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el Warrior RAW novel - Chapter 507
507
“찍!”
허리를 활처럼 휘며 키가 높아 보이려고 애를 쓰는 듯한 자세를 하는 핏빛쥐가 울음소리를 내며 왼손을 아주 기품 있게 쓸어서 입 주위에 나 있는 털을 쓸었다.
정수리를 시작으로 아래로 뿔들이 여럿 나 있어서 머리에 나 있는 뿔만 본다면 공룡으로 여겨질 정도였다.
〈대장쥐〉는 거침없이 지하도로에서 자신의 존재를 뿜어냈다. 천장이 훤히 뚫린 마차에 떡하니 서 있는 대장쥐는 마차의 높이 때문에 더더욱 높은 곳에 있어서 실로 체구가 커 보였다.
“크엑. 키엑.”
고문과 먹이를 먹여서 조련된 〈일백야수(一百野獸) 붉은 털의 두더지〉가 한껏 화려하게 치장된 마차를 끌었다. 덩치가 곰보다는 못했지만, 그와 비견될 정도로 비대했다.
지하종족을 죽이며 털이 붉게 변해 일백야수가 된 붉은 털의 두더지는 그 두려운 전투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대장쥐에게 굴복했고 그의 마차를 끄는 탈것으로 전락했다.
“빨리 가자! 서둘러 가야 한다!”
“뜨나악!”
이들은 하나같이 기병으로 전투 체계가 한층 높아져 있었다. 전원 멧돼지를 타고 있었다. 멧돼지는 기병으로서 매우 훌륭했는데, 가장 먼저 시력이 좋지 않다는 게 아주 큰 장점이었다.
겁이 없는 게 아니라 눈에 보이는 게 없어서 마음껏 돌진할 수 있었다.
보통의 준마가 적이나 장애물을 상대로는 멈춘다는 것을 본다면, 전투마로써 재능이 충분히 있는 것이 멧돼지였다. 또한 멧돼지는 지능도 뛰어났다. 송진 가루로 상처를 치료하거나 얼음물에 들어가서 출혈을 막기도 한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후각도 좋아서 훈련하기도 좋았으며 추적에도 능해서 지하에서 써먹기도 좋았으며 산악기병으로 쓸 수도 있었다.
‘기병이 최고지.’
불파겐 영지에 한 번 가봤던 대장쥐였다. 그곳에서 이실레아가 기를 쓰고 오로지 기병에 올인하는 모습을 보고 벤치마킹을 해왔다. 드낙이 아끼는 장수가 이실레아였고, 인간 병사를 드낙 대신 통솔하고 관리하고 훈련하는 일을 했기에 믿을 만했고, 그럴 확신을 주기 충분했다.
전후방 상관없이 어디에서든지 결과를 내는 것이 이실레아 브릴리언트의 군사적 지능이었다. 대장쥐는 바보가 아니었고, 〈단단한 산 내전〉을 승리로 이끈 불세출의 영웅이었다.
그녀가 하는 것을 보고 베끼지 않고, 배우지 않는다면 그저 때를 잘 탄 범부였을 터였다.
“일이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창설 부대를 바꿀 걸 그랬다.”
달리면서 대장쥐는 아쉬운 마음을 가졌다.
〈배불뚝 리전(potbelly Region)〉은 창설 당시 단단한 산을 비롯한 주변 지역(Region)을 지키기 위한 근위병에 가까웠다. 다른 위원들의 리전 또한 여러 지역에 똬리를 틀기 위해서 창설되었지만, 이제는 그 의미가 많이 퇴색해버렸다.
‘한 곳에 정착하시는 분이 아니셨어.’
드낙의 행보에 맞추어서 움직여야 했고, 그의 행보는 검은 문을 여는 것에 있었다.
이 때문에 시작부터 군대 창설이 꼬여버렸다. 개편하기에는 서로 뭉치기 힘들게 되어버렸고, 상황이 진정이 되어야 했다.
