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133)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133화(133/221)
133. 학술제 (8)
133. 학술제 (8)
본격적인 학술제의 시작을 알리는 개회사를 시작으로 한 학생씩 앞에 나와 준비한 내용을 발표하기 시작했고, 관중들의 호응도 꽤나 적극적인 편이었다.
그도 그럴게 이 학술제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거진 대학생들이고, 자연스레 친구의 발표를 보러 온 친구들이 대다수였다. 물론 그 사이사이에 교수로 보이는 사람들도 앉아있었고.
“오시는 길 힘드시지는 않으셨어요?”
“…김만덕 학생 맞죠?”
푸석한 머리카락과 턱끝까지 내려온 다크서클. 한눈에 봐도 밤잠을 설친 듯한 여자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김민주 작가. 9년 전, 곽진환의 암산 천재 방송 조작 당시에 있었던 그 막내 작가였다.
···물론 이제 막내 타이틀은 뗀 것 같지만.
“줄기세포 관련해서 인터뷰 해주신다고 할 줄은 몰랐어요. 다른 곳은 다 거절하셨다면서요?”
“제가 낯을 좀 많이 가리는 편이라···”
“에이, 전혀 안그래보이시는데! 어쨌든 이거 덕분에 방송국에서도 미국으로 보내주는 거 한번에 끊어줬다니까요? 원래 제 짬밥이면 인터뷰따러 해외가는 건 택도 없거든요.”
김민주 작가가 큼큼 거리며 목을 가다듬었다. 그리고는 나를 살짝 보더니 의미심장한 눈으로 물었다.
“그래서 원래는 딴 선배가 가려고 했는데, 절 콕 집어서 와달라고 하셨다면서요?”
“아, 그게···”
“이유가 뭐가 되었든 전 너무 좋죠. 솔직히 미국을 언제 또 와보겠어요? 비행기 값도 만만치 않은데.”
기왕 온 김에 실컷 쉬다 갈거에요, 라고 말하는 김민주 작가의 목소리가 밝았다. 그러나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런데 카페가 아니라 여기에서 만나자고 한 이유가 따로 있어요? 하버드대 학술제 자체도 흥미롭긴한데 딱히 써먹을 만한 건 없어서요. 그냥 공부 잘하는 사람들 모아놓은 날이잖아요.”
“사실 오늘 제가 저기서 발표를 하거든요. 기왕이면 영상에 자료 화면으로 쓰면 좋지 않을까 해서요.”
“어머어머! 그런 것까지 생각해주신거에요?”
김민주 작가에게 내 이미지는 꽤 좋게 각인된 것 같았다. 그녀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노트북을 열었다.
“만덕 학생 한국에서 엄청 유명한 거 알고 있어요? 웬만한 연예인보다 더 인기에요. 실시간 검색어에도 1위였다니까요?”
“1위요?”
“어머, 몰랐구나? 지금 천재 소년이라고 얼마나 언론에서 띄워주고 있는데요. 아마 서로 방송하려고 다들 이를 갈고 있을걸요? 아마 첫 타자는 우리 프로그램이 되겠지만 말이에요, 후후.”
그녀는 진심으로 뿌듯한 듯 이야기를 시작했고, 꽤 오래 이어졌다.
천재 소년이라는 타이틀을 시작으로 “한국과고에서 전교 1등을 한번도 놓친 적이 없다면서요?” 라든가, “모의고사 전국 1등도 했다던데?”, “심지어 국제 올림피아드도 생물이랑 화학 둘 다 출전한다면서요! 최초로!” 라며 신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게다가 아버지 없이 홀어머니 밑에서 흙수저로 자라왔다면서요?”
“…아”
“기초생활수급자였다고 그러던데, 사실이에요?”
그녀는 이미 노트북에 <인터뷰-김만덕> 이라고 타이핑해둔 상황이었다. 노트북을 연 순간부터, 아니 어쩌면 나를 만난 순간부터 인터뷰는 시작되고 있었다.
