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131)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131화(131/221)
131. 학술제 (6)
131. 학술제 (6)
최한별은 미간을 좁히며 핸드폰을 바라봤다. 이제 한국에서는 사용할 수 없는 어플이었지만, 그래도 대화 기록은 남아있었다.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생물 올림피아드는 꼭 출전할거니까.]김만덕이 생물학을 좋아한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다. 그 수준이 광적이란 것도.
처음에는 공부를 잘하는 애라고 생각했다. 늘 전교 1등을 해오던 그녀를 가볍게 제친 그였으니까. 그렇기에 자신이 조금만 더 노력한다면, 적어도 김만덕보다 더 노력한다면 그를 이길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점점 김만덕을 지켜볼 수록 그녀는 어렴풋이 느끼게 되었다. 이건 노력으로 승부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고.
벽. 김만덕과 자신 사이에는 뛰어넘을 수 없는 벽이 있었다. 그 생각은 이번 수학여행을 통해서 더욱 단단해졌다.
“아니, 우리랑 동갑인데 하버드에 입학하다니…걘 진짜 레벨이 달라. 레벨이.”
“그걸 이제 알았냐? 애초에 전교 1등에 전국 1등까지 휩쓴 애야. 어떻게 우리랑 같겠냐?”
“원래 우리 학교만의 아이돌이었는데 너무 유명해져버렸어···돌아와 만덕킹···”
하버드 일정이 끝나고 나서도 아이들은 계속 김만덕 이야기를 꺼냈다. 심지어 수학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도 애들의 주 관심사는 김만덕이 뭘 했고, 그게 엄청난 거라더라- 하는 이야기로 가득했다.
그렇게 아직까지 수학 여행의 설렘이 남아있는 가운데, 담임 박민철이 출석부를 옆구리에 낀 채로 반으로 들어왔다.
“자, 이제 수학 여행은 끝났겠다 이제 너희에겐 뭐가 남았지?”
“잊을 수 없는 학창시절의 추억과 낭만이 남았습니다!”
“헛소리 하지 말고. 정답은 기말고사다. 다들 오늘부터 빡세게 공부하도록.”
으아아- 학생들이 새된 비명을 질렀다. 물론 그 중 제일 절망하는 사람은 되도 않는 낭만 드립을 쳤다가 빠꾸먹은 이인성이었고.
그렇게 휴대폰을 걷고, 기말고사까지 D-DAY를 칠판에 적고나니 반 분위기는 더욱 가라앉았다. 박민철은 그제야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반 밖으로 나갔다.
“…우리 담임은 학생들이 행복해하는 걸 못 보는 병에 걸린 게 분명해.”
“…”
“어떻게 된 학교가 시험, 모의고사, 시험, 모의고사의 반복이냐고! 물론 과고에서 모의고사가 안 중요한 건 아는데! 그래도 시험인데 그냥 둘 수도 없잖아!”
뭔가 다들 열심히 하는 분위기인데 나 혼자 놀면 이상해지는 느낌이라고! 이인성이 열심히 침을 튀기며 짝을 향해 열변을 토했고, 옆자리 남학생은 무반응으로 일관했다.
“근데 넌 좋겠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수학을 잘해? 타고나는 건가?”
“…”
“옛날에 너 티비에서 막 네자리수 곱 암산도 하고 그러지 않았냐? 그거 어떻게 해? 나도 할 수 있나?”
“…시끄러.”
곽진환은 옆에서 쉬지않고 떠들어대는 짝을 향해 일갈했다. 그도 그럴게 지금 곽진환의 뇌에서는 다른 걸 받아들일 여유가 없었다.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건 단 하나였으니까.
