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122)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122화(122/221)
122. 자강두천 (2)
122. 자강두천 (2)
“…풀었다.”
적막한 방 안, 곽진환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앞에는 수십 번, 아니 수백 번을 고쳐 푼 듯한 수식들과 종이들이 놓여있었다.
그는 이제는 너무 많이 봐서 표지가 찢어진 책을 집어 들었다. 테이프로 간신히 붙여둔 표지 위에는 ‘정보 기하학’이라고 적혀있었다.
‘천재가 아니란 걸, 증명해 봐.’
“하, 진짜 미친 새끼.”
곽진환은 입꼬리가 절로 씰룩이는 걸 애써 눌렀다. 지금 당장이라도 김만덕 눈앞에 그가 풀이한 내용들을 내밀고 싶었다. 그 재수 없는 표정이 놀라는 걸 봐야 좀 통쾌할 것 같았다.
어릴 적, 피디가 시키는 대로, 어머니가 하라는 대로 말했던 것이 ‘암산 천재’라는 타이틀이 되어 곽진환의 꼬리표가 되어버렸다. 방송 조작은 내 의지가 아니었고 시간만 되돌릴 수 있다면 그런 쓰레기 같은 프로그램에 나가지도 않았을 터다.
‘이제 이게 진짜 마지막이다. 이것만 던져주면 더는 안 성가시게 굴겠지. 아니지, 보니까 이 연구가 나름 중요해 보이던데···. 이번엔 내가 협박해 봐?’
순식간에 갑을 위치가 바뀐 듯한 느낌에 곽진환은 고개를 숙이고 끅끅 웃었다. 안 그래도 수학이라는 분야에선 늘 갑이던 곽진환이었지만, 김만덕이 나타나고 난 뒤로는 을이 되어버렸다.
어딜 가도 천재 소리를 듣고, 분명 이상하게 푸는데 사람들은 그걸 보고 또 좋다고 꺅꺅대고···. 곽진환의 이미지 속 김만덕은 악마, 사람들을 현란한 말로 현혹시키는 악마에 가까웠다.
심지어 그 뒤로 그가 데이터 분석과 관련해 들고 갈 때마다 “진짜 천재네!”라든가, “이걸 벌써···?”라고 말하며 은근슬쩍 다른 과제를 던져줬다.
···절대 그깟 칭찬 한 번 받았다고 덥석 다른 과제를 받아온 건 아니다. 천재가 아닌 걸 증명하려면 못 풀어야 하는데 다 풀 수 있는 문제인 게 문제라고.
“…개학까지 일주일.”
일주일 뒤면 이제 많은 것이 달라질 것이다. 비록 김만덕이 최종 과제, 그러니까 ‘데이터 패턴 간의 종속성 분석’이라는 애매하고 모호한 문제를 던져놓고 갔지만 곽진환은 그걸 풀어냈다.
물론 이게 정답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애초에 그가 던져준 연구 노트에서는 게놈인지 개놈인지 기억도 안 나는 무슨 것에 대한 연구도 있었고, 애초에 김만덕이 관심을 두는 분야와 자신의 관심 분야는 극과 극이었으니까.
하지만 중요한 건 뭐가 됐든 간에 이걸 풀어냈다는 거고, 이제 남은 건 놀란 눈으로 ‘어···이것도 풀어냈다고? 천재였잖아!’라고 말하는 김만덕의 반응이었다.
‘…잠깐 이러면 내가 천재라고 증명한 게 되는 건가?’
순간 곽진환은 이 모든 게 김만덕의 계획이 아니었을까, 하는 무서운 추측이 들었지만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아무리 그 녀석이 영악한 놈이라고 해도 그 정도로 머리가 돌아가진 않을 거다.
···아마도.
그렇게 개학을 앞둔 일주일. 곽진환은 처음으로 침대에서 두 다리를 뻗고 잘 수 있었다. 개학하면 김만덕에게 던져줄 연구 노트를 책장에 가지런히 꽂아둔 채.
*
“얘들아, 만덕이가 이번에 유학을 갔다.”
학기 첫날. 담임은 들어오더니 아쉬운 목소리로 말했다. 담임의 말에 반 아이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뭐? 유학?”
“조기 졸업도 안 하고 그냥 이렇게 가버린다고?”
“쌤! 어디로 갔는지 아세요?”
새 학기 첫날이지만, 아이들은 친구 관계를 다시 만드는 것보다 여기에 없는 김만덕의 존재에 더 신경을 썼다. 라이벌을 넘어서 이제 학교의 자랑이나 다름없던 존재였는데 이렇게 말도 없이 떠나다니. 아이들이 진심으로 섭섭한 듯 한마디씩 내뱉었다.
담임 박민철은 미간을 좁히며 잠시 고민하더니, 어깨를 으쓱였다.
“개인정보라 알려줄 수는 없지만, ‘하’로 시작해서 ‘드’로 끝나는 학교에 진학했다.”
