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el Warrior RAW novel - Chapter 696
강철의 전사 696편
드낙은 곧장 하프 드워프들의 흩어져서 사는 곳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곳으로 손꼽히는 지하 계곡으로 향했다.
‘처음에는 하프 드워프한테도 굽실거렸는데.’
이 세상에서 처음으로 열병기를 마주했기 때문에 절로 태도가 좋아졌고, 싹싹해졌다.
‘지하 계곡.’
이곳은 하피들이 살 수 있게 지하 계곡을 오랜 세월 동안 관리하고, 확장 및 보수 작업을 했기 때문에 하프 드워프들에게도 애착이 많은 곳이었으며 최대 화약 생산지였다. 매우 중요한 곳이기도 했다.
‘어쩌라고.’
그는 그걸 알고 있었지만, 철면피를 깔고 나가기로 했다. 최대한 빨리 일을 끝내기 위함이었다. 효율적이고 현실적으로 접근하기로 했다.
‘사악한 악당 조조처럼.’
남들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도 중요하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자원은 제한적이고 그렇기에 경쟁과 싸움이 일어난다. 그리고 승자가 이 모든 것을 가져갈 수 있었다.
‘난 지금까지 다 가져가지는 않았지. 오히려 많은 것을 양보하며 살았다.’
서로 으쌰으쌰하면 그만큼 싸움은 줄어들고, 인류가 지니는 힘과 자원의 총량은 계속 늘어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병신이 되는 건 자신뿐이다.
그가 신을 목표로 삼고, 인간을 권속으로 두어 그 업을 받아먹으며 이 세상을 다스렸다면 불쌍히 여기고, 사랑으로 여기는 자비의 신이 될 수 있었겠지만, 아쉽게도 드낙은 중립신의 간계로 신으로 향하는 길이 끝도 없이 멀어져 버렸다.
신과 정반대에 위치하는 반마가 되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미 중립신이 이 세계의 인간과 드워프를 움켜쥐고 있었기에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이를 들어서 생각해본다면, 핏빛쥐를 멸망시킬 수 없어서 중립신이 드낙을 반마의 길로 걷게 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었다.
그가 지닌 핏빛쥐에 대한 사랑과 애착은 역린이나 다름없어 보였기에 건들 수가 없었다.
‘국가도 가지고 있지 못하는 게 하프 드워프들이다.’
황무지라는 지형적 이점을 통해서 침략당하지 않았다. 그들이 합치지 못한 이유는 수원을 따라서 성장했기 때문이다. 물이 나오지 않는 곳에서는 살아갈 수 없었고, 지상에서 살지 않기 때문에 세력의 확장 또한 더뎠다.
지하수가 풍부한 곳을 발견해도 땅을 파서 마을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런 여러 가지 요인으로 그들은 결코 국가를 이룰 수 없었다.
“하프 드워프들은 나와라! 동부왕, 드낙 불파겐이 왔다!”
고함이 쩌렁쩌렁 울렸다.
“끼아아악!”
“까까! 까악!”
지하 계곡에 있는 하피들이 벌떼처럼 쏟아져나왔다.
‘하프 드워프 초병들도 보고 있겠지.’
드낙은 광역 마법 주문을 읊었다. 방어력이 썩 대단치 않은 하피들에게는 바람 마법이 제격이었다.
“끝없이 불고 불어
날카롭게 흐르고 흘러
산이고 호수고 하늘이고 땅이고
모든 것이 이 바람 앞에서는 무의미하도다.
그 몸에 흐르는 피를 봐라
일백 번 잘리는 바람 속에서
그 살을 도려내고
그 피를 흩뿌리고
그 뼈를 부숴내고
그 넋이라도 능히 조각내리라.
하고 싶은 마음이야 천지를 채울 수 있겠지만
현실은 바람조차도 못 이기네.”
〈절삭의 폭풍〉.
