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10)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10화(10/221)
10. 변화 (3)
10. 변화 (3)
“첫 번째 수행 평가는 실험 설계 보고서 작성으로 이뤄진다. 실험은 개인이 아닌 팀으로 진행되고.”
입학식이 끝나고 첫 수업은 화학, 김영환의 수업이었다. 그는 일반 화학책을 보며 간략하게 오티를 진행했다.
‘이미 한차례 배웠던 내용이긴 하지만 실험쪽은…’
아무리 고등학교를 한차례 겪고, 학부 시절에 더 배웠다하더라도 세세하게 기억하는 건 어려웠다. 애초에 내 전공은 생물학이었기에 고등학교 화학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감이 안 잡혔다.
“물론 집에서 미리 복습을 하곤 왔지만 또 실험은 별개의 이야기니까.”
실험 설계. 직접 주제를 정해 실험 과정을 설계하는 활동이었다. 일반적으로 교과서에 나와있는 실험들을 수행하곤 했지만 이곳은 한국과고. 실험 설계 하나에도 온 심혈을 기울이는 천재들이 모여있는 곳이었다.
“팀은 랜덤으로 짜나요?”
“우선 이번 수행평가의 경우엔 너희에게 자율성을 줄 생각이다. 이후엔 랜덤으로 돌릴 거고.”
팀으로 수행하는 과제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팀원들 간의 협력. 그리고 개개인의 능력치이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김영환은 일부러 학생들을 풀어놨다.
원래라면 번호순으로 짜거나 성적이 골고루 배치되도록 하는 게 기본이지만 첫 수행평가 때부터 랜덤으로 짜버리면 학생들 사이에서 민원이 터져 나온다.
누구 때문에 실험이 망했어요, 누가 협조를 안 해줘서 보고서 작성이 늦어졌어요, 누구 때문에…
고등학생이나 된 녀석들이지만 협력에 대해선 무지한 상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원망의 화살을 서로에게 돌리게 된다.
그러면 반 분위기가 개판이 돼버리니까 첫 수행평가에선 모쪼록 자율성을 주자는 게 교사 회의에서 나온 안건이었다. 까딱했다 심해지면 학폭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기에.
‘이렇게 했는데도 불만이 터져 나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거고.’
김영환의 말에 학생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벌써부터 드림팀을 꾸리려고 혈안이 된 모습이었다.
“자 이상으로 수행평가 안내는 끝이 났고, 바로 수업 들어가 볼까. 교재 11p다.”
김영환의 말에 학생들이 교재를 폈다. 복잡한 화학식과 외울 게 많은 내용 탓에 김영환은 따로 자체 교재를 제작해 사용하고 있었다. 물론 영문판으로 된 일반 화학책도 함께 병행해서 수업에 나갔고.
김영환의 수업을 들으면서 나는 과거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내 기억이 맞다면 첫 실험 설계의 주제는 산·염기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비교적 어려운 단원에 속하는 이 부분을 실험으로 넘겨 보다 능동적인 학습을 유도하는 게 목표인 것 같았으니까.
그리고 학생들은 관련된 내용을 모두 학원에서 얻어왔다. 아니, 아예 실험 설계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학원에서 족보처럼 받아온 후 달달 외웠다.
‘뭐? 학원을 안 다닌다고?’
‘완전 무임승차잖아…’
물론 과학고를 준비하던 시절, 나 역시도 실험 설계에 대해 배우긴 했지만 입시용과 수행평가용은 달랐다. 연구 주제와 조건을 알려주던 과고 입시 때와는 달리 이번엔 내가 다 정해야 했으니까.
그렇게 어쩌다가 배정된 팀에서 나는 무임승차자가 되었다. 그러고 싶었던 게 아니지만 그래야만 했다.
‘됐어. 첫 수행평가에서 괜히 불확실한 거 넣어서 점수 까이고 싶진 않으니까.’
‘발표는…하, 됐다. 그냥 내가 할게.’
3인 1조로 구성된 팀에서 내 역할은 아무것도 없었다. 뭐라도 하고 싶었지만 아무 것도 시켜주지 않았다. 뭔가 하려고 하면 나를 막아 세웠다.
그렇게 첫 화학 수업이 끝나고 학생들은 저마다 반 안에서 팀을 꾸리려고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빨리 좋은 팀원을 영업해야 앞으로가 편하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움직임이었다.
콕. 그때 누군가 내 등을 찔렀다. 이인성이었다.
“나랑 같은 팀 하실? 나 족보도 있음.”
“나도! 나도 같이해.”
뒤따라 온 이인영이 합류 의사를 밝혔다. 과거와 다르게 새로 생긴 인연들.
나는 알 수 있었다. 이들이라면 같은 팀을 해도 괜찮을거라고. 학원에 다니지 않아 족보나 자료가 없는 날 있는 그대로 받아줄 녀석들이라는 건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말해야만 했다.
“족보 쓰면 안 돼.”
“어?”
