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110)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110화(110/221)
110. 줄기세포 (1)
110. 줄기세포 (1)
정정 논문이 먼저라는 내 말에 크리스 교수는 한동안 벙찐 상태로 앉아있었다. 그는 내가 한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미간을 좁히며 되물었다.
“그러니까···같은 실험을 진행해서 의미있는 결과를 만들어내겠다는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제가 할 소리는 아니지만 이것 역시 결과를 위해 실험을 의도적으로 설계하는 것과 다를게 없어보입니다만.”
크리스 교수가 당혹스러운 얼굴로 턱을 매만졌다. 그가 생각하기에 이 역시 조작과 같은 맥락이었다.
하지만 엄연히 달랐다.
“저는 줄기세포로 해마 복원에 성공할겁니다. 그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데이터를 조작하거나 의미있는 데이터만 선별해내진 않을거에요.”
“그 말은? 정말 줄기세포만으로 해마를 복원해내겠다는 건가요?”
줄기세포만으로 해마를 복구한다라, 사실 20년 후의 미래에선 줄기세포로 특정 기관을 복원하거나 특정 세포로 분화시키는 단계까지는 성공한 상황이었다.
비록 그 분화된 기관과 세포를 사람에게 이식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뿐, 분화시키는 것까지는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어디서 나오는 자신감인지 알다가도 모르겠군요.”
결국 내 확고한 표정에 크리스 교수가 백기를 들었다. 그는 양 손가락으로 눈두덩이를 꾹 눌렀다.
“알겠습니다. 이제 이 논문의 운명은 만덕 학생 손에 달린 것이나 다름없으니, 이 뒤는 만덕 학생이 하자는 대로 하겠습니다. 제가 무엇을 도와드리면 되겠습니까?”
“같이 연구에 참여해주십시오.”
“…예?”
크리스 교수가 잘못 들었다는 듯이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들었다. 그는 진심으로 되묻고 있었다.
“방금 만덕 학생 스스로가 이 실험을 다시 진행하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저도 연구에 참여하라뇨?”
“실패한 연구를 다시 성공시킬 수 있는 사람은 연구에 실패했던 사람이니까요.”
“허허···무슨 말인지 잘-”
“줄기세포로 해마 복원에 실패했던 이유. 그걸 알아내는게 급선무입니다.”
나는 크리스 교수의 논문과 내가 분석해 온 노트를 나란히 펼쳐두었다.
“크리스 교수님이 진행하신 실험을 봤을 때 실험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유도만능세포를 배양하는 것부터 실험 쥐에 이식, 이후에 모니터링 하는 과정까지 실험 절차 상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실험으로 만덕 학생이 다시 한번 실험을 해보겠다는건가요?”
“정확히는 교수님께서 그 당시 진행하셨던 실험 과정을 직접 보고싶습니다.”
내 말에 크리스 교수가 움찔거렸다. 그도 그럴게 꽤나 도발적일 수 있는 말이었기에.
실험이나 수술과 같이 누군가의 주도하에 이루어지는 상황. 이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말 자체가 어쩌면 크리스 교수에게는 일종의 도전처럼 느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내 크리스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이미 수백번도 했던 실험, 한번 더 보여준다고 어려워질 건 없죠.”
“감사합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줄기세포로 해마를 복원하는데 충분치 않을겁니다. 실패한 실험을 답습해봤자 결과는 실패일 테니까요.”
자조적으로 말하는 크리스 교수였지만, 나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저 살짝 미소 지으며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아, 그리고 혹시 연구원 한 명을 더 붙여주실 수 있으신가요? 아무래도 줄기세포 배양부터 이식까지 모든 과정을 혼자 진행하는 건 무리일 것 같아서요.”
“일리 있는 말입니다. 혼자서 이 일을 진행하다 보면 아마 수년이 넘게 걸릴 수도 있지요. 그나저나 연구원이라···.”
크리스 교수의 표정의 미간이 점점 좁아졌다. 그도 그럴 게 이건 어디까지나 정정 논문을 위한 실험. 많은 사람에게 알려져봤자 시기상으로 좋지 않을 게 뻔했다.
최대한 이 부분에 대해서 한 배를 탈 수 있는 동지이면서, 또 유능한 보조 연구원이라면···.
“로버트를 잠시 빌려도 될까요?”
“그 애는 학부생이라 쓸모가 그리 많지는 않을 텐데요.”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꽤나 신랄한 평가였다. 하지만 나는 그 사실에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오히려 좋습니다. 아는 게 없을수록 실수를 더 잘 볼 수 있는 법이거든요.”
이 바닥의 고인물일수록 간단한 문제에 대한 해답을 못 내놓는다. 지금까지 알고 있는 지식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금 상황에서는 줄기세포 연구에 이제 막 발을 들여놓은 로버트가 제격이었다.
