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el Warrior RAW novel - Chapter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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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놈이요?”
“그래. 그것 때문에 정말 미칠 지경이야.”
식량 창고의 도둑놈. 그것 때문에 락손은 아주 분노하고 있었다. 하지만 드낙은 이런 일에 나서고 싶지 않았다.
“맨 입으로 해달라는 것은 아니죠?”
“검술을 가르쳐주고 있잖아.”
“수업료는 착실하게 내잖아요.”
락손은 신경질적으로 양고기를 썰며 향이 강한 야채를 함께 먹고 난 다음에 물 한 모금을 조금 마셨다.
‘무엇을 줄까.’
조금 생각하던 락손이 이내 말했다.
“비전 하나를 알려주마.”
“비전이요?”
락손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사에게서 얻어낸 검술의 비전이다. 이것은 굉장히 귀중한 기술이지. 단순히 베고, 막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어떻게 다른데요?”
드낙이 크게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락손은 쉽게 대답해주지 않았다.
“그저 반드시 적을 죽일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모르는 놈은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지.”
“그런 걸 저한테? 겨우 잡도둑 잡는데 쓴다고요?”
락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다. 아마 꽤나 비싼 귀족 훈련소에 들어가면 기본으로 가르치고 있을지도 모르지.”
락손은 어깨를 으쓱했다. 아주 가벼운 것처럼 여겼다. 사실 그조차도 잘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런 모습에 드낙이 하나 물었다.
“그 비전으로 살아남은 횟수가 몇입니까?”
“셀 수도 없지. 특히나 검술을 제대로 못 배운 놈들에게는 100이면 100 통하니까.”
드낙이 제법 흥미를 가지는 모습에 락손이 한 가지를 말해주었다.
“검술의 비전은 셀 수도 없이 많다. 그중에서도 급이 있겠지. 하지만 결국 비전이라는 것은 〈정보〉의 차이다. 그 비전을 알면 막는 것이고, 모르면 죽는 것이지. 한순간의 승부가 바로 싸움 아니냐?”
알아서 나쁠 것 없다는 소리였다.
“얼마나 당했습니까?”
“오늘 확인한 목록만으로 생각한다면 못해도 절반이 사라졌어. 말 그대로 내 창고를 제집처럼 드나든 놈이야. 반드시 잡아야 해.”
“비싼 것도 털렸나요?”
락손이 고개를 저었다.
“귀중품을 창고에 넣는 놈이 어딨나. 그 창고는 식량창고로 쓰이던 것이야. 밀 포대가 가득 차있었는데···”
“쥐새끼는 아니고요?”
“그럴 공간이 없어. 매년 체크하고, 따로 덧대기까지 하는데. 쥐덫도 많고. 거기에 알지? 난 고양이와 개를 제법 잘 키우고 있다고.”
“개가 못 잡는 것도 이상한데.”
드낙의 말에 락손이 웃음소리를 냈다.
“좀도둑도 제법 재주가 있겠지. 아무튼, 식량 창고의 도둑놈을 잡아준다면 말했던 대로 비전 하나를 가르쳐주겠다.”
락손은 어차피 가르쳐줄 비전이었기에 아깝지 않았다. 돈 받은 만큼 해준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기도 했다. 기사를 살려주고 얻은 비전이었지만 싸움에서 멀어진 락손이 지켜야 할 비전도 아니었고, 소중히 대해야 할 비전도 아니었다.
“떠들썩하게 진행하지 않았고, 내가 가장 총애하는 농노 한 명만 썼으니 소문도 잘 안 퍼졌을 거다.”
“말스가 알고 있던데···”
“식량 창고에 간 것만 알겠지.”
괜한 소리에 락손이 즉답했다. 드낙은 고개를 끄덕였다. 맛있는 저녁 식사 대접은 자주 있어왔던 것이기도 했기에 락손을 속물이라고 말하는 것도 잘못되었다. 두 사람은 익숙하게 식사가 치워진 자리에서 포도주를 즐기면서 검술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유일한 스포츠이며, 시간을 재밌게 보낼 방법이었기에 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늦게 목장의 옆에 딸린 집으로 돌아왔지만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드낙은 차남이었기 때문이다. 가업을 잇지 않기에 자신의 살길은 자신이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목장일을 설렁설렁 도우며 얻는 동화 몇 닢과 다른 일을 하면서 얻는 돈의 대부분이 락손의 검술 수업료로 들어갔다. 물론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마을에서 화폐를 얻는 일은 지난한 일이었고, 락손에게 일감을 받기도 했다.
