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el Warrior RAW novel - Chapter 488
488
검은 연기가 드낙을 덮쳤다. 4일 만에 잠이 들었다. 피곤한 기색으로 드낙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리 초인적인 신체를 지녀도 정신은 아직 3일 내내 활동할 정도는 아니었다.
‘게제라스가 불쌍해지는걸.’
총관 생각이 절로 났다. 너무 고생시킨 것 같아서였다.
6개의 검은 문이 쩍 벌어진 채 드낙의 눈에 들어왔다. 중립신이 바닥에서 조용히 올라와서 검은 문을 손으로 적당히 가리켰다.
“모두 받아라.”
“예.”
드낙이 목례를 하며 인사를 한 뒤에 검은 문을 하나하나 매만지고 그 힘을 받아들였다. 2천의 오크를 죽인 것에 비해서 적다고 여겨졌지만, 주는 대로 받아야 했다. 무엇보다 중립신은 불의 정령을 상대할 때, 힘을 보태었다.
쿵! 쿵! 쿵!
거세게 맥동하는 심장이 드낙의 눈에 들어왔다. 환상이었지만 그 맥동은 실로 실제와 같았다. 드낙은 몸이 떨릴 정도로 그 맥동에 감화되었다.
심장의 좌측이 불룩하고 튀어나왔고, 이내 두 개의 덩어리가 생기더니 서로 하나가 되며 심장과 연결되었다. 말이 연결이지 기존의 심장에 기생하듯이 들러붙은 것에 불과했고, 피를 보내는 혈맥이 추가로 새로 생성된 심장에 연결되어서 온전히 하나가 되었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쿵!
거세게 심장에 들어온 피가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그 힘이 대단했다. 일반인의 심장 박동수가 분당 60~100회라면, 지금은 30회 미만으로 보였다.
심장이 한 번에 뿜어내는 피의 양이 엄청났기 때문이다.
〈오크의 불완전한 심장〉
좌심실과 좌심방만 추가되는 불완전한 능력이었다. 오크를 더 죽인다면 심장이 양파껍질처럼 2개가 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심장이 두 개!’
불완전하지만 심장이 두 개가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드낙은 다음 검은 문에 선을 대었다. 검은 연기와 함께 환상이 그를 거침없이 헤집었다.
거칠게 야지를 내달리는 오크가 단번에 발을 크게 내디디며 도약하더니 높이 있는 바위에 착지했다.
그 순간, 시간이 느려졌고, 오크의 앞관절이 굽혀지면서 생기는 출렁거림이 허벅지의 뒤쪽으로 이어지며 살과 근육에 충격이 파도처럼 흘러갔다.
허벅지의 근육에 뒤덮인 곳에는 또 하나의 관절이 있었다. 실로 기괴한 신체구조였다.
이 역관절은 충격을 완화했다.
〈오크의 이중 관절〉
완전한 이중 관절은 아니었다. 역관절은 부차적인 기관에 불과했다. 하지만 인간의 관절이 하나 들러붙은 것이나 다름없었는데, 워낙 오크의 신체가 우월해서였다.
‘미쳤다.’
이중관절을 통해서 질주하는 오크의 환상을 경험한 드낙이 혀를 내둘렀다. 하체가 더욱 튼실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추락에서도 우월한 점이 두드러졌다. 하중을 더 잘 견디기에 전신갑주의 중량을 크게 늘려도 되어 보였다.
그저 하체가 강해진 것뿐인데도 그 효과는 무궁무진해졌다.
어느 스포츠에서든지 하체부터 관리하는 게 괜한 말이 아니었다.
‘이건 좀 대박인 듯.’
드낙은 냉큼 다른 검은 문에도 손을 가져갔다.
〈오크의 면역 체계〉
효소와 특수한 DNA를 통해서 내부에 침투한 독과 질병에 따라서 필요한 인자를 투입하는 자연 면역 치료라고 할 수 있었다. 후성 유전학의 최종 도착지점이나 다름없었는데, 그만큼 오크들이 거칠게 살아오며 쌓은 DNA가 대단했다.
