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101)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101화(101/221)
101. 전공자 (1)
101. 전공자 (1)
데이브를 따라 듣게 된 수업은 [기초생물학] 강좌였다. 생물학의 여러 분야들을 짧게 공부하는 입문용 생물학이랄까나.
그의 손에 이끌려 도착한 곳, 우리는 가장 뒷 쪽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근데 이렇게 들었다가 걸리면 어떡해?”
“절대 안 걸려. 애초에 우리 얼굴도 제대로 모르실 걸?”
“출석 부르면?”
“출석? 그런 거 안 부르는데?”
한국 대학과는 시스템이 다른 모양이었다. 출석을 성적에 포함시키는 한국 대학과 다르게 하버드대에서는 몇몇 수업을 제외하고는 아예 출석을 반영하고 있지 않았다.
“그 대신 우리는 졸업이 힘들어. 대충 통과시켜주는 일이 없거든.”
그래서 유급이 일상이야. 나처럼 말이지, 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데이브였다. 그렇게 대학 시스템에 대해 듣고 있는 가운데, 머리가 희끗한 노교수가 걸어들어왔다.
‘잠깐만, 저 교수는…?’
익숙한 얼굴을 보는 순간 나는 바로 그가 누군지 떠올렸다. 하지만 데이브는 그런 내 표정을 보고 다른 생각을 했는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교수님 왕년엔 꽤나 유명한 사람이었대. 근데 학생들 사이에선 평이 안 좋아.”
“왜?”
“그야 수업이 지루하니까?”
노먼 코헨. 하버드대에서 생물학을 가르치고 있는 노교수이자, RNA 관련한 연구로 노벨 생리의학상 후보로 올라갔던 저명한 과학자였다.
게다가 말년에 그는 역사적인 발견, 한 평생 해오던 tRNA(운반 RNA)에 대한 연구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게 된다.
‘노벨상 수상자의 수업을 직접 듣게 될 줄이야.’
그렇게 떨떠름한 마음으로 노먼 교수를 바라보는데, 그가 금테 안경을 지긋이 올리며 수업을 시작했다.
“…오늘 다뤄볼 주제는 신경생물학입니다. 뇌의 구조와 기능, 신경 과정의 기본 메커니즘을 포함한 신경계에 대해 다루는 분야이지요.”
느릿느릿한 목소리, 다른 교수들은 그래도 최신 트렌드에 맞춰 피피티를 띄워놓고 수업을 한다만···. 노먼 교수는 아날로그 수업을 고집하고 있었다.
그는 흰색 분필을 들고 칠판 앞에 섰다. 큰 글씨로 ‘Neurobiology’ 라고 쓴 후, 신경 생물학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신경생물학은 앞으로 여러분이 분자 및 세포 신경과학을 학습할 때 기본이 되는 분야로···.”
강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데이브가 한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강의를 하는 목소리 톤이 일정해서 그런지 자장가 같았다. 마침 강의실에는 사람도 많았기에 따뜻한 기운이 퍼지고 있었다. 한마디로 노곤노곤한 분위기 속에서 자장가를 듣고 있는 상황.
학생들 몇몇이 고개를 살짝살짝 떨구기 시작했다. 고개를 돌려보니 데이브는 진작에 엎드려 자고 있었다.
···하버드대라면 명실상부 전 세계의 수재들이 모인 곳이지만 크게 보면 같은 대학생들이다. 한창 혈기왕성한 나이. 마침 시간도 점심을 먹고 난 직후 시간대이기도 하고.
노먼 교수는 이따금씩 학생들을 쳐다보긴 했지만 굳이 깨우지 않았다. 애초에 깨울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었다. 그는 헛기침을 두어 번 한 뒤, 신경생물학에 대한 설명을 이어 나갔다.
“신경계의 구성 요소인 뉴런의 구조, 기능과 같은 기본 개념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뉴런은 전기적, 화학적 신호를 서로 신호를 주고받는다는 것입니다. 이때 화학적 신호로는 신경전달물질이라는 것이 사용되는데···.”
“교재에 나와있는 것처럼 RNA 유형은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mRNA, tRNA, rRNA입니다.”