‘인간들이 만든 제도를 참고를 하는 게 편하긴 하겠지만, 지상종족의 열등한 제도다. 고민해봐야 할 필요성이 있어.’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대장쥐는 오랜만에 드낙과 마주할 수 있었다. 〈두번째 뿔의 권능, 검은 장막〉은 활성화하지 않았다.
“오랜만이다.”
“뜨낙! 나의 창조주를 뵙습니다. 이번 지상의 문제에 저희가 큰 힘을 보탤 수 있을 겁니다.”
그 말에 드낙이 흡족해했다. 하지만 그 이면에 깃든 지상종족을 뛰어넘고, 지하종족의 명예를 드높일 생각이 있다는 건 알아차리지 못했다.
“부른 것은 이번에 있는 인간과 오크의 전쟁 때문이다.”
“이미 필요한 정보를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무엇을 원하십니까. 말씀만 하십시오.”
대단한 자신감에 드낙이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결론부터 먼저 꺼냈다.
“오크들의 보급품과 약탈품을 빼돌려야 한다. 할 수 있겠느냐?”
“찍찍.”
대장쥐가 쥐소리를 내며 주둥이를 움찔움찔 위아래로 움직였다. 화딱지가 나서였다.
‘핏빛쥐가 단단히 과소평가를 받고 있구나! 〈굳은살 리전(Calluses Region)〉놈들! 대체 뭘 어떻게 싸운 거냐!!’
성질만 급한 〈한성질 쌍쥐〉를 빼닮은 것이 굳은살 리전의 병사들이었다. 그런 기질이 있기에 단단한 산에서 가장 먼 토치라이트 영지로 향하게 된 것이기도 했다. 대장쥐의 판단이었다.
가장 빨리 지하 통로를 만들 수 있는 것이 굳은살 리전이었다.
“한성질 쌍쥐는 우리 중에서도 가장 약한 의원입니다. 저는 그와 다르고, 그가 이끄는 병사 또한 제가 이끄는 병사와 격이 심하게 차이가 납니다.”
드낙은 그제야 대장쥐를 타일렀다.
“알고 있다. 하지만 너희는 나의 조커 카드나 다름없고, 지금은 전면에 나설 때가 아니다. 남부 왕국은 아직도 구심점이 여럿 존재하고 그 상황 속에서 너희가 나의 부하라는 걸 알게 된다면 인간들은 나를 적대하게 될 것이다.”
“지상의 인간들은 몇몇을 제외하고는 감히 저희와 적대할 수 없습니다. 저희는 체구는 작지만, 지하 종족입니다. 지하의 무서움을 그들은 전혀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알고 있습니다. 명령만 해주신다면, 무지한 인간들을 모조리 죽이겠습니다.”
드낙은 그 흉흉한 태도에 담담하게 대처했다. 핏빛쥐는 좋은 말로 두고두고 수면 밑에 자리 잡고 있어야 했다.
“그만. 드러나 있는 병사보다 숨어있는 암살자가 더욱 두려운 법이다.”
“허면, 오크라도 능히 상대해보겠습니다. 지하에 끌어당겨서 싸운다면 숫자가 몇 마리든 승리할 수 있습니다.”
드낙은 그것에 귀가 팔랑거렸다. 이미 굳은살 리전을 통해서 한 번 확인해서였고, 한 번 해볼 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내 실로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하아. 오크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지도 말고, 패배하지도 말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것 때문에 그 제안도 수락할 수 없다.”
“찍찍.”
대장쥐는 실로 이해하지 못한 표정을 지었지만, 더 묻지는 못했다. 그의 창조주의 기분이 꿈틀 꿈틀거리며 당장에라도 화를 낼 것 같아서였다.
“지하 세계의 구축은 잘 되어가고 있겠지?”
드낙은 주제를 돌렸다. 대장쥐는 수많은 사업에 관해서 이야기했다. 그것을 들으며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리액션을 많이 취해주었다. 대장쥐는 그 모습에 침까지 질질 흘리면서 이야기꽃을 피웠다.
