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126)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126화(126/221)
126. 학술제 (1)
126. 학술제 (1)
왁자지껄한 신입생 환영회 도중 나는 노먼 교수의 손에 이끌려 그의 연구실로 가게 되었다.
“줄기세포 포럼에서 한 건 했더군요.”
그의 책상 위에는 그 날을 담아둔 여러 신문 기사들이 놓여있었다. 또한 그 옆에는 실험쥐 대니에 대한 논문도 함께.
노먼은 인자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으라고 권했다. 안 그래도 기가 다 빠져가고 있던 중이었기에 나는 사양하지 않고 소파에 앉아 그를 바라봤다.
“괜히 환영회를 즐길 시간에 늙은이가 빼내온 건 아닌지 좀 걱정이 되는군요.”
“아닙니다. 안 그래도 마침 집에 가려고 하던 중이었기에···”
“집에?”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그를 바라봤다. 그러자 그는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천재들 중에는 남들과 어울리는 걸 안 좋아하는 사람도 많으니 말입니다.”
“그런 건 아닙니다만···”
“하지만 그건 알아두는 게 좋을거에요.”
노먼 교수가 손가락으로 그의 책장을 가리켰다. 빽빽하게 꽂혀져 있는 책 사이에는 오래된 하버드 교수 임명장이 놓여있었다.
임명장? 임명장을 왜 가리키는거지? 고개를 갸웃하려는 찰나, 그가 입을 열었다.
“이곳은 하버드이고, 곧 그 말은 당신 주변의 사람들은 모두 하버드대생이라는 뜻입니다.”
“그 말은···”
“인맥이라는 건 고루하고 진부한 것이지만 때로는 돈보다 더 막강한 것이니까요.”
노먼 교수의 말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게 그의 말은 내가 전생에서도 익히 경험했던 것 중 하나였으니까.
인맥으로 랩실에 들어가고, 인맥으로 취직 하는 일. 부당한 일이었다. 그런 일에서 이제는 벗어날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그 순간, 내 표정에서 잘못됨을 인지한 노먼 교수가 급하게 말을 이었다.
“오, 이런. 오해하지는 마세요. 인맥으로 이익을 취하라고 종용하는 게 아닙니다.”
“…그렇다면,”
“만덕은 지금 동양인이면서 나이가 어린 편이지요. 구체적인 집안 형편은 알 수 없지만 평범한 경제 환경일거라 생각합니다. 맞습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엄밀히 따지면 평범 그 이하. 가장 밑바닥에 해당되는 경제적 환경이지만···굳이 말할 필요는 없으니까.
나에 대한 설명을 끝낸 노먼이 커피 포트에 물을 올리며 말했다.
“인맥이라는 건 다른 의미로 나에 대한 설명이 더는 필요하지 않은 관계이기도 합니다. 스스로를 증명하지 않아도 그간의 관계로 이미 입증되는 관계인거죠.”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라…”
“만덕 학생도 알고 있겠지만, 우리 뇌는 한번 생각한 방향으로 계속 생각하게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걸 우리는 편견이라고 부르죠. 편견이 왜 생기는 지 압니까?”
딸칵. 찻잔이 내 앞에 놓여졌다. 따뜻한 쟈스민 차가 연구실 안에 퍼졌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덤덤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서입니다.”
“맞습니다. 한마디로 효율적으로 움직인다는 소리죠. 새로운 정보가 들어올 때마다 매번 새롭게 분석하고 평가를 내리면 우리 뇌는 아마 진즉에 터져버렸을지도 모릅니다.”
“…”
“게다가 당신은 이미 하버드내에서도 천재로 알려진 상황이죠.”
나는 말 없이 차를 마셨다. 노먼 교수가 할 말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기에.
“천재이지만 남들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미지는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협력을 끌어내기 힘듭니다.”
“…그렇다면.”
“만덕 학생의 꿈이 치매 치료라고 했지요. 그렇다면 그 꿈을 위해서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고 그 꿈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을 알아두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는 시기가 바로 지금, 여기. 하버드 입니다.
나는 노먼 교수의 말에 한동안 침묵했다. 그의 말에 동의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문득 떠오른 몇몇의 사람들 때문에.
