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14)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14화(14/221)
14. 수행평가 (2)
14. 수행평가 (2)
산·염기 실험은 대한민국 학생이라면 한번쯤 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직접 실험을 해 본 적이 없다면 실험 영상이라도 봤을 확률이 높다.
‘자~ 여러분! 지금 나눠 준 종이는 청색 리트머스 종이에요. 이 위에 산성 물질을 떨어뜨리면… 자! 이렇게 빨갛게 변합니다.’
초등학생 시절. 나는 과학 시간이 제일 재미있었다. 밖에 나가봤자 보이는 건 온통 산. 놀 것 없는 이곳에서 과학 실험은 나에게 마법과도 같았다.
특히 리트머스 종이는 나에게 마법 종이처럼 보였다. 단순히 몇 방울 떨어뜨린 것만으로도 산성인지 염기성인지 알 수 있다니. 휙휙 색깔이 바뀌며 산성 물질을 알아낼 때의 그 희열은 잊을 수가 없다.
지금 이 실험도 그 과정의 연장선상일 뿐이다. 다만 약간의 과정이 더 추가되었을 뿐.
“아세트산이랑 암모니아 pH부터 재보자.”
우리 팀의 실험은 창의적이지 않았다. 교과서에 나오는 실험 중 하나. 다들 학원에서 알아 온 참신하고 신기해 보이는 실험들과 비교해 새로울 게 없었다.
이인성은 pH미터기를 들고 오더니 찝찝한 표정을 지었다.
“근데 우리 너무 평범한 거 아니야? 저기는 막 과일도 준비해서 이것저것 하는데.”
실제로 다른 팀들은 뭔가 있어 보이는 실험들을 진행하고 있었다. 과일, 세제, 커피 같은 실생활 제품부터 시작해 어디서 구해왔는지 알 수 없는 흙을 들고 온 학생들도 있었다.
하지만 대학원 과정까지 거친 내 눈엔 그저 조잡해 보일 뿐이었다. 이게 좀 더 참신한 연구 주제를 요하는 R&E였다든가, 하다못해 평가 기준에 창의성이 들어갔다면 나도 생각을 달리했을 거다.
“굳이 저렇게 할 이유가 없어. 평가 기준에도 창의성은 안 들어가 있고.”
“그래도 명색이 과고인데 이런 평범한 시약으로 하는 건…”
과고 부심을 부리는 이인성을 보자 웃음이 나왔다. 아직은 어린 학생인 게 느껴졌다.
“멋있어 보이는 실험보다 의미 있는 실험을 하자.”
“그래 이 허세충아. 가뜩이나 시간 없는데 툴툴거릴 거면 걍 앉아 있어. 방해되니까.”
멋진 말로 중생을 교화하려는데, 이인영이 끼어들었다. 그녀는 화학 실험이 시작되자 사뭇 다른 표정이었다. 생기가 도는 느낌.
“아세트산(CH3COOH) pH는 2.5 나왔고, 암모니아(NH3) 암모니아는 pH는 11.6이야.”
“몰농도는 0.1M로 맞출게.”
증류수를 아세트산과 암모니아에 넣었다. 희석된 아세트산과 암모니아. 눈앞에서 망설임 없이 몰농도를 조절하는 나를 보더니 이인영과 이인성이 약간 질려하는 표정을 지었다.
뭔가 실수했나 싶어서 시약들을 봤지만 잘못된 건 없다.
“왜?”
“너… 이거 다 미리 계산해오고 몰농도 맞춘 거지?”
“지금 계산한 건데?”
“암산으로?”
이인영의 질문에 되려 내가 미간을 좁혔다. 대체 뭐 때문에 저러는 거지.
이번 실험을 통해 알아내고자 하는 것은 간단했다.
산성 용액과 염기성 용액의 평형.
아세트산 용액에 얼 만큼의 암모니아를 넣어야 평형이 이루어지는가?
pH를 알아내는 게 목적인 중화 적정 반응이었다면 용액의 pH를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했겠지만, 이번 실험은 경우가 다르다.
모든 것은 주어져 있다. 그저 평형만 맞추면 된다.
자잘한 부분의 계산은 어렵지 않으니 그저 머릿속으로 계산하면 그만이었다. 애초에 시간 안에 끝내려면 지체되는 시간이 없도록 줄여야 했다. 보고서 쓰는 시간도 고려해야 하고.
“자세한 건 보고서 쓸 때 적으면 되니까.”
