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128)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128화(128/221)
128. 학술제 (3)
128. 학술제 (3)
“오는데 힘들진 않았어?”
“…”
“무슨 학교는 하루종일 일정을 돌린다냐, 그게 수학여행이야? 수학훈련이지!”
“…”
“…일단 손에 든 것부터 내려놓고 이야기할까?”
곽진환과의 재회는 담백했다. 금방이라도 달려들 줄 알았는데 생각외로 곽진환은 차분했다. 손에 흉기 비스무리하게 두꺼운 책을 들고 있는 걸 제외하면.
심지어 모서리로 찍기 딱 좋게 쥐고 있다고···!
하하, 웃으며 식은땀을 흘리자 곽진환이 작게 한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까딱했다.
“발표하든지 말든지.”
“엉?”
“네가 발표를 하든, 말든 상관 없다고.”
“…에?”
예상과 다른 말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했다. 그도 그럴게 논문 발표란 연구자에게 있어 역사적인 일. 물론 그 과정에서 사람들의 이의제기나 찔려오는 칼들을 다 디펜스해야 하고 지도 교수로부터 몇번의 리젝을 감수해야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문을 발표한다는 건 연구자에게 있어 매우 뜻깊은 일이었다.
하지만 곽진환은 그 발표를 나에게 넘기고 있었다.
“…왜?”
“발표하고 싶지 않으니까.”
불친절한 설명이었지만, 그의 태도로 봤을 때 납득되는 설명이기도 했다.
곽진환은 어려서부터 매스컴에 시달리며 살아왔다. 암산 천재라는 이름으로 시작해서, 나중에는 천재 교육법과 관련해서 책까지 나올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스스로 진짜 천재가 아니라고 생각해 온 곽진환에게 있어 그 모든 타이틀은 그를 옥죄는 족쇄나 다름없었다. 평생 남들의 기대에 맞춰 살아가게 만드는 족쇄.
나는 물끄러미 그의 손에 들려있는 정보 기하학 책을 바라봤다. 분명 전에 봤을 때는 새 책이나 다름없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너덜너덜하다. 자세히보니 모서리에 맞아도 별로 안 아플정도로.
그래서 한번 맞아보기로 했다.
“하버드대에서는 매년 7월쯤에 학술제가 열려. 얘네는 새 학기 시작이 9월이라서 7월이면 한 학기 끝이거든.”
“…그래서?”
“한 달 뒤에 학술제에 이 내용으로 발표하는건 무리야. 올림피아드 준비도 해야하고, 또···솔직히 이거 완전히 이해 못했으니까.”
난 사실만 말했다. 사실 곽진환이 알아냈다고 하는 그 내용을 온전히 이해하는 사람은 몇 없을거다. 아니, 이 하버드 내에서도 교수급이 아니고서야 이해하는 사람이 없을거라 확신했다.
‘으음···그러니까 너 말은 아예 관계 없어보이는 두 독립 데이터간의 관계를 분석하고 그에 따른 종속성을 확률적으로 나타내는 모델을 발견했다는 소리야?’
하버드 내에서도 수학 천재라고 암암리에 불리고 있는 미야도 그 개념을 명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듯 했으니까. 그러니 이 부분을 내가 설명한다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곽진환은 미간을 좁혔다. 그리고는 짜증난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어쩌라고? 그러게 누가 그렇게 대책없이 저지르래? 꼬우면 지금이라도 못하겠다고 하든가.”
“나도 그러고 싶은데 이미 접수까지 끝난 상황이어서. 어찌저찌 내용물은 제출했지만 설명할 자신은 없어.”
거짓말이다. 아직 접수 시작도 안했다.
애초에 곽진환이 연구한 걸 발표할 생각도 없었다.
“…내 알바 아니니까 앞에 나가서 개쪽을 당하든, 하버드 퇴학을 당하든, 알아서 해.”
“여기서 나 퇴학 당하면 중졸인데···”
“…”
“어쩔 수 없지. 그럼 일단 김민주 작가님한테 전화걸어서···”
“!”
휴대전화를 꺼내는 시늉을 하자 소스라치게 놀라는 곽진환. 이게 뭐하는 짓거리냐는 눈이었다. 하지만 나는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였다.
미안하다. 나도 누굴 협박하는 건 취향이 아니다만···
“뭐하냐?”
“아니, 분명 그때 내가 말했던 조건은 ‘네가 성실히 풀지 않으면 다 불어버린다’는 거였으니까.”
“성실히 푼 거랑 발표랑 뭔 상관인데?”
“네가 진짜 성실히 풀었으면 사람들 앞에서 발표도 할 수 있겠지. 솔직히 너도 네가 푼게 뭔지 모르겠으니까 앞에 못 나서겠다는 거 아니야?”
“뭔···”
궤변이다. 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가불기이기도 했다.
