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11)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11화(11/221)
11. 특별반 (1)
11. 특별반 (1)
새 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담임의 호출이 떨어졌다. 전생에도 몇 번 불려 간 적은 있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전생에 없었던 일이니까.
“특별반에 배정된 건 이미 알고 있었지?”
“네.”
“원래라면 학기 시작하고 바로 진행되어야 했는데 사정이 생겨서 말이야. 따로 수업을 해주시기로 한 분이 갑자기 해외 연구소에 가게 되시는 바람에… 하여튼 오늘부터 새로운 강사님이 오셔서 수업해주실 거다.”
“학교 선생님이 아니라요?”
전생때와는 다른 전개였다. 물론 1학기때는 특별반이 아닌 보충반에 있긴 했다. 하지만 가르치는 사람이 바뀌었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었는데.
‘1학기때만 있던 강사인건가.’
1학기때 쓴 맛을 보고 난 뒤 성적을 올려 2학기엔 특별반 학생으로 합류했었고, 이후 교사 교체라든가 대타 강사가 오는 일은 없었다.
“그래. 이번 특별반은 외부 강사들로 진행된다. 시간은 다른 반 애들 방과 후 하는 시간이랑 동일하고. 자세한 커리큘럼은 아마 오늘 수업 들어가면 알려주실 거다. 아참, 강사님들이라고 해도 다 해외 석박사는 기본으로 하고 오신 분들이니까 예의 갖추고.”
“네.”
굳이 해외 박사까지 하고 오신 분들이 한낱 과고생을 지도하러 오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론 후학양성이라는 큰 뜻을 품고 오는 사람들도 몇몇 있었지만 말이다.
드르륵. 별관에 마련되어있는 교실에 들어가니 아무도 없었다. 맨 앞자리는 부담스러우니 적당히 창문 쪽 중간에 앉았다.
‘내 기억이 맞다면 최한별도 특별반일 거고, 나머지 녀석들은…’
드르륵. 문이 열렸다. 검은색 뿔테 안경을 쓴 왜소한 체격의 남학생이 들어왔다. 노란색 명찰엔 ‘곽진환’이라고 적혀있었다.
“…”
녀석은 나와 눈이 마주쳤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먼저 인사를 하지 않았다. 그냥 별 반응 없이 나를 바라보다가 내 옆옆자리에 앉았다.
‘매스컴에서 천재라고 한때 떠들썩했던 곽진환. 전생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건 없는 것 같네.’
영재발굴단. 한때 대한민국을 영재 열풍에 휩싸이게 했던 모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영유아부터 초등학생까지 다양한 영재들이 등장해 자신의 천재성을 보여주는 프로그램.
다 자라지도 않은 손으로 파가니니의 카프리스 24번을 연주하는 5세 음악 신동, 머릿속에서 영감이 멈추질 않는다며 쉬지 않고 그림을 그려대는 초1 꼬마 피카소, 원주율을 쉼 없이 읊조리는 암기 천재…
그중에서도 모두를 경악하게 했던 천재가 바로 이 녀석이었다.
‘정답률 0.06%인 수능 킬러 문제를 암산으로 풀었다고요?’
‘이 아이는 평범한 아이들과는 다른 뇌 구조를 지녔습니다. 여기 수학 문제를 풀 때 활성화된 영역을 살펴 보시면…’
‘수학 천재, 미래의 필즈상 수상자 등장?’
어떤 어려운 수학 문제를 가져다줘도 척척 풀어내는 모습에 사람들은 경악했다. 수학을 좋아하냐는 인터뷰어의 말에 배시시 웃으며 “네!”라고 대답하는 사진도 인터넷에 일파만파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그 아이는 시간이 흘러 어느새 고등학생이 되었다.
“안녕.”
“말 걸지 마.”
매우 싸가지 없는 학생으로.
곽진환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주머니에서 MP3를 꺼냈다. 줄 이어폰을 끼고 엎드린 모습은 사춘기 학생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생각해보니 곽진환과 관련된 기사를 읽었던 적이 있어. 그때 분명 내용이…’
‘매스컴이 만든 천재. 곽진환 학생의 근황.’이라는 기사였다. 전생 때 랩실에서 우연히 보게 된 기사였다.
영재 발굴단의 막내 작가였던 사람이 양심의 가책을 이기지 못하다 결국 폭로해버린 내용들이었다.
‘사실 답이랑 풀이과정을 미리 다 알려줬다죠?’
‘의사도 매수해서 일부러 지능 검사도 다 조작한 거라는 말이 있던데…’
‘과고 간 것도 다 천재라고 생각해서 특혜받아서 간 거 아니에요? 이거 학력 위조로 쳐야 하는 거 아닌가?’
사실이 아닌 내용들도 사실과 적절히 섞여서 퍼져나갔다. 한국 과고는 천재든 영재든 간에 중학교 성적과 입학시험, 면접을 거쳐야만 들어올 수 있었지만 아무도 그런 사실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 이후 곽진환의 근황은 알려지지 않았다.
