을 때, 이실레아도 단련을 끝마치고 물을 마신 다음에 그대로 엎어 썼다.
“흐으으, 읏! 햐아아!!”
괜히 야릇한 소리에 드낙의 귀가 쫑긋했다. 이실레아가 다가왔다. 슬렌더 하지만 골격 자체가 떡 벌어진 이실레아는 키만 작았지 무인의 몸 그 자체였다.
“확실히 가을이 좋지 않습니까?”
“예. 시원한 바람이 불어서 괜히 검 한 번 더 휘두르게 됩니다.”
이실레아는 겉에만 젖은 가죽 주머니에서 육포를 꺼내서 드낙에게 권했다. 그는 거부하지 않았다. 하나를 입에 물었다. 짠맛이 강하고, 조금 공정이 안 좋았는지 비린내가 좀 났다.
‘훈제는 안 했네.’
저급한 육포였다. 말 그대로 양 하나만 보고 산 듯했다.
“직접 만든 겁니다. 좀 비린내가 나지만 먹을 만합니다.”
“아. 직접 만드셨군요.”
“말리는데 고생을 했는데, 짐마차에 걸어서 빨래처럼 널어놨었습니다. 벌레나 새들을 쫓아준 사람들과 분배했습니다.”
드낙이 고개를 끄떡이며 육포를 주제로 제법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이실레아는 뭐라도 직접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그녀가 만든 짐마차도 한 대 사용하고 있는 중이었다. 목공에도 재주가 뛰어났다.
‘소설 속 주인공 같네.’
돈을 아끼기 위해서 대부분 자급자족 혹은 물물 교환을 하고 이것저것 손댄 것이 많은데도 다재다능. 이실레아는 어느 판타지 소설의 주인공 같은 포지션을 가지고 있었다. 뛰어난 잡캐였다.
거기에 독기와 근성까지.
“그런데, 드낙 경은 부대장들에게 비전을 하사해주셨다고 들었는데, 그들을 방계로 받을 생각이십니까?”
“그것까지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그건 왜 물으십니까?”
“비전을 너무 쉽게 내어주신 것은 아닌가 싶어서···”
걱정스러운 그녀의 말에 드낙이 빙긋 웃었다. 사실 저런 반응이 일반적이었다. 괜히 이스핀과 도렌이 드낙을 따라서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다. 그러한 〈대단한 것〉을 드낙이 하사한 것이다.
“제가 제 나름대로 어레인지 한 비전입니다. 그래서 쉽게 내어준 것이죠.”
“아하.”
그 말에 이실레아가 납득했다. 깊은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은 비전은 하자가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현대인의 상상력을 몰랐다. 또한 드낙에게는 〈마지막 불꽃〉이라 불리며 칭송받음과 동시에 〈기사 살육자(Knight Slayer)〉라 불리며 수많은 남부 기사를 죽인 〈세파리아스 불파겐〉과 검은 꿈에서 대련을 할 수 있었다.
그 비전의 완성도는 상상 이상이었다.
아침 식사를 준비하며 이스핀과 도렌이 대화를 이어나갔다. 도렌은 항상 걱정을 달고 살았다. 특히 이스핀에게 이것저것 주워들으면서 그 걱정은 그럴듯한 걱정이라서 괜히 이스핀도 불편할 때가 있었다.
“이러다가 우리 내쳐지는 것 아닌가···”
최근 드낙의 관심에서 멀어진 도렌이 걱정을 하며 수프 안에 곡물 가루를 집어넣었다. 고소한 향이 퍼져나갔다.
탁! 탁!
밀가루에 물을 붓고 손으로 살살 데우면서 부풀리던 이스핀이 툭하고 말을 내뱉었다.
“시끄럽고, 병사 관리나 잘해. 말 타는 것도 연습하고. 그러려고 말을 내어준 거잖아.”
“네가 그랬잖아. 걱정 안 돼?”
이스핀은 또 한숨을 내쉬었다. 최근 도렌의 걱정은 그의 심기를 건드리고 있었다.
