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129)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129화(129/221)
129. 학술제 (4)
129. 학술제 (4)
다행인 점이 있다면 여름방학이 시작되고 학술제까지 시간이 남아있다는 것이었다. 그래봤자 1주일이 채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그 기간동안 곽진환한테서 뽑아 먹을 수 있는 건 죄다 뽑아먹을 작정이었다.
그래야 내 연구에 진전이 생길 테니까.
곽진환은 살짝 맛이 간 내 눈빛을 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비행기 값은? 숙박비는? 그걸 낼 돈은 있고?”
“비행기 값은 충분하고 숙박이야 이 집에서 지내면 되니까. 어려울 거 없네.”
“말은 쉽지.”
곽진환은 틱틱대는 목소리로 대꾸했지만 보아하니 영 싫은 건 아닌 눈치였다. 그도 그럴 게 여긴 미국이다. 일주일 숙박에다 비행기 값만 해도 몇백은 기본인.
곽진환의 집안 사정을 정확히는 몰랐지만, 전생의 정보가 여전하다면 그다지 유복한 집안은 아니었을 거다. 아이를 앞에 내세우면서까지 책 장사를 했으니 뭐···. 오히려 곽진환이 소년 가장급이었겠지.
그리고 녀석은 모르고 있겠지만, 이인성이 간간이 보고해 준 바에 따르면 미국의 생활에 흥미를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특히 자기 일 아니면 관여하지 않는 ‘개인주의’ 성향에 매우 만족한 것 같더라나 뭐라나.
“그럼 내가 뭘하면 되는데?”
“어려울 건 없어. 사실 네가 보내준 이메일을 통해서 어느 정도 이해는 했으니까.”
곽진환이 보내준 이메일은 불친절하고 또 두서없었지만, 중요 개념을 중심으로 이해하는 데 있어선 큰 어려움이 없었다. 더군다나 녀석이 연구하는 학문은 수학이었으니, 말보다는 수식 위주로 정리된 게 많았고.
“지금부터 할 일이 뭘 지 내 연구를 듣고 맞춰 봐.”
“굳이 빙빙 돌려서 말하지 말고-”
자동적으로 반발하는 곽진환을 조용히 시키기 위해 나는 각서 종이를 톡톡 두드렸다. 차마 혈서로까진 못 썼지만 성의를 봐서 지장은 찍어줬다.
각서를 한번 바라보던 곽진환이 결국 질린다는 듯이 고개를 까딱했다. 설명해 보라는 뜻이었다.
“인간의 몸속에는 DNA라고 불리는 염기쌍들이 존재해. 이건 너도 생명과학 시간에 들어서 알고 있지?”
“어.”
나는 빈 종이 위에다가 DNA와 관련된 내용을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아마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이렇게 필기를 하면서 설명하는 게 녀석에게 좀 더 편할 테니까.
인간의 DNA는 약 30억 쌍, 그러니 개수로 치면 약 60억 개이다. 사실 이 60억 개라는 말도 안 되는 DNA 정보를 분석하는 건 15년의 세월 끝에 2003년에 완료되었다.
하지만 언제나 예상치 못한 변수를 만들어 내는 게 곧 생명체.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말처럼 유전자는 다양한 돌연변이 현상들이 일어났다. 그 중에 하나가 연관이었다.
“단순히 DNA에 있는 정보를 안다고 해서 질병이 발생하는 원인을 규명하는 건 한계가 있어. 예를 들어 당뇨병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서 A라는 유전자가 발견되었다고 해서 꼭 그 유전자만이 당뇨병을 일으키는 단일 요인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는 법이니까.”
“당연한 소리 아니야? 유전자 하나 때문에 병이 일어날 리가 없잖아.”
“근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게, 유전자 하나 때문에 병이 일어나는 경우도 많아.”
정확히는 하나의 유전자에서 돌연변이가 발생해 일어나는 병이었다. 예를 들어 5번 염색체 일부가 결손되는 경우, 신체적 장애와 낮은 지능을 보이는 고양이 울음 증후군(Cri du chat syndrome)을 보였다.
비단 유전자가 없어지는 결손뿐만 아니라, 동일한 게 하나 더 생기는 중복, 그 밖에도 삽입이나 역위 등 돌연변이의 종류는 다양했고 그로 인한 질병의 개수도 많았다.
“…그러니까 네가 하고 싶은 말은 유전자 하나로 모든 걸 결정할 수 있다는 거야 없다는 거야?”
“만약 수십 년 후에 컴퓨터가 발달하고 인간을 뛰어넘는 인공지능이 나타난다면 알 수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 내가 알고 싶은 건 그런 게 아니야.”
종이 위에 한 단어를 적었다.
“…치매?”