‘만약 내가 이재성이나 김영재의 도움이 없었다면 아밀로잽에 대한 논문을 낼 수 있었을까?’
‘크리스 교수와 케빈이 없었다면? 대니의 실험이, 베니의 치료가 가능하기는 했을까?’
연구는 혼자서 할 수 없다. 발견은 혼자서 할 순 있어도 그걸 발전시키는 데는 여러사람의 힘이 필요하다.
나는 양 주먹을 꽉 쥐었다. 치매 치료라는 말도 안되는 거대한 벽을 넘기위해서는 혼자서는 불가능했다. 그렇기에 지금 내게 필요한 건···
팀. 함께 연구를 진행할 팀이 필요하다.
“그러니 이번 학술제 경험은 만덕 학생에게 매우 좋은 경험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예?”
“왜 이제와서 놀라는지요? 이미 학술제에 출품하기로 정한 것 아니었습니까?”
노먼 교수가 되레 놀란 목소리로 되물었다. 물론 그에게 과제를 공개적으로 발표하고 난 후에, 그 주제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연구라고 할 건 없지만 나름 건설적인 이야기가 오갔다.
하지만 학술제 출품은 입학 문제도 있고 그래서 유야무야 넘어간 줄 알았는데···나는 노먼 교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학술제는 다르게 말하면 자기 PR의 시간이기도 하니까요. 후후.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학술제 이야기를 좀 더 진행해볼까요?”
노먼 교수는 자연스럽게 학술제 이야기로 주제를 전환했다. 나는 기존에 하던 RNA 연구를 이야기하려다가 문득 최근 주고받았던 이메일을 떠올렸다.
“안그래도 RNA 연구와 관련해서 논의 드리고 싶었던 부분이 있었습니다.”
“만덕 학생이 이야기 하는거라면 뭐든 귀 기울여 들을 가치가 있죠.”
노먼 교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무엇이든 말해보라는 듯 열린 제스처를 취했다.
나는 곽진환과 나눴던 이메일을 그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수학 이야기라는 부분에서 그의 표정은 덤덤했지만, 점점 표정이 묘하게 바뀌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도 그럴게 이 내용을 제일 잘 써먹을 수 있는 사람은 그 일테니까.
“그러니까 지금 유전체 연관에 대한 힌트를 얻어냈다는 겁니까? 맙소사!”
“네. 정확히는 유전체 연관을 수학적으로 해석하고 예측할 수 있게 된거지만요.”
노먼 교수는 연신 감탄사를 남발했다. 그도 그럴게 이게 가능해진다면 수백만개에 이르는 유전적 변이들을 찾아 특정 질병이나 특성과 관련된 유전자를 찾아내는 게 가능해진다는 말이니까.
한마디로 줄기세포에 버금가는, 어쩌면 그 이상의 발견이 될 수도 있는 일.
노먼 교수는 이 역사적인 사건 앞에서 흥분에 빠져있었다. 그는 한차례 차를 물 마시듯 마시더니, 이윽고 조금 진정된 상태로 내게 물었다.
“이거 참, 매우 흥미롭군요. 그래요, 이와 관련된 연구는 언제부터 진행할 수 있겠습니까?”
“사실 이건 제 연구가 아닙니다.”
“그 말은?”
이 연구는 어디까지나 곽진환이 진행한 연구. 이 부분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하려면 곽진환이 필요했다. 이메일을 통해 어느정도 설명을 하긴 했지만, 모든걸 설명하기엔 한계가 있기도 하고.
“흐음···아쉽군요. 그럼 이 연구에 대해서는 더 이야기 할 수 없는건가요?”
“그건 아닐겁니다. 아마 누구보다 이 내용이 널리 알려지길 원하고 있을 사람이어서요.”
그게 아니면 나한테 따로 메일을 보내지도 않았겠지. 단지 곽진환은 매스컴에 타는 걸 다른 사람보다 극도로 싫어했다. 일종의 트라우마였다.
그렇기에 전생에 그는 엄청난 연구를 하고서도 익명으로 아카이브에 올리거나 나중에서야 공개를 하곤 했으니까.
