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109)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109화(109/221)
109. 진실 (2)
109. 진실 (2)
[만덕, 지금 통화 돼?]“무슨 일이야? 설마 알아낸거야?”
한국에 오기 전, 로버트에게 부탁했었던 일. 크리스 교수가 실험을 할 때 같이 참여했던 다른 연구원들을 알아봐달라는 일이었다.
내 물음에 로버트가 긴장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응. 근데 그게 좀 복잡해.]“복잡하다고?”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데. 언제 다시 미국으로 와?]역시. 로버트는 자리가 불편한지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그런 로버트를 진정시키듯 나는 차분한 목소리로 답했다.
“로버트. 조만간 다시 미국으로 돌아갈거야. 크리스 교수님하고 아직 해야할 연구들이 남아있으니까.”
[뭐? 이 상황에서 아버지랑 연구를 하겠다고? 그게 가능한 일이야?]“나보다 너가 더 걱정인거 아니야? 나야 외부인이라 그렇지만···너한테는 아버지잖아.”
로버트에게는 꽤나 잔인한 일이 될 수도 있었다. 나에게는 잘못된 데이터를 지적하고 논문 조작 의혹을 밝혀내는 일이지만, 로버트에게는 아버지의 실수를 끄집어내는 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 노릇이니까.
하지만 이 물음에 로버트가 애매한 목소리로 답했다.
[근데 사실···전에 연구원들 조사하는 걸 아버지한테 들켰거든.]“그건 알고 있어.”
[뭐?! 알고 있다고? 어떻게?]전에 크리스 교수가 하던 말이 떠올랐다. 로버트가 연구원들을 붙잡고 이것저것 물어보고 있다는 말.
그러나 나는 이어지는 로버트의 말에 미간을 좁힐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어쨌든 그게 중요한게 아니야. 조사하는 걸 보시더니 그냥 가셨어.]“…뭐? 그냥 보고만 가셨다고? 너가 뭘 하는지 제대로 못 보신 거 아니야?”
[아냐! 아예 연구원들 책상이랑 노트도 뒤지고 있었다니까?]생각보다 과격한 수사를 하고 있었던 로버트였다. 나도 몰랐던 사실에 당황하고 있기도 찰나 로버트는 이어서 일이 있다며 전화를 다급하게 끊었다.
뚜뚜뚜, 끊어진 수신음을 들으며 휴대전화를 바라봤고, 저 멀리서 빨리 오라고 손짓하고 있는 친구들을 향해 걸어갔다.
“뭐야, 무슨 전화길래 표정이 그렇게 심각해?”
“시험칠 때보다 더 어두운데?”
“사진 찍을 때는 웃어야 해!”
나도 모르게 표정이 어두워졌었나 보다. 이인영이 그런 내 얼굴을 보더니 미간을 좁히며 걱정스레 쳐다봤다.
“무슨 문제 있는 건 아니지?”
“아냐. 그보다 얼른 사진 찍자. 너희들 다 부모님 기다리고 계신거 아니야?”
종업식이었지만 모두 시간이 넉넉했던 건 아니었다. 오히려 이제 2학년이 되었기에 더욱 입시 준비로 인해 바쁜 나날. 우리는 학교 근처에 있는 스티커 사진 기계를 모아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자자, 여기 들어가서 신호 맞춰서 찍으면 돼.”
“김진수 넌 좀 빠져. 그냥 뒤에 서 있어.”
“만덕쓰 옆 자리는 내꺼야! 다 비켜!”
묘하게 자리를 두고 보이지 않는 눈싸움이 오고갔고, 어째서인지 나는 센터로 정해졌다.
“어…나 이거 좀 부담스러운 거 같은데.”
“김만덕 센터인거에 이의있는 사람?”
“없습니다.”
“그럼 결정.”
아니, 내 의견은…! 그렇게 가볍게 기각되고 난 뒤, 찰칵. 플래시와 함께 사진이 찍혔다. 기괴할정도로 희게 나온 보정과 알록 달록 꾸며져있는 사진 테두리.
누가보면 사진이라고 보긴 좀 그랬지만…그래도 절대 버릴 수 없는 추억 한 장이 생긴 날이었다.
그렇게 종업식, 그 이후의 시간까지 끝나고 모두와 헤어지고, 나는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집으로 갈 시간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 나는 친구들과 함께 찍은 스티커 사진을 보면서 동시에 로버트의 전화를 떠올렸다.
‘…크리스 교수가 가만있었다고? 대체 왜? 무엇을 위해서?’
