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1)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1화(1/221)
1. 입학(1)
1. 입학(1)
대한민국은 천재에 미쳐있다.
아직 한글도 떼지 못한 아이들이 노래로 알파벳을 외우고 있고 한 달에 수백은 깨진다는 영어 유치원은 대기줄만 3년이 넘는다.
이 모든 건 자식을 천재로 만들려는 노력이다.
“그거 다 필요 없다니까요? 애초에 모국어도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영어 배우면 오히려 역효과만 나요.”
“아니 나야 뭐 마누라가 하자는대로 하는거지…”
“뇌를 보면 단어를 학습하는 구역이랑 문장을 만드는 구역이 다르게 작용을 하는데, 조기 영어 교육을 하다보면 단어조차 제대로 학습되지 않다보니까-”
일용직 노가다에서 만난 김씨 아저씨를 앞두고 열띤 강연을 펼쳤다. 브로카, 베르니케 등 외래어가 나오자 아저씨의 고개가 점점 옆으로 돌아갔다.
“자, 다시 작업 시작입니다.”
“아이고, 가자!”
휴게시간의 끝을 알리는 목소리에 강연은 중간에 끊겼지만, 아저씨의 표정은 오히려 더 밝았다.
우리는 벗어두었던 안전모를 다시 정비하며 밖으로 나갔다.
“근데 만덕아. 아까도 느낀거지만 너는 이곳에 있을 때가 아니다.”
“노가다 뛸 때가 있고 아닐 때가 있습니까? 필요하면 뛰는거지.”
“에헤이, 인생은 말이야. 다 때가 있는 법이다. 공부할 때 공부하고, 결혼할 때 결혼하고, 애 키울 때 애 키우고.”
나는 시멘트 포대자루가 겹겹이 쌓여있는 곳에 우뚝 멈춰섰다. 오늘 저 위까지 이걸 다 옮겨야한다고? 하, 허리 나가겠네.
“너 그 좋은 머리를 왜 지금 여기에 쓰고 있냐는 말이여. 어? 팔팔할 때 직업도 구하고, 여자도 만나고! 그래야지 어?”
“이 얼굴로 누굴 만나요. 그리고 35살이면 회사 취업도 힘들어요.”
“아냐. 넌 돼. 너는 내가 본 놈들 중에서 제일 똑똑혀. 가만보면 진짜 천재 같다니께?”
김씨 아저씨의 말을 귓등으로 흘리며 나는 시멘트를 어깨에 들쳐맸다. 어제 잠을 잘못자서 그런지 어깨에 담이 걸린 듯 했다. 뻐근한게 기분이 영 좋지 않았다.
“천재가 어딨어요. 사람 다 똑같습니다.”
그 말을 하며 나는 먼저 앞서나갔다. 어깨에 올려진 시멘트의 무게가 평소보다 더 무겁게 느껴졌다.
천재. 유달리 사람들은 천재에 열광했다.
열심히 노력한 범재가 받은 A등급보다 게으른 천재가 받은 A등급을 더 멋있다고 여겼다.
그리고 그런 게으른 천재들은 사실 자신이 범재라는 사실을 이를 악물고 숨기곤 했다.
‘학원을 다닌 적이 없다고?’
‘선행을 안하고 과고에 합격했다는거야?’
대한민국의 온갖 수학, 과학 천재들이 모인다는 한국 과학 고등학교.
그곳에서 난 별종이었다.
흙수저, 한부모자녀, 기초생활수급자. 라는 온갖 페널티를 가졌지만,
국가이공계장학생 선정, 국제 생물 올림피아드 금상, 논문에 고등학생 신분으로 1저자 등재. 라는 업적을 달성한,
한마디로 개천에서 용난 케이스였다.
우연히 담임선생님의 권유로 지원했던 한국과고. 붙을 줄 몰랐는데 사배자 전형 주제에 성적도 괜찮고 면접도 깔끔하게 본 덕에 합격했었다. 그 날은 정말 뛸 듯이 기뻤고,
그 이후로는 지옥이었다.
개천에서 용이 나려면 어떡해야 할까?
우선, 용들이 하는 것들은 다 따라가야 한다.