‘삼시세끼 먹여주는 것으로 만족해야겠지.’
집에서는 의식주를 책임져주는 것만으로도 드낙은 감사하고 있었다. 이곳은 그런 세계였다.
다음 날부터 시작된 잠복은 드낙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사정을 설명하면 빠질 수 있는 것이 목장 일이었다. 물론 돈은 못 받지만. 그게 중요했다. 이곳에서 자식에 대한 투자는 거의 없다시피했기 때문이다.
‘다른 일로 채우면 될 일이다.’
드낙은 한두 번도 아니었기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이것보다 더 가난한 곳에서는 자식을 팔아버리는 것도 심심찮게 있었기 때문이다. 현대 지구를 생각하면 안 되었다. 사실 산업혁명이 일어난 서양만 해도 어린이의 노동력을 착취하지 않았나.
낮에는 잠을 청하고, 밤에는 철야를 하는 나날은 3일 동안 이어졌다. 그나마 있는 수풀에 숨어 있는 것은 어린이나 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
허리춤의 숏소드를 쥐고 있던 손을 풀었다. 땀이 흥건했다. 미리 진흙을 만들어 놓은 곳에 손을 집어넣었다.
독이 있는 나뭇잎을 찢어서 냄새를 지우는 일은 정말 급할 때나 할 일이었다. 흙냄새도 나뭇잎냄새만큼이나 강렬하기 때문에, 피부에 독이 오르는 나뭇잎을 지긴 것보다는 진흙이 나았다.
결론은 위장에는 진흙이 최고였다. 피부가 올라오지도 않고, 냄새를 잘 차단해주기 때문이었다.
바스락, 스삭. 스륵, 쏴악.
‘왔다!’
이미 밤눈에 익숙해질 때로 익숙해진 드낙의 눈동자가 소리가 나는 곳으로 향했다. 진흙으로 잔뜩 발라둔 그의 금발은 달빛에 비치지도 않았다.
‘나랑 비슷한 체격이네. 어린놈이, 배가 고파도 정도껏 해야지.’
척 보아도 자신과 비슷한 또래로 보였다. 하지만 드낙은 자비 따위 없었다. 현행범으로 확실하게 잡아낼 생각이었다.
작은 검은 인영은 식량 창고로 향하더니, 땅을 순식간에 파기 시작했다.
‘헐?’
굴 파는 속도가 엄청났다. 믿을 수 없는 속도였다. 그러면서도 소리는 잘 나지 않았다. 개의 짖는 소리도 없을 정도로 적막했다. 기괴함에 드낙이 쉽사리 움직이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에 식량 창고로 쑥 들어갔다.
드낙은 아주 조심스럽게 충분히 시간을 들여서 접근했다. 숏소드의 검집을 뽑지는 않았다.
스슥, 스스슥! 스슥!
땅굴에서 다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몸을 숨기고, 그림자가 땅굴에 드리워지지 않는지 재확인하면서 기다렸다. 검은 인영이 머리를 내밀자마자 냅다 그대로 검집에 끼워 넣은 채로 숏소드를 강하게 휘둘렀다.
퍽!
말 그대로 기습이었기에 큰 소리 한 번 내지 못했다. 헛바람 들어가는 작은 바람 소리를 낸 것이 전부였다. 그대로 축 늘어지는 놈을 허리춤의 밧줄을 꺼내서 팔을 묶고, 다리를 묶어서 하나로 만들었다.
‘잡았다, 요놈!’
어둠 속에서 놈을 질질 끌어냈다. 덩치도 작은 놈이 체중은 제법 나갔기 때문에 들 수가 없었다. 기습이 아니었다면 기절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컹! 컹컹컹!”
드낙의 활동을 위해서 일부러 잡철 따위로 만들어진 쇠사슬을 하고 있는 사냥개가 짖어대었다. 락손의 집문을 드낙이 두드렸다.
3일 만에 잡은 놈이었다. 뿌듯했다.
“도둑놈 잡았습니다. 어르신~.”
