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141)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141화(141/221)
141. 천재 (1)
141. 천재 (1)
“하아···어떻게 된 거야?”
긴 한숨을 내쉬며 묻는 최한별. 새벽 2시에 갑자기 깨웠으니 짜증이 날 만도 했지만, 그녀는 최대한 차분한 목소리로 되묻고 있었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문에 귀를 댔다. 더 이상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걸 확인한 나는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건의 발단은 간단했다.
생물 올림피아드 실험 시험을 치르고 난 다음 날. 우리 팀을 비롯해 다른 나라의 팀에도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이제 한 시험만 앞두고 있는 상황이라 그런 걸까, 아니면 생물 올림피아드 문제 유형이 어느 정도 정해진 상태라 그런 걸까 아이들은 많이 들뜬 상황이었다.
‘김만덕? 어라, 나 그 이름 들어본 적 있는 것 같은데···. 잠깐만.’
‘유도만능줄기세포? 맞지? 그때 그 줄기세포 포럼에 나왔던 애 말이야!’
‘말도 안 돼! 그 애가 너라고? 근데 대체 왜 여기에 있는 건데?’
뜨거운 반응.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이미 화학 올림피아드 때 경험해 본 적도 있었고, 어디를 가나 이런 반응을 봐왔던 탓일지 나도 적응이 된 상황이었다. 인간에게 적응은 필수니까.
그래, 그 적응 때문에 하지 않아도 될 일까지 해버렸다.
‘우선 네 몸에 있는 피부세포를 채취한 후에 배양하는 과정이 필요해. 배양 배지로는 보통 DMEM을 사용하는데···.’
같은 생물학도라는 유대감 때문일까, 아니면 전문적인 용어를 사용해도 ‘어! 나 그거 뭔지 알아!’ 하고 찰떡같이 알아듣는 녀석이 있어서일까, 화학 올림피아드 때와는 다르게 좀 더 실험과 관련해 깊은 이야기들을 진행했다.
‘그럼 유도만능줄기세포로 만들려면 형질을 전환하는 건 필수라는 거네?’
‘응. 그때 보통 Oct3/4, Sox2, Klf4, c-Myc 이 네 개의 인자를 사용해.’
‘그런데 그걸 어떻게 세포에 투입하는데?’
‘좋은 질문이야. 보통 레트로바이러스나 렌티바이러스라고 불리는 바이러스를 이용하는데, 왜 바이러스를 사용하는지는 알고 있지?’
‘바이러스의 경우엔 세포를 숙주를 이용해서 자기 유전인자를 복제하니까?’
척하면 척하고 답이 오는 게 은근히 쾌감이 있었다. 질문이 오가는 과정에서 뭔가 지금까지 연구가 정리되는 느낌도 있었고.
하지만 크리스 교수나 케빈, 로버트와 이야기할 때와는 확실히 다르게 느껴졌던 건 따로 있었다.
‘우와아아아!!’
‘아니, 진짜 어떻게 이런 실험을 할 수 있어?! 한국에서는 학생들이 이런 실험도 진행할 수 있게 하는 거야?’
‘바보야, 만덕이는 지금 하버드에 있잖아. 천재여서 하버드에서 일찌감치 데려간 거라고!’
‘납치당한 거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오는 이 반응···! 초롱초롱한 눈으로 궁금한 걸 물어보는 모습이 자꾸만 대화하게 했다.
지금까지 “뭐”, “어쩌라고”, “지X.”만 말하던 곽진환과, “응, 네 이론 이상해~”, “넌 뇌가 없어?”, “미X놈.”을 입에 달고 살던 이재성과는 너무도 다른 반응이었다.
그러니 이런 순수한 생물학도들과 잠시 이야기를 해도 괜찮은 거···아닐까? 지난날의 보상으로 말이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다. 순수한 눈으로 질문하던 학생들의 눈이 점점 변해갔다.
‘그럼, 그럼 만약에. 나중에 인간의 뇌를 컴퓨터가 대체하는 날이 올까? 영화에 나온 것처럼 말이야!’
‘나는 인공 장기가 제일 궁금해. 나중에는 장기도 공장에서 찍어낼 수 있지 않을까?’
‘저기, 인간이 화성에 살 수 있을까?’