‘수학 10-(가), (나)는 모두 1학기내에 마친다. 진도 따라오는데 무리 없게끔 페이스 조절 잘 하도록.’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의 경우에는 자체 교재와 프린트로 수업을 진행합니다. 대학 수준까지 배운다는 건 다들 알고 왔죠?’
선행 없이 과학고에 입학했다는 건 큰 문제가 아니었다. 다만 차마 따라가기에는 살인적인 학업량과 고교 재학중에 진행해야 하는 다양한 프로젝트 수업들.
이 모든 것들을 노베이스 상태에서 따라가야만 했다. 이미 다른 학생들은 다 학원에서 배워왔겠지만 난 아니었다. 그렇기에 피를 토해내며 노력해야했다.
이렇게 하면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을까?
글쎄, 용들도 용들 나름이다.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 가르던 성격이 엘리트 사회라고 다를 건 없었다.
‘김만덕? 싫어. 걔 맨날 수업시간에 이상한 질문 해서 진도 느리게 한단 말이야. 그리고 옷에서 냄새나.’
‘실험기구를 써본 적이 없나봐. 오차 범위 내로 결과가 나와서 망정이지 하마터면 걔 때문에 우리 조 다 감점될 뻔했다니까? 선행이라도 좀 하고 오든가.’
모두가 사교육을 받는 입장에서, 사교육을 안 받은 사람은 별종이 된다.
하물며 그 사교육도 교수한테 받냐, 일타강사한테 받냐로 급이 나뉘는 상황인데,
학원도 안 다니는 나의 존재는…말할 것도 없었다.
그렇게 혐오가 하나씩 하나씩 겹을 쌓아올리고 있던 중에,
‘야! 김만덕 기초 생활 수급자래!’
그 말은 하나의 도화선이 되었다.
하루종일 학교에만 있는 학생들에게는 자극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건 나였다.
학업 스트레스를 푼다는 마음으로, 공부하다 친구 이야기 좀 할 수도 있는거 아니냐는 스탠스로 나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야, 나는 솔직히 사배자 전형이야말로 역차별 아니야?’
‘쟤는 부럽다. 운 좋게 들어와서 평생 과고 타이틀 달고 살겠네.’
‘으, 소똥 냄새 나.’
그러나 다들 학교폭력으로 생기부에 그이는 건 싫었는지, 조용하고 은밀하게 따돌렸다. 물증이 없고, 심증만 무수히 남아 당사자를 지옥에 있게끔.
“후우…좀 쉬었다가 올라갈까.”
계단을 오르다가 발걸음을 멈추었다. 머리가 핑핑 도는 게 분명 아침에 혈압을 쟀을 땐 멀쩡했는데… 나는 목을 두어 번 까딱거리며 스트레칭을 했다.
그렇다고 해서 순순히 당해주는 사람은 아니었다.
차별받는 만큼, 이를 악물고 공부했다.
그 누구보다 늦게까지 야자실에서 공부했고, 모두가 불을 끄고 자는 기숙사에서도 화장실에서 몰래 공부했다.
‘내가 왜? 너가 자료 조사를 제대로 안 해서 그대로 동료 평가에 적었을 뿐인데? 무슨 문제 있어?’
‘R&E 연구 주제 본인이 선정한 거 맞습니까? 학원가에서 미리 뽑아줬다는 말이 있던데요. 사실이라면 공정성에 어긋난다고 생각합니다.’
학교는 전쟁터. 나는 소리 없이 적군들을 쏘아댔다. 수행평가가 되든, R&E 논문이 되든, 걸고넘어질 수 있는 건 죄다 걸고넘어졌다.
그래야 내가 올라갈 수 있을 테니까.
“하, 담배 마렵다.”
불쑥 튀어 오른 과거 기억이 니코틴을 찾게 했다. 안돼, 금연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참자, 참아.
그 뒤로는 외로운 싸움이었다. 물론 살갑게 다가와 주는 친구들도 있기도 했지만…
‘싫은데? 내가 왜 너랑 같이 스터디 해야 해? 나보다 성적도 낮은 너랑?’
‘괜히 너희랑 팀 해서 점수 까이는 것보다 혼자서 완벽하게 하는 게 백배 더 나아.’