‘이번 생엔 그렇게 안 둘테지만.’
물론 나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만큼 연구를 공개하지 않겠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연구는 어떻게든 계속 연구되고 또 여러 분야에 응용되어야만 했다.
단순히 여기서 그친다면 아무 소용이 없을테니까.
나는 벽에 걸린 캘린더를 바라보며 일정을 정리했다. 5월. 한국 고등학생들의 일정으로 치면, 이제 막 중간고사도 끝나고 한 숨 돌리는 시기. 그리고 2학년 학생들에게 있어선···
“조만간 볼 수 있을겁니다.”
수학여행을 앞 두고 있는 시기이기도 했다.
*
한국과고의 수학 여행은 조금 특별하다. 다른 학교가 국내로 여행을 가거나 해외로 가도 관광지 위주로 탐방을 하는 것과는 달랐다.
[안그래도 이인영네 반은 서부로 간다고 울상이던데.]“서부도 좋은데 왜. 스탠포드랑 UC 버클리 탐방하잖아.”
[진짜 몰라서 물어?]오랜만에 이인성과 전화통화를 했다. 수학여행으로 미국 대학 탐방을 오는 한국과고는 1, 2반은 동부 지역의 대학을 3, 4반은 서부 지역의 대학을 탐방하게 된다.
이번에 이인영과 다른 반이 된 이인성이었다. 그는 진심으로 해방되었다는 듯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
[어쨌든 이제 이 형이 몸소 하버드에 가실 예정이니 미리 길 닦아놓으란 말씀.]“길을 닦긴 무슨. 어차피 전에 한번 왔었잖아.”
[그때랑 지금이랑 다르잖아! 그리고 이인영이 옆에 있냐, 없냐가 얼마나 큰 차이인데!]이인성은 열심히 혈육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신나게 떠들던 이인성이 순간 멈칫하더니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아, 근데 혹시 그···곽진환한테 메일 받았음?]“응. 너가 알려줬구나?”
[하하하···그게 그니까 막 내가 네 개인정보 팔고 막 그런 놈은 아닌데-]이인성이 다급한 목소리로 해명했다. 뭐, 처음엔 이메일이 와 있길래 놀라긴 했다만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그도 그럴게 엄청난 내용이 담긴 이메일이었으니까.
오히려 이인성이 곽진환한테 안 알려줬다면···이 발견은 아마 수 년이 지나고서야 알게 되었을 수도 있겠지. 나는 열심히 전후 사정을 설명하고 있는 이인성의 말을 끊고 물었다.
“근데 이번에 수학여행은 몇박 며칠이야? 6박 8일?”
[원래 그랬는데 조금 늘어나서 8박 10일로 변경되었어. 마침 이번에 공휴일도 껴있고 그래서.]흐음, 나는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갸웃했다. 이번엔 8박 10일이구나. 하지만 기간이 늘어났다는 이야기를 들어도 별로 감흥이 없었다. 애초에 떠오르는 추억도 없었다.
그야 난 돈이 없어서 못 갔었으니까.
‘인당 400만원에 육박하는 경비를 감당할 수 있을리가.’
물론 사배자 전형으로 들어온 만큼 어느정도 지원은 되었다. 하지만 그게 전액을 지원해주는 건 아니었고, 애초에 반의 왕따였던 내가 굳이 어머니께 말해 돈을 내면서까지 미국에 갈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그 시간에 문제 한 문제 더 풀고 말지- 라는 생각으로 수학여행 동의서에 [불참]을 적어냈고, 그걸 본 담임은 말 없이 처리할 뿐이었다.
그렇게 나를 제외한 대부분의 학생들이 수학여행에 갔다왔고, 그들은 더욱 돈독해졌다.
‘…그랬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새삼 그때 그랬던 내가 지금은 하버드에 있다는 생각이 들자 오묘한 감정이 들었다. 전생과는 달라진 현재를 만끽하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게다가 존슨앤존슨 측에서도 장학생으로 선정해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으니···앞으로 돈 걱정할 일은 없겠지.’