곽진환의 표정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하게 둘 순 없었다.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이 전제가 이 녀석한테도 적용되는 거라면, 분명 이후에 김민주 작가의 ‘양심선언’은 일어날거고 곽진환은 아무런 반박도 못한 채 사라질테니까.
‘돈과 관심에 눈 먼 부모와 영악한 아이’의 프레임을 뒤집어 쓴 채로.
물론 곽진환이 그 방송에서 조작을 주도한 건지, 조작을 당한건지는 나로서는 알 도리가 없다. 내가 알고 있는 미래의 정보는 김민주 작가가 말한 것과 이후에 곽진환이 발표한 수학적 발견이 전부였으니까.
김민주 작가의 발언은 곽진환이 천재가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있었고,
그가 발표했던 내용은 그가 천재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어느 것을 믿을지는 굳이 두 개를 비교하지 않고도 알 수 있는 내용이었다.
“진짜···개짜증나는 새끼···”
“진짜 이번에 마지막으로 할게. 어때 각서라도 쓸까? 원하면 혈서도 써줄게!”
“닥치르···”
어금니를 꽉 깨물고 있는 곽진환. 이제 나는 할 도리를 다 했다. 저 책의 모서리에 찍혀 잠깐동안 의식을 잃어도 여한이 없-
“만덕쓰!”
“…”
그때 저 멀리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이인성과 최한별이었다. 둘은 여름이라 그런지 가벼운 옷차림을 입었지만 멀리서도 한눈에 시선을 끄는 외모였다.
둘이 나란히 걸어오는 모습이 영 어색해보이긴 했지만, 나름 적정거리를 유지하며 걸어오고 있는 중이었다. 짜식들, 좋을때다.
“뭐야. 왜 만나자마자 싱글벙글 웃고 있는데.”
“아니, 한창때라는 생각이 들어서.”
“…?”
내 말에 최한별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인성은 옆에서 좋다고 큼큼대며 헛기침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무슨 뜻인지 눈치 챈 최한별이 빠르게 상황을 정리했다.
“…나는 반장이고 이인성은 부반장이야.”
“아하.”
“선생님이 곽진환 찾아오라고 하셔서 돌아다니던 중이었고.”
“아하.”
최한별이 이렇게 빨리 말하는 건 처음이다. 심지어 늘 남발하던 뜸도 안들이고 거침없이 해명했다.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얘네 수학여행으로 여기 온 거였지. 나는 시계를 바라봤다. 꽤 시간이 흐른 상태였다.
“그럼 오늘 일정은 어떻게 되는데?”
“이제 MIT 갔다가 숙소로.”
“음···숙소때 밖으로 나오는 건 안되겠지?”
“돼! 당연히 되지!”
“…안돼.”
이인성과 최한별의 답이 극명하게 갈렸다. 물론 누가 정답을 말하고 있는지는 알겠지만···이인성은 굴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생각해봐. 미국이라고? 자유의 도시, 밤의 도시인 이곳을 계속 숙소에서만 지낸다? 엄청 손해일 걸?”
“…미국은 밤에 치안이 좋은 편이 아니야. 더군다나 가정통신문에도 적혀있었잖아. 개별 행동 금지라고.”
그리고 반장, 부반장은 매 시간 인원파악도 해야 해. 최한별의 목소리 톤에는 변화가 없었다. 일정한 어조로 이인성을 사실로 조목조목 납득시키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에 설득되지 않는게 이인성이었다.
“아냐, 내가 미국에 몇 번 와봤는데 생각보다 안전했다니까? 위험할 일 없어! 그리고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것도 개별행동이잖아!”
“…지금은 특수한 상황이니까-”
“더군다나 다른데 가는 것도 아니고 만덕쓰 하우스에 있을건데 뭐!”
“…만덕쓰 하우스?”
“난 허락해준 적 없는데.”
“집주인 없이 하는 홈파티! 호우!”
정신나간 녀석이라는 생각은 늘 하고 있었지만, 미국이라는 특수한 환경 때문일까 아니면 뭘 잘못 먹은 걸까. 이인성이 억지 아닌 억지를 부리고 있었다.
물론 녀석들을 집으로 초대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지만···괜히 녀석들한테 불똥 튀게 하고 싶은 마음은 없으니까.
“…집 주소가 어딘데?”
“어?”
그때, 절대 마음을 돌리지 않을 것 같던 최한별이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 모습을 본 이인성이 양 주먹을 쥐고 마치 축구선수가 세레모니를 하듯 기뻐했다. 곽진환은 이 상황이 그저 시끄럽고 불편한지 한숨만 쉬고 있는 상황이었고.
나는 떨떠름한 목소리로 주소를 말했고, 최한별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뭐야! 우리 호텔 바로 옆이잖아!”
“그래도 안되는 건 안되는, 아. 전화 왔다.”
최한별도 이인성의 템포에 점점 휘말리는 걸까, 보기드물게 당황한 그녀는 핸드폰을 꺼냈다. 보아하니 담임과 통화인 것 같았다.
