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104)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104화(104/221)
104. 동기 (1)
104. 동기 (1)
“김만덕 학생은 정녕 이 연구가 실패했다고 생각합니까?”
노먼 교수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그의 모습에 순간 움찔했지만, 내 대답은 정해져있었다.
‘더는 진행할 수 없는 연구.’
몇차례고 다시 확인했던 실험들. 과정도, 그에 따른 데이터도 잘 나왔지만 이 연구를 계속 진행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수 만개가 넘는 유전인자를 일일이 분석할 수는 없었으니까.
“…솔직히 말하면 제 능력이 부족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유전자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다는 생각도 들고요.”
“부족하다라···”
그는 빙긋 웃으며 천천히 말했다.
“만덕 학생이 뛰어난 학생이라는 건 아까의 대화만으로도 파악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만덕 학생이 유전자라는 수 조개의 정보를 해석하는데 역부족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만덕 학생이 혼자 연구를 진행할 때 해당되는 말입니다.”
“네?”
노먼 교수가 하는 말의 의미를 알지 못해 고개를 갸웃하며 되묻자, 그가 창문 밖을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나는 유전자, 그 중에서도 RNA와 관련된 연구에 있어서는 나름 권위있는 사람입니다. 전세계를 놓고 볼 때 말이지요.”
70년대부터 RNA와 관련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라는 말을 시작으로 그는 자신의 연구 업적에 대해 소개하기 시작했다.
그의 나이를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간간히 언급되는 이벤트들을 미루어 봤을 때 그의 나이는 60대 중후반. 70년대는 그가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을 나이였다. 그는 자신의 연구 일생을 모험담 이야기하듯 꺼내놓기 시작했다.
“혹시 전자현미경에 대해 들어봤습니까?”
“네. 직접 사용해본 적도 있습니다.”
“그럼 초고압전자현미경에 대해서도 알고 있습니까?”
“…전자현미경 중에서도 원자 수준으로 볼 수 있는 현미경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갑자기 시작된 퀴즈에 고개를 갸웃했다. 설마 모를까봐 물어본 건 아닐테고···그의 의도를 파악하려는데 노먼 교수가 웃으며 말했다.
“이 현미경이 등장하면서 과학계가 발칵 뒤집어졌습니다. 보통의 현미경으로는 볼 수 없던 게 보이기 시작했고, 그 이후로 생물학계에서는 엄청난 발견들이 줄지어 보고되었지요.”
비단 생물학에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었다. 원자구조까지 볼 수 있다는 건 모든 분야가 열광할 만한 내용이었으니까.
그는 오래 전 일을 떠올리 듯 먼 곳을 응시했다.
“그때 당시 나는 몇 년이고 붙잡고 있던 RNA 구조와 관한 연구를 손쉽게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도저히 알아낼 수 없을 것들이었지만, 너무나 쉽게 답이 나온 것입니다. 그때의 심정은 기쁨을 넘어서 허탈할 정도였습니다.”
붙잡고 있던 연구가 관측 하나로 알아낼 수 있게 된다면? 결과와 관계없이 허탈한 감정이 들 수 있었다. 하지만 노먼 교수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 이후에 극저온전자현미경 등 더 좋고 새로운 성능의 현미경이 나올 때마다 과학의 진보 수준은 점점 발달했습니다.”
“···그 말은,”
“역사적인 발견, 특히나 과학은 필연적으로 그 당시 기술 수준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눈을 형형하게 빛내면 말한 노먼 교수는 단호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아까 능력이 부족한 것 같다고 말했지요? 아뇨. 단지 그 능력이 빛을 발할 타이밍이 아닐 뿐입니다. 아직 시기가 오지 않았을 뿐이에요.”
“…하지만 계속 연구를 할 순 없습니다. 지금 기술로는 유전자의 비밀을 다 풀어내기엔 역부족이에요.”
“그렇겠죠. 그렇기에 우리는 가지고 있는 정보를 공유하고 더 많이 알려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합니다. 저널에 논문을 올리는 이유도 그 중 하나이지요. 비록 겉으로 볼때는 학문과 학문의 경계가 뚜렷해보이더라도···그걸 바탕으로 기술이 진보할테니까요. 다른 말로 하면 나비 효과인거죠.”
나비 효과라. 나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켰다.
무언가 마음 깊은 곳에서 떨림이 일었다.
“그리고 그 날개짓이 다시 만덕 학생에게 닿을 때, 그때 다시 연구를 시작하면 됩니다. 지금 그 연구를 계속 붙잡고 있으라는 말이 아니에요. 그저 잊지 않고 있으면 됩니다.”