“누가 어르신이냐?”
잠을 깊게 못 자는 늙은이인 락손이었다. 금방 문이 열렸다. 그리고 잡도둑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이게 뭐야! 고블린이잖아!”
“어?”
드낙은 그제서야 뒤를 도둑놈을 확인했다. 어둠 속에서는 구분하나 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야생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발달된 고블린은 체취라고 할 것이 없다시피했다.
“정말이네.”
드낙이 평범하게 말하자 락손은 고블린을 살폈다.
“무기는 곤봉이고, 잘 깎아만들었군. 들짐승 가죽으로 옷을 입은 것을 보니, 무리에 속하던 놈이 틀림없다.”
아주 심각한 표정과 태도에 드낙이 같이 쪼그려 앉아서는 물었다.
“무슨 문제가 있어요?”
“멍청한 놈. 복장이 이렇게 제대로 잘 갖춘 고블린이다. 혼자가 아니라는 뜻이지. 마을 근처에 부락을 만든 것이 틀림없다.”
그러더니 산짐승의 가죽을 돌로 짓누르며 돌리고 돌려서 빳빳하게 만든 가죽 주머니를 확인했다.
‘한 놈씩 왔다는 것은 이 고블린 혼자서 했다는 짓인데.’
아무래도 식량창고를 털어서 얻은 곡물을 이용해서 고블린 부락 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보였다. 잘 갈아진 돌칼 그리고 찌르기 위한 청동 단검이 그 증거였다. 한 마디로 잘 나가던 놈이라는 소리다.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이놈은 제 놈의 사리사욕을 위해서 여기를 턴 것 같다.”
퇴역 군인인 만큼 지식도 대단했다. 락손은 단번에 고블린이 지닌 물건으로 상황을 더듬어내어 윤곽을 만들고 그림판을 짰다. 그럴 경험과 지식이 그에게는 있었다.
“수고했다. 비전은 내일···아니다. 그냥 지금 가르쳐주마.”
“예? 지금요?”
락손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블린이 나타났는데, 내일부터 얼마나 바쁘겠느냐. 지금밖에 시간이 없다. 아니면 못해도 한 달 뒤에 배우고 싶냐?”
“그건 아닌데요.”
고블린을 재차 꽁꽁 묶은 다음에 연병장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수업이 이루어졌다.
“블록키렌 쥬크팡.”
“블록키···예?”
드낙이 멍청한 소리를 냈다.
“〈막아내며, 되돌려잡기(Blockieren Zuruckfang)〉. 롤레온 가문의 기사가 나에게 가르쳐줬던 비전이다.”
몇 번이고 독특한 기술명을 외워야 했다. 혹여나 훔쳐 배웠다는 누명을 씌울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자세한 내막은 말하지 않겠다. 넝쿨 나무숲에서 〈악키르 롤레온(Akkir RollLeon)〉을 구하고 얻은 것이라 기억하고 있어라. 기술 명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비전의 발음에도 주의하고···”
그것을 말하는 데에는 며칠이 걸릴 정도였다. 겨우 한 번 성공하면 그것으로 끝이었기에 드낙은 이를 악물고 기억하려고 애를 써야 할 것이다.
“막아내며 되돌려 잡기는 방패가 없으면 사용할 수 없다.”
락손이 방패로 쭉 내민 상태에서 순식간에 방패를 자신의 몸 쪽으로 당겼다. 그리고 조금 헐렁하게 내밀었다.
“???”
황당한 짓거리였다. 방패는 쭉 뻗어서 상대의 움직임을 막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상대가 방패 때문에 걸거쳐서 무기를 완벽하게 원심력을 이용해서 휘두르지 못하게 만드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고, 기본이었다.
상대의 공간을 빼앗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승리를 따낼 수 있었다. 인간의 팔이 휘둘러지며 생기는 압도적인 힘을 봉쇄하고 적이 답답함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방패의 기본을 발로 뻥차는 짓이었다.
“방패를 써본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쭉 뻗지도 않고, 헐렁하게 잡으면 힘이 부쳤다고 생각하거나 초보라고 생각할 것이다. 혹은 겁을 먹었다고 할 수 있고, 어찌 되었든 승부수를 던지기에 좋지.”