줄기세포 치료에 완전히 꽂힌 존슨앤존슨의 CEO 윌튼은 ‘미래에 대한 투자’ 라는 명목으로 나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었다. 학비야 학교 측에서 자체 지원이 된다쳐도 부족할 것 없는 생활비까지. 이 집만 해도 그 지원의 연장선이었으니까.
그렇게 집 소파에 앉아 전에 박성민이 보내준 쿠키 상자를 뜯었다. 한번 맛있다고 했더니 그 뒤로도 종종 선물로 보내주곤 했다.
[사실 공휴일은 핑계고 교장쌤 입김이 크지. 이번에 너 줄기세포 가지고 뭐 한거 있잖아, 그거 보시더니 ‘이 나라의 미래는 학교 교실에만 있는게 아니다!’ 라면서 기간 늘리고 활동도 더 늘리셨어.]“그거랑 수학여행이랑 무슨 상관인데?”
[몰라, 어쨌든 너 때문이야. 아니지, 네 덕이야.]땡큐, 라고 말하는 이인성의 목소리가 가벼웠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고개를 갸웃했지만 뭐, 그건 그렇다치고.
어쨌든 지금 중요한 건 곽진환이 미국에 온다는 말이었다. 그 말은 그가 연구한 내용에 대해 좀 더 깊게 이야기할 시간이 있다는 것.
‘다행이야. 일정이 전생과 달라졌으면 내가 한국에 가야하나, 생각했었는데 말이지.’
그날 이후 나는 노먼 교수에게 곽진환에 대해 이야기했다. 노먼은 곽진환에게 높은 관심을 보였다. 물론 수학에 있어서는 그나 나나 그리 깊은 수준은 아니었지만 생물학자의 입장에서 곽진환의 연구는 몹시나 탐나는 것이었다.
수 천, 수 만개에 이르는 정보들 사이의 연관성을 수학적으로 해석하고 예측할 수 있다. 이 사실만으로도 수많은 연구자들이 그토록 간절히 원하던 일일테니까.
[근데 나 가서 좀 심심할 수도.]“엥? 왜?”
[내 짝은 안간대.]“너 짝이라면···곽진환이잖아.”
딴 애랑 놀아야지 뭐- 라고 가볍게 이야기하는 이인성이었지만, 그걸 듣는 나는 가볍지 않았다. 곽진환이 안 오면 이번 수학여행은 의미가 없는데?
불현듯 과거의 일이 떠올랐다. 모두가 미국에 가있는 동안 나홀로 등교했던 기억이.
‘자, 수학 여행 안 간 놈들은 따로 학교에서 수업해야한다.’
‘저 말고 또 있어요?’
‘가만보자···수학 여행 불참한다고 한 녀석이···’
그때 분명 나 혼자가 아니었다. 수학 여행에 안간 사람들을 빈 교실에 모아놓고 자습을 시켰는데, 그때 분명 출석부에 나를 제외한 한 명이 더 있었다. 물론 끝까지 안나타나긴 했지만.
나는 조용히 테이블을 톡톡 두들겼다. 곽진환이 안 온다, 그 이유는? 돈? 친구가 없어서?
둘 다일 확률이 크다. 인정하긴 싫지만 그와 나는 여러모로 닮은 점이 많았으니까. 나는 작게 한숨을 쉬며 다 먹은 쿠키상자를 정리했다.
‘뭐가 됐든 간에 오게 만들어야지.’
내가 가는 건 귀찮으니까. 귀찮은 걸 차치하고서도 그가 이곳에 오는 건 좋은 경험이 될 터였다. 뭐, 이것도 훗날 내 연구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자.
나는 이인성과 함께 대화를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대충 [걔는 날 인간으로도 안보는 것 같아.] 라든가 [맨날 수업시간에 자는데 전교권이라니까?] 등의 이야기.
그렇게 나는 몇가지 정보를 종합한 끝에 결론을 내렸다.
곽진환을 굴 밖으로 꺼내 미국이라는 큰 물에 오게하기 위해선 좀 더 계획을 세워야한다. 그냥 오라고 이야기해봤자 거들떠도 안 볼 녀석이다. 애초에 수학 말고는 별다른 관심도 반응도 없는 녀석이니까.
