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139)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139화(139/221)
139. 작업 (1)
139. 작업 (1)
화학 올림피아드가 끝나고, 쌍둥이와 이재성은 쉴 새도 없이 바로 한국으로 들어갔다.
‘뭐? 쉬다 가라고? 고등학생들한테 그런 게 어딨어!’
‘그래도 이제 수시 원서만 쓰면 되는 거 아니야?’
과고의 경우 일정 성적 이상이면 조기 졸업이 가능하다. 쌍둥이들의 경우에는 수학으로 인해 아슬아슬했지만, 2학기 때 이후로 성적을 많이 올려놓은 상태였다.
그러나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젓는 이인성.
‘합격 발표가 나기 전까진 방심할 순 없다!’
평소와 다르게 꽤 진지한 모습에 나는 그저 떨떠름한 표정으로 녀석들을 보냈다. 물론 조기졸업이랑 상관없는 이재성은 우리 대화를 들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뿐이었고.
그렇게 폭풍 같던 화학 올림피아드가 끝이 나고, 나는 하버드대 도서관 맞은편에 있는 카페테리아에 들어갔다. 미국은 아직 방학 중임에도 불구하고 안에는 사람이 많았다.
“여길세.”
그때 저 멀리 한 남자가 손을 흔들었다. 불과 며칠 전에도 봤던 사람.
과학창의재단의 이사장 한학수였다. 그의 앞자리에 앉자, 그가 씩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솔직히 말하면 조금 많이 놀랐네.”
“국가 1위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으음, 그것도 그렇지만···”
이미 그는 따뜻한 카페 라떼를 주문해 놓은 상황이었다. 한 여름이라 푹푹 찌는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뜨거운 음료를 마시는 한학수.
그는 카페라떼를 한 모금 마시더니 말을 이었다.
“이론 시험에서 1등 한 것 말일세.”
그는 정말로 예상외였다는 듯이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테이블 위로 여러 신문 뭉치를 꺼내놓았다. 한 번쯤은 들어본 익숙한 신문사부터, 아예 처음 보는 일간지까지. 그러나 그 신문들엔 한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한국을 빛낸 천재 소년, 김만덕은 누구인가?] [미래의 노벨상 수상을 위해 한국 과학계 드디어 한 걸음 내딛다.] [천재 소년, 김만덕의 모교. 한국과고는 어떤 곳인가?]그 밖에도 줄기세포, 아밀로잽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최근 하버드대에서 학술제 이야기도 실려있었다. 학술제 발표는 곽진환이었음에도 말이다.
온통 내 이야기로 도배되어 있었다.
“이건 대체···”
“하하! 이게 바로 김만덕 학생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일세. 소문을 들어보니 팬클럽까지 생겼다던데, 사실인가?”
“예?”
나도 모르게 미간을 좁히며 되물었다. 팬클럽이라니, 심지어 나도 모르는 팬클럽이다. 그곳에서 무슨 말이 오가는지 알 도리가 없는 나는 그저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어렴풋이 전에 김민주 작가를 만났을 때 예상하고는 있었다. 그러나 ‘연예인’ 급의 인기라고 이야기하는 게 단지 비유가 그렇다는 거지, 진짜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리고 이건 꽤나···부담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이 기사들 다 내릴 수는 없겠죠?”
“왜 그러나? 관심이 부담스러운가?”
“대가 없는 관심은 없으니까요.”
덤덤한 목소리로 말하자, 한학수가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이내 큰 웃음을 터뜨리며 무릎을 치던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자네라면 이런 관심을 좋아할 줄 알았는데 말일세. 그때 수학 학회서 손을 번쩍 들고 이야기하던 거 기억 안 나나?”
“…그때는 어쩔 수 없었으니까요.”
“어쩔 수 없었다라! 그것만큼 편한 말도 없지. 어찌 되었든 한국에서 김만덕 학생에 대한 지원도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는 상황이네.”
그는 과학창의재단 앞으로 들어온 장학금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대충 국내에 유명한 기업들이 너도나도 과학의 발전을 위해 돈을 때려 박고 있다는 이야기.
그러나 그 돈 뒤에는 한가지 희망 사항도 있었다.
“만덕 학생을 직접 만나보고 싶다더군. 기왕이면 사진도 함께 말이지.”
“…거절하면요?”
“거절해도 상관은 없지. 애초에 요구사항이나 조건으로 기부를 한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가능하다면’이라는 말을 붙였으니까.”
“그럼 거절하겠습니다.”
나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단번에 거절했다. 그도 그럴 게 아무리 대가 없는 돈이라 하더라도 얽히는 순간 복잡해진다. 처음엔 순수한 마음으로 시작한 인터뷰가 어떤 식으로 왜곡될지도 모르는 일이고.