“순서가 반대지 않냐…?”
이인성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는 사이 정신을 차린 이인영이 비커에 희석된 아세트산 용액을 옮겨 담았다.
그 이후는 척척 진행되었다. 역시 화학 천재라는 수식어답게 이인영은 실험도 잘했다. 군더더기가 없는 느낌이랄까. 이인성은 중간중간에 트롤짓을 할 뻔했지만 다행히 이인영의 스매싱 덕분에 제지되었다.
“…됐다!”
그 순간 이인영이 기쁜 듯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이렇게 티 없이 맑게 웃는 표정은 처음인지라 오히려 내가 당황할 정도였다.
‘평형이 된 게 그렇게 좋나?’
어찌 보면 이 실험은 기본 중의 기본. 애초에 평형을 알아보는 실험이니 결과가 새로울 것도 없었다. 하지만 이인영의 이런 모습을 보니 어쩐지 뒤통수가 가려운 느낌이었다.
“pH가 정확하게 7이 나오진 않지만 이정도면 괜찮은 거 맞지?”
“오차 없는 실험은 없어. 이정도면 성공한 거야.”
실험을 마친 우리는 빠르게 보고서 작성에 들어갔다. 조당 1개씩 주어지는 노트북. 세 명이서 둘러앉아 실험 보고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다른 팀들보다 실험이 빨리 끝난 편이었다. 따로 조사하거나 처리할 과정들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보고서 자체가 부실해서는 안 되었다.
실험을 하면서 결괏값들을 측정했던 노트와 비교를 하면서 하나씩 입력하려는데,
“그 음이온 표시 어디있는 거야? 화살표, 화살표가…”
“그냥 말로 설명하면 안 돼? 답답해 죽겠네.”
엄청난 컴맹이잖아… 학부와 대학원 시절에 논문 긁고 데이터 추출하고 분석하고 처리하는 게 일이던 나와 달리 이제 막 고등학생이 된 이 녀석들에게 컴퓨터는 낯선 존재였다.
각 분야에서 천재들이 컴퓨터엔 약하다고? 나는 가능한 경우의 수를 샅샅이 찾았다. 쌍둥이, 입는 옷이나 평소 말을 보면 중산층 이상, 아니 어쩌면 금수저일 수도.
그렇게 컴퓨터와 어려운 사투를 보내고 있는 둘을 보며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너희 집엔 컴퓨터가 없니?”
몇몇 집에서는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컴퓨터와 텔레비전을 모두 없앤다고 들었다. 오로지 공부만을 위한 환경을 조성한다고. 지금 시기가 시기인 만큼 아직 스마트폰도 대중화되지 않은 시대기도 했고.
내 말을 들은 둘은 충격받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 말투는 뭐야…?”
“느 집엔 이거 없지? 하고 묻는 게 감자 없냐고 묻는 것보다 더 모욕적이야…”
딱히 그런 의도로 말한 게 아닌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나는 쌍둥이들이 더 뭐라 말하기 전에 노트북을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 저절로 시선이 노트북으로 향한 둘은 내 행보를 지켜봤다.
“우선 보고서를 쓸 때 제목은 간결하게 적어야 해. 우리 같은 경우엔 ‘아세트산과 암모니아의 중화: 평형 및 pH 분석’이 제일 낫겠네.”
탁탁탁. 자연스럽게 타자를 쳤다. 자간을 맞추고 글자 포인트를 키웠다. 숨 쉬듯이 했던 일이라 단축키도 이미 손에 익은 상황이었다.
“원래면 초록도 작성하지만 이 실험 같은 경우엔 너무 간단해서 결과 정도만 쓰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그렇게 타자를 치려는데, 갑자기 이인성이 내 손을 막았다.
“너 진짜 이렇게 쓸 거야?”
“왜? 너무 간단해?”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고!”
이인성이 가리킨 곳엔 내가 친 타자가 있었다.
[Abstract: This experiment neutralized 0.1M acetic acid and 0.1M ammonia solutions, resulting in an equilibrated solution with a pH of approximately 7.]“영어로 발표할 거야??”
“미안. 습관이라.”
습관이라는 말에 둘은 이제 아무 말도 안 했다. 사실 논문을 쓴다고 해서 항상 영어로 쓰는 건 아니다. 한국어로 해놓고 번역기를 돌리기도 하고, 아니면 영문으로 바꿔주는 전문 업체를 이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번역기는 가끔가다 아예 엉뚱하게 번역을 하는 경우가 많았고, 전문 업체를 사용하기엔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었다.
