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103)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103화(103/221)
103. 전공자 (3)
103. 전공자 (3)
“lncRNA를 바이오마커로 사용하자는 연구 아이디어를 제시했습니다.”
강단 앞에 선 상황.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집중되었다. 수 많은 눈동자들이 빠르게 나를 스캔했다.
‘뭐지? 저런 학생이 있었나?’
‘또 아시아인이야? A는 확정이겠네.’
‘근데 좀 어려보이는데···’
사람들의 수군거리는 소리가 귓가를 스쳐갔다.
발표는 학교에서도, 심지어는 내로라하는 수학자들 앞에서도 해 본 나였지만 사람들 앞에 서는 건 언제나 떨리는 일이었다.
하지만 망설일 시간은 없다.
나는 시계를 한번 바라본 후, 설명을 이어서 하기 시작했다.
“기존의 RNA와 관련된 연구들은 대부분 단백질을 생성해내는데 초점을 맞춰 진행되고 있었지만 저는 관점을 돌려 lncRNA에 집중했습니다.”
칠판에 ‘RNA’와 ‘lncRNA’를 판서했다. 탁탁, 오래된 칠판에 분필이 갈리는 소리가 기분좋게 울려퍼졌다.
lncRNA. 김영재와 함께 연구를 했던 내용 중 하나. 물론 그 당시에는 차마 수를 셀 수도 없을만큼 많은 수의 유전자를 분석해내는데 한계를 느껴 포기한 연구이기도 했지만, 완전히 흥미를 잃어버린 건 아니었다.
“lncRNA의 경우 직접적으로 단백질을 생산하지는 않지만 DNA 혹은 RNA 및 단백질과 상호작용하여 유전자 발현에 영향을 미칩니다. 또한 말초 혈액에 존재하기에 좀 더 진단하는데 접근성이 좋다는데 착안했습니다.”
노먼 교수가 턱을 매만지며 내 발표를 지켜봤다. 수군대던 학생들 중 몇몇이 노트를 펼쳐 받아적기 시작했다.
말초 혈액. 몸 전체의 동맥, 정맥, 모세혈관을 통해 순환하는 혈액을 의미했다.
혈액을 기반으로 한 바이오마커는 기존에 뇌척수액이나 뇌 조직으로 부터 샘플을 얻어내 병을 진단하던 것보다 덜 부담스러웠고, 전생에는 이와 관련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중이었다.
‘물론 지금은 바이오마커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지 않던 시기지만···’
노먼 교수의 구미를 당기기엔 충분히 매력적인 소재였다.
그는 내 입에서 바이오 마커가 언급되자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일부 lncRNA를 가지고 질병을 진단한다는 건 조금 성급한 방법이 아닐까 싶군요. 신뢰성이 떨어집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어떤 질병의 경우엔 조기 진단이 필요한 경우도 있습니다.”
“조기 진단이라면?”
Dementia(치매). 칠판에 병명을 적었다.
“예를 들면 치매의 경우 매우 빠른 시기에 병을 진단하고 약물 처리를 하면 어느정도 치매 진행을 늦출 수 있습니다.”
“흐음···계속 들어보도록 하죠.”
역시. 노먼 교수는 내 과제에 흥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와 이어지는 몇차례의 문답. 이제는 수군대는 학생을 찾아볼 수 없었다.
모두가 나와 노먼 교수의 대화를 받아 적는데 바빴으니까.
“뭐야? 우리가 저런 걸 배웠었나? 근데 왜 다 필기하는건데?”
“몰라! 일단 중요해보이잖아. 책에도 없는 내용이면 따로 조사한 걸텐데 어디에라도 적어놔야지.”
“이거 기초 생물학 강의 아니었어? 저정도가 어딜 봐서 학부생 레벨이야?”
“쟤 이름이 뭐라고 했지?”
수군거리는 사람들 속에서 로버트가 뭔가를 필기해서 내가 보이도록 흔들었다.
팔랑이는 종이 속 글자를 보자 혈압이 살짝 올랐다. 녀석은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싱글벙글 웃으며 한 손을 엄지척했다.
이 시간만 끝나면 따로 시간을 가져야겠다.
“이상입니다. 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는 그 순간, 노먼 교수가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훌륭하군요.”
그의 담백한 평이 떨어지자, 강의실 내 학생들이 덩달아 박수를 쳤다. 어쩌다보니 우레와 같은 박수 갈채를 받았지만···조용히 들어가자. 조용히.
더는 붙잡지 마라···!
“학생이 이렇게 RNA에 대해 잘 알고 있을 줄은 몰랐네요. 이름이 데이브 카터였지요?”
“…아. 네.”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데이브 이름이 불리자 뒤에 앉아있던 로버트가 손으로 입을 가린채 끅끅대며 웃어댔다.
···수업만 끝나면 진짜 한대 때려야지.
노먼 교수가 시계를 바라봤다. 주어진 시간을 10분이었지만···이미 충분히 시간을 오버한 상황이었다.