크리스 교수가 단순히 명예욕이 앞서는 사람이었다면 아무리 아들이더라도 그냥 두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내가 봐왔던 크리스 교수는 명예나 권위를 억지로 얻어내려고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물론 자신이 이뤄온 것에 대해 자부심은 있었지만···적어도 줄기세포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의 눈빛은 진심이었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이어지는 생각들 덕에 시간 가는 줄 몰랐고, 정신을 차리니 집에 거의 다 온 상태였다.
오랜만에 보는 허름한 집. 지붕 위로는 뜨거운 수증기가 몽글몽글 퍼져나가고 있었다.
“어머니. 저 왔어요.”
“아이고, 만덕아. 전에 추석에도 왔는데 뭘 또 와. 지금 다시 미국가야 하는 거 아니야?”
“가기 전에 그래도 한번 뵙고 가야죠.”
터미널 근처에서 급하게 사 온 각종 과일과 먹을거리를 양손 가득 보이자, 어머니가 연신 “아이고, 이런 거 사오지 말래도!”라고 이야기하셨다.
덜컥, 소리를 내며 들어간 방. 따뜻한 온기가 바닥에서부터 피어오르고 있었다.
“방 데워놨으니까, 옷 갈아입고 편히 쉬고 있어. 밥 다 될 때까지 눈 좀 붙이고 있거나.”
그 말을 끝으로 어머니는 주방으로 향하셨다. 나는 빈방에서 익숙한 책상을 바라봤다. 한국과고에 가기 전까지 내가 줄곧 사용하던 책상이었다.
책상은 내가 떠나던 날 그 모습 그대로였다. 먼지가 한 톨도 없는 걸로 봐서 어머니가 매일 청소를 해주고 계신 듯 했다.
‘…그때 여기 앉아서 무슨 생각을 했더라.’
대충 종이 하나를 찢어서 ‘치매 완전 정복!’이라고 적어놓고 책상 앞에 붙여놨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렇게 어린 시절부터 내 꿈은 한 가지로 정해진 거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어떤 장애물도 넘겠다고, 그렇게 다짐했었다.
‘하지만 크리스 교수가 그 논문의 데이터가 잘못되었다는 걸 끝까지 인정하지 않는다면···. 꽤 긴 싸움이 될지도 몰라.’
일반적으로 논문에 있는 오류를 지적하는 건 유명 과학자나 같은 랩실에서 일했던 관련자가 아니고서는 정정 신고가 들어가는 것 역시 까다롭다.
저널에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한들, 제3자의 의견은 대부분이 무시되거나 반려되고. 만에 하나 다시 고려해 볼 만한 내용이라고 인정이 되더라도 저널의 에디터가 교수에게 메일을 전송하는 식이다.
결국 크리스 교수의 선에서 해결이 된다는 말이기도 했다.
···부당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만큼 지금 시기는 줄기세포에 대해 연구도, 알려진 것도 거의 없는 상황이었다. 여기서 내가 ‘이런 이런 데이터가 잘못 되었습니다.’ 라고 이야기를 한들 내가 크리스 교수와 똑같은 실험을 해서 기고하지 않는 한···.
그 순간 눈에 저널 하나가 들어왔다.
전 세계 과학 저널 중 순위권에서 단 한 번도 나가본 적이 없는 저널. 네이처였다.
‘…만약 크리스 교수의 실험과 동일하되 다른 결과가 나온 걸 여기에 실을 수 있다면?’
사이언스와 네이처는 과학 저널 중에서도 양대산맥 같은 느낌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비판하고 검증하는 모습까지 보이니 얼핏 볼 때 라이벌 같이 보이기도 했다.
만약 사이언스에 올라왔던 논문을 비판하는 내용을 네이처에 이야기한다면···. 아마 두 팔 벌려 환영할 가능성도 있었다.
게다가 어찌 보면 나 역시도 이 바닥의 나름 떠오르는 혜성 같은 이미지가 된 것 같으니까.
이왕 이렇게 된 거 이런 이미지를 십분 활용해 주겠다는 마음으로 가방 속에서 크리스 교수의 논문을 꺼냈다.
이미 수십 번을 넘어 수백 번에 가깝게 본 논문. 하지만 지금부터 할 작업은 다른 일이었다.
*
“이제부터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할 수 있겠군요. 그럼 전에 만덕 학생이 말했던 연구 주제인 유도만능세포를 성상교세포로 분화시키는 연구를 진행해보도록 할까요?”
“교수님, 안 그래도 그 주제와 관련하여 말씀드릴게 있습니다.”
진지한 내 목소리에 크리스 교수가 흠칫했다. 그 역시도 이면에는 그 일을 염두에 두고 있는게 고스란히 느껴졌다.
첫날 만났던 것과 같이 소파에 앉은 우리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결국 나는 가방 속에서 노트 하나를 꺼내 크리스 교수에게 건넸다.
