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el Warrior RAW novel - Chapter 790
강철의 전사 790편
엠마누엘의 녹안에 이 신전의 이모저모가 들어왔다. 거미줄처럼 천장과 바닥에 힘이 흐르고 있었고, 그것은 일곱 개의 기둥과 서로 연결되고 교차하고 있었다. 그 가짓수는 가히 수천에 달했다.
일곱 꼭짓점을 교차하는 모든 선의 경우에 수가 담겨 있었다. 그렇기에 검게 보이는 신전임에도 붉게 보였다.
‘이토록 끔찍하다니, 악마의 신전을 보는 것 같다.’
그 선은 혈맥처럼 맥동하고 있다는 것 또한 불길하기 짝이 없었다.
엠마누엘이 긴장했다.
조금의 시간이 지나고, 몸을 추스른 척을 마무리한 드낙이 가장 마지막으로 일어섰다. 다른 디아볼로스들을 제쳐놓고 엠마누엘이 드낙에게 물었다.
“드코라르바 님. 이것이 진화학파의 성과입니까?”
“예. 좀 색이 거뭇거뭇해서 사악해 보이지 않습니까?”
엠마누엘은 당연하다는 듯이 굴었다. 알아서 드코라르바가 변명의 기회를 달라고 묻고 있었다. 이를 잘 받아줘야지, 이 신전에 대해서 알 수 있었다. 그것을 〈신전〉이라고 하는 것조차도 의심쩍었지만.
“확실히 그렇습니다. 어떻게 된 것인지, 무엇인지 말씀을 들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드낙이 빙그레 웃었다. 이제, 사업을 시작해야 할 때가 왔다. 중립신이 알아서 막아줄 생각이 전혀 없다는 걸 깨달았기에 드낙은 정말로 거침없이 움직일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중에 지랄해도 그에 따라 업을 내어주면 그만이다.
디아볼로스가 지닌 가치를 드낙은 누구보다도 높게 쳐주고 있었다.
“검은 신전이라 불리는 장치입니다.”
“장치…무엇을 위한 장치입니까?”
“엘프의 진화! 실질적인 한 걸음을 제공하는 장치입니다. 엘프의 머리만 한 큰 잔을 하나 만들어주실 수 있습니까?”
“아무거나 됩니까?”
“이왕이면 백은으로 된 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무 상관 없었지만, 드낙은 지엄한 표정을 지으며 잔의 세세한 부분을 지적했다. 엠마누엘의 혁대에 있는 백금 카드가 한 장 단번에 뽑혔다. 다른 백금카드보다 굵었는데, 손에 쥐자마자 백금카드가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촤라라락!
“와.”
드낙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만큼 자극적이었다. 백금 카드의 가치만큼 소리를 냈다. 마력을 부여받자 백금 카드가 서로 상이한 빛을 토해냈고, 그중 백은의 빛을 내는 백금 카드를 엠마누엘이 잡아채자 나머지 백금 카드가 다시 하나로 모였다.
쭈르륵.
백은이 흘러나오고, 이는 형태를 서서히 잡아갔다. 몇몇 푸른빛으로 이루어진 마력이 액체화가 되어 마법진을 만들었고, 형태를 잡는데 공헌했다.
순식간에 엘프 머리만 한 큰 성배가 모습을 드러냈다.
드낙이 이를 잡아서 빛의 기둥에 넣었다.
사아아아-!
기괴한 소리가 났다.
어두운 밤, 숲속에서 들리는 을씨년스러운 나뭇잎이 바람에 쓸리는 소리.
끝도 모를 계곡에서 귓가로 스며들어오는 음울한 소리.
그런 서늘한 소리였다.
‘오싹하다.’
엠마누엘은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듣는 것만으로도 음흉하고, 불경했다. 하지만 악마의 힘이라고 하기에는 피가 없었고, 신이나 다른 존재가 개입했다고 하기에는 다른 존재의 기척도 느낄 수 없었다.
검게 변한 성배를 드낙이 양손으로 집어서 빛의 기둥에서 빼냈다.