“내가 궁금한 건 치매의 원인이 되는 단백질을 억제할 수 있느냐, 를 알고 싶은 거니까.”
“…?”
내 말에 곽진환의 표정이 한 차례 더 미묘하게 바뀌었다. 그래도 처음 듣던 때처럼 마냥 반항적인 모습은 아니었고, 지금은 어느 정도 흥미를 보이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때 옆에서 묵묵히 듣고 있던 이인성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런데 네가 지금까지 한 말이 맞다면 치매의 원인이 되는 단백질도 하나로 정할 수 없는 거 아니야? 질병의 원인을 하나의 유전자로 정의 내릴 수 없다며.”
“맞아. 지금 학계에서는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과 타우 단백질을 주 원인으로 삼고 있지만 사실 이것도 가설 중 하나일 뿐 명확하게 밝혀졌다고 보긴 어려워.”
많은 연구원이 밤낮을 희생하며 연구에 매달리고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이렇다 할 성과는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이인성과 곽진환을 바라봤다.
나 역시도 지금 내가 하려고 하는 일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 안다. 맨땅에 헤딩하는 것이나 다름없고, 여기에 또 몇 년을, 어쩌면 몇십 년을 갈아야할 지 감이 안 온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다.
“우선 내가 생각하는 방향은 이래. 치매를 일으키는 유전인자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이상, 적어도 치매 환자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단백질을 제거하는 방향으로 진행하는 거지.”
“공통적으로 발견된다는 게 아까 저 두 개? 베타인지 뭔가랑 타우?”
“맞아. 지금까지 연구에 의하면 두 단백질은 뇌 안에 축적이 되고 일정이상 축적된 단백질은 신경세포를 파괴한다고 보고되었어.”
치매라는 분야에 대해선 아예 모르는 것이나 다름 없는 둘이었다. 베타-아밀로이드인지, 타우인지 그들에게 있어선 아리송한 단어에 불과했지만 둘은 진지한 표정으로 임했다.
뇌에 축적되는 단백질 형성을 억제한다. 그게 첫 단추였다.
“그런데 이미 쌓여버린 단백질은 어떻게 해? 그건 배출할 수 있는 거야?”
“응. 일단 본격적인 임상 단계에 들어선 건 아니지만···아밀로잽을 이용하면 가능할 것 같아.”
“아밀로잽? 뭔가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아카이브.”
고개를 갸웃거리던 이인성이 곽진환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듣고 박수를 쳤다. 머리 위에 순식간에 느낌표를 띄운 이인성.
“맞아! 아카이브에 네가 올렸던 논문 내용! 그거 아밀로잽 맞지?”
“응.”
“대박, 그게 그렇게 이어지는 거야?”
“정확히는 혈뇌장벽을 통과시킨다는 수준이긴 한데···일단 큰 방향은 그래.”
아밀로잽에 대한 연구는 이재성이 이어서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정확히 얼마만큼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아마 학교생활이랑 병행하다 보면 연구에 집중하기가 어렵겠지. 게다가 일반고인 만큼 과학 특기자 전형으로 학교 가기도 힘들 거고.’
과고 학생들의 경우 이런 내용들이 일종의 스펙이 되어 학교에 진학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이재성이 있는 고등학교에서는 보통 내신과 수능 위주로 수업을 나간다고 들었다.
하지만 걱정이 되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게 녀석은 전생에 사람들을 치매 증상을 지연시키는 화학 물질을 개발했었으니까.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는 명제가 여기서도 일어날 거란 강한 확신이 들었다.
애초에 그 녀석은 걱정 안 해도 알아서 잘할 녀석이기도 하고.
“…하지만 네가 말하는 부분에는 오류가 있어.”
“뭐? 진짜?! 난 지금 만덕이가 이야기하는 거 다 완벽해 보이는데?!”
“네 말대로 단백질 형성을 억제할 수 있고, 이미 축적된 단백질을 없앴다고 쳐. 하지만 손상된 뇌세포는? 뇌세포는 다시 복구가 안 된다고 배웠는데?”
곽진환이 불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이인성도 수업 때 열심히 들었는지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다. 손상된 뇌세포는 복구가 안 된다. 그렇기에 식물인간이나 뇌사 상태가 있는 거고.
하지만 이번에 먼저 눈치를 챈 건 이인성이었다.
“줄기세포!”
“…?”
“줄기세포 맞지! 줄기세포계의 1인자로 거듭난 천재 소년!”
···기사 제목을 육성으로 들으니 뒷목이 뜨거워지는 것 같다. 처음으로 저 기자를 작성한 사람이 누군지 알고 싶어졌다. 이렇게 글자만으로도 수치심을 줄 수 있다는 건 엄청난 능력이니까···.
