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13)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13화(13/221)
13. 수행평가 (1)
13. 수행평가 (1)
슬슬 학기가 시작된 지 2주 정도가 지났다. 한창 날을 세우던 학생들도 벌써부터 시험 모드에 들어간 녀석들도 있었고, 저마다 수행평가다 R&E다, 하며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나 역시도 금성 장학생으로 선발되기 위해서라도 성적은 필수로 챙겨야 하는 부분이었다.
‘본격적으로 연구에 참여하는 건 중간고사 끝나고 하도록 하자. 괜히 너한테 부담을 주고 싶진 않거든.’
박성민은 내 상황을 충분히 배려해주었다.
대한민국의 입시생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이런 부분에서는 꽤나 유용했다.
어딜 가나 배려해주는 게 기본이었으니까. 적어도 학교 내에서는 말이다.
“아, 수학하기 싫다.”
“수학 누가 만들었냐… 과거로 가면 수학자들부터 없애버릴 테다.”
점심 먹고 남은 시간, 나는 등나무 아래에 앉아 약간의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이인성과 이인영도 나무늘보마냥 나무 벤치에 늘어져 있었다.
몇몇 학생들이 손에 영단어 책을 쥐고 우리를 별종 보듯이 지나갔다. 시험을 앞두고 이러고 있는 게 신기한 듯했다.
“너희는 공부 안 해도 돼?”
“아직 한 달도 더 남았는데 왜 해?”
과고 학생이면 한 달 전부터 공부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태연한 모습에 놀라며 이인영을 바라봤다. 이인영은 눈이 마주치자 살짝 몸을 뒤로 빼며 대답했다.
“점심시간까지 공부하고 싶진 않아. 괜히 눈에 띄고 싶지도 않고.”
“근데 여기는 공부하는 애들이 다수라 오히려 공부 안 하는 게 눈에 띄는 것 같은데.”
“때려 쳐, 때려 쳐. 어차피 미리 공부해봤자 괜히 마음만 편해져서 공부 더 안 해.”
이인성이 말도 안 되는 논리를 펼치기 시작했다. 나는 밀크쉐이크 맛 아이스크림을 쪽쪽 마시며 들었다.
“생각해봐. 옛날부터 인간은 위기의 순간에 초인적인 힘을 끌어내는 법이야. 시험이 코앞인데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상태다? 그 순간 위기 상황으로 인식된 뇌는 효율을 극한으로 끌어낸다는 말이지.”
이인성의 ‘시험 벼락치기’ 이론은 나름 설득력이 있었다. 실제로 뇌는 위기 상황에 생존을 위해 놀라운 능력을 발휘한다. 스트레스 상태에서 뇌는 주변 환경에 대한 집중력을 높일뿐더러 신체에는 스트레스 상황에서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도록 되어있으니까.
나는 전생의 기억을 더듬어 쌍둥이들의 성적을 떠올렸다.
물리 천재 이인성.
화학 천재 이인영.
그들이 각 분야에서 천재라고 불리는 가장 큰 이유는 1등을 한 것이 가장 컸지만….
“너희 수학 괜찮은 거 맞지?”
다른 과목은 그럭저럭 잘하는 편이었어도, 수학만큼은 처참했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들은 보통 두루두루 평균치가 고르다. 편파적이지 않다. 그러나 이인영, 이인성 쌍둥이 같은 경우에는 극과 극을 달리는 등급이 존재했다. 예를 들면 물리와 수학, 화학과 수학처럼.
“설마 꼴등하겠냐!”
“…그래도 나름 자습시간이랑 주말엔 공부하고 있으니까.”
앞으로 받게 될 성적표의 상태를 모른 채 둘은 태연했다. 지금까지 중학교 때 하듯 벼락치기 공부를 했다가는 괴수들 사이에서 살아남지 못할 터였다.
‘그래도 나름 대학은 다 잘 갔으니 상관없나.’
쌍둥이들과 전생에 큰 인연이 없어 자세한 내막은 알지 못했지만, 나름 대학은 잘 갔었다. 이인영은 특기인 화학을 살려 대학에서 모셔갔고,
이인성은 최한별한테 반한 뒤로 공부에 매진, 그 결과 같은 의대에 합격하는 지경에 이른다.
‘사랑의 힘이란 거 엄청나네.’
아직은 최한별한테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 같지만 조만간 각성할 테니까 큰 걱정은 안 되었다. 어쩌면 알아서 대학을 잘 가는 둘보다 내 상황이 더 중요했다.
‘전교 1등.’
그 외의 선택지는 없다. 날고 기는 경쟁자들에게서 두각을 보이기 위해서라면 2년 내내 전교 1등, 그것도 전과목 1등급으로 확고하게 드러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라면 넘어야만 하는 벽이 있었다.
“어? 최한별 아니냐?”
바로 최한별. 생각하기 무섭게 그녀는 운동장 그늘 쪽에 있다가 학교 안으로 들어가는 중이었다. 멀리서도 한눈에 느껴지는 비율과 아우라는 언제봐도 고등학생의 것이 아니었다.
“쟤 이번에 전교 1등 했었다던데. 근데 전과목 1등은 아니라나 봐.”