‘어차피 실험은 내가 주도할 테니까, 크게 어려울 것도 없고.’
게다가 일종의 장치이기도 했다. 나중에 정정 논문을 낼 때 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데이터 조작을 아들이 해결했다고 하면 그림이 좀 될 테니까.
아마 이 실험이 다시 세상에 알려지면, 아마 그때는 꽤나 시끄러울 것이다. 누구는 줄기세포가 사기라고 모조리 매도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지금까지 받은 지원금을 모두 토해내라고 할 수도 있었다.
어쩌면 진짜 줄기세포로 해마 복원에 성공해도 거짓말이라며 믿지 않는 사람들도 등장하겠지.
하지만 그런 여론 분위기는 앞으로 치매 연구를 하는 데 있어서 하등 좋을 게 없었다.
‘나중에라도 내가 줄기세포를 치매 치료에 사용하는 데 있어 장애물이 될 수 있는 건 미리미리 치워두는 게 좋아.’
머릿속으로 이후의 계획을 그리고 있는데, 누군가 연구실 문을 똑똑 두드렸다. 그리고 문틈 사이로 보인 건 익숙한 금발 머리였다.
“아버지, 아까 메시지로 하실 말씀이란 게···?”
침울한 표정으로 문을 열었다가 나를 발견한 로버트. 생각해 보니 로버트한테는 미국에 돌아오는 날을 제대로 안 알려준 것 같다.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크리스 교수의 연구실로 왔으니 뭐. 애초에 연락할 여유가 없었기도 했고.
“너, 너 언제 왔어?”
“마침 잘 왔다. 오늘부로 만덕 학생이 연구를 진행할 때 보조 연구원으로 들어가면 좋겠구나.”
“네? 제가요? 제가 보조 연구원으로요?”
난생처음 듣는 이야기라는 듯 로버트의 눈이 커졌다. 그는 나와 크리스 교수를 번갈아 보더니 나를 보며 말했다.
“무슨 연구인데?”
“줄기세포로 해마 복원하는 실험.”
“왓 더···그건 아버지가 했다가 망-”
로버트가 입을 가린 채 다음 말을 삼켰다. 그런 아들의 모습을 한번 본 크리스 교수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고개를 젓더니 나를 바라봤다.
“저런 아이입니다만···, 저런 연구원이어도 괜찮겠습니까? 괜히 방해만 되는 건 아닐지 걱정이 되는군요.”
“아니 제가 뭘 어쨌다고···,”
“네. 어차피 실험은 거의 다 제가 할 생각이기도 하고요. 부수적인 부분에서 도와줄 사람이 필요한 거니까요.”
억울한 듯 말하는 로버트를 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나는 책상 위에 펼쳐진 논문과 연구노트를 다시 챙긴 후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지금 이 시간부터 연구 시작하겠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실험에 뛰어들 시간이었다.
*
하버드 줄기세포연구단의 보안은 생각보다 삼엄했다. 기본적으로 윤리 문제가 얽혀있는 민감한 주제라 그런지 사전에 허가가 떨어지지 않은 사람은 출입조차 불가능했다.
“갑자기 나도 연구에 참여하라고? 날 왜?”
로버트는 아직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내 뒤를 졸졸 따라오고 있었다. 나는 크리스 교수가 안내해 줬던 실험실을 찬찬히 둘러보고 있었다.
크리스 교수의 경우 오후 강의가 남아있는 상황이었기에···. 모든 일정을 마친 후 곧바로 합류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그는 강의실로 다시 돌아갔다.
“왜? 연구 참여하기 싫어?”
“아니, 싫은 게 아니라 놀랐다는 거지. 이런 건 미리미리 말해주면 좋잖아! 우리 한 팀 아니었어?”
“전에는 날 완전히 믿는 건 아니라면서?”
아무리 로버트가 장난 삼아 이야기를 하고 있어도 이 일은 꽤나 불편한 일이었다. 자칫 잘못하면 모든 불명예를 끌어안고 크리스 교수가 사직을 해야 하는 상황.
‘그가 데이터 조작을 알아차리고도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질타를 받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지금까지 해왔던 모든 게 부정당해서도 안 돼.’
줄기세포에 대한 연구는 이제 막 한 걸음씩 도약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크리스 교수의 논문 하나로 모든 게 매도되는 분위기가 된다면, 필시 줄기세포 분야의 연구는 지금보다 퇴보할 게 눈에 선했다.
로버트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는지 입을 삐뚜릅하게 한번 올렸다가 다시 툭 던지는 말투로 말을 이었다.
