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127)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127화(127/221)
127. 학술제 (2)
127. 학술제 (2)
그렇게 하버드에서의 일정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아직 정식으로 수업이 시작된 건 아니었지만 앞으로 들을 수업에 대한 학사 상담, 기숙사 배정을 위한 간단한 기본 조사 등 여러가지를 하다보니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나갔다.
그런 와중에도 매일 노먼 교수와 이야기하는 시간은 이제 정기 행사처럼 자리잡고 있었다.
“RNA는 크게 3가지 종류로 구분됩니다.”
이미 전생에 들어 알고 있는 내용이었지만, 나는 묵묵히 노먼의 설명을 들었다. RNA로 노벨상을 수상한 사람에게 듣는 건 또 다른 거니까.
‘사실 학술제보다는 줄기세포 연구쪽에 더 관심이 있지만···’
캘리포니아 줄기세포 연구소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내부 사정으로 인해 본격적으로 연구 참여하는데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는 말. 적어도 정식 입학 이후에 참여하게 될 것 같다는 말이었다.
물론 2개를 동시에 진행하는 것보다 한쪽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긴거니, 오히려 다행이긴 했다만··· 내심 줄기세포 쪽을 기대하고 있던 것도 사실이었다.
“mRNA는 메신저 RNA의 줄임말이지요. 즉 DNA에 저장된 유전 정보를 복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편합니다.”
···그래, 이렇게 RNA에 대해 다시 복습하는 것도 언젠가 도움이 되겠지. 노먼 교수는 연구실 한쪽 벽면에 있는 화이트 보드에다가 필기를 했다. 날림으로 쓴 필기체였지만 알아보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그리고 rRNA. 아미노산 사이의 펩타이드 결합 형성을 촉진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tRNA는···”
그는 A까지 쓰고 난 뒤 잠시 멈춰있었다. 그리곤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제가 연구하고 있는 분야이기한 이 RNA로 말할 것 같으면 미스터리한 녀석이지요.”
“미스터리하다면···”
“단백질 합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건 밝혀졌지만 그것 외에는 알려진 게 없으니 말이지요.”
노먼 교수는 나를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는 “혹시 궁금한 게 있나요?”라며 물었다.
많은 사람들은 이미 과학이 더이상 할 일이 없다고, 이미 많은 것들이 과학적으로 밝혀졌다고 이야기하지만 그건 잘 모르는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아직 세상은 미지의 것들로 가득 차 있었고, 실제로 우린 치매가 일어나는 이유도, 세포가 갑작스럽게 사멸되는 이유도 그 무엇도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었다.
단지 추측과 가설들만 넘쳐날 뿐이었다.
나는 그의 필기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질문을 던졌다.
“여러 RNA중에 tRNA를 연구 주제로 선정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흠, 특별한 이유라···”
내 질문에 노먼 교수는 빙그레 웃어보이더니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야 아직 이 분야로 노벨상을 받은 학자가 없으니 말입니다.”
“에···”
“농담입니다! 그런 경멸에 찬 시선은 실로 오랜만에 받아보는군요! 허허!”
순간적이었지만 나도 모르게 으, 하는 표정을 지어버렸다. 그도 그럴 게 과학자 중에 상 받으려고 연구한다는 사람치고 오래 연구하는 사람은 못 봤기에.
다행히 노먼 교수는 내 오해를 풀어줄 요량인지, 그간 있었던 일들을 묵묵히 풀어내기 시작했다.
“tRNA의 경우 실제 단백질 합성에 관여한다는 점이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왔지요. 특정 아미노산을 리보솜에 전달하는 녀석이니까요. 그리고 그 말은 이 tRNA의 기작을 알아낼 수 있다면 단백질 합성을 억제할 수도, 촉진할 수도 있다는 말이기도 하고요.”
“억제···.”
그 순간 한쪽 머리에 오랜 시간동안 막혀있던 뭔가가 뚫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말이라면 특정 단백질이 형성되는 걸 의도적으로 억제할 수 있다는 말인가요?”
“물론 아직까지 실험된 건 없지만,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tRNA의 역할은 단순히 단백질 형성에 영향을 준다고만 알고 있었는데···.”
전생에 노먼 교수에 대한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가 tRNA와 관련해서 노벨상을 받을 수 있었던 건 그가 tRNA가 암 발생에 미치는 영향과 관련한 논문으로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전생에도 그에 대한 이야기만 들었던 나는 그가 어떤 연구를 진행해 왔는지 그 구체적인 과정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나는 미간을 좁히며 그를 바라봤다.