“그러겠지. 수학 1등이 지금 우리 앞에 계시잖아.”
“화학도 1등했는데.”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인영이 도끼눈을 하고 나를 노려봤다. 다른 건 몰라도 화학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다른 사람처럼 변하는 게 놀리는 재미가 있었다.
“흠.”
투닥거리는 나와 이인영을 보더니 이인성이 눈을 가늘게 떴다.
“최한별도 같은 팀에 넣을까?”
“응?”
“화학 수행평가해야 하잖아. 전에 말했던 팀 평가.”
김영환이 말한 수행평가가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대부분의 학생은 이미 조를 짠 상태.
“우리 인원 다 찬 거 아니었냐? 3인 1조라매.”
“얘 버리자. 얘 빼고 최한별 넣는 게 훨씬 더 이득임.”
“뒤질라고.”
이인영이 이인성에게 헤드락을 걸었다. 장난처럼 보이지만 진심이었다. 기술이 제대로 들어가서 이인성의 얼굴이 빨개지고 있었으니까.
“안 돼. 이미 우리는 같은 팀이잖아.”
전생에는 없었던 나의 팀. 고작 수행평가팀에 불과했지만 먼저 손 내밀어 준 소중한 인연들이었다. 나는 이 우정을 오래도록 이어가고 싶었다.
내 말에 이인영이 헤드락을 풀었다. 이인성이 켁켁거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인영은 나랑 눈을 맞추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그래서 수행평가 주제는 생각해봤어?”
“안 그래도 그거 관련해서 오늘 이야기해보려고 했어.”
첫 수행평가는 실험 설계였다.
화학 수업의 경우 블럭타임으로 총 100분의 시간이 주어진다. 1차시 수업 때는 50분 동안 실험 진행 및 보고서 작성, 나머지 2차시 때는 보고서 마무리 및 발표.
실험 설계가 미리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심리적으로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는 과제였다.
그렇기에 많은 학생이 학원에서 배포하는 실험 설계 자료 및 결과를 그대로 가지고 왔고, 오차 없는 완벽한 결괏값을 바탕으로 그래프 제작 후 발표를 진행했다.
“생각 안 바뀐거지?”
이인영이 나를 보며 물었다. 다른 학생들과 달리 학원 족보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내 생각을 물어본 것이었다.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본 둘은 작게 한숨을 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팀장님이 하자는 대로 해야지 뭐.”
“하여간 고집은.”
그렇게 말하는 둘의 모습이 마냥 불평처럼 느껴지진 않았다. 오히려 믿음에서 오는 투정정도의 느낌이었다.
나는 든든한 조원들을 바라보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브리핑, 시작해볼게.”
*
박은지는 명예 대치동 주민이다. 왜냐고?
집에 있던 시간보다 그곳에 있던 시간이 더 많았으니까.
박은지의 모친은 자녀 교육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
마음 같아서는 학교도 강남에 있는 8학군에 보내려 했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무산되었고, 그래서 나온 차선책이 사교육이었다.
‘은지야. 차라리 그런 빡센 여중에 가서 내신 못 챙길 바에 남녀공학 가서 1등하는 게 나아.’
박은지의 모친은 늘 간단하게 말했다.
용의 꼬리가 되는 것보다 뱀의 머리가 되라고.
하지만 그건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2등을 했다고? 그런 애들이랑 경쟁을 했는데도 1등을 못 했다는 거니?’
‘너한테 쏟는 학원비가 얼만 줄 아니? 엄마 월급 전부야. 전부!’
맞벌이이던 부모님은 외동딸인 박은지에게 모든 것을 투자하고 있었다. 가족여행은 못가더라도 영어 캠프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보낼 정도로.
그렇게 어렵게 어렵게 해서 들어온 한국 과고.
중학교 학창시절을 학원가에 헌납하면서 얻어낸 합격장. 이곳에 합격한 날, 박은지는 비로소 어머니의 자랑이 되었다.
‘그러니까 절대 실수하면 안 돼.’
과고에 입학한 후 처음으로 치르는 수행평가. 내신에 반영되는 만큼 최강의 드림팀을 꾸려야만 했다. 그리고 그 드림팀은 개개인의 능력보다는 학원의 능력에 좌우되었다.
‘실험 설계 수행평가를 한다고? 학원에 와서 미리 실험기구 연습해봐라. 요즘은 관찰평가다 뭐다해서 실험기구 만지는 것도 다 평가한다니까.’
‘산·염기가 주제라면… 관련 주제 100선 정리된 거 뽑아줄 테니까 여기서 하나 고르렴. 웬만한 건 다 있을 거다.’
적당히 과학고등학교에 걸맞은 수준이면서 누군가가 개입했다고는 볼 수 없는 주제들. 심지어 눈앞에서 직접 실험을 하니 학원에서 미리 배워왔다고는 생각 못 할 터였다.
‘괜히 내 생각대로 했다가 망칠바에 완벽한 걸 베끼는 게 나아.’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다. 이번 수행 평가를 위해 완벽에 완벽을 기했다. 실험 과정을 몇 번이나 반복해봤고 결괏값들도 암기했다. 그래프도 포스트잇에 붙여놓고 달달 외웠다.