살짝 불편할 수 있는 주제까지 조사해온 그녀.
아니, 오히려 불편한 주제이기에 조사해온 거겠지.
그녀는 녹음기로 보이는 것까지 올려놓더니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녹음해도 돼죠?”
“음···녹음하기 전에 먼저 말씀드릴게 하나 있는데요.”
“? 무슨 말이요?”
혹시라도 인터뷰를 취소한다고 하는 걸까봐 그녀가 조금 움츠러든 모습을 보였다. 나는 녹음기 전원을 끄고 난 후,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예전에 ‘천재발굴단’ 프로그램에 작가로 일하셨던 적 있죠?”
“아···그렇긴 한데. 왜요?”
‘천재발굴단’ 이야기가 나오자 급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는 김민주. 그녀는 이 주제가 영 불편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좀 불편한 이야기를 해야했으니까.
“그때 나왔던 ‘암산 천재’ 기억하시죠? 그 9살짜리 꼬마애.”
“…갑자기요? 뭐···기억은 하죠. 워낙 유명한 애였으니.”
당시 곽진환의 인기가 어느정도였냐면, 곽진환의 교육법을 담은 책은 물론 이름을 딴 수학 교구도 나올 정도였다. 교육에 관심있는 학부모에게 곽진환은 꿈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김민주 작가는 곽진환에 대해 더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와 관련된 주제를 꺼내는 걸 불편해하는 눈치였다. 아직 폭로하기로 마음 먹은 시기는 아닌 듯 했다.
‘지금으로부터 몇 년 내로 곽진환의 방송은 조작이었다고 폭로되겠지.’
물론 지금의 김민주 작가의 모습을 봤을 땐 폭로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과거로 돌아온 나는 이미 여러번 겪은 명제가 있었다. 일어날 일은 다시 일어난다는 명제가.
비록 그 시기가 빨라지거나 느려지는 일은 있어도 비슷한 일은 늘 일어났다. 그렇기에 나는 그 일을 조금 앞당기기로 했다.
적어도 그가 속수무책으로 당하진 않을 수 있는 시기로.
방송 조작도, 방송 폭로도. 곽진환은 늘 그 중심에 서있었지만 그가 관여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원한 적 없는 꽃다발을 받아야했고, 폭로 이후 날아오는 돌에 맞아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미 그는 국민 ‘거짓말쟁이’였으니까.
“작가님은 천재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천재요? 으음···사실 딱히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방송하면서 자칭, 타칭 천재인 애들은 만나봤지만 뭐랄까 좀···”
하하, 김민주 작가는 말을 아꼈다. 그런 그녀는 오히려 화제를 돌려 내게 물었다.
“만덕 학생이 생각하는 천재는요?”
“저요?”
“네, 천재 소년이 생각하는 천재의 정의는?! 이거 제목으로 써먹기 딱이거든요. 만덕 학생은 천재가 뭐라고 생각해요?”
그녀는 금방이라도 타이핑하려는 듯 노트북 위로 손을 올렸다. 그러나 노트북을 두들기는 일은 없었다.
그 순간, 누군가 강단 위로 올라왔으니까.
탓. 조명이 바뀌고 강단에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졌다. 발표자와 발표 피피티에 집중되는 구조. 다들 앞에 서있는 발표자에게 집중했다.
“어···어?! 쟤는···?!”
더벅머리를 한 남학생. 꽤나 신경질적인 표정. 그리고 피피티에 적혀있는 [발표자: 곽진환]
김민주 작가의 두 눈이 커다래졌다. 방송을 한 날로부터 9년이라는 세월이 지나 어린시절의 모습이 많이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단번에 곽진환을 알아봤다.
“암산 천재! 곽진환 맞죠? 아니, 걔 하버드대생이었어요? 그럴리가 없는데?”