한국에 있는 동안 정리했던 논문 리뷰였다. 크리스 교수의 논문에 어떤 오류가 있는지 하나하나 분석해 둔, 일종의 논문 비평.
“…이건.”
“네. 보기 쉽게 정리해뒀습니다. 수많은 데이터에 현혹되지 않도록요.”
이전까지는 그저 말로 의문점을 이야기했지만 노트에 적어서 비교를 해두니 더욱 확연히 그의 논문의 오류가 드러났다. 그리고 이 노트를 본 사람들이라면 이 데이터가 조작되었다는 것도 알 수 있을정도였다.
“이걸 보여주는 이유가 뭔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이게 제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선의이니까요.”
만약 이걸 보고도 그가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때는 공개적으로 이 내용을 알릴 수 밖에 없다. 여차하면 아카이브에 올릴 생각까지 있다.
찬찬히 노트를 살펴보던 크리스 교수는 조용히 노트를 덮었다. 테이블 위에 살며시 내려놓은 뒤 나를 바라봤다.
“그래요, 만덕 학생이라면 이 논문의 허점 정도는 금방 눈치챌 거라 생각했습니다.”
“…!”
예상과 다르게 순순히 인정하는 그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몸을 뒤로 뺐다. 예상치 못한 행동으로 인해 방심은 금물이니까.
다시금 차분한 태도로 나는 말을 받아쳤다.
“허점이 아니라 엄연히 의도된 조작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의도된 조작이라.”
단호한 내 말에 크리스 교수가 미간을 좁힌 채, 끙 소리를 냈다. 저번처럼 대화를 회피하지 않으려는 모습이었지만 그는 여러 말을 고르고 있는 듯했다.
허점과 조작은 비슷해보이지만 전혀 다르다.
의도가 들어갔느냐, 아니냐. 그 사실만으로도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이상적인 과학자의 모습이랑 현실 사이엔 늘 괴리가 있는 법이지요. 물론 만덕 학생은 제대로 연구원으로 있어 본 적이 없어 잘 모르겠지만···. 때로는 결과를 위해 실험을 맞춰야 할 때가 있습니다.”
결과를 위해 실험을 맞춘다. 나도 모르게 인상을 썼다. 저 말을 처음 들은 게 아니었기에.
···전생 때도 연구원으로 지내왔던 내가 현실을 모를 리가 없다. 오히려 알면 더러운 부분까지도 다 알고 있었지.
‘만덕아, 대체 언제까지 그 연구만 붙잡고 있을래? 차라리 샘플 중에 유의미한 결과 나온 거만 수합해서 결과 보고 하라니까? 어차피 그게 그거잖아.’
‘그냥 적당히 해, 적당히. 네 논문이 인용돼봤자 얼마나 되겠냐? 아무도 안 본다.’
연구부정행위가 아예 없는 청정한 연구실이었으면 좋았으련만, 오히려 지도교수인 김성진이 너무도 청정했던 탓일까, 대학원생들과 몇몇 연구원들은 조급한 나머지 해서는 안 될 짓을 조용히 해치워 버리곤 했다.
실험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럴듯하게 데이터를 만들어 둔다거나, 아예 원하는 결과가 나오도록 실험 자체를 임의로 설정하기도 했다.
그 밖에도 이전 실험 때 사용했던 전혀 상관없는 염색된 세포 사진을 가지고 와서 논문에 게재하는 일, 실패한 실험인 걸 인정하지 못하고 데이터를 교묘하게 바꿔버리는 일 등.
“…그래서 데이터를 조작하신 겁니까? 원하는 결과가 나온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줄기세포로 해마를 복원할 수 있다고 말하시려고요?”
전생의 기억이 떠올라서일까, 나도 모르게 몸에 힘이 들어갔다. 그래도 연구 윤리가 발달된 이곳은 다를 줄 알았는데, 환멸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하지만 이어지는 대답은 전혀 다른 말이었다.
“아까 의도된 조작이라고 만덕 학생이 말했죠?”
“그렇습니다만.”
“그럼 제가 무슨 의도를 가지고 이런 거라고 생각합니까?”
“…네?”
나도 모르게 되묻자, 크리스 교수가 끌끌 웃으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내게 잠시 기다리라고 한 뒤, 방 안에서 스크랩북 하나를 가지고 왔다. 그 안에는 각종 신문기사가 스크랩 되어있었다.
로버트의 스크랩하는 취미가 크리스 교수에게서 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미치기도 전에 그가 낮은 목소리로 한 신문 기사를 보여줬다.