“오늘 과제로 나갈 내용은-”
노먼 교수가 이야기하는 것을 하나도 빠짐 없이 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필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노트도, 펜도 없는 상황이었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초집중해서 듣는 것 뿐이었다.
마치 그의 말 하나하나를 뇌에 새겨놓으려는 듯이.
그렇게 수업이 끝이 나고, 학생들이 잠을 떨쳐내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밖으로 나갔다. 데이브는 입가에 흘린 침을 닦으며 칠판에 적혀있는 과제를 확인했다.
“뭐야. RNA와 관련된 연구 아이디어 제시? 저게 과제라고?”
“응. 반영 비율 높게 잡으신다고 준비 잘 해오라고 하시던데?”
“아악! 차라리 자료 조사를 시켜줘! 저런 아이디어 제시가 제일 까다롭고 기준도 애매모호하다고! 차라리 퀴즈를 내는게 낫지.”
질색하는 데이브와 달리 나는 묵묵히 칠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본 데이브가 웃으며 내 어깨를 툭 쳤다.
“어때, 막상 생물학 수업 들어보니까 이건 아니다 싶지?”
“? 전혀? 너무 좋던데?”
“뭐야. 좋았다고?”
내 말에 인상을 찌푸리며 대꾸하는 데이브. 하지만 진심이었다. 노먼 교수의 강의법 자체는 조금 지루할지 몰라도 그가 말하는 내용은 하나하나가 보석 같았으니까.
RNA 편집부터, RNA 스플라이싱, 다중 오믹스 분석(Multi-Omics Analysis)등.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는 자신이 아는 걸 최대한 쏟아부었다. 단지 그걸 모조리 흡수할 수 있는 학생이 없었을 뿐.
데이브는 나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다시 화제를 돌렸다.
“그래도 도강해본 소감은 어때? 사람이 많아서 전혀 안 걸리지?”
“응. 생물학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수강하는 것도 신기하고.”
“뭐, 기초 수업이니까. 수업이 지루해서 그렇지 부담스러운 강좌는 아니기도 하고.”
다른 수업들에 대해서도 이런 저런 이야기를 꺼내는 데이브였지만, 내 머릿속에는 한가지 생각뿐이었다.
“근데…저 과제 제출하면 안되겠지?”
“…? 농담이지?”
“진심이야.”
“왓 더…당연히 안되지! 그러면 도강한 의미가 아무것도 없잖아!”
여기서 내 이름으로 과제를 제출했다가는 채점은 커녕 읽지도 않고 버려질 수도 있었다. 애초에 교수는 수강생들을 대상으로 지도해주는 사람. 도강생까지는 봐주더라도 과제까지 제출하면 이상하게 엮일 가능성이 컸다.
“막말로 너가 저 과제를 내버리면 ‘나 도강했어요~’ 라고 자백하는거나 다름없다고.”
“그건 그렇지만…”
“됐고, 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빨리 동아리실에 가자. 애들 기다리고 있을테니까.”
데이브에 재촉에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강의실을 나왔다. 나오는 순간까지도 칠판에 적혀있는 과제 [RNA 연구]가 눈에 아른거렸다.
살면서 노벨상 수상자에게 과제를 평가받는 일이 얼마나 있을까? 물론 노먼 교수가 계속 하버드에 남아있는다면 다음 학기에 수업을 들을 수 있겠지만…
‘노벨상을 받을 때는 분명 다른 대학이었던 것 같단 말이지. 하버드대라면 기억에 안 남았을리가 없을테니까.’
그렇게 첫 하버드대 강의를 도강으로 성공적으로 끝낸 뒤, 나는 동아리실로 향했다. 앞으로 하버드대에 머무는 동안은 자주 도강해야겠다, 고 생각하면서.
*
하버드대 적응은 생각보다 쉽게 이뤄졌다.
첫 날 로버트의 손에 이끌려 교정이나 학생 식당, 도서관, 카페테리아 등 앞으로 생활하면서 자주 이용하게 될 공간들을 익혀갔다.
‘식당에 있는 컵케이크가 제일 맛있는데, 그거 가져가다 들키면 엄청 혼나.’