앞에서 생물학도들의 기대 어린 질문들을 다 받아줬던 것 때문일까, 지금으로선 실현 가능성이 없는 질문에 쉽게 답해주지 못했고,
“그러니까 된다고 답해줬을 뿐인데 어느 순간부터 광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된다고 말한 건 아니었어, ‘언젠가는···?’ 이라고 말했을 뿐이었다고···.”
“…알았어. 그럼 언제까지 여기 있을 건데?”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문을 살짝 열고 복도를 바라봤다. 학생들 몇 명이 무리 지어서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론시험 모르는 것도 만덕이한테 물어보자!”라고 이야기하면서.
탁. 문을 닫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최한별은 살짝 두통이 오는지 미간을 좁히더니 시계를 가리키며 말했다.
“…내일 시험도 있어서 오래는 안 돼. 한 시간 뒤엔 나가줘.”
“응, 응. 한 시간이면 쟤네도 방으로 돌아갈 거야.”
설마 내일이 이론 시험인데 계속 이러겠어? 하하···. 나는 멋쩍게 웃었지만 불안한 마음은 여전했다. 최한별은 그런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학교 밖으로 피신해 있는 게 나았나. 하지만 새벽에 혼자 밖에 있는 건 아무래도 위험할뿐더러, 밖이라고 안전하다는 보장은 없었다.
최한별의 시선에 조금 어색해진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책상에는 [국제생물올림피아드 예상 문제] 라고 적힌 교재가 펼쳐져 있었다.
“공부하고 있었나 보네?”
“응. 아무래도 내일이 시험이니까.”
“음, 그럼 내가 도와줄까?”
자고 있을 줄 알았는데 공부하고 있었다니. 개인적으로 자는 애를 깨우는 것보다 공부하는 애를 방해한 게 더 죄책감이 컸다. 졸리는 걸 이겨내면서 공부하던 상황일 테니까.
그러나 최한별은 내 말에 고개를 젓더니 책을 덮었다.
“어차피 이제 슬슬 자려고 했었어. 보시다시피···안 될 것 같긴 하지만.”
“진짜 미안. 한 시간, 아니 30분만 있다가 나갈게.”
“미국 생활은 어땠어?”
“어?”
그 순간, 최한별이 덤덤하게 내게 물어왔다. 침대에 걸터앉은 그녀는 책상 의자를 내게 가리켰다.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았다.
그녀는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괜히 목덜미가 가려워서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엄···좋았어. 교수님도 좋았고, 실험도 재밌었고.”
“학생들은? 유학생이라 힘든 건 없어?”
“아직은? 정식 입학은 9월이라서 수업도 듣고 싶은 거만 청강하고 있거든.”
“그렇구나.”
담백하게 답하는 최한별. 이로써 대화가 끝이 났다.
“여전히 치매 연구는 계속하고 있고?”
끝이 난 줄 알았는데, 최한별은 대화를 계속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게 내가 아는 최한별은 누구한테 말을 먼저 거는 애가 아닌데?
‘아. 달라진 건가.’
‘내가 아는’ 최한별은 어디까지나 전생의 최한별이다.
그리고 전생의 나는 최한별과 거의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없다.
즉, 나는 최한별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없다. 성격도, 취미도, 그 무엇도.
“응. 치매 연구하러 하버드에 간 거니까.”
“그렇구나. 그러면 거기서 치매 관련된 수업을 듣는 거야?”
“수업보다는 교수님이랑 같이 실험하는 쪽이지. 아, 물론 9월부터는 수업을 다 들어야 하기는 하는데–”
새벽, 나는 최한별이 묻는 말에 하나씩 대답해 주기 시작했다. 그녀는 학교생활이나, 교수님들에 대해 이것저것 물었고, 우리는 친구끼리 대화하듯 편안하게 말을 이어갔다.
“치매가 진짜 치료되는 날이 올까?”
“응. 꼭 올 거야.”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작게 웃으며 이야기하는 최한별. 전생의 최한별과 지금의 최한별이 다르다는 생각이 한번 들었다. 뭔가 마음속 벽이 하나 허물어진 듯한 느낌.
최한별은 뭔가 고민하는 듯하더니 망설이듯 천천히 말을 꺼냈다.