12문장으로 이루어진 풀 캐스팅 광역 마법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람 마법의 가장 큰 장점은 범위에 있었다. 압도적으로 넓은 범위를 타격하는 게 가능했지만, 건축물이나 경도가 높고 내구력이 상당한 곳에서는 위력이 반절~90%까지 박살이 나는 단점을 지니고 있었다.
땅속에 들어갔을 뿐인데 대마법사의 폭풍에서 살아남은 이야기는 실재일 확률이 높았다. 그만큼 단점이 많은 게 바람 마법이었지만, 하피들에게서는 지옥행 열차나 다름없었다.
가장 빠른 속력으로 허공을 뒤덮는 광역 마법은 드낙이 배출할 수 있는 마력량이 얼마나 높은 수준인지 알 수 있었다. 평범한 마법사가 마력을 배출하는 속력은 아기가 내뱉는 들숨과 비교할 정도로 드낙 앞에서는 형편없었다.
“끼아아악!”
야생 몬스터, 그것도 다수를 이루고 살아가는 하피들은 반항도 못 하고 죽어갔다. 지성이 없어서 대처할 수 없었다.
깃털이 잘리고, 살이 도려내 졌으며 뼈가 절단되어서 떨어졌다.
대량의 피가 지하 계곡을 완전히 지배했다. 그 속에서 드낙은 하피들을 ‘죽여서’ 얻어지는 업에 취해서 미소를 지었다.
‘엄청난 수준이다.’
악마의 강점. 죽여서 얻는 업이 엄청나게 효율적이라는 점이었다. 그것을 제대로 맛봤기 때문에 드낙은 그대로 그림자로 변해서 아직 지하 계곡에 남아있는 새끼를 밴 하피와 날지 못하는 새끼 하피를 모조리 죽였다.
이는 하프 드워프들이 이 지하계곡에 있을 이유를 없애기 위함이었으며 동시에 대장장이 가문인 송곳 가문이 이곳에서 빠르게 공사를 진행할 수 있도록 미리 정리한 것이다.
물론 전자가 드낙에게 더 매력적이었다.
‘동시에 하프 드워프들에게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지.’
적대 불가능한 힘을 보여주기 위함이기도 했다. 소란이 일어나고 30분이나 지나서야 지하에서 하프 드워프들이 엉거주춤 나오기 시작했다.
하피들의 조각난 시체는 끔찍했다. 두개골이 쪼개지거나, 새끼를 밴 하피의 자궁에서 새끼가 반쯤 삐져나와서 꽥 거리고 있기도 했다.
모든 것이 현실적이었다. 그게 전쟁이고 싸움이었다.
질퍽!
“웃.”
피 때문에 진창이 되어있어서 비틀거리기도 했다. 피는 빠르게 흙에 흡수되었지만, 한계점이 있었고, 서로 뒤섞여서 진흙처럼 되어버렸다. 물과는 다르게 점성이 높은 게 피라서 끈적한 질감은 정말 불편했다.
“도, 동부왕…”
하프 드워프 초병은 드낙을 보고 침을 꼴딱 삼켰다.
“책임자를 불러와라. 갈 길이 바빠서 안에서 이야기하기가 힘들다.”
“예!”
하프 드워프가 혼비백산해서는 허둥지둥 움직였다. 나머지 하프 드워프들은 주변을 파악하기 바빴다. 그들은 감히 드낙에게 왜 하피들을 죽였는지에 관해서 묻지도 못했다.
그의 마법, 그의 움직임을 모두 지켜보고 두려움에 떨면서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담이 이렇게 없어서야.’
드낙은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둔감한 드워프들은 실로 용맹하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과 자연히 비교할 수밖에 없었다. 드워프의 면모를 지니고 있었지만 동시에 인간적인 면모 또한 지니고 있었다.
‘협상은 쉽겠네.’
어차피 호족세력에 비교할 수 있는 것이 하프 드워프들이었다. 소수 종족은 언제나 어디서나 제대로 대우받기 힘들다. 자신 또한 그렇게 할 것이다. 한 번의 전투 이후 그들은 지하 연합에 큰 도움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괘씸한 놈들.’
