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12)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12화(12/221)
12. 특별반 (2)
12. 특별반 (2)
“사실 다 푼 학생이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 했는데 말이지. 진짜 푼 거 맞지?”
박성민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물었다. 물리를 잘하는 학생 중에서도 더 특별한 소수의 학생을 선별하기 위한 시험을 이제 갓 입학한 학생이 풀어내다니.
두 눈으로 보고도 믿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푸는 데 망설임이 전혀 없었어.’
사실 시험지를 주고 난 후, 박성민은 교실을 둘러보는 척 학생들을 관찰했다.
멀뚱히 시험지만 바라보다가 답만 끄적이는 곽진환이라든가,
중간중간에 손이 멈추긴 했지만 나름 열심히 적어나가던 최한별이라든가.
거기다가 출석부에 적힌 등수엔 최한별의 배치고사 등수도 나와 있었기에 그는 적잖이 기대하고 있었다. 과연 이 여자애가 물리 천재일지, 아니면 단순히 물리 성적이 높은 학생일지.
그에게 있어 천재 판별법은 간단했다.
배우지 않은 걸 던져준다. 그리고 풀어내면 천재, 아니면 범재였다.
그렇다고 시간을 너무 많이 줘선 안 된다. 아무리 어려운 문제도 시간을 하염없이 주면 언젠가는 풀리기 마련이니까.
그런데 고작 15분 안에 모든 문제를 풀어낸 학생이 있다.
김만덕. 전교 2등이면서 물리 2등.
1등인 최한별에 비해 모두 2등인 학생이었다.
“학원에서 배운 거야?”
“아뇨. 학원 안 다녔는데요.”
“하하, 농담도.”
기본적으로 물리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풀 수 없는 문제들이었다. 설령 학원에서 학습했다고 하더라도 문제를 보고 바로 의도를 파악해 관련 공식을 꺼낼 수 있을 정도가 아닌 이상…
박성민의 표정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의 머릿속에는 별별 가능성들이 떠올랐다.
첫째, 시험지가 유출되었고 미리 풀어봤을 가능성은? 없다. 어제 따끈따끈하게 만들어 온 시험지니까. 물리학 시험 초안 문제들을 몇 개 만들면서 같이 만들어뒀던 문제들이었다.
둘째, 커닝을 했을 경우? 각자 자기 시험지 푸느라 바빠서 눈 돌릴 틈도 없었다. 감독을 했던 그가 제일 잘 아는 사실이었다.
마지막. 진짜 천재라면?
“선행 학습 없이 어떻게 풀었는지 모르겠네. 혹시 마지막 문제 앞에 나와서 풀이해 볼래?”
학생을 의심하는 건 좋은 자세가 아니다. 하지만 박성민의 마음 한구석에는 심장이 요동치고 있었다.
[5. 맥스웰 방정식을 유도하시오.]박성민의 말에 김만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걸어 나오는 모습엔 망설임이 없었다.
“전기장의 발산은 전하 밀도에 비례합니다.”
∮E · dA = (1/ε₀) * ∫ρ dV
“여기서 E는 전기장 벡터, dA는 표면의 면적 벡터, ρ는 전하 밀도, ε₀는 자유공간에 대한 전기 유전율입니다.”
칠판 앞에 놓여있던 분필로 그는 수식을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자기장의 발산은 자유전하가 존재하지 않으며, 자기장은 단발성 자석이 존재하지 않는 한, 자기 절연체에서 항상 회로를 형성합니다.”
∮B · dA = 0
“B는 자기장 벡터, dA는 표면의 면적 벡터입니다.”
한 줄 한 줄 설명하고 있었지만 설명이 친절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마치 물리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람만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의 설명이었다.
“세 번째, 시간에 따라 변하는 자기장은 전기장을 유도합니다. 자기장이 닫힌 루프 내에서 변화할 때, 루프 경로를 따라 유도 전압이 생성됩니다.”
∮E · dl = – d/dt * ∫B · dA
“마지막은 앙페르의 법칙 (Ampère’s Law). 전류가 흐르는 경우, 해당 전류를 둘러싸는 폐곡선을 따라 자기장이 형성됩니다. 이때 자기장은 전류에 비례합니다.”
∮B · dl = μ₀ * I
네 번째 수식까지 설명을 마친 김만덕이 박성민을 바라봤다. 더 시킬 게 있냐는 말이었다.
박성민은 혼란스러웠다. 우연히 들어온 한국과고 강사 제안. 그가 이걸 받아들인 건 순전히 흥미 때문이었다.
교육열이 치열한 대한민국에서, 그것도 천재들만 모여있다는 한국과고의 학생들은 어떨까.
외국에서 자유로운 교육 환경 속에서 살아왔던 그에게 한국의 교육은 낯설고 충격적이었다.
‘아침 7시부터 저녁 11시까지 공부를 한다고? 도대체 언제 쉬는데?’
‘뭐? 고등학생들이 대학교 원서를 가지고 수업을 한다고? 이해는 하는 거야?’