나는 그런 둘을 바라보다가 곽진환을 바라봤다. 그는 경멸과 혐오와 멸시···어쨌든 내게 부정적인 감정을 띤 채로 나를 바라봤다.
“그럼 발표 잘 부탁할게.”
“한다고 안했다.”
“아, 그래도 학술제에 올리는 건 하버드 관계자만 가능하니까, 내 이름이 들어가긴 해야할거야.”
“한다고 안했다고.”
“그래도 걱정마. 내 이름만 홀라당 써서 올리는 양심 없는 짓은 안할테니까!”
나는 유쾌하게 녀석의 어깨를 툭툭 쳤다. 곽진환이 분명 “개X끼···”라고 중얼거리는 것 같았지만, 유쾌하게 넘기기로 했다.
이건 분명 녀석에게도 도움이 될테니까.
그렇게 시끌벅적한 대화가 이어졌고, “있다가 봐!” 라고 외치는 이인성에게 인사를 하며 멀어져가는 녀석들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수학여행이라···’
전생에도, 그리고 지금도 수학여행을 가본 적은 없다. 물론 작년에 김성진 교수의 연구실을 갔던 것도 수학여행으로 치면 수학여행이겠지만···
친구들과 밤늦게까지 놀고, 같이 이런저런 추억을 쌓는 것. 그 시절에는 아무런 쓸모도 없다고 생각했던 시간이었는데···
그때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InSeong] [대박. 이거 공짜래! 데이터만 있으면 보낼 수 있다는데?] [InYoung] [뭐야. 왜 맘대로 초대하고 지X이야.] [InSeong] [이 방에 만덕이도 이씀 ㅎ]핸드폰 진동이 계속 울렸다. 비록 실제로 듣는 건 아니지만 들리는 것 같은 생생함이었다. 채팅창 멤버를 보니 최한별도 포함되어 있었다. 물론 한마디도 안하고 있긴 하지만.
이인성은 시덥잖은 채팅을 보내며 채팅창을 도배하다시피 했지만, 나는 그저 씩 웃으며 답장했다.
[InSeong] [한국은 이런 앱 언제 나오냐. 나도 맨날 문자 보내고 알 확인하는 거 그만하고 싶다고!!] [Mandeok] [아마 내년에 나올 걸?] [InSeong] [진짜? 진짜로? 진심이야? 믿어도 돼?] [Mandeok] [감.]내 말에 다시 또 불타오르는 채팅창. 유사과학이다 뭐다 하는 내용으로 나를 비난하는 내용이 다수였지만, 나는 알림을 잠시 껐다.
미국의 여름은 좀 더 빨리 오는 듯 했다.
*
“진짜 혈서로 써···?”
“빨리.”
“캬하핰, 쟤, 쟤 겁에 질린 거 봐, 하핰!”
친구의 공포를 보고 웃는 걸 보니 이인성은 친구가 아닌게 분명하다. 오늘부로 넌 내 친구 리스트에서 제외다. 그렇게 진지하게 손 수 쓴 각서를 들이미는 곽진환.
이인성이야 뭐, 어떤 일이 있어도 집으로 올 거라 예상했지만 곽진환은 의외였다. 빵끗 웃으며 “헬로!” 라고 외치는 이인성 뒤에서 목석처럼 서있었으니까.
[을(김만덕)은 더이상 갑(곽진환)에게 방송과 관련하여 협박하지 않는다. 또한 을은 갑에게···]나는 곽진환이 내민 각서를 빤히 보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근데 왜 내가 을이야···? 엄연히 따지면 내가 너한테 제안하는거니까-”
“제안이 아니라 협박이겠지.”
“너희는 무슨 고등학생밖에 안된 애들이 갑을을 따지고 앉았냐. 하여간 요즘 애들 무섭다니까-”
이인성은 마치 시트콤을 구경하듯이 우리 대화를 지켜보고 있었다.
뭐, 어차피 이 일을 마지막으로 곽진환하고는 더 엮일 일은 없을테니까. 애초에 내가 그를 이렇게 몰아세운 것도 그의 연구를 위해서였지 딱히 곽진환 갱생을 목표로 둔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이 녀석은 갱생이 안된다. 아예 삐뚤어져버려서 손 쓸 수도 없다고.
나는 각서를 들이미는 녀석을 바라보다가 펜을 들었다.
“분명 혈서로-”
“싸인 하는거 아니야. 조항 추가하려는거야.”
“추가?”
고개를 갸웃하는 그에게 나는 웃으며 각서를 들이밀었다.
[갑은 을에게 연구와 관련된 모든 내용을 설명한다.] [이때 추가적인 설명이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을은 갑에게 추가 지도를 요청할 수 있다.] [기한은 학술제 발표 전날까지로 정한다.]“나도 이 연구가 꼭 필요해져서 말이야.”
연구를 위해서 혈서쯤이야 뭐. 천번도 넘게 쓸 수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