다른 방식으로 그의 관심을 끌 필요가 있었다.
당장이라도 미국에 달려오게 할 만한 파격적인 소식으로.
*
“어···진환아. 전에 수학여행 불참 동의서 냈던데, 특별한 이유가 있니?”
“시간 낭비하기 싫어서요.”
“음···시간 낭비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어차피 이 기간 동안 수학 여행에 안가도 학교에 나와야하니 말이다.”
담임인 박민철이 곤란하다는 듯 말했다. 그도 그럴게 교사 입장에선 잔류 학생을 지도하는 것도 일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학생이 원한다면야 더는 막을 수 없는 일이지만···박민철은 혹시라도 자신이 모르는 이유가 있는지 궁금해했다.
“그 기간동안 아플 예정이에요.”
“하하, 진환이는 한달 뒤에 아플 것도 예상하는구나···”
박민철이 식은땀을 닦으며 말했다. 그 모습을 곽진환은 별다른 대꾸없이 반응할 뿐이었다.
“혹시라도 경제적인 부분때문인거면-”
“그런 거 아닌데요.”
“…발전기금이 들어와서 괜찮다는 말을 하려던 거였는데. 그래, 알았다. 네가 가기 싫다면 어쩔 수 없는거지. 이만 가봐도 된다.”
완고한 곽진환의 태도에 결국 박민철이 두 손을 들었다. 곽진환은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고개만 까딱이더니 교무실 밖으로 나왔다.
애초에 수학여행 같은 거 갈 생각따위 없었다. 애초에 해외 대학 탐방을 뭐하러 한단 말인가? 탐방을 한다고 해서 여기 있는 학생 중 그 대학에 갈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문득 한 사람이 떠올랐다. 이미 하버드에서 연구를 하는 것도 모자라 사람들의 인정까지 받고 있는 녀석이.
곽진환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좁혔다. 김만덕과의 이메일이 어느 순간부터 끊긴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수신 확인을 보니 계속 읽고 있기는 한데···답이 없다. 답이.
다른 연락할 방도가 있으면 좋겠지만, 애초에 전화번호도 모르는 사이고. 연구실 번호야 어떻게든 알아낼 수 있겠지만, 그렇게 알아낸다고 한 들 별 달리 할 말이 없다. 끽해야 ‘왜 답장 안함?’ 정도니까.
‘…저녀석이라면 번호를 알고 있겠지만.’
곽진환은 교실문을 열자 반갑게 아는체 하는 남학생을 바라봤다. 매일 지겹지도 않은지 옆에서 말을 걸어오는 이인성이었다.
곽진환은 무반응으로 자리에 앉아 엎드렸다. 그러나 이인성은 옆에서 계속 떠들었다. 그런데 늘 하던 시덥잖은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 만덕이 하버드에서 엄청 잘 나가나봐.”
“…”
“이번에 학술제 발표하는데, 또 뭐 발표한다고 하더라고?”
“…”
이메일 답장 안하는게 학술제 때문인가-라는 생각이 미쳤지만, 곽진환은 생각을 떨쳐냈다. 김만덕이 학술제에 뭘 제출하든, 논문을 쓰든 이제 그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나는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 곽진환의 머릿속을 메웠다. 더는 그를 괴롭힐 게 없었다. 비록 그 내용을 어디에 올린 건 아니지만···
[이건 진짜 역사적인 발견이야. 한 획을 그은거나 마찬가지라고.]글에서 느껴지는 부러움, 동경의 감정. 그것만으로도 곽진환은 이미 만족한 상황이었다. 재수없는 놈에게 인정같은 거 별로 받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그래도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다.
내 연구가 값지다는 증거였으니까.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밤낮으로 고민하며 연구한 것들. 그 시간들이 의미있었다는 증거.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그러나 이후에 들려오는 말에 곽진환은 생각을 멈췄다.
“게···게놈? 게놈 뭐 연구했다는데? 수학으로?”
“…?”
“그래서 그거 관련해서 발표할거라고 하나봐. 마침 우리가 하버드 가는 날이랑 겹친다고-”
“…누구 마음대로?”
“엉?”
누구 마음대로 내 자식을 발표해?
곽진환이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