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108)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108화(108/221)
108. 진실 (1)
108. 진실 (1)
“영재형. 졸업 축하해요.”
“! 만덕아!”
한국으로 귀국한 다음 날, 나는 한국과고를 찾았다. 오늘은 졸업식이 있는 날이었기에.
교복을 단정하게 입은 학생들이 강당에 나란히 앉아있었다. 마치 내가 처음 입학하던 그 날처럼 앉아있었지만 표정은 모두 달랐다.
이미 대학 합격증을 손에 걸고 환하게 웃고 있는 사람, 3년을 꽉 채우고 졸업을 하지만 썩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진 못한 듯 벌레 씹은 표정으로 앉아 있는 사람. 그런 다양한 표정들 사이에서,
김영재는 무표정으로 앉아있었다.
“형, 카이스트 합격했다면서요? 근데 별로 안 기뻐보이는데요?”
“아…물론 기뻐. 기쁘긴 한데.”
김영재는 주변을 살피더니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교수님이 내일부터 연구실에 좀 나와보라고 하셔서…”
“…!”
아니, 대학원생도 아니고 이제 학부생 시작인 애한테 벌써부터 연구실로 부른다고? 이런 경우없는 소식에 두 눈을 크게 뜬 채로 김영재를 바라보자, 그가 멋쩍다는 듯이 뒷통수를 긁었다.
“사실 그때 너랑 썼던 논문 있잖아. 아밀로잽. 그게 마음에 드셨나봐. 처음에는 너도 같이 데려오고 싶어하셨는데 하버드대 가게 됐다고 말씀 드리니까…”
김영재는 그간 있었던 일을 미주알 고주알 풀어놓기 시작했다. 논문을 쓰긴 했지만 자신이 차지한 부분은 유전자 편집 쪽이지 혈뇌장벽과는 멀다, 자신은 앞으로도 유전자 편집 부분을 계속 연구할거다, 등 다양한 이야기를 교수에게 말했고,
그걸 들은 교수는…
“‘오히려 잘됐군요. 유전공학을 전공하는 사람에게 유전자 편집 기술만큼 매력적인 분야가 또 있겠습니까?’ 라고 말하시더라고.”
“뭔진 몰라도 교수님 눈에 들으셨네요. 축하드려요.”
“이거 축하받을 일 맞지?”
나는 굳이 대답을 회피한 채 웃음으로 무마했다. 그 모습을 본 김영재의 눈꺼풀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것 같았지만…무시했다. 이 뒤의 일은 나는 모르는 일이다.
아직 졸업식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이었기에, 사람들은 저마다 하하호호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가족들끼리 얼싸안고 축하하는 무리, 친구들과 서로 사진을 찍으며 웃는 무리 등 다양했다.
“형 부모님은요?”
“아마 졸업식 끝날 때쯤에 오실 것 같아. 오늘 일이 바쁘셔서.”
“흠. 그래요? 그럼 그 전까지 우리도 사진이나 한 장 찍어요. 추억이니까.”
“나야 좋지.”
그렇게 휴대전화를 꺼내 사진을 찍으려는데, 저 멀리서 익숙한 목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부장!!”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하니, 동아리 ‘뇌생공’의 부원들이었다. 그간 안본 사이에 조금 달라져있는 부원들. 나이가 들어서 달라졌다기 보단 눈빛 자체가 전과는 사뭇 달라져있는 느낌이었다.
좀 더 생기가 있었다.
“아니이이, 이제 졸업하는 마당에 어떻게 문자 한 통 안 할수가 있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거야?”
“진짜 실망임. 과학 부스 도와준 거 다 까먹음?”
“그래도 그날 재밌었는데…”
홍예슬, 최찬서, 방혁욱이 저마다 목소리를 높이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쏟아냈다. 각자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만 요지는 하나였다. ‘축하해.’
세 명에게 둘러싸여서 진땀을 빼고 있는 김영재를 뒤로 하고 나는 강당을 둘러봤다.
‘전생에도 여기서 졸업식을 했었지.’
졸업식은 꼭 와야한다면서 그 먼 곳에서 서울까지 올라오셨던 어머니. 그때는 같이 사진 찍을 친구도, 정겹게 이야기를 나눌 선생님도 없었던지라 그저 어머니와 사진 한 장 찍고 도망치듯 학교를 빠져나오기 급급했다.
내게 있어 한국과고는 감옥, 아니 지옥이나 다름없었으니까.
문득 이번 생에도 이곳에서 졸업을 할 수 있었다면, 조금은 재밌었을지도?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고개를 저었다.
앞으로 해야할 일들이 많으니까. 더는 고등학교 생활에 쏟을 시간이 없었다.
