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142)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142화(142/221)
142. 천재 (2)
142. 천재 (2)
미국 대학의 시스템은 한국과는 조금 달랐다. 신입생 중 대부분은 전공을 정하지 않은 상태로 들어왔고, 보통 2학년이 되면 전공을 정하곤 했다.
그렇기에 1학년들은 비교적 자유롭게 수업을 들을 수 있었고, 최대한 다양한 분야를 들어보려고 애쓰는 듯했다.
물론 난 한 길만 팔 거지만.
‘오···그러니까 지금 이 강좌를 듣고 싶다는 말인가요?’
신입생은 강좌와 관련해 진로 상담사와 상담해야 했다. 신입생 적응을 위한 일종의 안내랄까.
빨간색 안경이 인상적인 상담사 도나가 미간을 좁히며 종이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Cellular Metabolism and Human Disease, 즉 ‘세포 대사와 인간 질병’이라고 쓰여있었다.
강의 설명에 적혀있던 ‘유전적 및 후천적 대사 질환에 대해 더 깊게 알아볼 예정.’이라고 적힌 문구에 홀리듯 클릭했었다.
‘만덕 학생이 생물학에 대해 얼마나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지는 충분히 이해했어요. 신입생이면 학구열에 타오를 시기이기도 하죠. 하지만 곤란해요.’
‘들을 수 없는 건가요?’
‘아뇨, 들을 수 있어요, 들을 수는 있지만···’
그녀는 강의 계획서 밑에 강조되어 있는 부분을 가리켰다.
‘입문 생화학, 유전학 및 세포 생물학에 대한 지식 필요.’
도나는 마치 어린아이를 달래듯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 수업을 들으려면 1년 코스였던 유기 화학 강좌를 우선 이수하거나 관련 강의를 적어도 2개 이상은 이수한 기록이 있어야 해요.’
‘하지만 여기에는 지식이 필요하다고만 되어 있는데요?’
‘필요한 지식을 갖추고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 할 다른 방도가 없으니까요.’
필요한 지식이라. 입문 생화학과 세포 생물학 수업은 학부생 때 들었었고, 유전학 부분은 대학원 때 이미 수강했었다.
물론 한국에서 들은 거라 과정이 다를 순 있겠지만···내용이 다를리는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럼 전에 들었던 기록이 없으면 이 수업은 아예 들을 수 없는 건가요?’
‘물론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닌데, 힘들 거예요. 강의 교수님의 허락이 있어야 하거든요.’
‘그렇다면···’
‘하지만 미리 말하지만, 이 수업은 소수 정원 수업이에요. 한마디로 토론식 수업이 주가 된다는 소리죠.’
도나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자칫하면 열의 넘치던 신입생이 수업에서 아무 말도 못하는 경험을 겪고 학교 부적응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으니까.
특히나 아시아계 학생의 경우 이런 토론식 수업에 익숙하지 않았고, 실제로 대부분이 이런 이유로 수업을 중간에 드랍 하곤 했다.
하지만 그런 건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았다. 적어도 나한테는.
“반갑습니다. 이번 강의를 맡게 된 존 마르셀입니다.”
소규모 강의실. 나를 포함한 학생은 약 6명 정도. 그는 출석부 명단을 한번 확인하더니 이윽고 나를 발견했다.
미세하지만 그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제 수업을 듣고 싶다는 건가요? 이제 막 입학한 1학년이?’
‘네. 꼭 듣고 싶습니다.’
‘물론 김만덕 학생에 대한 소문은 교수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편이라 알고 있습니다만, 수업은 또 별개의 문제입니다.’
도나와의 상담이 끝나고 마르셀의 연구실로 향했고, 내 이야기를 들은 마르셀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아밀로잽과 줄기세포 자체는 뛰어난 업적이 맞다, 하지만 이 수업은 원래 의과 대학에서 진행된 걸 옮겨온 거라 환자 케이스 분석 위주로 갈 것이다, 아직 대학 수업에 익숙하지 않은 상태에선 따라오기 힘들 것이다, 등.
‘수업에 폐가 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알았습니다. 그 대신 수업을 듣다가 따라오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언제든 드랍하세요. 수강 정정 기간이 있으니까요.’