이번에 김민주 작가를 만나면서 더욱 깨달았다. 그녀는 이미 나를 만나기 전부터 나에 대한 정보를 모두 조사한 뒤였다. 한국 과고에서 있었던 일들은 물론 내가 홀어머니 밑에서 기초생활수급자로 자라왔다는 사실까지.
어쩌면 지극히 개인적인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모두 알고 있었다. 그 정보의 출처가 어디인지는 알아낼 수 없었지만···이런 식으로 내 정보가 빠져나가는 건 썩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거절하려는 특별한 이유는 뭔가? 관심받는 게 싫어서 그런 건가?”
“그것도 그렇지만···저는 연구에 집중하고 싶습니다.”
“연구에 집중하고 싶다라···”
한학수가 살짝 몸을 뒤에 기댄 채로 물었다. 이미 반이나 마셔버린 카페 라떼는 에어컨 바람 때문에 차게 식은 후였다.
연구하는데 돈은 절대적이다. 심지어 수학이나 물리와 같이 사고 실험이나 논리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생물과 같이 실험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분야에선 더더욱.
전생에도 연구실에서 각종 사업을 따기 위해 백방으로 수고하는 모습들을 많이 봐왔기에···연구원들에게 풍족한 지원이라는 건 말 그대로 모두가 꿈꾸는 환경이었다.
“저는 해외에서 계속 연구할 생각입니다. 국내의 후원을 받으면 언젠가는 한국으로 돌아와야 할 텐데, 연구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부채감 때문에 쫓기듯 오고 싶진 않습니다.”
“흐음···연구가 완전히 끝난 후에는 어차피 한국에 올 거 아닌가? 굳이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보는데.”
“그러면 그때 제가 한국에 돌아오면 자유로울 수 있나요?”
내 말에 한학수의 미간이 좁혀졌다. 그는 살짝 불쾌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하지만 그가 쉽사리 대답하지 못한다는 건, 그 역시도 알고 있다는 뜻이겠지.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 이 말은 이곳에서도 통용되는 말이었으니까. 한국에 어떤 식으로도 지원을 받은 연구원은 그 연구 내용도 한국에 귀속이 되거나 혹은 기업 소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렇기에 한 연구소에서 다른 연구소로 넘어간다고 해서 자신이 하던 연구를 계속 가져갈 수 있는 경우도 있었지만, 원래 있던 연구소에 남겨두고 와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당연한 거지. 기술은 곧 힘이고 돈이니까. 여기서 연구만 하고 날름 해외로 튀는 경우도 있었고.’
언론에서 대대적으로 다뤘던 사건. 한 기업 소속의 책임 연구원이 경쟁 국가에 기술을 들고 잠적해 버린 것이었다. 그 탓에 그 기술 연구에만 수년을 쏟고 수십, 수백억을 붓고 있던 기업에는 어마어마한 손실을 보게 되었다.
한학수는 살짝 곤란하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원래 그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듯, 그가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글쎄, 나는 자네가 한국 사람인 만큼 한국을 위해 좀 더 연구를 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일세.”
“연구에 국적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만.”
“말은 좋지만, 자네가 미국으로 귀화를 해버리거나 그러면···솔직히 한국 입장에서는 또 미래의 노벨상 수상자를 놓쳐버리는 꼴이 되어버리니 말이야.”
꽤나 솔직하게 속내를 내비치는 한학수. 이제 보니 그의 목표는 단순히 국가 1위가 아닌, 미래의 노벨상 수상자를 양성하는 것에 있었던 모양이었다.
어쩌면 자신이 이 자리를 내려놓은 뒤, 그러니까 적어도 20년은 흐른 후에 일어날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벌써부터 걱정하고 있었다. 미래의 인재가 유출될 것을.
“제 목표는 치매 치료입니다.”
“그거야 알고 있지. 그리고 그게 가능해지는 순간 노벨상도 꿈이 아니라는 것도 말일세.”
“그럼 한 가지 여쭙겠습니다.”
나는 단호한 목소리와 함께 한학수를 바라봤다.
“어느쪽이 더 빨리 치매 치료제를 개발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기초과학에 대한 지원이 아직은 부족한 한국. 물론 의대로 빠지는 인재들을 줄이고 최대한 과학자 양성에 힘쓰고 있지만 오래전부터 기초과학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해외에 비하면 부족한 상황이었다.
나도 안다. 한학수가 지금 어떤 마음인지를. 그가 이렇게 이야기하는 게 불쾌하게 느껴지거나 화가 나지는 않는다. 그만큼 한국의 인재가 유출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일 테니까.
그렇기에 나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었다.
“제 목표가 미국 귀화라든가 해외 연구소에 일하는 게 아니어서요.”
“그 말은···”
“제가 치매 치료제를 만든다고 해서 국적이 바뀐다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리고 치료제를 해외 기업들한테 전부 팔 생각도 없고요.”
치매 환자는 매년, 매일, 매 순간 생겨나고 있었다.