아군, 적군 가리지 않고 사격하는 내게 내 편이 있을 리가 없었다.
이를 악물고 졸업만 생각했다. 목표는 조기 졸업 후 국내 유명 공대에 진학하는 것.
마음 같아서는 해외 대학을 가고 싶었지만, 홀어머니를 두고 한국을 떠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학교가 미웠던 거지, 어머니가 미웠던 적은 없었으니까.
‘오…만덕아 너 아이디어 좋은데? 역시 과고 출신은 다르네.’
‘뇌생명공학자가 꿈이라고 했지. 치매 개발쪽이 주 관심분야였던가?’
그렇게 원하는 대학에 입학한 후, 모든 일이 술술 풀릴 줄 알았다. 유치하기 짝이 없는 등급 나누기 놀이에서 벗어난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진 않았다.
‘만덕아, 미안하지만 팀에서 널 받지 않기로 했다.’
‘니가 잘하긴 하는데…너무 너 생각만 해.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이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아. 건설적인 비판도 다 공격으로 받아들이는데 너한테 무슨 말을 하겠니?’
‘이젠 지긋지긋하다 진짜…’
그렇게 연구팀에서 쫓겨났다. 나와 일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가 가장 컸다.
그리고 나는 대학원을 그만두었다. 모든 것에 환멸이 났기 때문이다.
논문도, 과학도, 사람도.
사람을 믿지 못하는 나 자신도.
“다시 한번만 고등학생때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하는 게 맞았던 걸까.”
그때는 악착같았다.
누군가 도와주려고 손을 뻗어도 쳐내기 바빴다.
친구의 흠을 잡아내는 데 혈안이 되어있었다.
학교에서 친구란 존재하지 않았다.
‘너 그렇게 살면 평생 혼자일지도 몰라.’
독기를 품고 하루하루를 보내는 나를 보며 동급생이 건넨 말이었다. 그때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이해할 것만 같았다.
아. 사실 내가 모두를 밀어내고 있었나. 라고 깨달았다.
“수급자라고 주눅들 필요도 하나 없었지. 급을 나누는 애들도 극소수였고.”
나중에 알고 보니 나 말고도 사배자 전형으로 들어온 학생들이 몇몇 있었다. 다만 그들은 약하지 않았었고, 나는 멘탈이 약했다. 그래서 스스로 갉아먹었다.
입안이 썼다. 아까부터 묻어놨던 기억들이 강제 소환되다보니 체력적으로도 멘탈적으로도 완전 고갈 상태다. 눈가가 따가워지는 것 같았다.
“다시 한번 고등학생 때로 돌아간다면… 후회없이, 진짜 내가 좋아하는 공부 실컷 하면서 지낼 텐데. 그리고 사람을 좀 믿어볼 텐데.”
아, 다시 한번 고등학생 때로 돌아간다면 정말 후회 없이 보내고 싶다.
인간관계에 겁먹고 도망치는 게 아니라, 친구를, 동료를 만들고 싶다.
그렇다면 연구소를 그렇게 허무하게 나올 일도 없었겠지. 지금은 돌아가기엔 너무 늦었지만, 아쉬운 건 아쉬운 것이었다.
혼자서는 결코 볼 수 없었던 그 길을 함께라면 볼 수 있었을텐데.
조금만 더 주변 사람들을 챙겼었더라면, 지금쯤 달라졌을까?
“…시멘트나 옮기자.”
현실로 돌아왔다. 내 발 앞에는 시멘트 포대가 있었다. 다시 장갑을 끼고 포대 자루를 어깨에 들쳐맸다.
다시 계단을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갔다.
계단 한 걸음마다 쌓이는 후회.
‘생각해보면 그렇게 나쁜 애들은 아니었어. 나중에 내가 사배자라는 걸 알고 따로 배려해주기도 했고.’
‘애들이 나를 따돌린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애들을 따돌리고 있던 거였나.’
‘대체 뭘 위해 그렇게까지 군 거지…’
“어어! 이쪽에 옮겨두면 돼!”
이미 다 지나간 일. 더는 어쩔 수 없다는 마음이 들면서도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때, 저 멀리서 김씨 아저씨가 손짓했다.
