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112)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112화(112/221)
112. 줄기세포 (3)
112. 줄기세포 (3)
“미야?”
“안녕. 요즘 클럽에 안 보이길래 한국으로 간 줄 알았는데, 미국에 있었구나?”
여느 때와 같이 머리를 높게 올려묶은 미야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녀는 두꺼운 책을 품에 안은 채로 서 있었다.
생각해 보니 클럽 사람들에게 한국으로 간다고 말하지 않았었다. 어차피 금방 다시 돌아올 거라 생각했으니까.
“응. 사실 한국에 잠깐 갔다 왔거든. 미국에 온 지는 얼마 안 돼.”
“흐음···. 그럼 다시 한국으로 갈 예정?”
미야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이제 시기상 3월에 접어든 상황. 이미 한국과고에서는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었을 터였다.
내 자퇴 신청은 진즉에 처리되었을 거고.
내 상황을 대충 파악한 듯, 미야가 화제를 돌려 자료 검색용 컴퓨터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내가 검색하던 논문이 아직 검색창에 올라가 있었다.
“저거 빌리려고 했던 거지?”
“응. 근데 협약 연구원이 아니면 빌릴 수 없다고 해서 곤란하던 참이야.”
“가끔가다 대학이나 연구실끼리만 공유하는 문서가 있다고 들었어. 꼭 중요한 문서가 아니더라도 절차상의 문제라나, 뭐라나.”
진짜 귀찮게 만들어뒀다니까- 미야가 질색을 하며 말했다.
한국 내에서도 모든 자료가 공유되고 논의되어지는 건 아니었다. 물론 과학의 발전을 위해 논문으로 등재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기업의 기술이나, 아직 특허를 받기 전의 문서, 혹은 세상에 알리기에는 좀 더 조사가 필요한 부분들에 대해서는 비공개 처리하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저 논문은 꼭 읽고 싶은데 말이지.’
거기다 크리스 교수로부터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캘리포니아 대학은 하버드대에 견줄 정도로 줄기세포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했다. 미국의 경우 주마다 규제와 정책 차이로 특정 분야에 대한 연구에도 차이가 존재한다고.
미간을 좁히며 저 논문을 읽을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데, 미야가 귓속말로 소곤거렸다.
“저거 읽고 싶은 거 맞지?”
“어? 어. 그런데 아까 말했듯이 빌릴 수가 없어서-”
“내가 대신 빌려줄까?”
“?”
두 눈을 크게 뜬 채로 미야를 바라봤다. 그녀의 눈은 거짓말하는 것 같아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미야 역시 학부생에 불과할 텐데···. 설마 캘리포니아 대학과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게 있나?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줄기세포에 대한 논문까지 읽을 권한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런 내 생각을 읽었는지, 미야가 작게 웃으며 말했다.
“내 사촌이 거기서 연구하고 있거든.”
“…사촌? 무슨 연구 중인데?”
“그거까지는 모르는데···. 일단 한번 물어볼게. 아마 직접 권한은 없어도 친구가 많아서 어떻게든 빌려줄 거야.”
미야는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했지만, 짧은 설명으로도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분명 이인성과 필적할 만한 인싸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이 방법이 가장 깔끔하고 편했다. 만약 안 되면 그때 가서 방법을 생각해도 늦지 않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야를 바라봤다.
“고마워. 그런데 넌 여기 왜 온 거야? 공부하러?”
“아니. 클럽에서 데이브가 이상한 거 만든다고 쫓아냈어. 방해된대.”
“…뭘 만드는데?”
“몰라. 나가기 싫다고 하니까 도와주지 않으면 피 뽑는다고 해서 도망쳤어.”
미야는 안 좋은 기억이 떠올랐는지 미간을 좁혔다. 괴짜로부터 피신할 장소로 도서관을 택한 그녀.
‘피 뽑는다는 거면 이제 진단 키트 관련해서 연구하고 있는 건가?’
전생 때 데이브를 신문에서 봤었다. 손쉽게 당뇨병을 진단할 수 있는 키트를 만들어 억만장자 반열에 올랐던 그. 그 역사가 지금쯤 시작되는 모양이었다.
찬찬히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에 잠겨있는데, 문득 그녀의 품에 안겨있는 두꺼운 책에 시선이 갔다. 책 이름은 [정보 기하학] 이었다.
잠깐만. 저 책 분명 어디서-
“너도 이거에 관심 있어?”
“어? 어···나 말고 내 친구가.”
“흐음···신기하네. 이 분야는 마이너해서 연구하는 사람 별로 없거든.”
미야와 나는 도서관을 빠져나와 근처 카페테리아로 이동했다. 데이브가 클럽에서 나올 때까지만 같이 있어 달라는 미야의 말 때문이었다.