“아쉽지만 벌써 시간이 다 되었군요.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입니다.”
학생들이 우수수 강의실을 빠져나가며 “뭐야. 시간이 이렇게 지나있었어?” 라든가, “시간 가는 줄 몰랐어.” 라며 짧막한 후기를 전했고, 나는 은근슬쩍 도망가려는 로버트의 뒷덜미를 붙잡았다.
“완전 명강의던데? 데이브 카터!”
“…로버트. 대화 좀 할까?”
“미안, 내가 좀 바빠서-”
그 때, 내 등 뒤에서 노먼 교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데이브 카터 학생.”
“…네? 네.”
수업은 끝난 거 아니었나? 노먼은 출석부를 빤히 바라보더니 나를 보며 물었다.
“저번 시간에 제출했던 과제하고는 다른 내용을 발표했군요?”
“아···그게 다른 아이디어가 떠올라서요.”
“흠, 그럼 다음 시간까지 오늘 발표한 내용을 좀 더 보완해서 제출할 수 있겠나요?”
“예?”
“좀 더 보완해서 교내 학술제에 제출해볼까 합니다.”
“학술제라면···”
순간 손에 땀이 난다. 이거 일이 커지려는 조짐인데.
발표는 어찌저찌 했지만, 학술제까지 같이 할 수는 없었다. 어디까지나 오늘은 데이브가 감점 당하는 걸 막고자 발표를 했던거지 사람들 앞에 이이상 나서는 건 무리.
게다가 애초에 나는 RNA말고 줄기 세포를 연구하려고 온 거라고! 여기에 쓸 시간과 에너지는 없다.
내 표정을 본 노먼 교수가 눈을 가늘게 뜬 채로 나를 바라봤다.
“학술제에 출품하고 싶진 않나요?”
“…제안해주신 건 감사합니다만 아직 그정도 수준은 아니어서요.”
“그런가요? 그건 문제 될 게 없지요. 이 시간 마치고 제 개인 연구실로 잠깐 찾아오세요. 연구를 어떻게 구체화하면 좋을지 제가 도와드리도록 하죠.”
“아···교수님, 제가 이 뒤에 수업이 있어서···”
최대한 말끝을 흐리며 대답했다.
교수와의 독대는 위험하다. 질문 몇번만 해도 내가 도강생인 걸 파악할 게 눈에 선하다.
SOS를 요청하는 눈으로 로버트를 바라봤지만, 이 녀석은 내가 교수와 이야기하는 사이 진작에 동아리실로 런했다.
책상 위에는 [Awesome!]이라고 적힌 메모만 남아있었다. 만나면 진짜 가만 안둔다.
나는 어느새 덩그러니 둘 만 남게 된 강의실을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슬금슬금 문쪽으로 향하며 나가려는데,
“수업이 있다고요?”
노먼 교수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하하···네.”
“무슨 과목입니까?”
“어···물리학일걸요?”
“기초 물리학 수업인가요?”
“그···렇죠?”
“이상하네요. 기초 물리학 수업은 모두 오전에 끝난 거로 알고 있는데.”
“…생각해보니 물리학이 아니라-”
머리를 팽팽 돌리며 동아리실에서 애들이 들었던 과목 이름을 떠올리려는데,
“사실 무슨 수업이든 상관은 없겠지요. 어차피 도강일테니까요.”
“!”
“아닌가요?”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자, 그가 씩 웃으며 말했다.
“일단 연구실로 따라오세요. ‘데이브 카터’ 학생.”
“…네.”
노먼 교수의 눈빛이 흡사 김성진의 눈빛과 비슷했다.
···쓸만한 노예, 아니 대학원생을 발견했을 때의 눈빛이었다.
*
“일단···어디 소속인가요?”
“…그게 따로 소속은 없습니다.”
“설마 그 말은···입학하지 않은 학생이라는 말인가요? 아니면 아직 전공을 정하지 않은?”
순간 고민했다. 여기서 거짓말로 어찌저찌 넘어간다면 지금의 위기는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9월이 되면 정식으로 입학하게 될 것이고,
그때 가서 더 큰 문제로 번질수도 있었다.
‘…애초에 거짓말은 체질이 아니니까.’
나는 고개를 숙인채로 답했다.
“죄송합니다. 교수님 수업을 듣고 싶어서 도강했습니다.”
“흠, 역시. 그랬던거군요.”
노먼 교수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종이 하나를 건넸다.
제출자는 데이브 카터였다.
“사실 데이브 카터 학생이 제출한 과제가 워낙 성의도 없고 고심한 흔적이라곤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과제여서 공개적으로 좀 물어보려고 콕 집어 부른겁니다.”
한마디로 공개 처형하려고 이름을 불렀다는 소리였다.
“그런데 동양인 학생이 손을 드니 이상하다는 생각은 했습니다. 내 기억이 맞다면 데이브 학생은 갈색머리였던 것 같거든요.”