“만덕아 너 괜찮냐? 안색이 너무 안 좋은데?”
“괜찮아요.”
“쉬면서 해. 쉬면서. 여기는 건강이 최우선이여.”
나는 고개를 꾸벅이고 포대를 내려놨다. 아무리 초짜여도 1인분치는 해내야지. 허리를 굽혔다가 다시 펴니 머리가 핑 도는 것 같았다.
그렇게 계단에 발을 디디는 순간,
“아.”
왼쪽 발이 앞으로 쭉 뻗어갔다. 몸통이 뒤로 젖혀지고 양손이 허공에서 헤엄쳤다. 하지만 한번 기울어진 무게중심은 되돌아오지 않았다.
우당탕탕!!
철로 된 간이 계단에 온몸이 부딪히며 굴러갔다. 뼈 마디마디가 꺾였다. 저 멀리서 사람들이 새된 비명을 지르며 달려오는 게 보였다. 축축하게 흘러내리는 피가 눈앞을 가렸다.
“119! 119 불러 당장!”
“아이고…아이고! 만덕아…이게 다 무슨일이냐…”
겁에 질린 목소리와 다급한 목소리. 흐느끼는 목소리가 섞여 귓가에 들려왔다.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병원인가?’
눈을 떴다. 병원이라기엔 묘하게 촌스러운 벽지가 눈에 들어왔다. 고개를 돌리니 병원이 아닌 집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몸을 일으켜 이불을 들췄다. 분명 두 다리가 꺾였을 텐데 깁스 하나 없었다. 양 팔을 봐도 멀쩡했다. 링거를 맞은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뭐지? 꿈을 꾸는 건가?’
아직 비몽사몽한 상황 속에서 양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그 순간, 뭔가 크게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노가다 일을 처음 시작할 때 생겼던 흉터가 손에 안 잡혔다. 그리고 묘하게 피부가 탱탱해진 느낌이었다.
나는 문 쪽에 걸려있는 거울을 향해 달려갔다. 자리에서 일어날 때도 통증은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몸이 더 가벼워진 느낌.
“진짜 없잖아?”
양손으로 얼굴을 이곳저곳 만져댔다. 그러나 거울 속에 보이는 건 깨끗한 피부를 가진 내 모습이었다. 그때, 방문이 열렸고 자동으로 나는 뒷걸음질을 쳤다.
“아이고, 만덕이 일어났나. 내일이면 서울로 가는 날인데 좀 더 쉬지 않고.”
“…엄마?”
지금 눈앞에서 일어난 상황에 두 눈만 끔뻑였다.
엄마? 엄마가 여기서 왜 나와?
서울에서 우리 집까지만 편도 6시간이다. 버스도 하루에 한 대만 운행하는 탓에 시간대를 놓치면 꼼짝없이 하루를 기다려야만 했다.
그리고 이 방. 아까부터 뭔가 기시감을 느꼈었는데, 가만보니 내가 어릴 적에 사용하던 방이었다. 한쪽 구석에 놓인 책상과 그 위에 쌓여있는 과학 전집들. 하도 많이 봐서 닳았을 정도니까.
“엄마. 저 얼마나 쓰러져 있었어요? 병원비는요?”
“병원비라니? 무슨 소리야?”
별 헛소리를 다 한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엄마. 그런데 묘하게 엄마도 젊어진 모습이었다. 전보다 주름살이 없었다.
‘에이…설마?’
사라진 흉터. 젊어진 어머니의 모습. 그리고 눈에 띄게 가벼워진 내 몸.
나는 책상 위에 올려져있던 달력을 집어 들었다.
‘2007년 12월’
“거짓말. 2007년이라고?”
“얘는 평소에 안 하던 혼잣말을 하고 그래? 잠이 덜 깬 거면 어서 더 자. 내일 아침 일찍부터 나가봐야 하니까.”
“내일요? 내일 어디 가는데요?”
12월 달력에 빨간색으로 강조되어 있는 날이 하나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큰 글씨로 적혀있었다.
‘한국과고 예비소집일’
“어디긴 어디야? 고등학교 가야지!”
2007년,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16세, 겨울로 회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