우연히 해외에서 들었던 한국 유학생의 이야기에 그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궁금했다. 이런 곳에서 자란 녀석들은 대체 어떤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을지.
“…한 가지만 묻자. 학원 안 다녔다고 했지?”
“네.”
한국 학생들은 학원이 기본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외국으로 유학 온 학생 중에는 따로 에세이 수업을 듣기 위해 방학 중에 한국으로 귀국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그럼 이 공식들을 순전히 네가 다 유도해낸 거라는 소리야?”
“예? 아닌데요?”
김만덕이 별 미친 사람을 다 본다는 표정으로 박성민을 바라봤다.
“그럼 어떻게 이 공식을 안 건데?”
“어…”
김만덕은 우물쭈물하더니 고민 끝에 답변했다.
“교과서 예습했는데요.”
*
교과서로만 공부했어요.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옛날부터 제일 듣기 싫어했던 말이었다. 교과서로만 공부해서 어떻게 수능 만점을 받는단 말인가? 공부가 제일 쉽다고? 도대체 어떤 인생을 살아온 거지?
하지만 나는 그 상황에서 그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안 다닌 학원을 다녔다고 거짓말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대학생 때 배웠던 내용이라고 할 수도 없고.’
물론 학원에 다녔다고 거짓말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부를 테니까.
게다가 시험 운이 좋았다. 박성민이 들고 왔던 문제들은 이전에 내가 봤던 문제들이었다. 심지어 풀이 과정도 운 좋게 다 들을 수 있었다. 물론 그때는 내가 이걸 왜 듣고 있나 싶었지만 말이다.
‘몇몇 기억 안 나는 것들도 있지만 그 정도는 학부 교양 수준에서 커버 가능했으니까.’
아무리 내가 생물 전공이었어도 학부 시절에 기본적인 교양 수업으로 타 과목을 들어야 한다. 그리고 설령 고등학생들한테는 어려운 문제였더라도 나한테는 상식 수준보다 살짝 높은 난이도의 문제로 변해 있었다.
‘게다가 복잡한 수식을 요하는 것보다는 기본적인 공식들을 가지고 유도해내는 게 많았어. 열역학이나 엔트로피 법칙 같은 것은 대학원에 가서도 계속 써먹었으니까 잊을 수 없었고.’
그나마 어려웠던 게 마지막 5번 문제였지만, 다행히 전생의 도움으로 풀어낼 수 있었다.
교과서로 예습했다는 내 말에 박성민도, 반 아이들도 모두 다 미간을 찌푸렸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네가 설명한 것들은 고등학교 물리에는 안 나오는 부분도 있는데?’
‘아. 제가 말한 건 한국과고 교과서요. 그러니까 대학 교재요.’
얼버무리려고 한 말에 박성민이 더 경악했다. 하지만 이윽고 박수를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로 여러분의 수준이 어느 정도 파악이 된 것 같네요. 솔직히 조금 많이 놀랐습니다. 과고 특별반은 어떨지 궁금했거든요.’
분명 아까까지는 반말이었는데, 갑자기 존댓말로 변한 박성민은 앞으로의 커리큘럼에 대해 쏟아내기 시작했다. 한 학기 동안 이루어지는 수업이었지만 수업의 내용은 결코 한 학기 내용이 아니었다.
‘설마 나 때문에 이렇게 된 건 아니겠지?’
스스로 인생 난이도를 올린 것 같다는 생각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래도 수확은 있었다. 수업이 끝나자 박성민은 내게 다가와 한 가지 뜻밖의 제안을 했다.
“영재 관련 연구요?”
“사실 한국 영재 교육에 관심이 많아서. 아, 반말이 혹시 불편하면 말하렴. 지금은 동등한 위치에서 권하는 거니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안 그래도 나보다 까마득하게 나이가 많아 보이는 데 존댓말은 어쩐지 불편했다.
외부 강사는 따로 교무실이 없기에 그는 별도로 준비된 강의실에서 나를 앉혀놓고 설명을 시작했다.
“미래에 큰 자산이 될 천재들을 관리하는 건 국가적으로도 큰 과제이기도 하지만 사실 개인적으로 천재성에 대해 관심이 많거든. 생물을 전공한다고 했으면 뇌과학 쪽도 어느 정도 알고 있지? 내가 주로 하는 연구는 교육으로 천재성을 키워낼 수 있느냐야.”
“천재는 타고나는 거 아닌가요? 교육으로 된다면 그건 천재가 아니라 영재인 것 같은데.”
천재는 특별하다. 왜냐하면 그건 타고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노력해서 천재가 될 수 있다면, 이미 그 순간부터 그건 천재가 아닌거다.
“아니지 아냐. 천재를 두고 이야기하는 건 사람마다 기준이 달라. 어떤 사람은 어려운 수식도 순식간에 머릿속에서 암산으로 풀어버린다거나 곡을 처음 듣고 바로 따라 연주할 수 있지.”
하지만 나는 그의 설명을 들을수록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천재라고? 나처럼 평범한 사람이?
난 그저 독한 사람일 뿐인데.