그것을 획득하는 것이었기에 겉으로 변하는 것은 없었다.
‘오우야···’
드낙이 찌릿찌릿한 기분을 느꼈다. 더는 질병과 독에 대해서 걱정할 필요가 없어 보였다. 그만큼 방대한 데이터가 축적되어있는 게 생체 데이터 저장 기관이었다.
다음 검은 문을 건드리자마자 드낙은 짐승의 누린내를 맡았다.
“크흐으응.”
거친 숨소리 또한 들려왔다. 끝없는 미로 속에서 나타나는 마수들을 지나 도착한 곳에 흔들의자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는 덩치 큰 마수였다.
얼굴은 소였으며, 이마 위로 마치 왕관처럼 검은 뿔이 빙 둘러서 솟아나 있었다. 황색의 털로 뒤덮여 있었고, 상체는 사람인 것에 반해서 하체는 소의 다리를 지녔다. 발굽이 인상적이었는데, 너무 넓었다.
놈이 거칠게 앞발을 땅에 박아넣으며 역동적으로 질주했고, 그것은 하나의 문양이 되었다.
〈미노타우르스 타투(Minotaurs Tattoo)〉
대전사 뚜쎠드의 가장 자랑할 만한 타투였다.
강력한 지구력을 보유하게 해주고, 오른팔의 힘줄이 다섯 개로 늘어나는 타투였다. 어깨의 부담 때문에 타투를 자주 사용할 수는 없었다.
‘두 가지로 사용할 수 있네.’
하나는 말 그대로 힘줄을 사용하는 것이다. 어깨에 부담이 엄청났기에 드낙도 자주 사용할 수 없었다. 트롤의 재생력이 있다고 해도 잘못하면 어깨가 탈골될 수 있어서였다.
다른 하나는 바로 미노타우르스가 내달리는 문양의 겉을 두르고 있는 테두리만 사용하는 것이었다. 직사각형에 타투의 안팎으로 두드러기처럼 나 있는 문양이었다. 사용하면 탱크의 궤도처럼 움직이는 타투였다.
‘〈미궁에서의 지구력 타투〉라고 해야 하나.’
지구력만 높여주는 타투였다. 가장 큰 수확이기도 했다. 상시로 사용할 수 있어서였다.
마지막 검은 꿈으로 드낙의 손이 거칠게 움직였다. 눈에는 기대감으로 가득했다.
〈유령의 이글거림 타투〉
‘이거네.’
맞기만 해도 송곳과도 같은 통증을 주었던 능력이었다. 매우 일시적이고, 찰나에 불과해서 상쇄도 안 통하는 것이었다. 방어 마법을 통해서 미리 차단을 해야 했다.
‘미리 인비저블 쉴드라도 사용했으면, 안 통하는 것이었을 텐데.’
초월의 힘, 그 자체의 자연 상쇄를 너무 맹신해서 생긴 일이었다. 여기에 드낙은 두통이 올 정도로 신경이 자극되어서 힘들어했었다.
마법이나 주술로 보호되지 않는 자라면 순식간에 끔찍한 고통을 줄 수 있었다.
‘흐흐.’
드낙이 음흉하게 웃었다. 자신이 당했던 만큼 이 타투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아서였다. 일정부분은 〈영혼〉과도 연관되어있었다. 악령을 물리적으로 퇴치한 뚜쎠드의 용맹을 기려서 만든 〈녹색도끼의 타투〉였다.
중립신이 그 완성품을 자신의 힘으로 빚어서 드낙에게 주는 것이기도 했다.
드낙은 단숨에 그 힘을 받아들였다. 이 힘은 투척 무기로만 사용할 수 있는 큰 제약이 있었지만, 크게 상관하지 않았다. 투척물은 언제나 얻을 수 있어서였다.
‘흙을 뿌려도 되겠지.’
재미난 능력이었고, 드낙의 풍부한 상상력을 자극하기에도 좋은 능력이었다.