죽어간 핏빛쥐의 숫자가 워낙 많았기 때문에 드낙은 절로 불만을 드러냈다. 생각하면 할수록 화풀이를 하고 싶어졌다. 심호흡하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내가 요구할 건 한 가지뿐이다.’
굴복하는 것뿐이었다. 쉽게 가면 나중에 반란을 도모할 수 있고, 협조를 안 할 가능성이 있었다. 반면 어렵게 가면 시간이 문제였다.
‘검은 돔에서 딴짓을 할 공산이 크다.’
하프 드워프들의 태도를 보고 확인하는 게 좋아 보였지만, 그게 소용이 없음을 드낙은 잘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세력이 뿔뿔이 흩어져 있었기에 그 세력마다 장이 달라서였다.
‘예견되어있는지도 모르지.’
한 번은 부딪쳐야지 정상이었다. 드낙이 부재일 때 난이 일어나면 더 골치 아팠다. 아직도 공간적 제약은 드낙에게 크게 다가왔다.
“이게 대체 무슨 짓인가! 화약의 주재료를 생산하는 하피를 떼죽음시키다니!”
하프 드워프의 거점장이 버럭 화를 냈다. 이에 드낙은 곧바로 자신의 덩치를 키웠다. 그 기괴한 변모가 모두가 움찔했다. 하지만 물러서지는 않았다.
어쭙잖은 자존심 때문이었다. 특히 드낙은 그들에게 제법 평화적으로 접근했었다. 그 잔재가 아직 남아있었다. 드낙은 그들을 현실로 끌어왔다. 언제나 외교는 단기간에 극과 극을 달릴 수 있었다.
국가와 국가, 세력과 세력, 종족과 종족 앞에서는 정이라는 것이 없었다.
“보름 내로 지하 계곡 거점에 있는 모든 것을 비워라. 이곳에 드워프들과 지하 연합의 교역 요새가 자리 잡을 것이다.”
“말도, 그런 말이 어디에 있소. 우리는 그대와 함께 싸웠소!”
드낙은 그 말에 고개를 저었다.
“아주 작은 국지전에 불과했다. 마신장과의 싸움에서 지하 연합은 수십만이 죽어 나자빠졌다. 그 회전에 그대들이 도움을 준 적이 있나. 하다못해 화약 한 줌이라도 보급해주었나? 아니지.”
검은 보급로에서 활동하는 핏빛쥐들을 보고 악한 종족이라고 규정했기 때문이다. 하프 드워프는 침묵을 선택했고, 이제 그 대가를 치러야 할 때가 왔다. 하나로 뭉칠 수 없었기에 자연스럽게 흐름을 타지 못하고 멈춘 것이다.
훌륭한 지도자가 있었다면 다른 결과가 있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거점장이 최고 직위에 불과한 하프 드워프들은 그러지 못했다.
이제 도태될 일만 남았다.
“거부한다면 어떻게 할 생각이오.”
“전쟁이지. 지하 연합의 역량은 너희들도 충분히 알고 있을 텐데? 아닌가?”
“……”
머리가 멍청했다면 싸웠겠지만 이미 전의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 모습에 드낙은 맥이 빠졌다. 화약 때문에 과대평가했던 하프 드워프들의 본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그저 역사에 도태될 종족일 뿐이구나. 내가 신경 쓰지 않아도 소수 종족으로만 평생 살겠다.’
걱정할 필요가 싹 사라졌다. 핏빛쥐가 보여준 검은 보급로 전략으로도 능히 겁을 줬고, 덤비지 못하게 만들었다. 애초에 뭉칠 수 없었기에 죽일 필요도 없었다. ‘대영웅’이나 ‘건국왕’이 탄생하지 않는다면 필요 없었고, 이 또한 핏빛쥐들의 동향으로 미리 후려치는 게 능히 가능했다.