물론 맘 같아서는 당장 크리스 교수의 집으로 가서 연구 자료를 좀 더 살펴보고 싶었지만···.
“캘리포니아 대학 논문···. 내가 구해다 주는 건데···.”
“그, 그건 고마운데 이미 해도 저물어 가고-”
“어차피 너 집까지 금방이잖아. 전에 로버트가 이야기해 줬어. 자기 방에서 지내고 있다고.”
꽤나 간절하게 붙잡는 바람에 결국 음료를 다 마실 때까지만 같이 있어 주기로 했다. 따지고 보면 미야 덕분에 논문을 볼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니까. 아직 확실하진 않지만.
“그나저나 크리스 교수님이랑은 무슨 연구하는 거야?”
“응?”
“크리스 교수님이랑 연구하려고 한국에서 온 거라며.”
로버트가 말한 건가. 나는 뒤통수를 긁적이며 꽤나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게 연구에 대한 이야기를 섣불리 꺼내봤자 좋을 게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더군다나 지금 하는 연구는 과거에 크리스 교수가 실패했었던 연구를 다시 진행하는 거였다. 그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크리스 교수 연구팀의 데이터 조작에 대해 말해야만 할거고···.
‘적어도 제가 밝히고 싶습니다.’
크리스 교수는 조작 사실을 직접 밝히겠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더더욱 미야에게 이 내용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었다. 미간을 좁힌 채로 있자 미야가 무심하게 말했다.
“말하기 싫으면 안 말해도 돼. 어차피 너희가 말하는 거 난 들어도 몰라.”
“나중에 다 말해줄게. 아직은 시기가 좋지 않아서.”
“좋아. 그럼 일단 나 사촌한테 연락 좀 해볼게.”
“? 지금?”
고개를 갸웃하며 미야를 바라봤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휴대전화를 꺼냈다.
“나 지금 안 하면 까먹거든.”
“아.”
바로 납득했다. 미야는 평소 이것저것 까먹는 일이 잦았는데, 심한 날에는 머리에 연필을 꽂아두고 하루 종일 연필이 어디 있는지 찾곤 했다. 물론 데이브와 로버트는 그 모습을 보고도 연필이 어디 있는지 절대 안 알려줬다.
휴대전화를 꾹꾹 누르던 미야가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통화 내용이 들리지는 않았지만, 미야의 반응으로 볼 때 좋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통화를 마친 미야가 웃으며 말했다.
“잘됐다. 마침 아는 사람이 거기서 연구하고 있어서 빌릴 수 있을 것 같대.”
“진짜? 이렇게 쉽게 빌릴 수 있을지 몰랐어.”
역시 한국이나 미국이나 인맥은 여러모로 쓸모가 많다. 물론 미야에게 이런 연구 인맥이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 했지만 말이다.
미야로부터 뜻밖의 수확을 얻어낸 후,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녀는 들고 온 정보 기하학 책을 보며 “어려운데 재밌어.”라고 담담하게 소감을 말했고, 수학과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풀어주었다.
어느새 시간이 흘러 저녁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보일 때쯤, 그녀가 책을 챙기며 말했다.
“고마워. 지금쯤이면 데이브도 집에 갔을 거야.”
“그런데 기숙사 안 가고 동아리실 가게? 너무 늦은 거 아니야?”
“난 야행성이라서 밤에 공부해야 하거든. 기숙사 룸메이트는 코 골아서 싫어.”
“그럼 도서관은? 지금 동아리실에는 아무도 없어서 위험하지 않아?”
내 말을 듣던 미야가 살짝 웃더니 어깨를 으쓱였다.
“뭐, 그렇게 걱정된다면 오늘은 공부 안 하고 기숙사로 가야겠다.”
“아니,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면-”
“마침 너 가는 길에 기숙사 가는 길이랑 겹치네. 같이 나가자.”
···뭔가 말려 들어간 느낌이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카페테리아를 빠져나왔다. 그렇게 살짝 차가워진 밤공기를 느끼며 걷고 있는데 저 멀리 강아지를 산책하는 사람들이 눈에 보였다.
대형견을 이끌고 천천히 걷고 있는 사람, 시츄로 보이는 강아지와 함께 뛰고 있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 속에서 눈에 들어오는 강아지가 한 마리 있었다.
“저 강아지 여기서 좀 유명해.”
“다리를 절어서?”
비글로 보이는 강아지는 오른쪽 뒷다리를 아예 사용하지 못하는 듯했다. 하지만 미야는 내 이야기에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아니. 주인 때문에.”
“주인이 왜?”
“저 주인이 엄청난 부자라는 루머가 있거든.”
“부자? 루머?”