‘…치매와 관련된 유전인자를 찾는 방법···’
수학여행 기간동안 노먼 교수와 김만덕은 생물학적 지식을 곽진환에게 쏟아 부었다. 정확히는 노먼 교수가 RNA와 DNA와 같은 부분에 대해 알려준다면 김만덕은 치매 분야와 관련해서 전문적인 지식을 전달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곽진환만 공부를 한 게 아니다. 곽진환 역시 그가 연구해 낸 방법을 종이에 적어가며 설명해줬다. 구체적인 통계식은 어떻게 되는지, 이 식을 설정할 때 가설은 어떤 식으로 세워서 자유도(df)를 정해야 하는지 등.
‘…잠깐만, 거짓말이지?’
‘?’
‘세줄 이상 썼잖아···!’
‘우리 애가 드디어 글을 써요···!’ 라는 눈으로 감격한 표정으로 곽진환을 바라보던 김만덕. 그 덕에 곽진환은 열심히 적은 풀이를 반으로 찢어버리는 기행을 보이기도 했지만, 어찌되었든 중요한 건 연구가 진전이 되고 있다는 뜻이었다.
정확히 어느정도라고 묻는다면···지금까지 한 걸 학술제에 낸다면 모두가 놀랄정도. 물론 이걸 제대로 이해한 사람은 없겠지만, 다들 박수를 치고 사진을 찍어갈 정도는 되었다.
하지만 곽진환은 이정도로 끝내고 싶지 않았다.
마치 김만덕이 풀리지 않는 애매모호한 문제를 던져놓고 갔었을 때와 같은 기분. 이 말도 안되어보이는 문제를 해결해내고 싶었다. 단순히 명예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그래야만 할 것 같아서.
하지만 이런 생각을 그대로 보이면 김만덕이 또 감격한 표정으로 볼 게 뻔했고, 그건 곽진환이 이 연구를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유일한 이유였기에···일단 아무말 없이 연구에만 매진했다.
애초에 기대가 클수록 실망도 큰 법이니까. 괜히 여기서 이 문제를 풀어내겠다고 큰소리쳤다가 아무것도 못할바에야 그냥 조용히 있는게 낫다.
그렇게 “나 수학 좀 알려주라. 우리집 돼지만큼은 이겨야한다고오-” 라고 징징대는 이인성을 무시하며 곽진환은 다시 한번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해야 유전자, 통계, 치매. 이 세가지를 연결지을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
“한국이란 나라는 어떤 곳일지 새삼 궁금해지는군요.”
한가로운 오후. 노먼 교수와 나는 연구를 진행하다말고 잠시 쉬는시간을 가졌다. 그는 내게 시원한 아이스티를 건네줬다.
나는 작게 감사 인사를 한 후, 아이스티를 들이켰다. 연구하느라 뜨거워진 뇌와 한번에 들어오는 시원한 아이스티의 조합.
최고다.
“평범한 나라에요.”
“평범하다라, 올해 본 한국 학생이 두 명인데 이 두 명 다 평범하지 않았는데 말이죠.”
“…적어도 저는 평범해요.”
내가 어깨를 으쓱이며 답하자, 노먼 교수가 눈을 가늘게 뜬 채 대꾸했다.
“겸손은 이럴 때 떠는 게 아닙니다.”
“겸손이 아니라 진짜인걸요.”
내가 지금까지 이 모든 걸 할 수 있었던 건 비단 나 혼자서 잘나서가 아니다.
만약 과거로 돌아오지 않아서 미래의 정보를 알 수 없었다면?
설령 그랬다고 한 들, 내가 박성민 없이 뇌를 연구할 수 있었을까? 무슨 장치로?
김영재랑 이재성을 안 만났다면? 크리스 교수가 없었다면 줄기세포 연구가 가능했을까?
그 밖에도 지금의 연구가 있기까지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논문에 올라가는 이름은 적더라도 그 논문이 나오기까지 수없이 많은 선행 논문들이 있었고.
확신에 찬 내 모습을 보더니 노먼 교수는 고개를 작게 저었다.
“그럼 이렇게 정정하도록 하죠. 평범하지만 뛰어난 학생으로 말이죠.”