“색이 변하다니…”
“일찍이 제가 행방불명이 되기 전에 엘프 사회는 〈혈통〉을 연구했습니다.”
그 말에 엠마누엘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엘프 사회의 어둠이기도 했고, 치욕이었으며 치부였다. 결코 다시 언급되어서도 안 된다. 하지만 그런데도 한 가닥, 손에 쥐고 놓지 못하고 있는 애증이 담겨 있는 것이 혈통이라는 것이었다.
“진화학파는 이 혈통과 피를 통해서 엘프를 진화시킵니다.”
“혈통과 피를 통해서…”
엠마누엘은 전신에 소름이 쫙 퍼져나갔다.
500년 전,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1000년 전부터 알음알음 연구가 시작된 게 엘프 혈통의 개발과 변형이었다. 그 정점은 450년 전이다. 세파리아스 불파겐이라는 결과물을 끝으로 쇠락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이 엘프 혈통 분야에 대한 연구학이었다.
‘그 방향성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건가?’
“이게 그 결과물이란 말씀입니까?”
“예.”
“하지만 엘프의 피는…변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변수가 많은 인간의 피로 시선을 돌렸다. 그들의 혈통 개발은 엘프 혈통 개발에도 충분한 변수를 줄 수 있을 거라 여겨졌다. 그 격을 높인다면 말이다. 마치, 인간 같지 않은 인간을 만들어내고, 그 혈통을 엘프에게 녹인다면 능히 엘프를 변화의 종족으로 만들 수 있을 거라 여겼다.
“이곳에 와서 실패했다는 말을 들었지만, 전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실패한 건 그저 인간 혈통을 엘프에게 녹이지 못해서 실패한 것 아닙니까? 왜 다른 종족의 실패를 엘프의 실패로 여기십니까.”
“허. 그렇다면 엘프의 형질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변화고 자시고, 흑발로 변하며 전과는 현격히 다른 힘을 갖추게 된 엠마누엘님의 상황은 어떻게 설명하실 겁니까?”
이미 결과는 나와 있었다.
그 어떤 의심도 필요하지 않았다.
“어떻게 이 잔을 사용합니까?”
“본인의 피를 쏟아부으십시오.”
그 말에 엠마누엘의 표정이 무시무시하게 변했다.
“그런 야만적인 행위를 어떻게 합니까?”
“전 그저 방법을 제시했고, 결과를 얻었습니다. 그걸 알려드리는 것뿐입니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걸로 끝입니다.”
“이 방법은 용납될 수 없습니다. 너무나도 사악합니다. 아니, 엘프의 사회 전체에 크나큰 악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걱정마십시오. 저는 그 방비 또한 제대로 해내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드낙이 헛기침을 하며 하나씩 격파해나갔다.
“가장 먼저 이 잔에 피를 한 번 쏟으면 그 피를 통해서만 효용을 볼 수 있습니다. 다른 피를 쏟아봤자 소용없습니다. 또 다른 피를 섞을 수도 없습니다.”
오로지 1인용에 불과한 성배였다. 엘프가 다른 엘프를 습격해서 잔을 피로 채워도 소용이 없었다. 이미 피를 먹은 성배는 오로지 그 피만 원하기 때문이다.
“이 잔이 가진 방식 때문에 사회혼란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또 엘프의 품격은 그토록 낮은 것입니까? 그저 수단을 줬다고 그것을 통해서 동족을 무참하게 살해하고 그 머리통을 잘라 이 잔에 넣을 정도입니까?”
드낙이 오히려 엠마누엘에게 엘프의 품격을 물었다. 그토록 지키고 싶어하고, 대단하게 내비치는 것이 그들의 품격이다.
하지만 엠마누엘도 보통은 아니었다.
“젊은 엘프라면 동족을 죽이기보다는 이 잔을 부술 겁니다. 하지만 노괴들이라면 능히 동족을 인신 공양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제 대답은 ‘예.’입니다.”