“예전에 아버지도 치매 연구를 하셨던 적이 있으셨대.”
“어?”
“그런데 그게 잘 안되었나 봐. 그 과정에서 좀 힘든 일도 있으셨던 것 같고.”
덤덤하지만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는 그녀. 이야기하는 중에도 내 눈치를 살피는 것 같았다.
최한별의 아버지, 최강석. 한국에서 뇌와 관련된 연구는 그를 거쳐 갈 정도로 그는 의사로서도, 학자로서도 명성이 높았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연구하기로 마음먹으셨나 봐. 너에 대한 기사도 많이 찾아보시는 것 같고.”
“…나?”
“응. 가끔 나한테 너에 관해 묻기도 하셔.”
최강석에게 무슨 심경의 변화가 생긴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나쁜 소식은 아니었다.
이제 앞으로 내가 해내야 하는 과제 중 유전자 편집과 관련한 부분은 그에게 조언을 구할 수 있다는 소리기도 했으니까. 어떻게 되었든 불호에서 호로 넘어간 건 좋은 소식이었다.
조금 표정이 풀린 걸 눈치챈 걸까, 최한별이 싱긋 웃었다.
“나중에 기회 되면 집에 데려오라고도 하셨어. 물어볼 게 있다고.”
“하하…집까지는 좀.”
“왜? 전에 오기로 했잖아.”
? 내가 언제? 기억이 조작되는 듯한 화법이었지만 그녀는 더 묻지 않고 웃을 뿐이었다.
…자꾸 웃지마라. 정든다. 나는 괜히 시선을 피한채 어색하게 있었고 최한별은 슬슬 잠이 오는 듯 작게 하품을 했다.
벌써 시계를 보니 약속했던 시간을 훌쩍 넘긴 상태였다.
“미안. 너무 오래 있었네. 내일 시험이니까 얼른 자.”
“응. 덕분에 나도 재밌었어.”
그렇게 문밖을 나가려는데, 최한별이 문까지 따라나왔다. 다시 한번 문 너머에 귀를 대고 상황을 살폈다.
좋다, 아무도 없군. 그렇게 문고리를 돌리는 순간,
“?”
최한별이 내 옷깃을 잡아당겼다. 그녀가 물끄러미 나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내년에 나도.”
“응?”
“나도 하버드대에 가게 되면···.”
무슨 말을 하려고 저렇게 뜸을 들이는 거람.
‘지금 아니면 나갈 타이밍 놓칠 것 같은데.’
내 신경은 온통 복도에 사람이 있냐, 없냐에 쏠려 있었기에 최한별이 무슨 말을 하는지 신경 쓸 수가 없었다.
복도에 아예 사람이 없는 것 같진 않은데, 아까 그 녀석들 목소리랑은 또 다른 것 같기도 하고···?
“…알았지?”
“어?”
“못 들었어?”
“어…아니?”
“…못 들었다고?”
“아니. 들었어. 그러자. 응응.”
분위기상 그렇다고 대충 얼버무리며 답했는데, 최한별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지금까지 표정의 큰 변화가 없던 애였는데. 이렇게 활짝 웃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약속이야.”
“어? 약속까지 해야해?”
“…”
“아냐, 약속하자. 약속.”
얼떨결에 그녀의 손을 잡아서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갑자기 손이 닿자, 최한별이 살짝 움츠러들었지만, 큰 저항 없이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약속, 약속! 나는 손을 두어 번 흔든 뒤, 최한별을 향해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다행히도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안 보였다.
‘…왜 갑자기 얼굴이 빨개지고 그러냐. 사람 무안하게시리.’
나가기 전, 빨갛게 달아오른 최한별의 모습이 머릿속에 자꾸만 아른거린 탓일까, 괜히 나도 더워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나는 서둘러 방으로 들어갔고, 결국 방 안에서 잠복하고 있던 광신도들에게 붙잡혀 밤새 추앙 비슷한 무언가를 받으며 보냈다.
그렇게 생물 올림피아드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
“결국 김만덕 학생이 해냈군요.”
“네. 화학과 생물 모두 금메달, 게다가 전원 금메달입니다.”
“두 과목 모두 국가 1위라···심지어 김만덕 학생의 생물 올림피아드 개인전 성적은 어떻게 되나요?”