이것으로 수확은 끝이 났다. 하지만 중립신은 드낙에게 볼일이 있는지 남아있었다. 드낙은 눈치 좋게 손을 싹싹 움직이며 냉큼 다가와서 물었다.
“시키실 것이 있으십니까?”
“핏빛쥐에 대해서다.”
드낙이 순식간에 긴장했다. 우연의 산물로, 즉흥적으로 만들어낸 몬스터여서였다. 하지만 언제나 제법 도움이 되는 것들이었다. 애정도 조금 가지고 있었는데, 하는 짓이 귀여워서였다.
물론 언제든지 이득을 위해서 죽일 수 있었다. 그게 드낙이었다. 위험하면 개처럼 땅을 기어갈 수 있었고, 개인의 영달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었다. 그런 것에는 각오 따위 필요하지 않았다.
각오는 할 수 없는 걸 하기 위해서 하는 행위였다.
“조련술의 업(業)이 생각보다 강력한 힘이다. 고블린들이 홀로 쌓아낸 힘이라,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뛰어난 효능을 지녔다.”
“예.”
드낙이 일단 맞장구를 짧게 쳐주었다.
“수많은 업을 엮어서 그 힘을 더 키우려고 생각하고 있다. 앞으로는 무엇을 죽여도 조련술의 업은 계속 성장할 것이다.”
“무엇을 생각하고 계시는지 알 수 있습니까?”
“테라의 계획에는 지하 종족에 대한 큰 가지가 없었다. 열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어를 할 수 있는 수단이 있다면 키우는 게 좋다. 무엇보다 핏빛쥐들의 지도자들은 널 신뢰하고 있다. 만약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처리하면 그만이지.”
드낙이 삭막한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큼 자신의 성장 속도는 무시무시했다.
〈지하 종족의 추진 계획〉이 오늘 새로이 자리 잡게 되었다. 중립신조차도 예견하지 못한 일이었고, 드낙이 홀로 만들어낸 성과였다. 특히나 핏빛쥐들은 크놀 등의 지하 종족을 힘으로 굴복시키고, 식량으로 길들이고 그들의 기술을 아낌없이 빼먹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당연히 이용할 가치가 있는 지하 종족이 핏빛쥐들이었다.
가히, 중립신에게 선택지가 없었다고 말할 정도로 강한 카드가 된 것이 핏빛쥐들이었다.
중립신이 바닥으로 꺼지며 사라졌다. 그제야 세파리아스를 비롯한 인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또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파이룬 영지로 가는 건 어리석다고 말해주고 싶어서다.”
본격적인 검은 회의였다.
“토치라이트 영지는 지켜봤자 소용이 없잖아? 다른 북부가 망하게 생겼는데.”
“오크들은 이런 큰 규모의 전쟁을 겪어보지 못했다. 뒤가 뒤숭숭한데다가 보급대가 박살이 났고, 오크 부락 하나가 섬멸되었으며 대전사가 백설산맥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이 상황에서 횃불 성채 공성전을 이어나갈 수 없을 터다.”
세파리아스가 막힘없이 말했다.
‘그럴듯한데.’
드낙의 귀가 팔랑거렸다. 그만큼 근거가 충분했다. 저렇게 들어보니, 오크들에게 큰 타격을 입힌 것처럼 보였다.
“그럼 어쩌자고?”
“토치라이트 영지가 뚫리면 곧바로 불파겐 영지로 이어지는 길이 열린다. 우리로서는 반드시 막아야 하는데, 지금 한 일로 그들은 물러갈 것이다. 순찰자를 만나든, 뭘 하든 공적을 확실히 해둘 필요가 있다.”
드낙이 턱을 두드렸다. 이때, 〈기어오르는 발바룽〉이 덧붙였다.
“그냥 불파겐 깃발을 순찰자에게 전해주면 되잖아. 이 주변의 오크는 싹 죽어버렸으니. 파괴된 오크 부락을 볼 수 있겠지.”
“왜 파괴된 오크 부락을 순찰자에게 억지로 보여주나?”
“순찰자가 알아서 찾겠지.”
“안 그러면 빈약할 증거일 뿐이다.”