“으음…하지만 잔의 방식을 생각한다면 그런 문제는 사라졌습니다. 아닙니까?”
“맞습니다. 하지만 제가 잔을 살펴봐도 되겠습니까?”
드낙이 잔을 건넸다. 엠마누엘이 몇 개의 백색카드를 통해서 자세히 조사하며 정보를 취득했다. 하지만 특별히 눈에 띄는 악독한 것은 없었다.
세뇌, 정신착란, 환영 등 엘프를 조종하려거나 바꾸게 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잔에 대한 의심이 풀렸습니까?”
“예. 하지만 여기 이…신전에 대한 의심은 지울 수가 없습니다. 마치 〈심장〉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각 기둥을 연결하는 모든 교차점을 긋는 연결로는 혈맥처럼 맥동하고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엠마누엘의 녹안이 매섭게 빛났다. 마치, 죽음을 목전에 둔 전사의 모습과 같이 벼랑 끝에서 용맹을 움켜쥔 자와 같았다.
그 기백은 실로 드낙의 마음을 떨리게 했다.
“이는 〈악마의 힘〉과 매우 유사한 초월의 힘 체계입니다. 이를 해명해주셔야겠습니다.”
디아볼로스들의 기세가 그 말의 기점으로 변했다. 당장이라도 칼부림이 오가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드낙이 손을 들어 올려 이를 제지했다.
“그야 당연합니다. 엘프의 형질을 변화하려면 피와 연관되어있어야 하기 때문에 악마의 체계를 빌린 것에 불과합니다. 그 어떤 악마도 깃들어있지 않고, 계약으로 그 힘에 음흉한 것이 담겨 있지도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 신전을 조사해봐도 무방하다는 것입니까?”
“예. 만약 이 신전에 엘프를 오염시키는 것이 있다면 어떤 벌이든 달게 받겠습니다.”
엠마누엘의 백색카드가 전개되어서 모든 것을 살폈다.
‘있을 리가 없지.’
드낙은 결코 멍청이가 아니었다. 다만 게으를 뿐이었다. 이런 일에 사력을 다하여 집중했다. 그는 기발한 방법으로 엘프를 뒤통수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신전과 잔에는 그 어떤 음험함도 하나 없었다.
오로지 엘프를 위한 것만 존재했고, 그러기 위해서 나아가는 것만 담겨 있었다.
“……”
“이제 의심을 거뒀습니까? 마지막으로 잔을 이용해서 실제로 엘프가 진화하는 방법을 논하고 싶은데 괜찮겠습니까?”
“예. 경청하겠습니다.”
드낙은 잔을 엠마누엘에게 쑥 내밀었다.
“여기에 본인의 피를 담으십시오. 양은 상관없습니다.”
엠마누엘이 백금 카드를 단번에 대거로 변환시켜 손목을 그었다. 피가 주르륵 쏟아져나왔다. 머리통만 한 잔이었기에 잔을 채우기란 매우 힘들었고, 적정선에서 타협을 봐야 했다.
“끝입니까?”
“끝입니다. 이제 곧…”
부글부글…
엘프의 피가 담긴 잔이 끓어올랐다. 하지만 수증기는 피어오르지 않았다. 그저 피만 빠르게 줄어들었고, 열기만 잔뜩 퍼져나갔다.
기괴했다.
“이게 대체…”
절로 섬뜩했다. 피가 모두 끓고 한 방울도 남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엠마누엘은 작은 밀알 같은 보석을 볼 수 있었다.
“혈석입니다. 복용하면 본인이 지닌 엘프의 벽을 허물고, 또 벽을 이미 허문 자라면 힘과 업을 축적할 수 있습니다.”
꿀꺽.
엠마누엘은 자신도 모르게 군침을 삼켰다. 그 어떤 엘프도 초월자로서의 역량을 쌓지 못했다. 고정되어있기 때문이다. 그걸 돌파하는 수단이 이런 작은 혈석이라니.
“아직도 믿지 못하겠다면 조사해보셔도 됩니다.”