“그런 거로 치면 저보다는 곽진환이 더 맞지 않을까요? 걔 수학 천재거든요.”
“물론 그 애도 천재성이 보이긴 해. 근데 뭐랄까… 조금 걸리는 게 있달까. 그리고 내 기준에서 천재에 부합하는 사람은 너이기도 하고.”
“제가요?”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하자, 박성민이 말을 이었다.
“내 기준에서 천재의 기준은 두 개야. 첫째, 압도적인 기억력. 둘째, 기억한 걸 연결하는 능력.”
그는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이며 설명했다.
하지만 나는 저 두 가지에 해당되지 않았다. 압도적인 기억력은 전생의 기억이 있어서 그런 것이고, 기억한 것들을 연결하는 능력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마음 한켠에 자리 잡은 불안감.
‘지금 당장은 천재라 불려도 과연 졸업할 때도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나는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천재가 범재로 변해가는 과정을 지켜봤다. 어릴 적 암산 천재던 녀석들이 점차 둔해지고, 신동 소리를 듣던 사람들이 주변의 기대를 견디지 못해 파멸하는 모습을.
‘나는 천재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사람일 뿐이야.’
회귀한 순간부터 스스로 되뇌어왔다. 혹시라도 과거의 기억에 의존해 오만해질까 봐. 그래서 또 같은 미래를 겪게 될까 봐.
마음의 결단을 내린 나는 조심스럽게 거절 의사를 밝히려는데,
“아마 이번 연구에 참여하면 해외 유학을 갈 때 도움이 될 거야. 추천서도 써줄 거고.”
“…!”
추천서. 금성 장학생이 될 때도 다양한 연구 기관의 추천서가 있으면 가점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천재가 아닌데 천재인 척할 순 없어. 언젠간 다 들켜버릴 거야.’
내 것이 아닌 걸로 연기를 했다간 결국 이도저도 아니게 될 수 있었다. 오히려 추천서에 안 좋은 말이 쓰일 수도 있었고.
굳게 다짐한 표정을 본 박성민이 살짝 다급한 목소리로 말을 덧붙였다.
“아! 그리고 연구에 참여하면 연구 참여자 명목으로 소정의 참가비가 지급돼. 시간당 8천원이고…”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데 같은 연구원으로 참가하면!”
“네?”
“연구원보다는 보조원에 가깝긴 하지만 연구실에서 연구과제 관리, 보조해주면 주급제로 10씩 줄게.”
주급으로 10. 한 달에 4번이니까 총 40이었다.
2009년 당시 최저임금이 4천원이었던 걸 생각하면 엄청난 액수였다.
학생에게는 더 크게 느껴지는 금액이기도 하고. 하지만 1분 1초가 아까운 이 시기에 알바를 하는 것보단 공부하는 게 훨씬 이득이었다. 차라리 다른 장학재단을 알아보는 게 더 나을…
“그렇다고 공부하는데 무리를 주거나 그런 건 아니야. 잠깐 와서 몇 가지 테스트하고 뇌 MRI 한번 찍어주고 간단한 소감 말해주면 돼. 자료 같은 거 있으면 미리 체험한다고 생각하고 데이터 추출하는 법 배워두고. 길게 시간 안 끌어.”
박성민은 열심히 설득을 시작했다. 그는 솔직한 심정을 내비치며 다른 천재들을 구할 수도 있겠지만 학원을 다니지 않은 학생을 찾는 건 너무 힘들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기본적으로 미리 학습한 후에 시험을 치르다 보면 아무래도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으니까 말이지. 물론 네가 싫다면 이 이상 권유할 수는 없다만…”
하지만 내가 별 반응이 없자 박성민도 슬슬 마음을 정리한 듯했다.
“네가 공동 연구원으로 이름을 올린다면 분명 대학 가기도 쉬울 테고 말이야. 이래 보여도 꽤 좋은 연구소거든.”
박성민은 품 안에서 명함을 꺼내 내게 건넸다.
[Allen Institute of Brain Science, United States] [Senior Researcher Seongmin Park]‘…잠깐. 앨런이라면…?’
미국 앨런뇌과학연구소. 뇌과학을 전공하고 있다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세계적인 연구소였다. 전생의 내가 그토록 가고 싶어 했지만 가지 못했던, 그저 꿈으로만 남겨야 했던 그곳.
노벨의학상, 노벨 생리학상을 수상한 사람들 대부분이 이 연구소를 거쳐 갔다. 비영리조직으로 운영되지만 연구소를 향한 투자와 지원은 끊이지 않았다.
“지금은 잠깐 안식년 핑계로 한국에 와있긴 내년엔 다시 돌아갈 생각이니까-”
“할게요.”
“어?”
꿈의 연구소. 이곳에서 잠깐이라도 연구에 참여한 경력이 있다면 큰 스펙이 될 것이다. 그런데 심지어 공동 연구원으로 이름을 올려준다고?
금성 장학생을 위해서라도, 내 꿈을 위해서라도 이 기회는 절대 놓칠 수 없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박성민 책임 연구원님.”
그것이 설령 천재를 연기하는 게 되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