‘당장 크리스 교수 논문이 조작되었다는 걸 입증할 증거를 찾아야 해. 하지만 공개적으로 그를 저격하고 싶진 않아.’
단지 크리스 교수와의 친분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다. 크리스 교수를 알게 된 건 불과 몇 달, 아니 몇 주도 채 되지 않은 짧은 시간이었지만…그와 같이 논문을 정리하고 연구 내용을 정리하면서 알 수 있었다.
이 사람은 현재 전세계에서 줄기 세포에 가장 진심인 사람일거라고.
그가 보여준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연구를 진행하는 추진력, 줄기세포 연구단을 체계적으로 운영하기에 가능했던 수 십개의 줄기세포 관련 연구들.
그로 인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실험들이 있었고, 그가 내놓았던 결과물들은 속속들이 의미있는 것들로 밝혀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물론 조작을 넘어간다는 건 아니야. 조작은 어떤 상황에서도 용서받을 수 없는 행동이니까.’
그러니 증거를 모으자. 그리고 크리스 교수가 스스로 시인할 수 있도록. 그래서 그가 적어도 줄기세포 연구를 영영 손에서 놓아버리는 일은 없도록.
나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온 몸에 긴장이 팽팽하게 서는 듯한 느낌을 받는데, 누군가 어깨에 손을 올렸다.
“잘 갔다왔니.”
“…! 교수님!”
뒤를 돌아보니 김성진 교수가 서있었다. 늘 입던 쥐색 양복 위에 검은색 코트를 입어서 그런지 평소보다 젊은 느낌이 들었다. 그는 앞쪽에서 뇌생공 부원들에게 집단 축하…를 받고있는 김영재를 바라봤다.
김성진 교수가 졸업식에 오다니? 뭔가 이런 장소하고는 안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조금 의아한 눈으로 김성진을 바라보자 그가 내 생각을 읽었는 듯 입꼬리를 씩 웃으며 말했다.
“김영재 학생 졸업 축하 겸 너도 축하해주려고 온거다.”
“저요? 전 졸업 안하는데요?”
“어차피 학교에 있는 마지막 순간인 건 같을거 아니니.”
아. 그 말 뜻을 이해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김영재가 졸업이라면 어떻게 보면 나는 자퇴. 결국 이 시간 이후로 공식적인 행사 때문에 학교에 올 일은 없을테니 말이다.
김성진 교수는 본인이 약속했던 것처럼 하버드 조기 입학을 도와줬다. 내가 제출해야하는 서류 목록들부터 추천서까지. 그는 자신의 연구가 바쁠텐데도 시간을 쪼개서 나를 도와줬다. 심지어는 자기 집까지 내어줄 사람이었으니까.
“그나저나 하버드대에 갔다온 뒤로 표정이 썩 좋아보이지는 않는구나.”
“아…그게 좀 일이 있어서요.”
“일이라면?”
순간 나는 김성진에게 말할까 하다 입을 다물었다. 그를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아직은 명확한 증거가 없었다. 데이터가 조작된 것 같다는 나의 의혹과, 내 의혹에 명확히 이야기를 못하던 크리스 교수의 반응만 있었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섣불리 이야기했다가는 김성진 교수에게도, 크리스 교수에게도 좋을 게 없었다. 게다가 김성진 교수라면 이런 데이터 조작에 불같이 화를 낼 테니까.
아마 당장 사이언스에 메일을 보내서 논문을 재검증하라고 항의 메일을 보낼지도 모를 사람이다.
“뭐, 너라면 알아서 잘 해낼거라고 생각한다.”
결국 아무 말도 안하는 내 모습을 보고 김성진이 조금 아쉽다는 듯 표정을 지었지만, 억지로 캐내지는 않았다. 이윽고 시작되는 졸업식 시작 안내에 우리는 강당 앞 플랜카드를 바라봤다.
졸업식이 시작되었다.
*
한국과고를 떠나기 전, 나는 담임이었던 박민철을 찾아갔다. 그는 빈 교무실에서 홀로 문서 작업에 열중하고 있던 중이었다. 갑자기 들려온 노크 소리에 건성으로 대답했던 그는 나를 보고 두 눈이 커졌다.
“야, 이 녀석아! 종업식 빼먹고 이제 오는 녀석이 어디있냐! 이제 자퇴한다고 막 나가겠다거냐?”
“죄송해요. 졸업식 중간에 바로 온 거긴 한데…”
“네 졸업식도 아닌데 뭐하러 가?”
“애들도 많이 오던데요, 뭐.”
“그야 걔네들은 종업식 끝나고 간거지!”
박민철이 인상을 팍 쓴 채로 말했다. 목소리에선 화난게 느껴졌지만 풍기는 분위기는 화보다는 걱정에 더 가까웠다.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간이 의자를 가리켰다.