“무관심 좀 받는다고 뭘 그렇게 걱정하냐. 지금 하라는 것만 해도 괜찮다. 그만 좀 해라.”
동글동글 만 것을 물로 씻어낸 돌 위에 놓았다. 모닥불의 열기로 이미 데워진 돌판이었기에 벌써부터 빵냄새가 났다. 이스핀은 말을 이어나갔다.
“그렇게 걱정이면 게제라스 총관한테 한 번 조언을 구해볼까?”
“엉? 그건 너무··· 민폐가 아닌가?”
“우리도 부대장인데. 조언을 구하는 것 정도로는 화를 안 낼 거다.”
내친김에 이스핀이 바로 일어났다. 도렌이 엉거주춤 따라 일어났다. 두 사람은 대충 열기에서 하던 음식을 떨어뜨려놓고 게제라스에게 향했다. 게제라스는 전투 노예들이 음식을 만드는 곳에 떡하니 자리를 하나 차지하고 있었는데.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가만히 눈을 감은 채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다. 익숙한 일인지 전투 노예들은 그러려니 하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거나 할 일을 했다.
‘이거 말을 걸어도 되나?’
중요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때 게제라스가 눈을 떴다. 그리고는 바닥에다가 뭔가를 쓰면서 중얼거렸다.
“해도 되나. 하고 싶은데. 역으로 돌려서··· 양쪽으로 그냥?”
뭐라고 하는지 잘 들리지 않았기에 이스핀이 앞에서자 게제라스가 움찔하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이스핀이 참 좋은 사람처럼 웃음을 지었다.
“저··· 총관님. 조언 하나 구할 수 있을까 싶어서···”
“뭡니까?”
부대장이었고, 드낙에게서 비전을 하사받은 것은 드낙 무리의 중진에게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었다. 게제라스는 두 사람을 드낙의 방계가 될 사람들로 생각했기에 존대는 하고 있었다. 부대장들은 고민을 말했다. 그것을 들은 게제라스는 빙긋 웃었다.
물론 속내는 달랐다.
‘이딴 하찮은 고민을 하다니.’
〈버려진 영지〉에서 말 그대로 장원(莊園)을 뛰어넘은 봉토(封土)를 얻고 영지(領地)를 세우려는 것이 게제라스의 계획이었다. 그런데 이딴 조언으로 고민하는 부대장들은 정말로 하찮게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게제라스는 웃었다.
이스핀과 도렌은 비전을 하사받은 자들이다. 나중에 병(兵)의 지휘권을 받기에 충분한 자들이었다.
“부대장이라는 직책을 생각한다면, 무력을 높이는데 노력하고 병사를 이끄는 연습을 많이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특히 이실레아 기사님께서 전에 사용하셨던 〈원형진〉이라던가···”
부대장들이 그 소리를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충실하라는 말을 조금 늘어서 말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지만 충분히 두 사람을 설득할 수 있었다.
게제라스는 다시 눈을 감았다. 그가 고민하는 것은 전날 드낙과 독대하며 나누었던 것에 대한 것이었다.
‘〈브릴리언트 가문〉을 끌어들이면 지역 경제를 살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어떻게 끌어들인담.’
아주 무식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한 방이 있는 생각이기도 했다.
직접적으로 나선다면 게제라스의 입지가 낮아질 것이다. 무엇보다 드낙은 그것을 원하지 않을 터였다. 나중에 문제가 될 소지가 있었고 무엇보다도 리스크가 있었다. 하지만 게제라스는 충분히 감당이 가능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여자를 자유기사로 배출할 정도로 무재(武才)가 뛰어난 자가 이 세대에 없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드낙 님의 무력을 생각하면 말 그대로 출세욕에 미친 아귀들을 닥치는 대로 끌어모아도 배가 앞으로 갈 수 있다.’
〈피의 사도〉 그중에서도 〈피의 성소〉를 통해서 강화된 피의 괴물을 단신으로 잡는 짓은 트롤 이상을 잡는 것과 같았다. 버팔로 나이트와 동수를 이루는 평가를 내려도 괜찮았다.