“만약 교수님, tRNA의 역할이 특정 단백질 형성 유도라면···. 그 단백질 합성을 막는 방법은 tRNA를 멈추는 방법뿐인가요?”
“음···아직 정확하게 밝혀진 건 없지만 단순히 tRNA를 멈춘다고 해서 단백질 형성이 멈추는 일은 없을 겁니다. 유기체는 복잡하고 다른 요소들과도 얽혀있으니까요.”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는 지금으로선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이후 그가 노벨상을 받게 된 연구, 암 발병에 tRNA이 미치는 영향을 발표한 걸 생각하면 이 이후의 연구도 진행했을 터.
‘…내가 10년만 있다가 과거로 회귀했다면 아마 많은 게 달라졌을지도.’
새삼 빨리 죽어버린 것에 대해 아쉬운 감정이 밀려 들어왔다. 내가 죽고 난 이후에도 연구는 계속되었으니까.
동시에 온몸에 전율이 흐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만약 곽진환이 특정 유전인자, 그러니까 치매를 일으키는 유전인자를 발견해 내고, 이를 RNA 수준에서 조작할 수 있다면? 김영재의 유전자 편집 기술이 더해져 좀 더 정밀한 부분으로 유전자를 편집하고 조작할 수 있게 된다면?
···치매를 치료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괜찮나요? 안색이 많이 안 좋아 보입니다.”
“…괜찮습니다.”
나도 모르게 호흡이 가빠진 걸까. 노먼 교수가 다급한 표정으로 내게 다가왔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는 치매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기존의 베타-아밀로이드를 분해하는 것까지는 가능해졌어. 아밀로잽을 이용하면 되니까. 하지만 본질적으로 베타-아밀로이드를 생성 자체를 억제해낼 순 없었는데···.’
물론 과학의 날 전시 때 발표했던 것처럼,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을 만들어 내는 특정 유전인자를 제거하는 건 가능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예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 자체가 형성되는 걸 막았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수많은 유전인자 중에 하나. 그것도 전생의 정보를 이용하여 제거한, 어쩌면 운에 의존한 실험.
그러나 이번 곽진환의 연구와 이번 tRNA에 대한 연구가 합쳐진다면 그 효과는 실로 엄청날 것이었다.
‘물론 이 부분에 대해서도 한계점은 분명하게 있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유전자를 모조리 변형시키거나 편집해 낼 수는 없는 법이니까.’
하지만 분명히 의의는 있었다. 생성 자체를 억제해 낼 수 있다면 그 이후에 할 일은 그 범위를 확장해 나가면 되는 거였으니까. 설령 이 모든 연구가 나중에 가서 쓸모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적어도 경증의 치매 환자들에게는 효과가 있을 게 분명했다. 이제 막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들이 축적되는 환자들에게 말이다.
“교수님, 혹시 tRNA와 관련한 실험은 언제부터 실행할 수 있을까요?”
“실험 자체는 어려울 게 없습니다. 줄기세포 연구에 비하면 그리 큰 규모의 실험이 아닐뿐더러 장치도 비교적 간단한 편이니까요. 이제 학술제에 본격적으로 참여할 마음이 생겼나요?”
웃으며 묻는 노먼 교수의 말에 나는 활짝 웃으며 답했다.
“저는 처음부터 학술제에 나가고 싶었습니다, 교수님.”
캘리포니아 줄기세포 연구는 조금 미뤄두기로 했다. 어차피 인간은 멀티태스킹이 안 되는 동물이니까 말이다.
*
이인성은 4시간째 꼼짝없이 비행기에 갇혀있는 중이었다. 자유분방한 그가 갇혀있다고 표현한 이유는 단 하나, 옆에 앉은 남학생 때문이었다.
‘…무, 무서워···’
살면서 이인영을 제외하곤 무서워한 적이 없던 이인성이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옆자리에 앉은 남학생은 강렬한 살기를 내뿜으면서 “죽인다···진짜 죽인다···.”라고 읊조리고 있었으니까.
이인성은 울상을 하고 창밖만 바라볼 뿐이었다. 이런 건 수학여행이 아니야···!
곽진환의 태도가 이상해진 건 딱 한 달 전부터였다. 정확히는 김만덕의 지령을 받고 그대로 전했을 뿐인데···.
‘만약 곽진환 만나면 이 말을 꼭 전해줘.’
하버드에서 열리는 학술제에서 게놈 연관프로젝트를 발표하게 됐다고.
하지만 그 말을 들은 뒤로 곽진환은 180도 달라졌다. 심지어 ‘김만덕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마주칠 때마다 물었다. 안 된다고 해도 하루가 지나면 리셋되었는지 또 물어봤다.