평소에도 소문에 귀가 어두운 나다. 그런데 미국, 그것도 하버드대 내에서 돌아다니는 소문이라니.
나는 강아지 주인으로 보이는 여자를 바라봤다. 여자는 가벼운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뒤에서 강아지를 따라가고 있었다. 매우 천천히 걸어가면서.
꽤나 기이해 보이는 모습에 미간을 좁힌 채로 말했다.
“근데 부자라고 하기엔 뭐라고 해야 하지···. 너무 젊은데. 우리 또래같아.”
“우리 또래 맞아. 하버드대 경영학과 재학중이거든.”
“근데 부자라고?”
“정확히는 부자 가문이지. 왜 관심있어?”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미야는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내게 풀기 시작했다.
어릴 적부터 키우던 강아지인데 예전에 사고를 당했다, 수술도 하고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는데 결국 안 되어서 한동안 난리도 아니었다, 등. 여러 가십들.
“페이스북에 한동안 강아지 고쳐주는 사람한테 사례도 하겠다고 광고란 광고는 다 했다니까?”
이 시기엔 한창 페이스북이 인기를 얻아 활발하게 운영되던 중이었다. 그렇게 미야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느새 기숙사 앞에 다다랐고, 그렇게 우리는 헤어지게 되었다.
‘강아지가 다친 건 안타까운 일이지만 뭐···나랑은 관련없는 일이니까.’
크리스 교수의 집으로 향하는 길, 다리를 절며 걸어가던 강아지의 뒷모습이 자꾸만 머릿속에서 아른거렸지만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나랑은 관련 없는 일이니 말이다.
*
“감사합니다. 덕분에 실험이 진행되는 과정을 완벽하게 이해했습니다. 기기 작동법을 비롯해서요.”
4주의 시간이 흘렀고, 나는 크리스 교수가 어떤 식으로 실험을 진행했는지 관찰할 수 있었다. 내 예상과 같이 그는 실험 자체에서 실수를 범하지 않았다. 오히려 실험의 정석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모든 과정은 절차에 따라 착착 진행되었다.
로버트 역시 이후에 진행될 실험의 보조로 참여할 것이기에, 이 모든 과정을 세세하게 기록하고 있는 중이었다.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만, 아쉽게도 뭔가를 얻어낸 것 같아 보이진 않는군요.”
“이제 전에 논의했던 부분들을 적용하면 그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부분들을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크리스 교수와 나눴던 대화들을 복기했다. 확산텐서영상으로 신경세포의 활성도와 분포를 확인한다. 이를 통해 만들어진 세포가 신경세포인지, 그냥 아무런 상관없는 걸로 분화한 건지 알 수 있을 터였다.
그렇게 우리는 실험과 관련하여 대화를 계속 나누었고, 대화 말미에 크리스 교수가 뜻밖의 제안을 걸어왔다.
“안 그래도 이번에 만덕 학생에게 전할 말이 있었습니다. 전에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공동 연구를 제안했던 것 기억하나요?”
“네. 내년에 진행하게 될 것 같다고···.”
“일정이 생각보다 당겨졌습니다. 아마 만덕 학생이 입학하는 시기에 맞춰서 연구도 시작될 것 같습니다.”
“!”
기쁜 소식이었다. 안 그래도 내가 연구하고 싶어 하던 분야인 치매. 그것도 손상된 뇌세포를 복원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말은 동시에 지금 진행하고 있는 연구에 속도를 올려야 한다는 말이기도 했다.
“아무래도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참고하고 바탕으로 두고 있는 논문이 바로 이 논문이기 때문이지요.”
그는 이제는 아픈 손가락이 되어버린 논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해마 복원과 관련한 크리스 교수의 논문. 지금 열심히 다시 실험하고 있는 연구 내용이기도 했다.
그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만약 이번 실험에서 의미 있는 변화를 얻지 못한다면···. 캘리포니아 연구팀과의 공동 연구는 포기하는 게 맞겠지요. 그쪽에서도 엄청난 돈을 투자해서 진행하는 연구인만큼 신중할 테니 말입니다.”
크리스 교수는 체념한 듯 말했다. 그런 그를 보며 다른 평범한 사람이라면 격려와 희망찬 말을 건넸겠지만···. 사회성이 부족한 나에게 그런 말은 어려운 것이었다.
그 대신 나는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기를 택했다. 지금 상황에서 아무런 근거 없이 말로만 이야기했다간 오히려 신뢰를 잃어버릴 수도 있고, 대책 없는 낙관론은 상황만 더욱 비참하게 만들 뿐이니 말이다.
단지 나는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크리스 교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부터 이 이후의 연구는 제가 주도해도 괜찮겠습니까?”
말보다는 실험으로 보여주는 게 가장 효과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