멈춰도 된다. 다만 잊지만 말자. 무언가 깨달은 표정을 짓자 본 노먼 교수가 웃으며 내 어깨를 토닥였다.
그제야 알 수 있었다. 말년에 그가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
그는 기술의 발달로 자신이 원하는 연구할 수 있을 때까지, 그 연구를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잊지 않고, 다른 연구를 하더라도 계속 마음 속에.
어깨를 토닥여주는 그의 손이 오랜 세월을 수행한 수도승처럼 느껴졌다.
‘이렇게 좋은 사람을 의심했다니···!’
선배 과학자로서 후배 과학자를 이끌어주는 그의 눈에는 따뜻함이 배어있었다. 이 눈빛을 보고 대학원생을 노리는 눈빛이라 의심했던게 미안할 정도였다.
“혼자서 모든 걸 연구하려고 하면 결국 포기하게 될 뿐입니다. 그러니···”
노먼 교수는 다정하게 말했다.
“학술제에 참여해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에. 그건,”
“설마 지금까지 대화를 나누고도 학술제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건 아니겠지요?”
“그, 그게 아니라 학술제에 참여하려면 생각보다 준비할게 많은 거로 알고 있-”
노먼 교수는 웃었다. 눈빛이 다시 차가워진다. 잠깐, 이런 분위기 아니었잖아요. 분명 훈훈한···?
“앞으로 자주 연구실에 방문하면 되겠군요. 아니지, 내일 점심 먹고 바로 오세요. 과제 들고 말이죠.”
편하게 오세요. 편하게. 라고 말하는 노먼 교수의 말에···
“예···”
결국 나는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촉은 틀리지 않았다.
*
노먼 교수의 제안을 수락하고 돌아오니 데이브가 바싹 마른 얼굴로 기다리고 있었다. 로버트가 생물학 시간에 있었던 일을 말해준 것 같았다.
“데이브, 너 제적 당할 뻔한거 만덕이가 구해준 거나 다름없다고! 그러니 먹을 거라도 한턱 쏘는 게 어때?”
“만덕, 롭의 말이 사실이야? 진짜 하필 내 이름이 불렸었다고?”
“응. 맞아.”
“Shit! 어쩐지 꿈에 노먼 그 할아범이 나온다 했다!”
머리를 부여잡고 신음하는 데이브. 그 모습을 옆에서 로버트가 낄낄대며 보고 있었다. 미야는 이 둘이 그러거나 말거나 수학 문제 풀이 삼매경이었고.
나는 생물학 교재를 데이브에게 건네며 말했다.
“근데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는데, 로버트가 손을 들어버리는 바람에···”
“…뭐? 그게 무슨 말이야. 로버트가 뭘 어째?”
“워워, 만덕. 갑자기 왜 그래? 분명 좋게 잘 끝냈잖아!”
갑자기 화살을 왜 자기 쪽으로 돌리냐며 억울한 표정을 짓는 로버트였다. 하지만 모든 사건의 원흉은···
“데이브 네 이름이 불렸긴한데 네가 결석한 거 알면 그냥 넘어가셨겠지. 출석으로 뭐라 하실 분은 아니잖아. 안 온 사람 과제를 감점시킬 사람도 아니고.”
“그건 그렇지.”
“근데 로버트가 나를 가리키면서 ‘얘가 데이브에요!’ 라고 말하는 바람에···”
데이브가 고개를 돌려 로버트를 바라봤다. 로버트가 멋쩍게 웃으며 슬금 슬금 뒤로 이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데이브가 더 빨랐다.
“악! 잠깐만! 이게 나를 팬다고 해결될 일이야?! 그러니까 누가 휴강하래? 누가 수업 빠지래?!”
“수업 빠진 것도 네가 쓸데없는 외계인 소리해서 그런거잖아! 진짜 까딱했다가 나 제적 당했으면! 제적 당하길 바랐던 거냐?!”
“아악! 그게 아니라-!”
데이브가 로버트에게 레슬링 기술을 걸었다. 평소에 이인영과 이인성이 다투는 걸 봐왔던 나지만, 이렇게 화려한 기술이 걸리는 건 처음이다. 흥미진진한 눈으로 둘을 보고 있는데,
“아깝잖아!”
“뭐?”
“만덕이 열심히 과제했는데 아무도 못 알아주면 아깝잖아!”
“그게 뭔···”
궤변이나 다름없는 로버트의 말에 데이브가 순간 주춤했다. 로버트는 최대한 불쌍해보이는 눈을 한 채로 나를 바라봤다.
“생각해 봐. 쟤는 아카이브에 올린 논문 하나로 과학계를 벌컥 뒤집어놨던 애야. 그런 애가 고민한 내용이면 분명 엄청난거지 않겠어? 또 생물학계를 뒤집어 놓을지 누가 아냐고!”