밤하늘 아래서 흥에 겨워서 들썩이는 대장쥐의 어깨가 춤을 췄다.
그에게는 꿈이 있었고, 야망이 있었다.
‘열등한 지상 종족을 뛰어넘고, 핏빛쥐들의 지하 세상을 만든다.’
그 원대한 포부에는 당연히 드낙도 있었다. 그는 영원히 핏빛쥐들의 신으로 숭배받을 것이다. 그로 인해서 생기는 구심점(求心點)은 광적일 정도로 뛰어났다.
물론 대장쥐 또한 드낙을 크게 존경하며, 흠모하고 있었다.
그날부터 〈오크 보급소〉를 향해서 배불뚝 리전이 본격적으로 움직였다.
“찍찍!”
미리 파놓아 둔 나무의 밑동에 머리만 쏙 빼내며 핏빛쥐가 코를 킁킁거렸다. 수많은 냄새를 맡았다. 오크의 체취는 맡을 수 없었다.
그들은 자연에서 태어난 사냥꾼들이었다. 오크들은 보기와는 다르게 몸 냄새가 매우 옅은 종족이었다. 말 그대로 천부적인 사냥꾼들이며, 피부색까지 초록색이었다.
다만, 그들의 부락을 찾기는 쉬웠다.
‘뒤집으면 되는 일이지.’
오크를 잡기 힘들다면, 오크 부락을 찾으면 된다.
그 단순한 목표 변경이 만들어낸 추적술은 혁신적이었다.
킁킁.
다양한 냄새 중에서 오크들이 잘 키우는 가축의 배설물 냄새를 찾아내고, 그곳으로 방향을 잡았다. 지도가 형편없는 수준이라서 몇 번이고 헛수고를 해야 했다. 이미 찾았던 곳도 이러한 방법으로 방향을 다시 고쳐 잡아야만 했다.
핏빛쥐가 쌓아올린 기술은 겉으로는 그럴듯해 보여도 막상 들여다보면 허점투성이였다. 그중에서 독도법(讀圖法)도 마찬가지였다. 통일되지 않아서 그 지도를 그린 핏빛쥐가 있어야지 해독이 될 때도 있는, 미치광이가 그린 보물지도와 같았다.
이 때문에 틈틈이 방향을 새로이 잡아야 했다.
“싱겁다. 싱거워.”
대장쥐는 미리 뚫어놓은 지하 통로를 이용하며 아쉬움을 달랬다. 다가올 대전쟁인 줄 알았더니, 게릴라나 하게 되어서였다. 하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왠지 드낙에게 아껴지는 기분이라서였다.
‘전쟁을 덩치로 하는 하찮은 지상 종족 놈들.’
대장쥐가 흉흉한 눈빛을 했다.
‘그들이 발붙이고 있는 땅이 얼마나 무른지도 모르는 쓸모없는 잡것들.’
물론 그렇게 지상 종족을 얕잡아도 드낙의 명령을 충실히 따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모든 준비를 마쳤습니다.”
“낮에 시작해라. 밤에는 땅의 소리가 더 잘 들리니까.”
“뜨낙!”
보고를 받자마자 대장쥐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식은 죽을 먹기보다 쉽다고 여겨서였다. 그가 그렇게까지 자신 있어 하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오크를 상대로 놈들의 보급품을 약탈하는 것이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큰일을 앞두고 웅크리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지.’
상대를 겁주고 목을 물어뜯는 범(虎)은 없었다. 죽여야 할 대상이라면, 그것도 전면전을 벌이며 크게 데뷔할 생각이라면 오크에게 손을 대지 않아야 했다. 그 덕에 오크는 핏빛쥐들의 존재를 몰랐다.
상대가 자신을 모르는데 어찌 대처할 수 있겠는가.