[하버드대, 크리스 교수 연구팀 줄기세포 해마 복원 성공, 미 정부 지원 본격화]그 기사를 시작으로 여러가지 줄기 세포와 관련된 지원들이 훈장처럼 스크랩 되어있었다. 줄기세포와 관련된 논문만 싣는 저널이 창간되었고, 실제로 줄기세포를 이용해 시력을 회복한 쥐의 사례도 등장했다.
“해마 복원이 성공하고 난 뒤 여론 반응입니다. 당시로서는 폭발적인 관심이었죠. 유명 토크쇼에 나가서 이야기할 정도였으니···. 대충 어느 정도의 파장을 불러일으켰는지 짐작이 되나요?”
크리스 교수는 덤덤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가 하는 이야기는 새로울 것도, 그래서 놀라울 것도 별로 없는 내용이었다.
줄기세포는 아직 미지의 세계다. 본격적인 지원이 시작된 건 불과 몇 년이 채 되지 않은 시기.
“물론 처음부터 데이터값을 조작하려던 건 아니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저도 조작된 내용인 걸 나중에 알게 된 거니까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같은 실험을 하던 연구원이 나중에 와서 이야기하더군요. 데이터랑 사진을 조금 손을 보았다고.”
그는 지난날을 회상하듯 이야기했다.
처음에는 반복되는 실패로 지쳐가던 나날의 연속. 크리스 교수가 이제 연구를 정리하려고 마음을 먹은 날, 거짓말처럼 실험 성공 소식을 듣게 되었다.
‘해냈습니다! 해마가 복원되었어요!’
‘그게 사실인가?’
‘여기 실험군 데이터를 보시면-‘
비록 그때 당시에 연구실에 있지는 않았지만 같이 동고동락했던 연구원인 만큼 그 내용을 철석같이 믿었고, 그 결과는 너무나 크게 돌아왔다.
“왜 중요한 건 일이 다 끝나고 나서야 눈에 들어오는 건지···. 저널에 실린 날 알았습니다. 이 실험은 절대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없다는 것을요.”
“…그때라도 정정 기사를 냈으면-”
“그러면 줄기세포와 관련된 지원은 아마 수년, 어쩌면 수십 년 뒤에나 이뤄졌겠지요.”
“…아무리 지원 때문이라고 말하신들, 조작은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입 안이 썼다. 입안이 쓴 이유는 만약 내가 그의 상황이었다면 어떻게 했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기 때문에.
생물학 분야는 그 범위가 광대하고, 또 다른 분야와 달리 투자하는 것에 비해 결과물이 미미한 곳이기도 하다. 물론 제약회사 쪽으로는 그런 손실을 감수하고도 투자를 진행하고는 있지만···
줄기세포가 치료제로 쓰일 수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상황 속, 불모지나 다름없는 이 분야를 선뜻 지원하는 곳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치매 치료가 이런 상황이었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크리스 교수의 행동은 이해할 수는 있었지만···용납할 수는 없었다.
논문 조작은 전 세계적으로 절대 허용되지 않는 일. 연구 윤리가 더욱 투철한 미국에서 이 일을 알게 된다면 크리스 교수는 그 즉시 모든 걸 잃게 될 게 보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못 본 척할 수도 없었다.
결국 내 표정에서 단호함을 읽은 크리스 교수가 반쯤 체념하듯이 말했다.
“만덕 학생이 사이언스나 다른 저널에 비판 리뷰를 올린다고 한다면 말리진 않겠습니다. 하버드대 입학을 빌미로 협박도 하지 않을 거고요. 하지만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뭔가요?”
“적어도 제가 밝히고 싶습니다. 비록 연구원의 잘못이긴 하지만 끝까지 검수하지 못한 제 잘못이 크니까요. 그 끝도 제가 결정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크리스 교수는 힘없이 웃으며 내가 들고 온 노트를 툭툭 치며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내 머리는 복잡했다.
이 실험의 데이터는 왜곡되었다. 사용된 사진도.
비록 크리스 교수가 지시한 게 아니더라도 나중에라도 철회했어야만 했다.
“두 가지 약속만 해주신다면요.”
“…약속이라면?”
“첫째, 이 논문의 진실, 그러니까 조작된 사실을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이고,”
내 말에 크리스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손가락을 두 개를 펴며 말했다.
“둘째, 이 실험에 저도 참가하게 해주십시오.”
“…예?”
크리스 교수가 잘못 들었다는 듯 미간을 좁히며 되물었다. 하지만 내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크리스 교수와 논문. 그나마 최악의 경우를 피할 방법은,
“4년 전에 진행하셨던 이 실험. 똑같이 진행하고자 합니다.”
2년 동안 진행되었던 이 연구. 여기에 답이 있었다.
“정정 발표는 나중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