드낙이 락손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애매모호함은 죽기 딱 좋았다.
“상대의 공격을 유도하는 것인가요?”
“맞다. 이것은 여러 바리에이션이 가능한데, 상대의 공격을 막자마자 이러면 가드가 풀린 것처럼 느껴지게 만들 수 있다.”
락손은 여러 가지를 보여주었다. 동작마다 상대가 느끼는 것이 다달랐고, 상황마다 달랐기에 그것은 오직 드낙의 눈칫밥에 달려있었다.
“상대가 공격을 시작하면 방패를 몸에 밀착시킨다. 방패로 몸을 덧대었으니 멍이 들지도 않고, 한 번은 수월하게 막아낼 수 있다.”
헐렁하게 앞으로 내놓았기에 방패를 몸에 확실하게 밀착시키며 적의 공격을 한 번 막는 것이 가능했다. 어중간하게 내놓은 방패를 무기로 밀어내어서 방패에 가격 당하는 것이 아니라 몸에 밀착해서 방패를 갑옷처럼 쓰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방패에 쥔 손을 역으로 쥔다. 이건 상대의 무기를 방패를 이용해서 옆으로 치우기 위해서다. 전방으로 향하도록 놓기 때문에 손의 방향을 바꾸어서 방패를 잡아야 한다.”
무기를 회수하는 속도보다 손목의 스냅이 빠른 것은 자명했다. 전방을 막는 듯이 보이도록 하기 위해서 앞으로 내밀어야 했기에 당연히 옆으로 치우기에는 손이 맞질 않기에 〈손을 되돌려 잡는 동작〉이 필수적이었다.
“상대의 무기를 치우고 나면?”
“검으로 놈의 목을 취한다.”
락손의 물음에 드낙이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척추가 곤두서는 듯했다.
“방패로 무기를 옆으로 치우면 어떤 놈이던지 검을 허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당황은 어마어마하겠지. 왜냐하면 자신이 승리할 것이라고 확신했으니까.”
가드가 풀렸든, 애송이로 보았든, 기회로 보았든 그것 모두 당황으로 이어질 것이다. 승리가 한순간에 패배로 곤두박질치기 때문이었다.
“······대단하네요.”
손목의 스냅을 이용해서 상대의 무기를 아주 크게 쳐낸다는 점이 중요했다. 적어도 강철 덩어리를 후려치고 튕겨져나간 것만큼이나 상대의 무기가 옆으로 크게 쳐내질 것이다.
“〈막아내며, 되돌려잡기(Blockieren Zuruckfang)〉.”
모르면 죽어야 하는 비전이었다. 그게 바로 이 세계의 검술 비전이기도 했다.
드낙은 새벽녘이 울릴 때까지 발음을 하면서 몇 번이고 연습하며 한국어로 아주 세심하게 돌에 발음을 적었다. 기억하기에 어려운 발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비전 하나의 위력에 아주 매료되었지만, 다음 날 아침부터 소란스러움에 일어나야 했다.
“무슨 일이에요?”
그의 아버지와 장남녀석이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옥수수 수프를 흡입하듯이 먹으면서 떠들썩하게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고블린이 나타났다. 마을이 난리야. 그것도 떠돌이 고블린도 아니란다. 너는 오늘 오전에 목장을 좀 봐라.”
“예.”
한숨 자지 못해도 드낙은 고개를 끄덕였다. 체력이 워낙 대단했고, 젊어서 밤을 새워도 샌 것 같지 않았다.
두 장정이 목장을 나섰다. 드낙은 혼자서 목장일을 해야 했다. 그러던 차에 오후에 락손의 농노가 찾아왔다.
“락손님께서 찾는다.”
“무슨 일로?”
“그건 나도 모른다. 고블린에 대해서라고만 전하라더라.”
드낙은 술에 취한 채 돌아온 아버지와 장남에게 목장을 맡겨버리곤 노을이 지고 나서야 락손의 집에 갈 수 있었다.
쿵쿵쿵.
문을 두드렸다.
“바로 들어오라!”
그 외침에 드낙이 안으로 들어섰다. 큰 원형의 테이블에 사람이 여럿 있었다.
“가장 말석에 앉아라. 저기 하나 비워져 있는 의자다.”
드낙은 고개를 한 번 까딱이고는 앉았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