“네 말대로 오크가 물러난다면, 그게 바로 증거가 된다.”
“폭삭 망한 귀족이 드낙의 공적을 인정할 리가 없다.”
세파리아스의 말대로였다. 귀족은 결코 명예만 찾지 않는 자들이었다. 겉으로는 대단히 명성과 명예를 쫓았지만, 그 뒷모습에는 수많은 권리를 움켜쥐고 있었다.
‘어렵네.’
드낙이 고민했다. 이내 이런 고민도 사치로 여겨졌다.
‘내 야망.’
최대한 빨리 현대에 가까운 수준으로 올라서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만든 유희를 쪽쪽 빨아먹으며 살아가는 게 드낙의 꿈이다. 〈테라〉의 완성 이후에는 지구의 문물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걸 실현하려면 인구수가 가장 먼저 중요했다. 수많은 천재를 잘 관리해서 발전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특히, 앞으로 건설될 테라에서 인간을 주종족으로 만들고 싶은 마음도 없잖아 있었는데, 자신이 인간이기 때문이었다.
“······어찌 되었든 상관없어. 오크들을 최대한 많이 물러가게 만들려면, 토치라이트의 공적을 가볍게 여겨야 해.”
“이번엔 성자 노릇이냐?”
세파리아스가 날카롭게 비꼬았다. 드낙은 기분이 상하지 않았다. 오히려 웃을 수 있었는데, 그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어서였다.
‘세팔이와는 완전히 다른 길이지. 질투하는 거야.’
드낙은 심숭샘숭한 기분이 들었다. 대영웅으로 묘사되지만 결국에는 그도 인간이었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항상 눈여겨보고, 자신과 남을 비교하는 삶을 산다.
‘나 또한 그러했다.’
드낙은 거대한 돈더미 속에서 드러누울 정도로 세속적인 가치를 추구했었다. 그리고 그렇게 많은 돈을 소유함으로써 세속적인 가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가지지 못한 자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이정표였다.
소위 부자들이 하는 소리를 드낙은 하게 되었는데, 이것 또한 지나칠 정도로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었다. 왜냐하면, 그것 또한 가지게 됨으로써 흥미를 잃게 되어서였다.
가지지 않고 초탈한 것이 아니라, 가지게 됨으로써 더는 의미 있는 것으로 여기지 못한 것이다.
눈을 잃어봐야 눈이 중요한지 아는 것 또한 이것의 응용이었다.
드낙은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미 가진 자여서였다. 명예도 비슷했다. 마탑을 건설하면서 목표를 이루었다.
사회적 지위, 물질적 풍요. 그것을 모두 소유하고 나서야 다른 곳에 눈을 돌린 것이 그였다.
“파이룬 영지로 간다.”
“미친놈. 결국 호구짓 하는 것뿐이다. 망한 북부가 너에게 뭘 해줄 수 있겠어? 그저 칭송하는 것 하나뿐이다.”
세파리아스는 드낙의 행위를 이해하지 못했다. 호의는 많은 사람에게 각인되지 못하는 병신짓거리였다. 착한 사람의 말로는 거지새끼가 되어서 빌빌 거리는 것뿐이었다.
누구도 돕지 않는다.
그 길을 드낙이 스스로 자처하는 것으로만 여겨졌다.
“···가려면 몽펠리에 쪽으로 가야 할 거다. 파이룬의 전투 요새를 네가 부숴 먹었으니. 그곳으로 가봤자 아무것도 없을 거다.”
미운 놈에게 떡 하나 주고 세파리아스가 모습을 감추었다. 역사에 크게 이름을 새긴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드낙의 모습이 실로 불쾌해서였다.
‘건방진 놈. 중립신의 선택이 아니었다면, 농사나 짓고 야지의 잡초처럼 부질없이 살아갈 먼지 같은 놈이.’
강하게 적의를 드러냈다. 드낙의 나약한 모습을 봤고,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것에 큰 반감을 느꼈다. 전과 다르게 그가 스스로 걷고 싶은 길이 생기고 있다는 걸 어렴풋이 느껴서였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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