“어···뭔가 앞 뒤가 안 맞는 말인 것 같은데요?”
“원래 역설적인 표현 안에는 많은 것이 숨겨져 있는 법이지요.”
후후, 노먼 교수가 재밌다는 듯이 웃었다. 내가 아무리 과거에서 회귀를 했다고 한 들 이 사람을 이길 순 없다. 애초에 나이대가 내가 살아온 세월을 훌쩍 넘긴 나이니까.
문득 그런 노먼 교수를 보고 있으니 궁금증이 들었다. 어쩌면 오랜 세월을 살아온 그라면 답해줄 수 있을 법한 질문이.
“교수님이 생각하시는 천재는 어떤 사람인가요?”
“흐음···천재라. 어려운 개념이군요.”
노먼 교수는 생각에 잠겼다. 살면서 여러 천재들을 만나왔을 그에게도 천재를 한마디로 정의내리긴 어려운 모양이었다.
천재. 모두가 동경하지만 모두가 될 수 없는, 그런 아득한 존재.
“천재는 이렇다, 라고 딱 잘라 정의내릴 수는 없지만, 적어도 어떤 사람이 천재인지 아닌지는 감별해낼 수 있습니다.”
“정말요? 어떻게요?”
“간단합니다.”
그는 씩 웃으며 나를 바라봤다.
“본인이 천재인 것 같냐고 물었을 때 ‘그런 것 같다’고 대답한다면 천재가 아닙니다.”
“아···?”
“‘그렇다’라고 이야기한다고 해도 천재가 아닙니다.”
“…에.”
넌센스같은 대답에 나도 모르게 미간을 좁혔다. 그 모습을 본 노먼 교수는 물을 한 잔 마셨다. 그 모습을 본 나는 눈알을 굴리다가 물었다.
“그럼 ‘나는 천재가 아니다’ 라고 대답해야 천재인건가요?”
“그건 알 수 없죠.”
“그럼 ‘나는 천재가 아닌 것 같다’라고 대답해야···?”
노먼 교수는 어깨를 으쓱였다. 아이스티로 식혀놓은 뇌가 다시 뜨거워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정답은 없습니다. 적어도 본인이 천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천재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거죠. 지식이라는 것은 파고들면 들수록 자신이 무지(無知)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니까요.”
“어렵네요···.”
“진정한 천재는 스스로를 천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가 제 지론입니다.”
노먼 교수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내 미간만 더 깊어질 뿐이었다.
···뭔진 몰라도 이 문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는 천재가 아닌게 분명하다. 애초에 내가 천재가 아니란 건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는-
“그럼 이번엔 제가 묻겠습니다.”
“?”
“만덕 학생은 스스로 천재라고 생각하나요?”
“…”
나는 눈을 가늘게 뜬 채로 노먼 교수를 바라봤다. 곽진환을 다루는 모습을 봤을 때 노련하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지금와서 보니 노련한 수준을 넘어서 완전 능구렁이다.
그는 씩 웃으며 ‘그래, 이래도 겸손 떨어볼텨?’ 라고 넌지시 물어오고 있었다. 물론 이 대화에서 이기려면 ‘그렇다.’라고 이야기하면 된다. 하지만, 하지만 천재가 아닌데 천재라고 하옵시면···.
그 순간, 나는 대답을 하려다 말고 잠시 멈췄다. 그 모습을 본 노먼 교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교수님이 생각하시는 게 정답일겁니다.”
“오호? 제 생각이라면?”
“네. 교수님이 저를 천재라고 생각하시면 천재가 될거고, 아니라고 생각하시면 아닌거겠죠.”
노먼 교수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이 미간을 좁혔다. 나는 그런 노먼 교수를 보며 덤덤하게 대답했다.
“사람들은 결국 자기가 믿고 싶은대로 보거든요.”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고요.