하지만 그것을 주도함에 있어서 게제라스, 자신이 표면화되어서는 안 된다. 이유는 당연했는데, 드낙이 좋아할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드낙은 지금까지 보여준 것만으로 따지면 위험을 즐기고, 엄청난 행동력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겁이 많은 자였다.
그것을 게제라스가 아는 이유는 드낙의 경계심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면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위험에 거침없이 뛰어들고, 행동력이 대단하다는 점은 존경할 만했다.
게제라스의 고민은 계속됐다.
‘힘이 있는데 패도의 길을 걷지 않는 것이 우습지.’
남들이 보면 금방 무너질 길임에도 걸어갈 수 있어 보였다. 적어도 게제라스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
〈사냥꾼 마을〉이 보였다. 하지만 드낙 무리의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초병 하나 없었고, 마을의 목책 중 일부가 기울어져 있는 데다가 나무로 된 문 중 한쪽은 열려 있었고, 다른 한쪽은 바닥에 넘어져 있었다.
척 봐도 상태가 안 좋았다.
“수색대를 보내는 것이 좋겠다.”
드낙이 나섰다. 이실레아는 드낙 다음으로 강한 자였기에 남아야 했다. 만약 전투가 시작된다면 드낙을 대신해서 병사를 지휘해야 했기에 이스핀이 따라나섰다. 마을 내부가 어찌 되었을지 모르기 때문에 피맛을 본 이스핀이 제격이었다.
“도노!”
드낙이 말하자 도노가 단번에 그의 옆에 따라나섰다. 또한 추가로 늑대 4마리를 챙겼는데, 수색을 위해서 필요했다.
높낮이가 일정하지도 않고, 완만하게 구불거리는 길을 따라 드낙이 목책의 입구에 섰다.
부우우웅!
눌어붙은 피와 부패된 손에 다닥다닥 붙어있던 날벌레들이 단번에 날아올랐다. 손을 휘적거리며 드낙이 더욱 주변을 확인했다. 시체는 장애물에 쓰러져 있었는데, 뜯어먹힌 자국이 매우 심해서 뼈만 있는 곳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부위도 많았다.
“윽···”
잔뜩 부패된 채 금방이라도 밟으면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올라있는 배를 본 이스핀은 거리를 벌렸다. 드낙은 장애물에 박힌 화살을 뽑았다. 촉은 돌이 아니라 광물로 된 것이었다. 하지만 철은 아니었고, 구리와 다른 것을 섞은 합금으로 보였다.
그것을 알 수 있는 이유는 한 부분에 구리가 확실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공을 들여서 만든 합금은 아니다.’
떼어내어 힘을 줘보았다. 경도는 확실하게 받쳐주고 있었다. 단단했다. 또한 화살의 길이는 그리 길지 않았다.
‘고블린이군.’
드낙이 거침없이 안으로 들어가기보다는 되돌아가는 것을 결정했다.
“이스핀 부대장. 다시 되돌아간다.”
드낙이 던져주는 화살을 받은 이스핀이 병사들을 통솔하였다. 마을에서 500걸음 떨어진 곳에서 대기하며 이실레아가 늑대를 이끌고 빠르게 인근을 정찰했다. 활을 쥔 채 떠났던 이실레아는 한 손에는 검을 쥐고, 다른 한 손에는 새하얀 백발로 가득한 고블린의 목을 가져왔다.
“전투가 있었습니까?”
“전투라고 보기에는 조잡했고, 한 마리뿐이었습니다. 아무래도 늙고 병이 들자 버린 듯합니다.”
머리채를 잡은 고블린의 머리를 드낙에게 건네주자 그는 그것을 받아들여서 훑어보았다. 백내장을 앓은 것처럼 눈이 회백색으로 가득했고, 눈가로 누런 고름이 다닥다닥 알처럼 붙어있었다.
‘고블린인 것은 확실하군.’
마을 내부에 숨어있을지도 몰랐다.
“주변에 없는 것을 보니, 마을 내부로 들어가서 수색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습니다.”
드낙도 똑같은 생각이었다. 해가 지기 전에 그래도 목책과 집을 두는 것이 좋았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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