모든 나라에, 모든 인종에게, 부자든, 가난하든. 뇌를 좀먹어 기억을 잃게 만드는 이 잔인한 질병에서 인간이 한시라도 빨리 벗어날 수 있다면,
“제가 한국에서 연구하지 않는다고 해도 전 한국인이니까요.”
나는 가지고 온 메달을 흔들어 보였다. 그 모습을 본 한학수가 결국 못 이기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이거 참, 나이가 드니 쓸데없는 걱정만 자꾸 늘어나서 말일세. 아까 이야기한 건 모두 잊어버리게나. 만덕 학생이 연구하고 싶은 곳에서 연구하면 되네. 그건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일이니.”
“감사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한참이나 ‘한국 과학의 미래’라든가, ‘기초과학에 대한 지원’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고, 나중에는 ‘올림피아드 합숙 때 이재성이 코를 골아서 힘들었다.’라는 이야기까지 변해있었다.
한학수는 떠나기 전 한동안 말없이 나를 바라보더니, 한마디를 던졌다.
“다음에는 우리나라의 인재들이 해외에 나가지 않아도 될 만큼 발전한 모습을 보여주겠네.”
미래의 인재들이 한국에서 연구할 수 있도록 내가 그렇게 만들어둘걸세. 한학수가 마치 스스로에게 약속하듯 여러 번 말했다.
음, 과학창의재단은 어디까지나 과학 교육 쪽과 크게 연관되어 있는 곳이다. 한학수가 말하는 건 과기부에서나 할 법한 일인데···문득 이질감을 느끼긴 했지만, 굳이 언급하진 않았다.
“한국의 연구 시설과 지원을 바탕으로 연구가 이어지고, 또 그게 노벨상으로 이어진다면···또 다른 기쁨이겠지.”
끝까지 노벨상에 대한 욕심을 포기하지 않는 그였지만, 어쩐지 그 핀트가 묘하게 달라진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떠나는 그의 뒷모습을 보다가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부디 한학수가 말하는 그날이 얼른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
[입금: 20,000 $]“···이사장님. 금액이 좀 잘못 찍혀있는 것 같은데요.”
[2만 불 안 찍혀있는가?]“…예. 그러니까 2만 달러가 찍혀있는데요.”
한학수와 헤어지고 난 뒤, 그는 다시 전화를 걸어왔다.
‘아이고, 내 정신 좀 보게나. 오늘 만나서 장학금 이야기를 한다는 걸 다른 이야기 하다 보니 싹 잊어버렸지 뭔가.’
‘장학금은 안 받는 걸로—’
‘다른 기업 장학금은 몰라도 이건 받을 수밖에 없네.’
받을 수밖에 없다고? 그러나 나는 이어지는 말에 순간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대통령과학장학금일세.’
대통령과학장학금. 이공계 학생을 대상으로 대통령 이름으로 주어지는 장학금이었다. 하지만 애초에 과학고를 자퇴한 상황이고, 하버드대에서 학비와 생활비는 지원되는 상황이었기에 지원 자격이 안 되는 줄 알았는데···?
‘이번 케이스는 특수한 케이스긴 하지만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네.’
첫째, 해외 유학생 부분은 과고 기준 최소 4등급 이상만 지원할 수 있다.
—나는 과고 중 탑인 한국과고에서 거의 모든 과목에서 1등이었다.
둘째,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컴퓨터가 중에 전공이 있어야 한다, 는 굳이 따져볼 필요도 없었고,
‘마지막으로 과학 활동 내역서에 업적을 써야 한다만···우리나라에 자네 업적을 모르는 사람이 있는가? 게다가 동점자 발생 시 기초생활수급자는 1순위지. 애초에 동점자도 없었지만 말일세!’
···아직도 그때의 대화가 머릿속에 잔상처럼 남아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2만 달러가 통장에 바로 꽂히는 건···
[너무 부담가지지 말게나. 이렇게라도 생색내는 부분이 있어야 우리도 체면이 서지 않겠는가!]“…그렇다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좋네, 좋아. 그러면 앞으로 더 기대하고 있겠네.]참고로 체재비는 따로 내역서를 제출하지 않아도 되네! 한학수는 그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나는 아직도 벙찐 표정으로 통장 잔고를 바라보고 있었다.외화로 바로 입금된 2만 달러. 한화로 약 2,600만 원. 소소하게 생활비 명목으로 받고 있는 금액들이 있긴 했지만, 이렇게 목돈이 통장에 꽂히는 건 또 다른 일이었다.
심지어 이 당시 기준 2,600만 원은 그 가치가 달랐다. 특히 지금처럼 환율이 불안정한 시기에는 더욱.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2만 달러에 가까운 돈을 어디에 쓰면 좋을지,
그리고 2009년은 역사적으로 어떤 해였는지.
“···고민할 것도 없지.”
곧바로 전화기를 들었다. 슬슬 작업에 들어갈 시기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