“죽인다···만나면 없애버린다···.”
여전히 옆에서 악귀에 들린 것처럼 중얼거리는 곽진환을 보며 이인성은 애써 창밖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물론 곽진환이 죽이려는 인물이 누군지 짐작이 가긴 했지만···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는지는 차마 물어볼 엄두가 안 났다.
김만덕한테 전화로 물어봐도, “흐음, 그래?” 정도로만 끝났고.
앞으로 9시간이나 더 가야 하는 비행. 이인성은 지치지도 않고 저주를 중얼거리고 있는 곽진환을 한번 흘끗 봤다가 안대를 내렸다.
눈을 뜨면 부디 미국에 도착해 있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
“오늘이야? 친구들 온다는 날이?”
“응. 아마 2시쯤에 하버드로 올 것 같대.”
“친구들? 전에 왔던 친구들이야?”
미야와 로버트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음, 한 명은 전에 왔던 애고. 한 명은 이번이 처음.”
“와, 엄청 친한가 보네. 이렇게 만나러 올 줄 정도면?”
“음···한 명은 엄청 친한데, 다른 한 명은···.”
나는 미간을 좁히며 곽진환과의 관계를 떠올렸다. 친구라고 해도 되나? 그렇게 고뇌하고 있자, 미야가 명쾌한 답을 내려줬다.
“인터넷에서 봤는데 친구인지 아닌지는 간단하게 정할 수 있대.”
“어떻게?”
“오랜만에 만나도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으면 친구래.”
“그럼 친구 아니야.”
단번에 정답이 나왔다. 역시 인터넷은 모르는 게 없다. 인터넷 만세.
그러나 미야와 내 대화를 들은 로버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을 이었다.
“이래서 아싸들은 안된다니까. 애초에 미야 넌 오랜만에 만날 친구도 없잖아.”
“로버트. 누군가에겐 사실이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걸 기억해.”
“인싸인 내가 정의해 보자면 말이지···.”
로버트가 눈을 지그시 감았고, 미야는 짜증 난다는 눈으로 로버트를 노려봤다.
흐음, 소리를 내며 턱을 매만지던 그가 긴 침묵 끝에 답을 내놨다.
“만약 어느 날 그 친구가 간절한 표정으로 부탁하는 거야.”
“…부탁?”
“만약 그에게 시간이 하루밖에 안 남았고···.”
로버트가 평소와 다르게 진지한 태도로 내게 말했다. 방금까지 경멸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던 미야도 달라진 분위기를 느낀 듯 우리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는 노트북을 가리키며 말했다.
“대신 과제를 해줄 수 있냐-고 물었을 때 해줄 수 있다면-”
“안 해줄 거야.”
“아니 적어도 끝까지 듣고-”
“절대 안 해.”
그럼 그렇지. 미야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읽고 있던 책을 다시 폈다. 나는 문득 그녀가 읽고 있는 [정보 기하학] 책을 바라봤다.
“미야, 그거 읽을만해?”
“으음···응. 나쁘지 않아.”
그녀는 책을 이리저리 넘기며 가볍게 대꾸했다. 그 순간 궁금증이 들었다.
“근데 궁금한 게 있는데, 수학자들한테 수학은 어떤 의미야?”
“으음···?”
물론 곽진환에 대해서 아는 게 없지만, 적어도 그에게 수학이 어떤 의미인지는 알고 가는 게 좋을 듯 싶었다. 물론 도발하려는 목적으로 이인성한테 거짓 정보를 흘리긴 했다만···. 곽진환이 얼마나 분노한 상태인지는 가늠이 안 되었으니까.
간간이 이인성을 통해서 “너 곽진환 만나면 무조건 도망쳐.”라든가, “만약 살인사건이 일어난다면 난 네 편이야···.”라며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었지만, 이인성이 워낙 장난기가 많은 애이니 그러려니 했다.
“그러니까 내 말은, 만약에 미야 네가 연구하던 내용을 누가 대신 발표해 버리겠대. 그러면 어떤 감정이 들어?”
“만덕.”
미야의 목소리가 바뀌었다. 그녀는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만약 누군가 네가 힘들게 연구해서 만들어 낸 치매 치료제를 훔쳐 간다면 어떤 기분일 거 같아?”
“아···.”
“너가 느끼는 감정의 정확히 1,024배 정도로 화가 날 거야.”
그게 수학자들이 느끼는 감정이야, 라고 이야기하는 미야를 보며 나는 생각했다.
곽진환을 보면 일단 피해야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