그러나 곽진환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하지만 네가 한 건 운동세포를 복구해 낸 거잖아? 뇌에다가 운동세포라도 심을 생각이야?”
“그건 좀 그로테스크한데···.”
“신문에는 신경세포에 대한 말은 하나도 없었어. 게다가 그 개도 결국 다시 다리를 절었다며? 그럼 완전한 치료라고 볼 수는 없지 않나?”
“완전한 치료라···. 그러게.”
갑자기 순순히 나오자 곽진환이 오히려 몸을 뒤로 뺐다. 방심하면 안 될 것 같다는 표정으로 꽤나 진지하게. 하지만 옆에서 이인성은 여전히 미간을 좁히고 있었다.
곽진환의 말처럼 베니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리를 다시 절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예정된 수순이었다. 루게릭병은 운동세포만을 골라서 파괴하는 병. 아무리 운동세포를 다시 만들어 낸다고 해도 그걸 파괴하는 원인을 해결해 내지 못하면 다시 다리를 절 수밖에 없었다.
“치매 치료도 완전하진 못할 거야.”
“야, 너는 왜 애 기를 죽이고 그래. 그래도 열심히 연구하고 있는-”
“-지금은 말이야.”
“?”
머리 위로 물음표를 띄우는 이인성과 더 말해보라는 듯이 고개를 까딱이는 곽진환이었다. 둘의 반응은 사뭇 달랐지만 내가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지금 이 둘을 납득시키지 못한다면, 앞으로의 연구는 그 누구에게도 납득시킬 수 없을 테니까.
실제로 베니의 상태를 발표하던 줄기세포 포럼에서도 무수히 많은 의심과 질문을 받았었다. 그만큼 새로운 분야를 시작하는 건 많은 사람에게 환영보다는 배척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아직 이 분야에 대해 알려진 건 전무한 상태니까.
심지어 내가 있었던 저 미래에서도.
나는 둘을 앞에 두고 차분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지금의 과학 기술로는 불가능한 부분들을 설명했고, 줄기세포가 어느 수준에 위치하는지도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서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연구가 들어왔다는 것과 이름은 말할 수 없지만 다른 회사들에서도 투자를 하려는 움직임이 보인다-까지. 내가 말할 수 있는 부분까지는 최대한 말했다.
이 이야기를 모두 들은 곽진환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지금까지 보이던 고압적이고 반항적인 모습이 아니라 그냥 아무런 반응도 없이 앉아있었다.
그리고 특별반에서 꽤 오랫동안 그가 문제 푸는 걸 봐왔던 나로서는 이 행동이 뭘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곽진환은 지금 고민하고 있다.
정확히 뭘 고민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성격상 귀찮거나 귀찮아질 일이라면 처음부터 커트했을 게 뻔하다. 그러니까 지금 녀석은···귀찮아질 걸 알면서도 고민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끼익, 곽진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득 시계를 보니 자정을 훨씬 넘긴 상황이었다.
“한 가지만 분명히 기억해 둬라.”
“뭔데?”
“네가 하라고 해서 하는 게 절대 아니란 거.”
“내가 시킨 걸 한 적이 있긴 있었어?”
···개 짜증 나는 새끼. 곽진환은 끝까지 악담을 퍼붓고 밖으로 나갔다. 이인성이 그 모습을 보더니 “엥?” 거리며 나를 바라봤다.
“그냥 저렇게 보내도 돼? 뭐 해야 하는지 안 알려줬잖아.”
“안 알려줘도 잘할 녀석이라서.”
“킹만덕···대체 어디까지 내다본 것입니까···!”
이인성은 나를 보더니 감탄하는 목소리로 장난스레 박수를 쳤다. 그리고 문득 시계를 보더니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왜? 무슨일이야?”
“부재중이···48건인데?”
“뭐? 누구한테 온 건데?”
“그, 그게 담임한테···?”
순간 등 뒤로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나 역시도 휴대폰 알림을 꺼둔 상태였기에 서둘러 확인했다.
화면 위로 떠오르는 부재중 전화 알림.
39건.
“담임쌤한테 말하고 온 거 아니었어···?”
“전혀···.”
“아, 아니! 그걸 말 안 하고 오면 어떡해! 더군다나 미국에서 애 둘 사라졌다고 하면-!”
“아니 말하면 당연히 안 된다고 할 거 아니야! 그러니까 말 안 했지! 생각해 봐! 담임 성격에 보내 주겠냐?!”
“그러면 나한테는 어떻게 알고 전화하신 건데? 너랑 곽진환이 아무 말 안 하고 나온 거라면···.”
그때, 단체 메신저 진동이 울렸다.
[Hanbyul] […미안.]···어쩐지 내일은 좀 시끄러운 하루가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