내 말에 이인성이 황당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이인영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설마 양심의 가책 그런 거 때문에 그래? 괜찮아 괜찮아. 이 학교에 족보 안 쓰는 사람 아무도 없을 걸?”
“맞아. 이 반에 애들 다 학원에서 받아서 써. 아니면 우리 학원 족보 쓰는 게 미안해서 그래?”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학원에서 유통되는 수행평가 족보. 연구 주제들부터 실험 과정 설계까지. 잘 짜여진 내용들은 유능한 강사진들을 통해 만들어졌다. 당연히 이 주제들로 수행평가를 하면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터였다.
그게 한국과고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과거에도 똑같았지. 학생들은 학원에서 내려오는 족보, 혹은 자료들로 수행평가를 했었지만…’
결과는 감점 혹은 실격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실험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오차들을 모조리 다 제거한 결과였으니까.
완전히 이상적인 상황에서만 나올 수 있는 결괏값들. 다른 주제와 다르게 산·염기에서는 더더욱 오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그린 결과 그래프들은 모두 이상적이었고, 이는 감점의 요인이 되었다.
‘선생님! 이건 불공평합니다. 오차가 안 나왔다고 감점이라뇨?’
‘그럼 지금 눈앞에서 실험을 똑같이 진행해봐라. 그리고 결과값이 같게 나온다면 인정해주마.’
당연히 성공하는 학생은 없었다. 운좋게 오차 없이 결괏값이 나와도 그 값을 해석하지 못했다. 주입식 교육으로 외운 상태였으니까.
그리고 나중에서야 알게 된 내용이지만 김영환은 시중에 유통되는 수행평가 족보를 이미 다 확인한 후였다. 일부러 족보를 이용한 학생들을 걸러내기 위해 그가 얼마나 벼르고 있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평소에도 근성 있는 사람인 건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공교육의 현장에 있는 그는 늘 괴로워했다. 누가 봐도 학생 수준에서 나오기 힘든 연구 주제들. 어디까지 눈을 감아줘야 할지 고민하던 그는 결국 이번 연도에 칼을 뽑아 든 것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내용을 설명하기엔 무리였다.
“난 족보 사용 안 해.”
“쉬운 길 냅두고 굳이?”
족보 썼다간 다 같이 사이좋게 감점이야. 라고 말할 순 없었다.
“첫 수행평가잖아. 내 힘으로 하고 싶어.”
“너 그러다가 똥 된다? 애초에 이런 말도 있잖아. 세상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어차피 너가 생각해낸 주제도 다 누가 했던 걸걸?”
“괜찮아. 내가 직접 한다는 거에 의미가 있는 거니까.”
내 말에 이인성이 질색했다.
“그럼 생각해 둔 실험은 있어?”
“음…글쎄. 실생활에서 볼 수 있는 걸로 산·염기 실험해볼까 하는데. 아직 시간이 좀 남아있으니까.”
“으으으음…”
이인성은 미간을 찌푸렸다. 족보와 나를 두고 고민하는 듯했다. 한동안 신음하더니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그렇게 하자. 그 대신 좋은 아이디어 안 떠오르면 족보 사용하기다?”
고개를 끄덕였다. 나에 대한 신뢰가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그 신뢰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실험 주제를 좀 더 고민할 필요가 있었다.
“근데 너 저거 신청할 거냐?”
이인성이 가리킨 곳에는 유인물 한 장이 붙어 있었다.
[한국화학올림피아드(KChO) 참가 신청서]대한화학회 화학올림피아드위원회에서 주관하는 시험으로는 국제화학올림피아드(IChO)에 참가할 대표 학생들을 교육및 선발하는 시험이었다.
신청자들은 온라인 교육을 받는다. 그 후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입교 시험, 선발된 학생들은 여름 방학동안 시험을 위한 교육을 받고 대회에 출전한다.
[생명과학 및 물질과학을 선도하는 분야로 인류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는 화학의 이해]‘이건 스펙으로 쓰고도 남지.’
금성 장학생으로 선정되기 위해선 각종 대회 수상 실적은 필수였다. 장학재단의 이념상 한 분야에만 가능성을 보이는 학생보다는 다양하고 넓은 분야에서 가능성을 보이는 학생을 선발했다.
‘대회 수상 실적은 많을수록 좋아. 그리고 지금의 나라면 수상 가능성도 있고.’
과거였다면 본선은커녕 입교시험 때 떨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학부 때 배웠던 화학 지식들과 대학원 시절 배우기 싫어도 이해하고 실험까지 해야만 했던 시간들까지 포함한다면 해볼 만했다.
“응. 나가려고.”
“와, 대박. 역시 화학 1등은 다르네.”
내 말에 이인영의 표정이 굳어졌다. 자존심이 긁힌 모양이었다.
“화학올림피아드는 너가 알던 화학이랑 많이 다를 걸? 교육과정 외의 내용들이 대다수라 학원에 안 다니고는 입교 시험조차 힘들 텐데.”
“내가 알던 화학이랑 학원에서 배우는 화학이랑 달라?”