앞으로 녀석이 겪을 풍파를 생각하니 지금의 싸가지 없는 행동도 어느 정도 용서가 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행동이 괜찮은 건 아니지만.
드르륵. 그때 익숙한 얼굴의 학생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최한별이었다.
최한별은 나와 곽진환을 보고 놀라지 않았다. 역시, 하는 표정이었으니까.
‘하긴, 전에 내 성적표를 봤으니까 대충 예상은 했겠네.’
배치고사를 치르던 날. 최한별은 다짜고짜 찾아와 내 성적표를 가져갔다. 그리고 충격받은 듯이 나를 바라봤었다.
‘잠깐 내가 수학 1등이고, 곽진환도 분명 1등을 했을테니까…최한별은 3등이라는 소리네?’
만약 그녀가 1등이었다면 굳이 나를 찾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자신이 받아보지도 못했던 등수에 놀라서 나를 찾아왔던 거겠지.
최한별은 내 앞에 앉았다. 자로 잰 듯이 깔끔하게 떨어지는 긴 머리는 그녀가 얼마나 잘 관리된 삶을 살아왔는지 보여주는 듯했다.
‘인사하는 게 좋겠지.’
순간 망설였다. 마음 같아서는 엮이고 싶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어떤 식으로든 엮일 것 같았다.
이제 전교 1등은 최한별이 아닌 내가 가져갈 테니까.
“자, 다들 만나서 반갑습니다.”
손을 뻗어 인사를 하려는 순간, 한 남자가 웃으면서 교실 안으로 들어왔다. 옆구리에 낀 파일에 ‘특별반 출석부’라고 적힌 걸 봐선 담임이 말했던 외부 강사인 듯 했다.
“보자…분명 6명이라고 했는데 5명밖에 안 왔네? 혹시 어디 갔는지 아니?”
주위를 둘러보니 의자 하나가 비어있었다.
‘최한별, 곽진환은 왔고. 내 기억이 맞다면 나머지는 김종우, 이지섭 그리고…’
“강태오? 태오 왔니?”
남자는 우리를 보며 물었다. 그러나 원래도 말 없는 걸로 유명한 최한별은 물론이고 곽진환도 뚱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고 있었다. 결국 제일 정신 연령이 높은 내가 사회성을 발휘하기로 했다.
“안 온 것 같습니다.”
“그래 그래, 첫 수업부터 빠지는 애가 있구나. 신기하네. 좋아, 그럼 지금 대답한 학생 이름은?”
“김만덕입니다.”
오오, 소리를 내며 리액션을 하던 남자는 출석부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학생들의 명찰을 보고 체크를 하기 시작했다.
“한 명이 없긴 하지만 일단 시작은 해야겠지. 오늘부터 특별반의 물리 파트를 가르치게 될 박성민이라고 한다. 학교에서 배우던 내용보다 좀 더 심화된 내용을 배울 거야.”
안 그래도 과고 특성상 수업 자체가 심화 내용이다. 그런데 여기서 더 심화라니? 고개를 갸웃하고 있는데 박성민이 준비해 온 유인물을 나눠줬다.
시험지였다.
“아직 너희 수준을 정확히 들은 게 없어서 말이야. 일단 전교 5%라고는 들었지만 또 물리 등수는 저 밑에 있을 수도 있잖아? 혹시 여기 물리 전공인 사람?”
박성민의 말에 최한별이 손을 들었다. 박성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출석부를 확인했다. 뭔가 적혀있는 걸 본 그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공부 잘하는 애들이 물리 좋아하던데. 전교 1등은 다르네.”
그 말을 시작으로 박성민이 한 명씩 전공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어디 보자, 곽진환 학생은?”
“…수학이요.”
“아, 과학이 아니라 너는 수학 쪽이구나?”
곽진환은 별다른 반응 없이 가만히 있었다. 박성민은 나머지 둘에게도 마저 물어본 뒤, 나를 바라봤다.
“저는…생물이요.”
“아하.”
짧은 반응이었다. 하지만 딱히 무시하는 느낌이 아닌 담백한 느낌.
“물리 전공은 한 명뿐이네. 그래도 다들 풀 만할 거야. 지금부터 딱 15분 줄 테니까 풀어볼까?”
다짜고짜 시험지를 나눠준 상황이었지만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 그들에게는 익숙해 보였다.
사각거리는 소리가 교실을 메웠다.
‘이건… 일반 물리잖아.’
아무리 봐도 고등학교 수준의 물리가 아니었다. 방학 동안 일반 물리 대학 원서에서 보았던 그림들이 시험지에 있었다.
“한국과고는 수업 때 대학 교재로 수업한다고 들었는데, 어때, 풀만 하지?”