“확실히 아깝네.”
“그치?”
“이 시간에 널 한 대라도 더 때렸어야 했는데. 시간이 아깝다!”
아악! 소리와 함께 다시 비명이 이어졌다. 미야는 길게 하품을 하더니 연필을 내려놓고 둘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내 이름을 파냐! 정 그러면 만덕이가 정식으로 입학하고 난 뒤에 교수한테 따로 말했겠지! 막말로 내년에 수업 들을 때 제출해도 되는거고!”
“그야!! 이게 더 재미있으니까!”
“좀 더 맞자.”
방금까지는 장난이었지만, 이제부터는 진심으로 때리겠다는 선전포고가 이어졌고 둘의 싸움은 이어졌다.
그때, 미야가 데이브 생물학 책을 뒤적거리더니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뭘 발표했길래 그래?”
“별거 아니야. lncRNA를 바이오마커로 사용하는 아이디어였어.”
“lnc···? 그게 뭐야? 그리고 바이오마커는 또 뭐고?”
미야는 이 둘과 다르게 생물학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고등학생때 배웠던 수준이 전부라는 미야에게 바이오마커는 너무 먼 내용이었다.
나중에 들으니 아카이브에 올린 논문이 대단한 것도 데이브와 로버트가 설명해줘서 알았다고 했으니 뭐, 내 과제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는 모를 만 했다. 애초에 기초 생물학 책에도 lncRNA에 대한 설명은 적은 편이니까.
비전공자들이 봤을 땐 어디서 놀라야하는지도 모를만 했다. 나는 최대한 풀어서 알기 쉽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쉽게 말하면 병을 진단할 때 쓰는 지표같은 거야. 마커인데 생물학에서 쓰이는 지표라는 뜻이지.”
“아하, 그렇구나. 근데 너가 발표한 게 그렇게 대단한거야? 난 생물학에 대해 전혀 몰라서.”
“음 대단하다기 보단 신기한쪽에 가깝겠지?”
RNA를 바이오마커로 사용하는건 전생 때는 종종 이뤄졌었다. 하지만 내가 제안한 lncRNA를 바이오 마커로 사용한 건 꽤나 시간이 흐른 뒤였다.
“그럼 나중에 이걸로 치매에 걸렸는지 아닌지 진단할 수 있는거야?”
“이것만으로 진단하는 건 무리겠지만, 도구로 사용될 수는 있겠지?”
“그럼 치료는? 진단만 하고 치료를 못하면···슬프잖아.”
슬프다라. 미간을 살짝 좁힌 채 말하는 미야의 말이 어쩐지 크게 와닿았다.
그도 그럴게 그게 바로 현재 치매 치료의 상황이기도 했으니까.
다리가 다치면 수술을 하면 된다. 하다못해 암에 걸려도 초기에 진단만 해내면 살아갈 확률이 확 올라간다.
하지만 치매는? 그저 시간만 늦출 뿐 끝을 향해 달려가는 기차와도 같았다. 지금은 그 기차를 늦출 수는 있어도···멈출 수는 없었다.
“그래서 연구중이야. 치매를 완전히 치료하는 방법을.”
“흐음···가능해?”
“응. 꼭. 그렇게 만들거야.”
언젠간 가능해질 날이 꼭 올테니까.
미야는 내 설명을 듣더니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응원할게.” 라고 짧막한 응원했다. 그리곤 수학 종이에 뺨 한쪽을 맞댄 채로 “근데 네 뇌가 궁금해졌어···”라고 중얼거렸다.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아 몸을 부르르 떠는데,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메시지가 와 있었다. 메시지 창 위에는 익숙한 이름이 떠올라있었다. 내 표정을 본 미야가 “이런 표정도 짓는구나.” 라고 여전히 뺨을 종이에 댄 채로 말했다.
여전히 치고박고 싸우고 있는 둘을 향해 소리쳤다.
“혹시 로버트. 운전 좀 해줄 수 있어?”
“운전? 어! 어! 해줄게! 당장 운전해줄게!”
“뭐야, 이걸 이렇게 빠져나간다고?”
데이브에게서 목숨이 위협당할 위기에 처해있던 로버트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데이브는 다 잡은 고기를 놓친 것을 아쉬워하듯 혀를 차며 나를 바라봤다.
“어디가길래 급하게 준비해?”
“응. 친구들이 와서.”
“친구들? 한국에서 온 거야?”
나는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핸드폰에는 메시지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미국 도착했어!! 오늘 볼까? 아니면 내일?] [형 왔다 만덕킴.]쌍둥이들이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