“그냥 고딩들이 풀 정도가 아니라 대학원 수준까지 알아야 한다는 말이야.”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를 보듯이 이인영이 화학올림피아드에 대해 줄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니 과거가 떠올랐다.
내 기억이 맞다면 이인영은 화학올림피아드에 출전하고, 이후에 국제화학올림피아드까지도 출전한다.
결과는 은상. 한국은 그 해 공동 2등에 그친다. 나쁘지 않은 수확이었지만 아쉬움도 남는 대회였다.
“그러니까 화학을 제일 좋아하지 않는 학생이 뛰어들기에는 너무 힘든 일정이라고.”
“걱정해줘서 고마워.”
“아니 이걸 어떻게 걱정으로 봐?”
어이없어하는 이인영을 바라봤다. 국제화학올림피아드 대표단 학생은 4명.
“이번에는 꼭 금메달 따자. 너도, 나도.”
“뭐래. 앞으로 시험 치려면 2년은 더 남았거든? 당장 입교 시험이나 걱정해.”
그렇게 툴툴대는 이인영과 이야기하는 사이 쉬는 시간이 끝났고, 수업이 시작되었다.
*
“어, 일찍 왔네. 석식은 먹었어?”
“엉. 잠깐 두고 온 게 있어서 챙겨서 야자실 갈려고.”
방에 들어오니 김진수가 양치를 하고 있었다. 처음에 날이 서 있던 모습과 달리 조금 누그러진 모습이었다.
“맞다, 나 궁금한 거 있는데 물어봐도 돼? A/S 신청이야.”
“A/S라 안 해도 된다니까…”
김진수는 나한테서 각종 학술지를 받아 간 뒤로 의욕적이었다. 브릿지 캠프 이후 다시 룸메이트가 된 걸 확인한 후 방방 뛰면서 좋아할 정도였으니까.
“여기 그래프를 보면 ‘Standardized mortality trajectories.(표준화된 사망률 궤적)’이라고 되어있는데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감이 안 와서.”
“아 x축을 Standardized ages(연령 표준)으로 두고 y축을 Standardized mortality(사망 표준)으로 두면…”
그래프 위에 해석을 곁들이면서 설명하자 김진수의 눈이 빛났다. 전생에는 늘 피곤에 찌든 눈이었는데 사뭇 달라진 모습이었다.
“근데 이 논문으로 R&E 준비하는 건 좀 힘들지 않아? 실험 자체도 불가능하고.”
“그냥 재밌어서 보는 건데?”
예상 밖의 대답에 내가 벙쪄있자, 김진수가 머쓱한 듯이 대답했다.
“아니 뭐… 읽다보니까 재밌더라고. 진짜 과학자라도 된 것 같고.”
“너 꿈 과학자였나?”
내가 알기로 김진수는 의대 지망생이었다. 과고에 들어온 것도 그 이유가 컸다.
“과학자는 아니고, 사실 의사가 꿈이야. 그것도 피부과나 성형외과 쪽.”
“왜?”
“그야 돈 많이 버니까?”
양치를 마친 그는 수건으로 입을 닦으며 말을 이었다. 전생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내용들이 전해졌다.
“사실 나 외동이거든. 우리 엄빠 나 의대 보내겠다고 등골 휘는 거 다 봤는데, 여기서 어떻게 다른 거 하겠다고 하겠어? 그리고 의사 멋지잖아? 흰 가운 입고 크으.”
“의대도 학비 많이 들잖아. 공부량도 엄청나고. 가서도 자퇴하는 사람 많다던데.”
의대가 보장해주는 장밋빛 미래. 많은 수험생이 그 하나를 보고 달려든다. 하지만 일부는 그 현실을 버티지 못하고 그곳을 도망치듯 떠나왔다.
눈앞의 김진수가 그랬다.
“설마 그러겠냐? 거기에 들어가려고 쏟아부은 돈만 수억이 넘을 텐데. 그건 다 의지력 부족이야, 의지력 부족.”
킬킬 웃으며 네이처를 책장에 꽂는 김진수. 그는 자습실에 챙겨갈 학원 문제집들을 산처럼 꺼내놓기 시작했다.
“아 그리고 이거 필요하다고 했지? 내가 웬만하면 문제 잘 안 주는데… 너 그 요약집 좀 괜찮더라? 앞으로 윈윈 해보자고. 일종의 동맹인 거지 동맹.”
“동맹?”
“그래. 이 천재들이 득실대는 정글 같은 과학고에서 좋은 정보 있으면 공유하고! 좋은 건 나눠 갖고!”
동맹이라. 감회가 새롭다. 유치해 보이는 말장난일 수도 있지만 아군 한 명 없던 전생의 난 동맹이라는 말이 괜스레 마음에 닿았다.
나는 김진수가 건넨 문제집을 받으며 말했다.
“앞으로 잘 부탁해. 같이 살아서 졸업하자.”
“그냥 졸업이 목표가 아냐! 조기 졸업!”
악수를 하며 의리를 다지는 그날, 정글 같은 과고에서 살아남기 위해 룸메이트 동맹이 맺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