‘? 먹으라고 가져다 둔 거 아니야?’
‘유대인 전용이거든. 워낙 학교에 기부를 많이 하다보니, 좀 특별 취급이야.’
처음 알게 된 내용들도 많았다. 진짜 하버드생이 아니라면 모르고 지나칠 소소한 팁들. 로버트는 이런 저런 정보들을 아낌없이 풀어주었다.
그 뒤로도 미야와 데이브가 “저기 카페테리아에선 무조건 오트 밀크로 바꿔서 먹어.”라든가, “도서관 자리 선정이 중요한데-” 라면서 여러 꿀팁을 알려줬고.
그리고 오늘, 크리스 교수에게서 연구 시설과 관련하여 자세한 안내를 듣고 있는 중이었다.
“사실 줄기세포에 대한 연구는 보스턴, 그러니까 하버드 쪽도 좋지만 캘리포니아가 조금 더 우세한 실정이긴 합니다. 아무래도 미정부에선 줄기세포와 관련한 윤리적 문제를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입장이다보니…”
“캘리포니아는 괜찮은건가요?”
“캘리포니아는 다른 주들이랑 다르게 체세포 핵 이식 치료를 허용했습니다. 물론 난치병이나 희귀병 같은 치료를 목적으로 한해서 이긴 하지만 그 덕에 캘리포니아에서는 아낌없는 투자를 하고 있는 중이죠.”
크리스의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에 잠겼다. 줄기세포에 대한 정보를 모으면서 캘리포니아 대학도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저는 하버드에서 연구를 하고 싶습니다.”
줄기세포를 비롯해 관련 다양한 연구의 권위자들이 모여있는 하버드가 더 이득이었다.
미국이라는 나라를 떠올리면 자유롭고, 인맥 보다는 능력에 더욱 집중하는 나라라고 생각하기 쉽지만…이런 연구직 자리나 조교같은 자리는 이전에 알던 사람을 통해 가는 경우가 많았다.
괜히 추천서 문화가 발달한 게 아니었다.
‘줄기 세포 하나만 바라보는 것도 좋지만 다양한 인맥을 쌓아두는 것도 중요해. 더군다나 외국인 신분인 내가 할 수 있는 건 한정적일테니까.’
게다가 하버드 내에서도 줄기 세포에 대한 연구가 성황리에 진행되고 있는 중이었다. 눈 앞에 있는 크리스 교수만 해도 사이언스지에 줄기 세포와 관련한 논문이 몇차례나 게재 되었으니까.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혹시라도 만덕 학생이 캘리포니아 대학을 선택할까봐 조마조마하던 중이었거든요.”
“하버드에서는 지원이 적은 편인가요?”
“전혀요! 오히려 무서울 정도로 지원금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내 대답을 들은 크리스 교수가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어느덧 따뜻한 카페 안에 들어온 우리는 가볍게 마실 음료를 주문한 후 자리에 앉았다.
“그럼 본격적으로 어떤 연구를 진행할지 이야기를 나눠볼까요?”
“네. 크리스 교수님께서 기존에 진행하시던 연구들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크리스 교수와의 이야기는 꽤나 길게 이어졌다. 그는 분자세포생물학을 전공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며 줄기 세포와 관련된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사실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진행조차 못했습니다. 아무래도 윤리적 문제와 가장 맞닿아있는 부분이다 보니 이 연구는 모두가 조심하고 있는 상황이거든요. 하지만 재생 의학 분야에서는 배아줄기세포를 포기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어려운 문제네요. 문제가 있는 연구면 지원을 받기도 힘들거고요.”
“아무래도 그렇습니다. 아, 그래도 오해는 하지 마세요. 무서울 정도로 많은 지원금이 그 외의 줄기세포 연구에 사용될 예정이니까요.”
줄기세포의 종류는 다양하다. 성체줄기세포, 유도만능줄기세포(iPSC), 신경줄기세포(NSC) 등. 종류가 다양한 만큼 연구원들은 다양한 줄기세포에서 여러 시도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크리스 교수가 혹여라도 내 마음이 돌아설까 걱정하듯, 열심히 줄기세포에 대해 설명했다. 다 알고 있는 내용이었지만, 그 중 특히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건…
“신경줄기세포(NSC)에 대해 더 연구해보고 싶습니다.”