말을 마무리하는데 어쩐지 혀끝이 쓰다. 가벼운 질문에 진지하게 답해서일까, 노먼 교수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아이스티에 담긴 얼음이 녹아가려는 찰나 노먼 교수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우문현답이었군요.”
“현답까지야···”
“그럼 저는 만덕 학생을 천재라고 생각하기에 오늘부로 만덕 학생은 천재인겁니다.”
“…예?”
“그리고 천재인 학생을 이대로 두는 건 생물학계, 아니 과학계 전체에도 큰 손해이죠. 1분 1초가 아까울 때입니다! 얼른 다시 연구합시다!”
“아, 아니 잠깐만요-”
그러나 갑자기 열정에 불타오르는 노먼 교수를 말릴 수는 없었고, 그날도 자정에 가까운 시간까지 연구에 몰입했다.
앞으로는 어떤 질문이 들어와도 “그렇다.” 라고 대답할 수 있는 예스맨이 되자, 라고 다짐했다.
*
“지금부터 캡틴 처형식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저기 뭔지 모르겠지만 일단 풀고 이야기하지 않을래?”
오랜만에 동아리실에 갔다가 구속되었다. 미야가 한 손에는 자를, 다른 손에는 [정보 기하학]책을 들고 있었고, 데이브가 어디서 구해왔는지 모를 전선들로 손을 묶었다.
데이브가 테이블 위에 올려진 노트북 액정을 바라보며 뭔가를 읽었다.
“캡틴 김만덕은 무려 한 달동안 동아리 ‘Nerd’를 방치하였으며,”
“아니 방치한게 아니고 학술제 준비를 해야하니까-”
“한 달이 넘도록 집에 초대를 안해줬으며!”
“심지어 여기서 초속 1m를 기준으로 했을때 15분 34초 거리인데!”
“아니···”
미야와 데이브가 서운하다며 한마디씩 투덜거렸다. 뭔가 미국 애들은 이런 거에 쿨할 줄 알았는데, 애들은 애들인가보다.
“우리를 집에 초대하라!!”
“초대하라! 초대하라!”
“안그러면 캡틴은 오늘부로 처형이다!!”
“처형이다! 처형이다!”
“알았어. 초대해줄게. 근데 오늘은 안 돼.”
내 말에 데이브가 눈을 가늘게 떴다. 데이브의 말을 복창하던 미야가 자를 들었다.
“오늘은 친구가 집에 왔거든.”
“친구···? 그때 그 친구들?”
“응. 일이 있어서. 물론 이번엔 한 명이긴 한데, 애가 좀 낯을 많이 가리기도 하고 그래서.”
사실 낯을 가린다는 표현보다는 그냥 무관심하다는 표현이 맞지만···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내 설명을 듣자 데이브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묶은 전선을 풀었다.
그제야 자유를 얻은 나는 미야를 바라봤다. 미야가 주춤하며 [정보 기하학]책을 방어하듯 올렸다.
“미야, 그 책 다 읽었다고 했나?”
“응. 근데 어려운 내용도 있어서 완전히 다 이해하지는 못했어.”
“만약에 그 책을 완전히 이해한 사람이 있다면 어떨 것 같아?”
“음···똑똑한 사람이겠지?”
“그럼 나이가 내 나이라면?”
“…너 이거 이해했어?”
“내 이야기 아냐.”
내 말에 미야가 살짝 안도한 듯 작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미간을 좁히며 고뇌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던 데이브가 웃으며 말했다.
“어떻긴 뭘 어때. 그냥 와 졸라 천재잖아! 라고 생각하겠지!”
“그치? 처음보는 사람도 천재라는 생각이 들겠지?”
“? 그, 그렇지?”
갑자기 두 눈을 빛내며 이야기하는 내 모습에 데이브가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나는 씩 웃으며 데이브를 향해 말했다.
“혹시 노트북 잠깐 써도 될까?”
이메일 보낼 사람이 있어서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