그래서 영어 실력이나 늘릴 겸 영어로 조금씩 쓰던 게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되어버렸다.
머쓱해진 나는 헛기침을 하며 한글로 바꿨다. 쌍둥이들이 더 질문하려는 걸 차단하고 빠르게 보고서 작성에 매진했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10분가량. 그 이후는 발표 시간이었다.
생각보다 빡빡해진 일정에 조급해진 학생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도 실험이 덜 끝나서 우왕좌왕하는 애들부터, 실수로 용액을 바닥에 쏟아버린 학생들까지.
‘학원에서 받아온 자료는 어디까지나 자료였을 테니까. 실제 실험을 하면서 예상 못 한 변수들도 일어났겠지.’
세상은 변수의 집합체이다. 아무리 철저하게 준비를 했어도 그걸 가볍게 코웃음 치며 엎어버린다. 눈앞의 학생들은 그런 변덕스러움을 온몸으로 경험하고 있는 중이었다.
탁.
마지막 결론까지 작성한 뒤, 실험 후기도 간단하게 적었다. 실제 보고서라면 후기 같은 건 없겠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교육을 목적으로 한 보고서니까.
시간 내에 보고서 작성을 완료하고 칠판에 적혀있는 김영환의 이메일로 전송했다. 모든 걸 마친 후, 우리는 한시름 놓았다.
“와, 실험이 이렇게 빡센 거였냐?”
“이렇게 긴장하면서 실험한 적은 처음이야.”
쌍둥이들이 한마디씩 하고 있는데, 나는 스트레칭을 하며 물었다.
“그럼 발표는 누가 할래? 하고 싶은 사람 있어?”
내 말에 이인성이 쭈뼛거렸다. 뭔가 말하기 민망한 듯 내 눈치를 살피는 듯했다.
“이인성 너가 할래?”
“그, 그래도 돼?”
이번 수행평가는 조별로 진행된다. 하지만 개별 평가도 함께 진행되기 때문에 자신이 맡은 역할을 얼마나 충실하게 했는지도 평가에 들어갈 터였다.
실험 결괏값 측정 및 정리는 이인영
보고서 작성 및 실험 총괄은 나.
이인성이 애매하게 남아버렸다.
“근데 뭔가 이렇게 발표로 낼름 먹기엔 양심이 찔린다고 해야 하나… 솔직히 옆에서 버스 탄 것 같은데.”
머쓱해하는 이인성을 보며 나는 전생을 떠올렸다.
R&E는 과고 학생 전부가 의무적으로 참가하는 만큼 주제들이 겹치기 마련이다. 각자의 주제는 비슷할지라도 그걸 얼마나 효과적으로 간결하고 논리적으로 설명하느냐의 문제.
R&E 발표식 날. 모두의 시선을 끈 한 학생이 있었다.
최우수상을 받은 이인성의 팀. 이인성은 전교생이 모여있는 곳에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발표를 시작했다. 평소엔 한없이 가벼운 모습이지만 중요한 자리에서는 진지하게 임하는 녀석인 만큼, 발표는 완벽했다.
이인성에게 발표를 맡긴다면 팀 전원이 이득이다. 물론 내가 발표를 한다면 이인성과 비슷하게, 혹은 조금 더 우세하게 발표를 할 수도 있을 터였다. 지금까지 짬밥이 있으니.
하지만 그건 대학원생 수준이었다.
‘과연 내가 고등학생 수준에 맞춰서 잘 설명을 할 수 있을까?’
대학원을 다니면서 알게 된 건, 사람은 그 분야에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쉽게 말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마치 수학을 배울 때와 같다.
자연수를 배우던 시절엔 음수라는 건 생각조차 할 수 없고.
실수를 배우는 시절엔 허수라는 건 생각할 수 없다.
그렇게 점점 확장되는 개념에 나는 어디까지 말해도 좋을지에 대해 망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인성에게 좀 더 많은 기회를 주고 싶었다. 그가 전생때와 같이 의대로 간다면 어쩔 수 없지만, 그가 좀 더 과학자로 남길 바라는 건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바람이었다.
“나는 보고서 작성, 인영이는 실험 데이터 측정 및 정리, 너는 발표. 이렇게 하면 역할 분배도 딱이고 팀 점수도 잘 받을 것 같은데? 한 명이 몰빵하는 것보다 이게 더 안정적이잖아.”