“하버드에 갔다고요?!”
“아니, 하버드 입학하려면 최저 조건이-”
학생들이 놀란 표정으로 박민철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다. 순식간에 아이들 사이에서 김만덕에 대한 평가가 한 단계 상승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이인성이 눈을 가늘게 뜬 채 옆 짝꿍을 향해 말했다.
“개인정보라면서 다 말하고 계시네. 이래도 되는 거?”
“…”
“아, 물론! 난 이미 알고 있었어. 난 김만덕의 가장 제일 친한 친구이니까! 하지만, 하지만···.”
이인성이 분한 듯 박민철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물론 목소리는 안 들릴 볼륨으로.
“내가 제일 먼저 말하고 싶었다고! 나도 ‘내 친구 하버드생’이라고 자랑하고 싶었다고! 나도, 나도 담임쌤보다 더 으스댈 수 있다고···!”
“…”
“아, 진짜 아이들의 관심! 저 호기심! 저 은근한 부러움! 저거 다 내가 받을 수 있는 거였는데에에에!”
이인성은 이상한 포인트에서 꽂혔는지 고개를 푹 숙이고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보고도 옆자리 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하버드? 유학?’
곽진환은 지금 자기가 무슨 말을 들었는지 이해하려고 애썼다.
아니, 지금 나한테는 풀어보라고 문제 던져놓고는···.
튀었어?
순간적으로 머리가 띵해지고 뒷목이 빳빳해지는 걸 느꼈다.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하버드로 달려가서 멱살이라도 잡고 싶은 마음이었다.
내가 이걸 푸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 곽진환은 이 과제를 넘겨받고 난 뒤로 마음 편히 쉬지도 못했다.
처음에는 혹시라도 못 풀어가면 녀석이 방송 조작한 걸 불어 버릴까봐, 그다음에는 막상 풀다보니까 조금 찝찝해서, 나중에는 그런 저런 이유는 이미 사라지고 문제밖에 안 보였다.
그렇게 곽진환의 머리가 실시간으로 뜨거워지고 있는 가운데, 조례가 끝났다. 그제야 아이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새로운 반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여러 적응 행동 중 가장 많이 보이는 것은···.
“그나저나 인사도 안 했네. 안녕? 너 나 알지?”
“…”
“난 너 알아. 암산 천재! 특별반!”
“…”
“그, 내 말 듣고 있는 거 맞지···?”
곽진환은 옆에서 굴하지 않고 말을 거는 이인성을 무시한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애초에 친구를 사귈 생각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친구를 사귀어봤자 그가 천재가 아니란 걸 들킬 위험만 생길 뿐이니까.
‘오히려 잘됐어. 해외로 가버렸으니 더 이상 협박당할 일도 없고. 이대로 조용히 살면 되겠지.’
굳이 미국까지 간 녀석이 조작을 폭로하겠다고 설치진 않을 거다. 김만덕에 대해 잘 모르는 곽진환이었지만, 그가 굳이 먼 타지에서 그럴 사람은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렇게 곽진환은 비로소 자유로워졌다고 생각하며 학교 일상을 만끽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일상은 오래가지 않았다.
어느덧 3월이 지나, 4월. 그리고 5월에 접어 들자 곽진환의 다크서클은 점점 짙어져 갔다. 안 그래도 애들이 어려워하는 존재였는데, 지금은 아예 말조차도 못 거는 분위기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곽진환의 머릿속에는 그런 건 안중에도 없었다.
‘…아카이브란 곳에 올려볼까.’
그의 머릿속엔 그가 한 연구 내용밖에 없었다. 아직도 그의 책상 한켠에 가지런히 꽂힌 채 펼쳐지지 못한 연구 노트. 그 노트가 눈에 아른거렸다.
많은 사람이 학자나 연구원들은 관심받는 걸 싫어할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리다.
대부분의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조용히 지내길 원하지만 자신이 발견한 내용까지 묻히는 건 원치 않는다.
연구는 자식이나 다름없으니까. 동네방네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곽진환도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 김만덕이 던져주던 문제하고는 차원이 다른 성취감이었다. 심지어 그가 한평생 풀어오던 수학 문제 중에서도 이보다 더 큰 성취감을 준 적은 없었다.
누군가 만들어 둔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애매하고 답조차 정해져 있지 않은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 상상 이상으로 짜릿했다.
게다가 곽진환이 한 연구는 다른 분야에서도 사용될 가능성이 높았다. 패턴 분석을 통한 종속성 연구는 비단 생물학뿐만 아니라 여러 곳에서 탐낼만한 주제였으니까.
그러나 이미 한차례 ‘암기 천재’라는 타이틀로 고통받았던 곽진환은 매스컴에 자신을 드러내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자신이 연구한 게 묻히길 원치도 않았다.
나는 유명해지고 싶진 않지만 내 연구는 유명해지고 싶다.
“하···.”