이미 노먼은 내가 데이브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어떤 페널티가 주어질지 반쯤 체념한 상태로 기다리고 있는데, 노먼이 예상 밖의 말을 꺼냈다.
“사실 도강을 하든 말든 나하고는 관계가 없습니다. 내 입장에서는 80명이 수업을 듣나 81명이 수업을 듣나 달라지는 건 없으니까요. 성적에 차이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요.”
“!”
“내 수업이야 맘껏 들어도 됩니다. 과제도 원한다면 제출해도 되고요.”
나도 모르게 눈이 커졌다. 이렇게 쉽게 허락해준다고? 그 모습을 본 노먼 교수가 재밌다는 듯 웃더니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방금처럼 다른 학생인 척 하는 건 엄연히 부정행위입니다. 다른 학생 대신 시험을 치는 것도 그렇고요.”
“아, 이번거는···”
“그러니 학생의 이름 정도는 알아두는게 좋을 것 같군요. 이제 앞으로 이야기할 일이 많아질텐데 그때마다 계속 ‘데이브 카터’라고 부를 순 없는 노릇이고요.”
“아, 제 이름은···”
나는 노먼 교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김만덕입니다.”
“김만덕이라···국적이?”
“네. 대한민국에서 왔습니다.”
“오, 영어가 현지인과 비교했을 때도 어색한게 없어서 당연히 영어권 학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름이···”
뭔가 이상함을 느낀 노먼 교수. 그는 눈썹을 꿈틀거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어디서 들은 이름인지 떠올릴려고 애쓰는 모습이었다.
그러더니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그의 표정이 복잡했다.
“…설마?”
“네. 맞습니다.”
“이번에 조기 입학으로 들어오게 된다던···?”
조기 입학에 대한 소식이 교수들 몇몇에게도 퍼진 상황.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노먼 교수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그는 책상에서 종이 더미 하나를 찾더니 내게 건넸다.
내가 아카이브에 올렸던 바로 그 논문이었다.
“아밀로잽!”
“맞습니다.”
“맙소사, 그 논문의 김만덕이 바로 학생이었군요!”
미래의 노벨상 수상자로부터 이런 반응을 받으니 목덜미가 뜨거워졌다. 언제나 칭찬을 받는 건 어색하지만, 또 기분좋은 일이다.
그는 좀 더 흥분한 목소리로 내게 말하기 시작했다.
“비록 베타-아밀로이드는 제 연구분야는 아니지만 혈뇌장벽을 통과하는 물질이라는 건 모든 연구자들의 눈이 뒤집힐 내용이지요. 특정 단백질을 분해시킨다는 것도 흥미롭고요. 혹시 이번이 첫 논문입니까?”
“사실 그 연구가 진행되는데 있어서 유전자 편집 기술에 대한 선행 연구도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단백질 응집체에 대한 연구도 병행해서요.”
“역시 하나의 발견이 수면위로 떠오르기 위해 무수히 많은 연구들이 헤엄치고 있었던 거군요. 혹시 이와 관련해서 다른 연구들도 볼 수 있겠습니까?”
“따로 들고 온 페이퍼는 없지만···”
내 말에 그는 마치 어린아이 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과학 전시때 발표했던 내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을 생성해내는 유전인자를 제거하는데 성공했다는 말인가요?”
“엄밀히 말하면 유전인자를 모두 제거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을 생성해내는 유전인자가 하나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도 그 수없이 많은 유전인자들 중에서 의미있는 결과를 내보였다는 말이지요?”
“…운이 좋았습니다.”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은 운이 좋았다는 표현으로 어물쩡 넘어갔다. 그렇다고 ‘전생의 기억을 떠올려 제거했습니다!’ 라고 말했다간···나는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유전자 편집과 치매 치료의 결합이라니! 이건 혁신적인 일입니다. 앞으로 치매가 완전히 정복될 날이 머지 않았군요!”
흥분한 노먼 교수와 달리 나는 덤덤했다.
이 실험은 전생때 이미 실패했던 내용이었으니까.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유전인자 제거가 곧바로 치매 증상이 완화되었다고 보기엔 좀 어렵습니다. 유전자를 편집해 단백질 생산을 억제했다간 추후에 어떤 부작용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이고요.”
부작용의 위험이 큰 치료는 결국 상용화되기 어렵다. 게다가 현재의 기술로는 유전자 편집으로 병을 치료하는데 많은 돈이 든다.
이제는 다른 관점으로 치매 치료에 접근하고 있지만, 이따금씩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혹시 내가 놓친 뭔가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문도 들었고.
이런 내 이야기를 들은 노먼 교수가 어두워진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이 연구는 실패한 연구인 건가요?”
사뭇 달라진 그의 목소리에 나는 긴장한 모습으로 그를 바라봤다.
나에게 있어 노벨상 수상자나 다름없는 그를 실망시키고 싶지는 않지만··· 사실은 사실이니까.
그때, 그가 다시 한번 진지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김만덕 학생은 정녕 이 연구가 실패했다고 생각합니까?”
그의 눈이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