화학실로 가니 조원들이 모여있었다. 다 같은 학원을 다니는 친구들이자 경쟁자들이었다.
“은지야! 여기!”
“응! 고마워.”
조원들이 손을 흔들었다. 박은지는 밝은 척 대했다.
‘팀 평가지만 개인 평가도 빼놓을 수 없어. 결국 그 안에서도 성적은 갈릴 테니까.’
박은지에게 친구란 잠재적 경쟁자였다. 시험이란 걸 처음으로 치던 그날부터 박은지는 친구와 적이 분간이 안 되기 시작했다. 웃고 있는 이 모습이 시험이 끝나고서도 유지가 될지 알 수 없었다.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문 뒤에서 들려왔다. 문이 열리자 고양이 눈매가 인상적인 여학생이 들어왔다. 동시에 반의 남학생들이 살짝 시선을 멈췄다.
이인영이었다.
같은 학원. 화학 1등. 다른 과목은 별 볼 일 없는 것 같지만 화학에서만큼은 압도적 실력 차이를 보이는 탓에 학원에서도 늘 관심의 대상이었다. 이쁜 얼굴도 한몫했고.
‘와! 인성이도 한국 과고에 붙었다고? 대박. 너희 쌍둥이들은 진짜 차원이 다르네.’
‘한 명은 물리 천재에 다른 한 명은 화학 천재라니… 하핫! 학원 현수막 크게 걸어야겠는데요?’
같은 결과여도 다른 대우. 박은지의 마음에 무언가 싹텄다. 그러나 같이 한국과고 준비반에서 한국과고 배치고사반으로 옮겨졌고, 나름 대화도 나누게 되었다.
‘인영아, 너 화학 어떻게 공부하길래 그렇게 잘하는 거야?’
‘인성이도 물리 잘한다며? 혹시 둘이 따로 과외받아? 나도 껴도 돼?’
‘이 문제집으로 공부하는구나… 나도 가는 길에 사가야겠다.’
이런 대화들뿐이었지만.
보고 배운다.
모르면 물어보고 배운다.
어떻게든 비법을 알아내 이긴다.
박은지에게는 당연한 사고방식이었다.
‘넌 나보면 할 이야기가 그거밖에 없냐?’
‘어?’
‘그렇게 살면 안 피곤해? 하, 답답해.’
그날로 둘의 사이는 멀어졌다.
그날 일을 떠올리자 박은지는 자기도 모르게 이를 꽉 물었다.
‘안 피곤하냐고? 피곤해. 나라고 안 답답하겠냐고. 하지만 시답잖은 대화보다 이게 훨씬 가치 있는 대화잖아?’
‘너는 천재니까 이런 내 마음은 모르겠지. 지 잘난 맛에 사는 거 나도 질린다고.’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했지만, 마음의 문이 닫혔다. 닫힌 문 안으로는 열등감, 수치, 질투심 등. 진득하고 더러운 감정들이 나날이 깊어져만 갔다.
“자, 지금부터 수행평가를 시작한다. 전에도 말했지만 실험 주제의 참신함 여부는 평가에 들어가지 않는다. 형평성의 문제가 있어서 말이야. 이 실험에서 주로 평가할 내용은 크게 3가지다.”
화학 교사 김영환이 빔프로젝터를 켰다. 그러자 굵은 글씨로 3가지 평가 기준이 나와 있었다.
“첫째, 가설 설정과 실험 설계의 관계성을 본다. 주장하고 싶은 내용이 실험을 통해 입증될 수 있는지를 본다. 둘째, 실험을 통한 결괏값을 정리하고 이를 보고서로 잘 나타냈는지를 본다. 마지막으로 시간 안에 다 완수할 수 있는지를 보도록 하겠다.”
설명을 마친 김영환은 시계를 바라봤다. 이미 쉬는 시간에 다 모인 상태였기에 이제 곧 있으면 종이 칠 터였다.
“조에서 한 명씩 나와서 필요한 실험 재료들 챙겨가고 종 치는 대로 시작하도록.”
그 말에 학생들이 나왔다. 실험기구는 테이블마다 준비된 상태였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산·염기와 관련된 다양한 재료들이 사전에 요구된 대로 준비되어 있었다.
박은지 팀의 주제는 ‘천연 산과 염기 추출: 과일, 야채 또는 식물로부터 산과 염기를 추출 및 분석.’
그래서 실험 재료로 요청했던 건 딸기와 양파. 그런데 딸기 상태가 이상했다.
‘너무 무르잖아?’
너무 무른 과일은 실험에서 산성이 더 강하다고 과학 기사에서 본 기억이 있었다. 마음 한켠에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냐. 괜찮을 거야. 실험값이 얼마가 나오든 일단 암기했던 대로 하자. 중요한 건 실험값이 아니라 결괏값이니까.’
완벽한 데이터를 위한 수십 번의 예행연습. 그 모든 건 이런 일을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설령 이상한 결괏값이 나오더라도 당황하지 않도록.
그렇게 마음을 먹는 순간, 종이 울렸다.
“다들 실험 시작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