그렇게 괴로운 고뇌의 시간을 보내고 있던 중, 옆자리 녀석이 큼큼거리며 헛기침을 시작했다. 이런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던 관계로 곽진환은 가볍게 무시했다.
담임의 귀차니즘 덕분에 한 학기 동안 짝이 그대로였고, 그 말은 한 학기 동안 곽진환은 고통받고 있다는 뜻이었다.
“큼! 큼!”
씰룩거리는 입꼬리, 말 걸어달라는 신호. 누군가 물어보기만 한다면 뭔가 와다다 말을 꺼낼 것 같은 그런 느낌적인 느낌.
곽진환은 본능적으로 옆으로 피했다.
그러나 이인성은 그런 곽진환의 어깨를 꾹 누르며 말했다.
“어이, 짝꿍.”
“…손 떼라.”
“내가 말했나? 내 베스트 프렌드가 누구인지?”
안 궁금하다. 안 궁금해. 하지만 이인성에게 곽진환의 마음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실시간으로 일그러지고 있는 곽진환 앞에 신문을 내밀었다. 오늘 날짜인 신문 속에는···.
“…김만덕?”
“놉.”
이인성이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킹만덕.”
“줘 봐.”
곽진환은 천천히 기사를 읽었다. 기사 사진 속 김만덕의 표정은 영 아니꼬왔지만, 굵은 글씨로 적혀있는 기사 제목이 더 눈에 들어왔다.
[드디어 한국에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나? 줄기세포계의 1인자로 거듭난 천재 소년의 등장]곽진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천재? 개나 소나 다 천재네. 그의 눈이 빠르게 기사를 읽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줄기세포? 줄기세포를 연구한다는 이야기는 처음 듣는데.’
김만덕이랑 그다지 교류하지 않았던 곽진환은 그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읽으면 읽을수록 구겨지는 얼굴. 그 모습을 이인성은 뿌듯한 얼굴로 지켜보고 있었다.
“짜식, 사진빨을 영 못 받는단 말이야. 물론 나보다 못생기긴 했지만-”
“…”
그 순간, 곽진환의 행동이 멈췄다. 그는 마치 누가 전원이라도 끈 듯 미동도 없이 한 문장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줘.”
“응?”
“번호.”
“엉? 뭐야, 너도 알고보니 나랑 친해지고 싶었던-”
“너 말고.”
김만덕 전화번호. 곽진환이 뭔가를 꾹 참는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인성을 보지도 않고 기사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말했다.
그러나 이인성은 곤란한 목소리로 말했다.
“엄···그래도 전화번호를 알려주는 건 좀, 뭐랄까. 이제 걔도 아메리칸 스타일이 되어버려서 막 개인정보 이런 거에 엄청 민감한-”
“그럼 이메일이라도. 아니면 연락할 수 있는 거면 아무거나 다 좋으니까.”
꽤나 다급하게 말하는 곽진환의 모습에 이인성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이메일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김만덕 연구원은 앞으로 줄기세포가 해결해야하는 과제 중 하나로 ‘게놈 전체 연관 연구(GWAS)’를 꼽았다. 이는 유전적 변이체 사이의 관계를 탐색하고 유전자형 데이터와 연관성을 통계적으로 나타내는 것으로···] [이를 해결하는 날이 곧 과학계에 역사적 사건으로 남을 것이라 전망했다.]···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었다.
*
폭풍 같던 일상이 지나가고 나는 곽진환으로부터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내용은 두서없었지만 요약하면, ‘네가 준 문제 풀었음.’이었다.
나는 그 메일을 읽고도 한동안 이해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게 데이터 분석과 관련하여 유전자의 위치를 분석하는 건 전생에서도 내가 본격적인 연구에 뛰어들고 몇 년이 지나서야 겨우 시작된 분야였으니까.
심지어 그것도 컴퓨터, 그러니까 인공지능의 힘을 빌려서 가능했던 거였다.
순간적으로 ‘거짓말하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곽진환이 굳이 거짓말을 하려고 이메일을 보낸다? 그게 문제를 풀어낸 것보다 더 말이 안 되는 일일테니까.
곽진환이 보낸 이메일이 사실이라면 유전자를 분석하는 일이 한층 더 쉬워지고 정확해질 터. 그로 인해 특정 유전인자가 어디에 위치하는지, 그리고 서로 연관되어 있는 유전자는 무엇이 있는지를 확률적으로 알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게 의미하는 것은···.
‘만덕아, 그 연구는 안 된다고 했잖아. 그 유전자를 일일이 어떻게 다 분석하고 앉아있을래?’
‘유전자 편집은 너무 위험해요. 서로 연관되어 있는 걸 임의로 잘랐다간···.’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만하라고! 현실적인 연구 좀 해!’
전생 때 기술의 한계, 학문의 한계에 가로막혀 포기해야만 했던 연구. 결국 아무런 결과도 보지 못한 채 그만둬야 했던 그 연구가 현실의 벽 안으로 성큼 걸어들어왔고,
···곽진환에게 답장을 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