그는 작게 한숨을 내쉬더니 책상 위 서류를 가리켰다. 내가 제출했던 자퇴신청서가 놓여있었다.
“지금이라도 취소할 수 있는데.”
“취소할 이유가 없는걸요.”
“친구들한테는 말했고?”
“…몇 명한테는요.”
정확히 말하면 이인성, 이인영을 제외하고는 말한 사람이 없긴 하다. 김영재야 이제 졸업이고, 이재성은 다른 학교니…엄밀히 따지면 이 학교에선 저 둘만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
머릿속에 몇명이 더 떠오르긴 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최대한 조용히 가고 싶어요. 게다가 다들 2학년이면 바쁠때잖아요. 굳이 신경쓸 일 만들고 가고 싶지 않기도 하고요.”
“너가 그렇다면야 뭐…알았다. 거기가서도 잘 지내고! 아프지 말고, 알았지?”
“선생님도요.”
담백하면서 짧은 덕담이 오갔다. 박민철과 가벼운 악수를 끝으로 나는 한국과고를 나섰다. 문득 교문을 나서기 전 학교를 바라봤다.
분명 1년 전, 여기 들어설 때만해도 무슨 생각을 했었더라.
좋아하던 과학을 맘껏 공부하겠다, 이번 생에는 꼭 좋은 성적을 받아내겠다,
정말 내 주변에 아무도 없었는지, 확인해보겠다.
“…너, 그렇게 살면 평생 혼자일지도 몰라.”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최한별이 서있었다. 긴 생머리에 대비되는 흰 피부가 오늘따라 유달리 하얘보였다.
최한별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나저나 얘가 지금 뭐라고 한거지? 나는 미간을 좁히며 최한별을 바라봤다.
“뭐라고?”
“…그렇게 아무런…”
“아무 말도 없이 떠나는 게 어디있냐고!”
그 순간, 어디에 숨어있었는지 눈치조차 챌 수 없었던 이인성이 불쑥 튀어나왔다. 그 옆으로 이인영도 뚱한 표정으로 걸어나왔다.
“뭐야. 너희 집에 간 거 아니었어?”
“종업식 내내 너 기다리고 있었거든? 아니, 종업식에도 안 온 애가 왜 운동장에 있는건데?”
“전화는 왜 안 받아?”
아 전화. 그제야 휴대전화를 꺼내 확인하니 부재중 전화가 수십통이 와있었다. 문자도 대충 [어디야?] 라든가 [종업식 안 와??] 와 같은 말들이었고.
멋쩍게 문자 메시지를 하나씩 확인하고 있는데 옆에 인기척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익숙한 얼굴이 안경을 고쳐 쓰며 있었다.
“…동맹은 오늘부로 끝이다.”
“뭐야. 너도 왔어?”
“1년동안 룸메이트로 지냈으면서 그간 말로만 룸메이트 의리다 뭐다 했던거야? 자퇴신청한 건 말도 안 하고?”
김진수가 눈을 가늘게 뜬 채로 말을 이었다. 서운해하는게 느껴지는 표정이었다.
“아마 이제 나 없어도 성적 잘 나올거야. 거의 막판에는 내 도움 없이 스스로 공부했잖아.”
“성적 때문에 이러는거 아니거든? 그래도 1년동안 같이 지낸 세월이 얼마인데 이렇게 말도 안하고 사라지냐고오-”
“맞아. 이건 만덕이가 좀 심했지.”
“응. 엄청 심했어.”
이어지는 쌍둥이들의 맞장구에 갑자기 나쁜 사람으로 몰린 느낌이다. 그렇게 아이들의 타박아닌 타박을 받고 있는 가운데 최한별이 조용히 말을 걸었다.
“…그럼 이제 바로 미국가는거야?”
“어머니 뵈었다가 짐 정리만 끝나면 바로 갈 것 같아.”
의외인 게 있다면 크리스 교수는 그 날을 이후로도 나와 연구를 계속 진행한다는 점이었다. 하버드대에 정식으로 입학하기 전까지 그의 집에 머무는 것도, 그와 연구를 진행하는 것도, 평소와 같이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논문에 대한 증거를 멈출 생각은 없었다. 로버트에게도 말했듯이 이건 크리스 교수를 위한 일이기도 했으니까.
“우리 이대로 헤어지기 아쉬우니까 사진이라도 찍자! 사진!”
“스티커 사진은 어때? 여기서 좀만 이동하면 스티커 사진 기계 있어.”
“스티커 사진? 그게 뭐임?”
그렇게 추억을 남기기 위해 다들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내고 있는데,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발신번호를 보니 국제전화였다.
그리고 내게 국제 전화가 걸려올 만한 일은 하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