“그럼 사양하지 않고…”
철면피인 엠마누엘이 혈석을 조사했다. 그리고 단번에 혈석을 집어삼켰다. 목을 넘어가며 엠마누엘이 눈을 감은 채로 사지를 바르르 떨었다.
그걸 보며 드낙이 웃음을 참으려고 애를 썼다.
‘엄청난 쾌감을 느끼고 있을 거다.’
엘프의 탄생, 그때부터 존재해오던 불변성이 사라지고, 힘과 존재의 격이 오르고 있음을 느꼈으니, 정신이 미쳐버릴 정도의 쾌감에 물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금방 눈을 떴다. 매우 약한 수준에 불과해서였다.
쏟아부은 피에 비하면 정말이지 찰나의 수준에 불과했고, 신체와 마력량은 능히 발전했지만 세발의 피였다. 효과는 있지만 그게 정말 지극히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일이었다.
인간이라면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계륵이라고 말했을 터였다.
‘하지만 그들은 엘프다.’
드낙이 그렇게 생각했을 때, 엠마누엘의 두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울음소리 같은 천박한 소리를 내지는 않았다. 그저 맑은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이를 본 디아볼로스들 또한 눈시울이 크게 붉어졌다.
방식이 문제가 아니다.
그저, 엘프라는 종족이 지닌 한계가 오늘에야 비로소 사라졌음을 깨달은 엘프가 흘리는 눈물은 엘프였던 디아볼로스가 봐도 눈시울이 붉어질 정도로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겠지만, 반드시 엘프신이 탄생할 수 있는 수단입니다.”
“예.”
드낙이 엠마누엘의 말에 긍정했다. 하지만 드낙의 속은 새까만 색이었다.
‘사업 시작하겠습니다.’
아홉 번째 권능 〈검은 신전〉은 일곱 개의 기둥과 천장과 바닥 그리고 벽을 통해서 그릇을 확보하고 그곳에 드낙의 능력을 담아낸다. 그 능력이란 빛의 기둥에 들어선 잔에 또 다른 능력을 부여하는 능력이었다.
열 번째 권능 〈잔 속의 드낙〉을 잔에 집어넣는 공장이 바로 검은 신전이었다.
검은 신전은 그 매개체에 불과했다. 능력이 능력을 낳는 셈이다. 드낙이 없어도 찍어낼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었다.
‘앞으로를 생각하면 당연한 거지.’
드낙은 제대로 대기업 행세를 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엘프들은 그 수혜를 많이 받지 못할 것이고 이는 중립신을 자극시키지도 않을 터였다.
“대단하십니다. 무엇보다 혼란과 타락. 오염과 야만을 원천봉쇄하는 것부터 꼼꼼함이 느껴집니다.”
“모두 종족을 위해서였습니다.”
드낙이 철면피를 깔고 종족을 논했다. 그 검은 속을 확인했다면 피눈물을 흘리겠지만, 어림도 없는 소리! 사람 마음조차도 모르는데 드낙의 마음속을 어찌 알겠는가.
“이 잔은 오직 당신의 피만을 받아서 혈석을 토해낼 겁니다. 그 혈석 또한 오직 당신에게 효능이 있습니다.”
드낙이 검은 성배를 넘기자 엠마누엘이 눈물을 서둘러 닦아내고 무릎을 꿇으며 그 잔을 받아들었다. 몇 년이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엠마누엘은 결국 자신이 초월자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음을 오늘 이 순간 확인할 수 있었다.
반대로 드낙 또한 비로소 사업의 첫 고객에게 상품을 팔았음을 확인했다.
그가 흘리는 피의 9할이 모조리 드낙에게로 바쳐지고, 남은 1할로 혈석이 만들어질 뿐이다. 아주 악독한 사장이 바로 드낙이었다.
‘이게 바로 한국 대기업의 참맛이다.’
대기업이 어리둥절할 정도로 드낙의 책임 회피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자기가 한 짓인데 마치 남이 한 것처럼 포장하기 바빴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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