“왜 대답을 하지 않는 거냐?”
10m까지 거대해진 드낙이 발을 구르고, 손으로 지하 계곡의 지하로 들어가는 입구를 받쳤다. 절로 흙이 떨어져 내렸다.
“어엇!”
하프 드워프들 중 몇몇이 소리를 냈다. 단박에 거점장의 표정이 붉어졌다.
“빼겠소.”
“보름! 그전까지 지하계곡에 살아있는 하프 드워프가 있다면 내가 처리하겠다.”
이 거점에 있는 하프 드워프들을 모조리 죽여서 본보기로 삼으려고 거침없이 강하게 나갔지만, 그들은 대들지 않고, 깨갱거렸다. 이들의 상황을 봐서 죽일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드낙 또한 한 걸음 물러섰다.
터덜, 터덜…
하프 드워프들은 그 길로 들어갔다. 그들은 결코 몰랐다. 오늘의 일을 시작으로 황무지에서 서서히 자리를 잃게 되리라는 것을. 드워프와의 교역을 하면서 지하 연합의 세력은 황무지를 지배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그 과정에서 사사로운 피가 땅에 뿌려지겠지만, 밖으로 삐져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하프 드워프는 하나 되어 싸울 수 없기 때문이었다. 야금야금, 치즈를 먹듯이 서서히 잠식되어갈 것이고, 그 끝에는 지하 연합에 합류하게 될 터였다.
순식간에 힘으로 협상을 끝낸 드낙은 드워프들에게 돌아갔다.
“힘으로 해결했소. 하프 드워프들은 국가의 이름조차 없기 때문이오.”
드워프들은 딱히 싫어하지 않았다. 드낙이 대신 욕을 먹어줬기 때문이다. 그리고 둔감한 그들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자신들에게 피해가 오지 않아서였다. 어차피 드워프 입장에서는 요새 하나 짓고 빠지면 될 일이다.
“여기서 송곳 가문과는 헤어져야겠군.”
드워프들은 서로 악수를 나누었다. 강철 산맥을 떠나게 된 망치 가문과 날개 가문이었지만 표정이 나쁘지는 않았다. 이 또한 제국을 위한 길이라서가 아니었다.
‘시체 언덕의 드낙은 드워프 제국을 위해서 싸웠다. 이제 드워프 제국이 보답해야 할 때다.’
은혜를 입으면 응당 베풀어야 했다. 그게 드워프들의 상식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고 그냥 지낼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드워프들은 아니었다. 그들은 실로 바위 같은 종족이었다.
국가의 이름도 없는 하프 드워프따위는 식후감도 아니었다.
‘꼬우면 전쟁하던가.’
드낙이 그들을 비웃었다. 그가 거대화를 하거나 하피를 강력한 반마의 마력 출력으로 떼몰살을 시키지 않았어도 지하 연합의 군세에 두려워서 물러났을 터였다. 생각보다 하찮은 놈들이었다.
‘적당히 화약 제조로 어느 정도 먹여 살려주면 적당히 살겠지. 다음은…황무지를 건너 남부왕에게서 병력을 다시 빌려서 검은 돔으로 향한다.’
길을 뚫어야 했다. 미노타우르스와 검은 돔의 마수군단장들의 수준은 경계할만했기에 드낙이 직접 마수를 잡으면서 가는 것은 어느 정도 선에서 이루어져야 했다. 힘을 아껴야지 놈들이 판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을 터였다.
“잠깐만. 이럴거면 그냥 하프 드워프들도 동부로 데려가는게 어때. 황무지의 삶보다는 확실하게 나을 것 같은데. 어차피 화약을 제대로 이용할거면 그게 더 낫지 않아?”
세리안이 드낙에게 조언했다.
“분명 거점장이나 못 사는 하프 드워프들에게는 식량만 풍부하게 지급해줘도 군침을 흘릴텐데?”
그 말에 드낙의 귀가 팔랑거렸다.
“똑똑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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