“1위입니다.”
최근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한학수는 국제생물올림피아드 결과 보고를 듣고 있었다. 화학 올림피아드 때처럼 이번에도 생물 올림피아드에 참가하고 싶었지만···그는 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훗날 미래의 인재들을 위해 해 두어야 하는 작업이.
“이론 시험에선 몇 위였지요?”
“…1위입니다.”
“하하, 역시 시험에 강한 학생이군요. 그럼 실험은 어떻게 되는지요?”
“……1위입니다.”
“음?”
한학수가 보고서를 넘기다 말고 한국 생물 올림피아드 위원장을 바라봤다. 위원장 역시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좋을지 난감하다는 표정이었다.
“이론 1위, 실험 1위로 종합 1위입니다.”
다시 한번 말하는 위원장의 말에 한학수가 크게 웃기 시작했다. 얼마나 크게 웃었는지 그의 의자가 뒤로 자칫 넘어갈 정도로.
국제 생물 올림피아드 주최 측에서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당황한 모습이었다. 이론 시험 1위를 호명할 때 나왔던 학생이 연달아 2개의 명패를 다 받아 갔으니까.
“하하, 정말이지 늘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오는 학생입니다. 그나저나 인터뷰한 기사는 따로 없나요? 그 현장에 없었던 게 이렇게나 아쉬울 줄이야.”
“영상은 없고 신문이라면···”
위원장의 손에는 이미 신문 한 부가 들려있는 상황이었다. [국제생물올림피아드 ‘한국 종합 1위’ 금메달 4개 획득] 이라는 기사가 있는 부분을 펼쳐서 한학수에게 내밀었다.
한학수는 말없이 기사를 읽더니 한 부분에서 저도 모르게 허!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종합 1위라는 쾌거를 이룬 김만덕 학생(한국과고2)은 “과학창의재단의 후원이 없었다면 금메달 수상은 어려웠을 것.”이라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힘써주시는 모든 분께 보답할 수 있도록 더욱 열심히 노력하겠다.”라고 소감을 밝혔다.]“정말이지···.”
가만 보면 사회생활을 잘한단 말이지, 라고 중얼거리던 한학수의 입가엔 미소가 걸려있었다.
*
[너 한국과고 2학년 아니잖아! 자퇴생이잖아!]“접수할 때 한국과고 신분이어서 저렇게 올라갔나 봐. 뭐, 상관은 없으니까.”
[크으, 타고난 천재에 노력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공을 다른 사람의 덕으로 돌려버리는 킹만덕···. 그의 겸손은 어디까지인가?]한가로운 오후, 나는 생물 올림피아드 관련 기사를 읽으며 쌍둥이들과 통화를 하는 중이었다.
겸손이라. 딱히 겸손을 떨 생각으로 한 말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전생에 이미 다 봤던 내용이어서요.”라고 할 수도 없을뿐더러 “쉽던데요?”라고 말하는 건 재수 없으니까.
‘2만 달러도 받았는데 이 정도쯤이야, 뭐.’
실제로 한학수의 도움이 없었으면 두 대회를 모두 출전하는 것도 어려웠을 테니 말이다. 그렇게 쌍둥이들은 한껏 흥분한 목소리로 신문 기사를 육성으로 읽어줬고, 이제 이런 것에 내성이 생긴 나는 아이스티를 홀짝이며 ‘김만덕 천재 최고 짱!’이라고 쓰인 내용을 흘려보냈다.
나는 아무렇지 않다···나는 아무렇지 않다···부끄러움은 나의 몫이 아닌···
[그럼 짐은 다 챙겼어?]“응. 어차피 집이 근처니까 필요한 거 있으면 왔다 갔다 하려고.”
[와, 그냥 집에서 다니면 안 돼?]“의무여서 어쩔 수 없어.”
집이 코 앞이어도 기숙사 생활을 해야 한다니···라며 이인성이 중얼거렸다. 그렇게 쌍둥이들과 통화를 마친 나는 벽에 걸린 달력을 향해 걸어갔다.
두둑, 소리를 내며 ‘8월’이라고 적힌 달력이 뜯어졌다.
“내일이구나.”
드디어 정식으로 하버드대생이 되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