“이제는 믿어! 그때는 그냥···아버지가 조작 같은 걸 할 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순간적으로 로버트 얼굴 위로 씁쓸한 표정이 떠올랐다.
크리스 교수는 하버드대 안에서도 평판이 좋은 교수이다. 그런 교수가 아버지라는 사실만으로도 로버트에게는 은근한 자랑이었을테지.
“벌써부터 낙담하기는 일러. 이 실험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크리스 교수님도 최악은 피하실 수 있으실 테니까.”
“최악을 피한다고?”
아직 영문을 모르고 있는 크리스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그에게 이 일의 전말을 털어놓았다. 데이터 조작을 한 사람은 크리스 교수가 아니라는 것부터 시작해서 왜 그가 조작된 사실을 뒤늦게 알고도 논문을 철회하지 못했는지까지.
이야기를 듣는 내내 로버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늘 장난끼가 넘치던 그의 눈빛이 이제는 진지한 눈으로 변해있었을 뿐이다.
“그러니까 너가 열심히 하는지가 중요해. 그에 따라 실험 결과가 빨리 나올 수도 있고 늦게 나올 수도 있으니까. 물론 늦게 나오면 그 안에 무슨 일이 생길 수도 있고.”
“뭐든지 시켜줘. 최선을 다할게.”
일을 원활하게 할 생각으로 살짝 겁을 주려던 생각이었는데, 로버트는 진심으로 대답했다. 그 사이에 성장해버린 듯한 모습에 나는 그저 어깨를 으쓱였다.
“일단 뭘 시키기 전에···너 이 논문에 대해서는 어디까지 이해했어?”
“어? 이해?”
“응. 줄기세포 배양이나 그런 부분은 이식같은 거는 기술적인 문제니까 어려울 건 없어.”
크리스 교수의 논문은 ‘유도만능줄기세포를 이용한 손상 된 해마 복원’이 주제였다.
“우선 해마가 손상된 실험 쥐로부터 피부 세포를 채취해. 그리고 특정 유전인자인 역분화 인자를 세포에 주입해서 유도만능줄기세포로 만들어낸 후, 다시 이 세포를 신경세포로 분화시키는 거야.”
“어···그니까 그냥 이런 피부 세포가 뇌세포가 된다는 말이야?”
“결과만 놓고 보면 그렇긴 한데, 중간에 그걸 가능하게 해주는 게 유도만능줄기세포인 거야.”
로버트는 이해가 될 듯 말 듯 한 표정으로 내 설명을 이어서 들었다. 설명을 듣던 중 그는 미간을 좁힌 채로 물었다.
“그런데 이걸 우리가 성공시킬 수···있을까?”
걱정이 어린 목소리에 나는 말없이 연구 노트를 뒤적거렸다. 크리스 교수가 실험을 진행하면서 일어난 모든 과정과 떠올랐던 아이디어들을 적어 놓은 노트였다.
차락, 차락. 종이가 넘어가는 소리에 맞춰 로버트가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너가 대단한 건 알고 있어. 아카이브에 올린 논문 하나로 하버드에 조기 입학까지 할 정도면 정말 말도 안되는 천재겠지. 하지만 이건 다른 문제야. 그러니까···이건 나한테 있어서 가족이 걸린 문제나 다름 없다고.”
로버트는 꽤나 간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널 무시하려는 게 아니라···너도 이번에 아버지한테서 줄기세포에 대해 배우려고 온 거 아니야? 그런데 아버지가 실패했던 실험을 너가 성공해내겠다고? 차라리 지금이라도 아버지를 설득해서 논문을 철회하도록 하는 게-”
“로버트. 아까 물었던 질문 기억해?”
“어? 질문?”
나는 로버트의 말을 자른 후 그를 바라봤다.
“논문 어디까지 이해했냐고 물어봤던 거 말이야.”
“어···너가 방금 설명해준거로 얼추 이해했어. 아버지 논문이 어떻게 진행된 건지도 이제 흐름도 알겠고.”
“그럼 뭐가 분명하게 조작된 부분인지도 알겠고?”
“…해마를 촬영한 MRI 사진이랑···유도만능줄기세포를 이식하고 난 뒤의 해마 크기 변화값?”
“맞아. 그래서 우리가 지금 바로 해야하는 건···.”
나는 따로 마련되어 있는 방을 턱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 안에는 익숙한 기계 하나가 방을 꽉 채우고 있었다.
“좀 실험체로 들어가 줘야 할 것 같아. 뇌 사진이 필요하거든.”
“…난 쥐가 아닌데.”
“걱정마. 이식까지는 안 할 테니까.”
“아, 아니. 잠깐만-”
겁에 질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로버트를 향해 싱긋 웃었다.
일단 어디서부터 오류가 시작되었는지, 그것부터 시작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