“안그래도 만덕 학생이라면 그 분야에 대해 이야기할 것 같았습니다.”
내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크리스 교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신경줄기세포(NSC)는 신경계 내에서 여러 세포 유형으로 분화할 수 있다는 게 최근 연구에서 밝혀졌죠. 뉴런, 성상교세포 등으로요.”
“네. 그 중에서도 성상교세포로 분화시키는 방향에 대해 관심이 있습니다.”
“…의외군요. 당연히 뉴런으로 분화시키려 할 줄 알았습니다.”
이건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이, 다소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크리스 교수.
크리스 교수가 말했던 것처럼 처음에는 뉴런으로 분화시킬 생각을 했다. 하지만 성상교세포, 즉 뉴런을 지지하고 영양분을 제공하는 세포의 존재가 자꾸 마음에 걸렸다.
“치매를 일으키는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베타-아밀로이드 가설이 가장 유력하지만 단백질이 쌓이는 이유를 파악해내는 것도 어려운 수순이고요.”
“그렇다면?”
“제가 진행하는 연구의 방향은 단백질 축적 기작을 막아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 생각엔…성상교세포가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거라 생각해요.”
“…추측인가요?”
사실 전생에도 활발히 이뤄지던 연구였다. 하지만 아직 이렇다 할 결과물이 나오지 않은 상황이었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 그를 향해 나는 말했다.
“모든 과학은 가설에서 시작하니까요.”
가설 없이는 연구가 진행되지 않는다. 말도 안되는 가설이더라도 그 가설이 틀리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 가설은 반드시 설정해야만 했다.
수천개의 가설이 틀리더라도 단 하나의 정답을 찾기 위한 여정.
그것이 과학이 발전하는 길이니까.
“하하하!”
내 이야기를 들은 크리스 교수가 큰 목소리로 웃었다. 덕분에 카페에 있던 사람들이 우리 쪽을 한번 흘끗 바라보는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는 크게 개의치 않는 듯 웃으며 말했다.
“좋습니다. 그럼 그 방향으로 연구를 진행해보도록 하죠. 언제부터 시작하는게 좋겠습니까? 입학하자마자? 아니면 지금?”
“지금 시작할 수가 있나요? 자격도 자격이지만 연구 시설을 바로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닐텐데요?”
“괜찮습니다. 연구시설이야 뭐 제 연구실을 이용하면 되니까요. 자격은 뭐…여기서 만덕 학생의 자격을 논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크리스 교수가 재밌다는 듯이 웃었다. 생각보다 술술 풀리는 일정에 놀라기도 잠시, 그가 살짝 곤란하다는 듯 미간을 좁혔다.
“그나저나 한가지 문제점이라면 문제점이 있네요.”
“네?”
“시간이 없군요. 줄기세포와 관련해서 지금까지 연구실에서 진행하고 있던 연구들을 소개해주려면 2주로는 턱없이 부족할텐데요. 생물학 전공자가 아닌 이상 논문의 내용을 해석하는게 어려울테니까요.”
걱정스러운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전공자라. 전생에 구를대로 구른 내가 생물학 전공자가 아니면 대체 뭘까?
아직 크리스 교수가 나를 고등학생 수준으로 보고 있다는게 느껴지는 대목이기도 했다.
논문의 발견은 엄청나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고등학생 수준의 생물학 지식에서 발견해 낸 우연의 산물. 크리스 교수는 내가 가진 능력이나 지식보다는 가능성을 봤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네? 하지만 단어 자체도 전공자가 아니면 모르는 단어들도 많고, 단시간에 보고 배우기에는-”
“이미 다 보고 왔습니다.”
“…네?”
살짝 벙찐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웃으며 크리스 교수에게 말했다.
“비행기 시간이 꽤 길더라고요.”
“…설마.”
“교수님이 쓰신 논문이랑 참고 문헌들까지 다 읽고 왔습니다.”
13시간이면 논문 읽고도 남을 시간이니까요, 내 말에 크리스 교수의 눈이 커다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