그녀는 진심으로 혼란해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게 그녀에게 곽진환은 어른들이 쥐어 준 숫자나 외우고 말하는 9살 꼬맹이었으니까. 천재들이 가는 하버드에 있을 존재가 아니었다.
인지부조화가 와서 혼란스러워하는 그녀를 뒤로 한 채 나는 물끄러미 피피티를 바라봤다.
[치매 발병 유전인자 분석; 수학적 통계 모델링을 활용하여]라고 적혀있는 연구 주제.‘제목이 너무 심플한 거 아니야? 수학적 통계 모델링이라고 하면 네가 연구한 부분이 잘 안 드러나잖아.’
‘…원래 수학은 그런거니까.’
군더더기 없이, 간결해야 해. 꾸밈없이. 곽진환은 그렇게 말하며 묵묵히 내용을 정리했다.
“저는 저 애가 천재라고 생각해요. 적어도 저는요.”
부디 작가님도 그렇게 생각하시길 바라요, 라고 나는 조용히 읊조렸고 그렇게 곽진환의 발표가 시작됐다.
*
곽진환의 발표는 성공적으로 끝이났다. 어느정도로 성공적이였냐면, 그가 발표를 마치고 내려왔을 때 다들 그를 향해 벌떼처럼 몰려들정도.
물론 그 내용을 이해한 사람들은 교수급으로 한정되었기에···곽진환은 자신을 노리는 수많은 교수들 사이에 둘러싸였다.
“어디 전공 학생입니까? 당연히 수학쪽이겠죠?”
“무슨 소리입니까, 저기 저 치매 유전인자 안보이세요? 유전 공학하는 학생이겠죠.”
“제가 볼 때 이정도 수준이면 단순히 학부생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안그래도 사회성이 없고 두 명 이상과 동시에 이야기를 할 수 없는 곽진환이었기에, 그는 목석마냥 서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곽진환을 가만히 둘 교수들이 아니었다. 나는 그가 표정으로는 곤란해하지 않는 것 같지만 실은 몹시 곤란해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왜냐면 저 멀리서 계속 나한테 SOS 신호 보내고 있거든.
“하하, 깜짝 놀랐습니다. 곽진환 학생은 분명 아프다고 했었거든요.”
“아···그게 한숨 자고 나니까 나아졌나봐요.”
“그래도 왜 만덕 학생이 발표를 하지 않고···물론 곽진환 학생도 발표를 잘했지만 말이죠.”
노먼 교수가 꽤 아쉽다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나는 별로 미련이 없었다. 왜냐면 발표가 끝나고 한동안 아무말도 못한 채 멍하니 앉아있던 김민주 작가의 모습을 볼 수 있었으니까.
심지어 곽진환의 발표가 끝나고 그녀는 바쁜 일이 있었다며 자리를 떴다. 정신없이 노트북과 녹음기를 챙겨 떠나는 그녀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리고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 수학적인 내용은 저보다 곽진환이 더 잘 설명할테니까요.”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그도 그럴게 생물학은 비교적 일반인들에게 친숙한 주제이다. 물리나 수학같은 건 이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기도 하고.
한마디로 진입장벽이 존재한다는 뜻이었다.
“제가 치매나 유전자 부분은 더 잘 설명하겠지만, 그 두 개를 연결 짓고 있는 수학을 설명할 때면 아마 저도 전문 용어들에 의존해서 설명할 수 밖에 없었을거에요.”
청자의 수준에 맞춰 설명한다는 건, 그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고서는 꽤나 힘든 일이었고, 그렇기에 곽진환을 더욱 발표 자리로 몰아간 것도 있었다.
내가 원한 건 어디까지나 곽진환의 연구가 내 연구에 적용되는거였지, 수학 천재 타이틀을 원한 게 아니었으니까.
노먼 교수는 내 설명을 듣더니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아직도 교수들에게 둘러싸여 실시간으로 정신적 체력을 소모하고 있는 곽진환을 바라봤다.