배불뚝 리전의 훈련도 또한 높은 수준이었고, 온갖 전술 행동들을 익히고 있었다. 평범한 이들이라면 다리를 공사하는 것에도 사망자가 나오고, 불구가 튀어나오지만 배불뚝 리전의 핏빛쥐들은 정예 중의 정예였다.
두루두루 할 줄 알았다. 특히나 오크의 보급품을 터는 일은 단단한 산에서 벌였던 보급 싸움과 비슷한 면도 있었다. 이 분야에서는 가히 베테랑이라고 칭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샥샥샥.
조심스럽게 지상으로 향하는 입구를 파기 시작했다. 멀리서 확인했지만, 이들은 굴파기의 전문원들이었다. 천천히, 정확하게 파고 들어가자마자 빛보다는 어둠이 그들을 맞이해주며 뭔가 하나 툭 떨어졌다.
좌르르.
떨어진 가죽 주머니에서는 말린 과일이 쏟아져나왔다. 적당히 잠근 듯했고, 그것에서 뿜어져 나오는 과일 향이 물씬 풍겨왔다. 공기가 정체된 지하여서 더욱 자극적으로 빠르게 코로 들어왔다.
“먹어봐. 엄청 맛있다.”
“고기랑 같이 먹고 싶은데? 조금 짜고 또 달다. 말린 과일에 소금을 치다니, 정말 칭찬해주고 싶은걸.”
과일을 더 맛있게 먹는 방법은 단맛이나 새콤한 맛에 소금을 뿌려서 짠맛까지 넣는 것이었다. 그것이 거침없이 옮겨지기 시작했고, 드낙의 명령은 지하통로를 통해서 사방팔방 전해지기 시작했다.
“빨리빨리 올라타라! 더 많은 것을 누리고 더 좋은 신분을 받고 싶다면 그만한 공로를 세워야 하는 법이다!”
멧돼지 마차를 운용하는 핏빛쥐 감독자가 소리를 내질렀다.
“동쪽에서 멍청하고 둔하기 짝이 없는 오크들의 보급품을 운반하는 일이다! 지하통로를 작게 뚫을 때도 있다! 그때마다 보상이 있을 것이다!”
“나도나도!”
“비켜비켜!”
핏빛쥐들이 너도나도 마차에 올라탔다. 몸을 반만 집어넣은 채 고개를 마차 밖으로 놓으며 겨우 숨을 쉬는 핏빛쥐도 있을 정도로 미어터졌다.
“출발!”
마차의 좁은 곳에서도 용케 짐을 챙긴 핏빛쥐는 가죽 배낭을 단단히 손에 쥐면서 다른 손으로 접힌 가죽 하나를 꺼냈다. 그곳에는 그림으로 그려진 가족들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동족상잔 때문에 뿔을 타고 태어난 자식은 매우 소중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애지중지 하는 문화가 새로이 자리잡았다.
콥고블린이 그린 그림이었다. 사용한 색은 3색뿐이었다. 5색이나 7색 그림은 많은 것을 요구해서였다.
핏빛쥐들의 사회에 흘러들어온 콥고블린과 크놀들은 각자의 분야에서 빠르게 두각을 드러내며 사회의 일원이 되어가고 있었다. 모습이 달라도 고블린은 지상에서도 잘 살 수 있고, 지하에서도 잘 살 수 있어서 지하 종족으로 여겨졌고, 크놀은 제련술 때문에 말할 것도 없었다.
핏빛쥐들 또한 많은 일을 하는 그들을 탄압하지 않았고, 탄압할 생각도 없었는데 정복할 곳이 너무나도 많아서였다. 내실을 다지기에는 밖에서 풍겨오는 고기냄새에 군침을 흘리기 바빴다.
덜컹, 덜컹!
핏빛쥐만 탄 마차도 있었지만, 콥고블린 노예나 크놀 감독자가 끄는 마차도 있었다. 모든 것이 엉망인 사회였지만 그만큼 자유가 있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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