그럴 리가 있겠냐. 이 녀석들이 학원에서 얼마나 구르고 왔을지는 모르지만 일반 물리를 다 끝내고 왔을 리는 없다. 설령 끝냈더라도 완벽하게 이해한 수준이 아닌 일단 진도 한번 돌린 정도겠지.
그러나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박성민은 시계를 바라봤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바쁘게 샤프를 놀리던 학생들의 손도 점점 느려졌다.
‘근데 이 문제들… 낯이 익는데. 설마.’
나는 뒷장을 확인했다. 문제는 총 5문제. 그 중 확실하게 눈에 들어오는 문제가 하나 있었다.
내가 아무리 과학을 좋아한다고 해도 모든 분야에서 천재일 수는 없었다. 과학이라는 학문 특성상 전문성이 워낙 필요하다 보니 대개 자신의 전공으로 석사와 박사까지 밟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의 분야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낸 각 분야의 고인물들이 모이면 이야기하기 싫어도 자기 전공으로 이야기하게 되는 법이다.
‘그래, 물리학 성취도 시험이랬어.’
대학교 입학 후 물리학에 특별히 재능을 보이는 학생들이 고급 물리학1을 수강할 수 있게 하는 시험이었다. ‘재능’에 걸맞게 난이도는 극악이었다.
억지로 끌려간 회식 자리. 그곳에서 물리학과 조교로 일하고 있던 녀석이 열변을 토하며 설명해주던 풀이 과정이었다. 이런 걸 새내기들이 배운다며 징글징글하다고 말했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시계를 봤다. 15분 안에 이 5문제를 풀라는 건 불가능이었다. 설령 풀 순 있어도 풀이과정을 다 옮겨적느라 시간이 부족할 정도였으니까.
‘좋아. 해보자고.’
연필을 꺼냈다. 샤프보단 연필이 좋았기에.
분주하게 손을 놀렸다. 1분 1초가 아까운 시간, 빠르게 필요한 과정들 중심으로 적어내려갔다. 5문제라곤 했지만 한 문제에 들어있는 새끼 문제까지 포함하면 20문제 가량이었다.
만점을 받기 위해선 찰나의 망설임도 존재해선 안 된다.
‘머릿속에 있는 걸 그냥 꺼내 적어. 의심하지 마. 내가 아는 게 답이니까.’
[1-(1) 충분한 시간이 지난 후 열평형을 이룰 때의 온도를 구하라.]Q1 = Q2
C1 * (T1 – Tf) = C2 * (T2 – Tf)
이 정도는 쉽다. 아마 다른 녀석들도 대부분 적어냈을 것이다.
1-(3)번 문제는 카르노 사이클을 적어야만 했다. 등온 팽창, 등온 압축, 등엔트로피 팽창, 등엔트로피 압축. 기호를 곁들어 설명을 적어갔다.
이 시험이 어떤 시험지인지 알고 나니 출제자의 의도가 보였다. 아니 저 사람의 의도가 보였다.
‘기 싸움.’
교사와 학생 간에 기 싸움은 존재한다. 그러나 과고에서는 사뭇 다른 방식으로 전개된다.
이 사람이 나를 가르칠 자격이 있는가, 없는가.
엘리트 코스로 평생을 엘리트로 살아온 학생들인 만큼 콧대가 높다. 믿을만한 교사라고 판단되지 않는 순간 인간으로 존중은 하더라도 교사로 존중받기는 힘들다. 그도 그럴 게 교사보다 본인이 더 똑똑하다고 생각하니까.
아마도 박성민은 특별반 학생들의 콧대를 꺾고 싶은 것 같았다.
“자, 시간이 다 되었네. 시험지는 앞으로 가지고 오자.”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냥 시험을 쳤을 뿐인데 얼굴이 시뻘게진 채로 땀을 흘리고 있는 학생도 있었다. 누가 보면 운동장을 10바퀴라도 뛰고 온 것마냥.
박성민은 시험지를 하나하나 훑어보며 간단하게 코멘트를 덧붙였다.
“이지섭, 0점.”
바로 채점해서 공개라니. 잔인한 일이었다. 점수가 밝혀진 학생은 부끄러운지 고개를 푹 숙였다.
“최한별, 70점. 깔끔하게 잘 적었는데 4번 문제에 필수 풀이과정이 생략되었네. 뭐 그래도 이정도면 대단한걸? 마지막 문제는 못 풀었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대꾸한 최한별에 이어 곽진환의 차례가 되었다.
“흠, 이건 답 점수밖에 못 주겠는데? 풀이 과정이 하나도 없어.”
“암산으로 풀었는데요.”
“풀이를 적어야 하는 문제는 다 빈칸인데?”
곽진환은 말이 없었다. 하지만 기분 나쁜 게 느껴질 정도로 표정이 어두웠다.
그렇게 한 명씩 점수를 부르던 박성민의 손이 멈췄다.
“오…”
그리고 나를 바라보는 박성민. 그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김만덕?”
“네.”
그가 시험지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만점이다.”
그 순간 반 전체의 관심이 나로 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