“그렇게까지 말해준다면야… 고맙다. 그 대신 완벽하게 발표할게.”
살짝 감동 받은 이인성이 의지를 불태웠다.
그렇게 시간이 다 흐르고, 김영환은 실험을 멈췄다. 보고서 작성을 마무리 못한 팀은 자동으로 감점이 되었다.
“자, 그럼 제일 먼저 보고서를 보낸 팀부터 해볼까?”
김영환의 호명에 단발머리를 한 여자애들이 쪼르르 앞으로 나왔다. 이인영과 같이 지냈다던 무리였다.
과일과 야채에 들어있는 산성, 염기성을 분석해 중화반응을 이끌어낸다는 건데…
‘저게 가능한가?’
사용된 재료는 딸기와 양파였다. 그런데 딸기와 양파는 산과 염기의 성질이 강한 녀석들이 아닐뿐더러 복잡한 구조로 이루어진 유기 화학물. 저렇게 단일적으로 그래프가 나온다는 게 말이 안 되었다.
‘딱 봐도 학원에서 던져준 실험들로 한 거구만.’
하지만 해도 해도 너무했다. 돈 받고 주는 자료인데 저렇게 구멍 난 자료들을 준다고? 김영환도 실험 보고서를 보면서 이상함을 느낀 것 같았다.
“이상 팀장 박은지, 팀원 김이진, 이시영의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그렇게 얼렁뚱땅 실험이 끝났고, Q&A 시간이 주어졌다. 그러나 학생들은 단합이라도 한 듯이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압박. 상생을 위해 서로서로 눈치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여기 있는 대부분이 저 실험이 잘못된 걸 알고 있다. 심지어 발표를 맡은 박은지도 결과를 해석할 때는 유달리 실수도 많이 하고 말도 엉켰다.
본인도 알고 있는 거다. 이 실험이 얼마나 터무니없었는지를. 아마도 속으로 엄청나게 원망하고 있을 거다. 학원을, 혹은 학원에 의존한 자신을.
여기서 질문을 하는 순간, 사실상 전쟁 선포이다. 질문을 한 자는 자신의 시간 때 질문이 들어올 것을 각오해야 한다.
그래서 다들 질문하지 않는다. 좋게 좋게 넘어가는 것이다. 이렇게 끝내면 박은지네 팀도 점수를 받을 거고, 자신들에게도 질문이 들어오지 않으니 좋게 끝날 확률이 컸다.
하지만 과연 그게 옳은 것인가?
배우기 위해 온 학교에서, 틀렸단 걸 알면서도 점수를 위해 그냥 넘어가는 것이?
하지만 쉽사리 손을 들지는 못했다.
지금 여기서 손을 들어 박은지의 잘못을 말하는 건,
전생의 내가 했던 행동과 다를바 없을테니까.
‘실험 결과가 잘못된 것 같은데요. 데이터 조작 같은데 부정행위 아닌가요?’
‘선생님, 누가봐도 대필한 보고서인데 그냥 넘어가실 겁니까?’
‘실격처리 안해주시면 교육청에 신고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로지 내 이득을 위해 했던 말들. 그 내용이 잘못된 것들은 없었지만 방식과 태도에는 문제가 있었다. 더군다나 지금 발표한 학생은 끽해야 이제 고등학교에 들어온 학생.
잘잘못을 따지더라도 방식과 절차는 필요한 법이었다.
“질문이 없으시면 이만 마치도록…?”
마음속으로 결정을 내린 나는 손을 들었다. 당황한 박은지의 표정과 함께 학생들의 시선이 내 쪽으로 쏠렸다. 금기를 깬 녀석이 누구인지, 잠재적 적이 누구인지 확인하듯 표정이 다들 살벌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넘어갈 순 없었다.
전생이랑 다른 삶을 살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해서,
잘못된 걸 보고 그냥 넘어가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한 건 아니었으니까.
“정말 실험 결과가 저렇게 나온 게 맞는지 묻고 싶습니다.”
실험 결과를 조작하는 건 과학자라면 절대 해서는 안 될 짓이다.
차라리 조롱을 받을지언정 자신의 이론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발전이 있을 테니까.
미래의 과학자가 잘못된 길을 가지 않도록, 미리 바로잡아줄 필요가 있었다.
다만 그 방식을 조금 다르게, 약간만 틀어볼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