“이제 슬슬 가볼까요? 저러다 진짜로 쓰러지겠습니다.”
“…조금만 더 두면 안될까요?”
“?”
“좀 괘씸했어서….”
내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갸웃하던 노먼 교수가 이내 큰 소리를 내며 웃었다.
하지만 진심이다. 그동안 내가 녀석에게 당했던 갈굼과 도발 등 사회성 떨어지는 녀석을 밀착 케어했던 지난 날을 보상하기 위해서라도 녀석은 좀 고생 좀 해야했다.
유치하다고 말하면 할 말 없지만···그래도 조금만, 5분이라도···!
“만덕 학생.”
“어, 부커 교수님.”
그때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잠시 아무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가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이미 그의 눈이 말해주고 있었으니까.
마치 수학 학회 날, 알고리즘을 설명하던 때와 비슷한 눈.
“저 학생과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습니다.”
“어···제가 보호자는 아니지만 잠시만요.”
나는 곽진환 쪽을 바라봤다. 음, 그래 저 정도면 충분하다. 교수들의 굴레에서 이제 정신력 0을 향해 달려나가고 있는 곽진환을 건져내기 위해 무리를 향해 걸어갔다.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걸 알아챘는지, 곽진환이 아는체를 했다.
“…야. 김만덕.”
차마 제 입으로 구해달라는 말은 못하겠는지, 그는 눈으로 대충 ‘나 좀 데리고 가라.’ 라고 이야기했고, 나는 교수들 옆에 자연스레 끼어들었다.
갑자기 등장한 불청객으로 인해 교수들이 내쪽을 바라봤다. 처음에는 미간을 좁혔지만 이내 나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아니, 자네는 그 줄기세포 포럼에서 발표했던 학생 아닌가?”
“그러고보니 얼굴이 낯이 익다 했는데, 그때 크리스 교수랑 같이 발표했던 연구원이구만.”
“둘이 서로 아는 사이였다니. 이거 참 신기하군요.”
교수들이 뭔가 실험 대상을 발견한 눈으로 우리 둘을 바라봤다. 하지만 이제 이런 시선에 나는 굴하지 않는다. 이미 숱하게 겪어본 일이니까!
나는 최대한 예의를 갖춰 교수들에게 인사를 했고, 급한 일정이 있다는 핑계로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고맙다.”
“고마울 거 없어.”
“?”
“다시 또 토스할거니까.”
···? 머리 위로 물음표를 띄우고 있는 곽진환을 뒤로 한 채, 나는 부커 교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교수님, 이제 대화 나누시면 됩니다!”
“야, 야. 잠깐만. 잠깐–”
“오! 드디어! 오늘 학술제 내용 너무 인상깊게 봤습니다. 한국과학고등학교 학생이라고요? 정말이지 전에는 김만덕 학생이 알고리즘으로 저를 놀래켰던 게 엊그제 같은데 올해도 이렇게 놀라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아, 그···예.”
“보니까 유전인자 간의 연관성을 분석할 때, 카이제곱검증이랑 로지스틱 회귀 분석 외에도 본페로니 교정(Bonferroni correction)기법을 사용한 게 인상깊었습니다. 우연히 얻은 유의미한 결과를 조정하기 위해 사용했군요. 하긴 사실상 60억개에 해당하는 것들을 분석할 때 우연히 얻어 걸린 값들을 처리하지 않으면 안되겠지요. 잠깐, 지금 이럴 때가 아니지. 우리 여기서 이럴게 아니라 좀 더 많은 이야기를–”
그렇게 나는 사색이 된 채로 SOS 신호를 연신 보내고 있는 곽진환을 가볍게 무시한 채 앤드류 부커 교수에게 토스했고, 홀가분하게 홀을 빠져나왔다.
참으로 상쾌하고, 즐거운 학술제가 막을 내렸고,
나는 그 날 저녁 한 통의 메일을 받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