그는 결국 내 고집에 두 손을 들었다. 그렇게 힘들게 얻어낸 강의. 꽤나 떨리는 마음으로 자리에 앉아 그를 바라봤다.
하버드대에서의 첫 강의는 과연 어떨까, 하며 설레는 마음은 잠시.
“세포 대사의 기본 원리가 무엇입니까?”
그는 바로 수업을 시작했다. 그것도 나를 바라보면서.
‘…일종의 시험인 건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 그들은 이런 분위기에 익숙한 것 같았다.
그들은 나를 신기한 생물체를 보듯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다고 유명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아니었다. 물론 내가 최근 들어 유명해진 건 맞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나를 아는 건 아니었으니까.
그들은 그저 새로운 사람, 그것도 꽤 어려 보이는 동양인 학생의 등장에 신기해할 뿐이었다.
“세포 대사는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세포 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화학적 과정을 포함합니다.”
“모든 화학적 과정이란 말이 모호하군요.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 보도록 하세요.”
“…분자를 분해하여 에너지를 생성하는 이화 작용과 단순한 분자에서 복잡한 분자를 만드는 동화 작용이 있습니다. 또한 영양소를 에너지로 전환 후 다양한 세포 과정에 사용하며 노폐물을 제거하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마르셀 교수는 내 대답을 듣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러더니 앞자리에 앉아있던 여학생을 바라봤다.
금발 머리가 인상적인 여학생은 빠른 어조로 답했다.
“이화 작용의 정의는 세포 내에서 분자를 분해하여 에너지를 생성하는 과정입니다. 예를 들어, 글리콜리시스(glycolysis)는 포도당을 분해하여 ATP를 생성하는 대표적인 이화작용입니다.”
“동화 작용은요?”
“동화작용의 정의는 단순한 분자들로부터 필요한 복잡한 분자를 합성하는 과정입니다. 예를 들어, 광합성은 태양 에너지를 이용하여 이산화탄소와 물을 포도당과 같은 복잡한 유기 화합물로 전환하는 과정이 있습니다.”
깔끔하게 떨어진 설명. 마치 기계가 대답하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마르셀과 여학생은 한번 나를 흘끗 보더니 이내 시선을 돌렸다.
나는 손가락으로 책상을 톡톡 두드렸다.
‘흠···그래도 내 설명이랑 크게 다른 건 없는 것 같은데 말이지.’
이 사람들이 굳이 자기 지식을 자랑하려고 저렇게 이야기했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애초에 여기는 고등학교도 아닌 대학교니까. 게다가 하버드, 이미 그런 싸움이 부질없음을 깨달았을 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가 됐든 저렇게만 말하면 된다는 거니까.
원래 처음이 어렵지, 그다음은 쉬운 법이다.
“자, 하나 더 질문해 보도록 하죠. 대사 경로상의 장애가 어떻게 질병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마르셀 교수는 다시 한번 내게 물었다. 이번에는 앞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 나를 보지 않았다. 내가 ‘제대로 된’ 답을 할 거라 기대하지 않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런 기대는 곧 깨질 테지만.
“대사 경로상의 장애는 크게 효소 결핍, 유전적 변이, 영양소 불균형, 독소 및 약물에 의한 장애 등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장애가 발생하면, 정상적인 생화학적 반응이 장애를 겪고 질병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흠···앞은 잘 설명했지만 뒷부분이—”
“—예를 들어, 효소 결핍으로 인한 페닐케톤뇨증은 페닐알라닌의 이상 축적을 초래할 수 있고 이 경우, 뇌 발달 장애와 같은 심각한 건강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설명에 마르셀 교수가 잠시 벙찐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앞에 앉아있던 사람들도 몸을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또한 유전적 변이와 관련된 대사 장애의 예로는 알츠하이머가 있습니다. APOE 유전자 변이는 뇌 안의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의 축적을 촉진하여 신경세포의 기능 장애와 손상을 유발합니다. 그리고 이는 기억력 감소, 인지능력 저하로 이어집니다.”
나는 최대한 앞의 여자가 답변했던 대로 이야기했다. 정의와 예시를 들어 설명하는 패턴.
···물론 내가 알고 있는 건 뇌와 치매와 관련된 것밖에 없다. 애초에 내가 대학원을 다니고 연구를 했다고 해서 모든 질병에 대해 아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그거면 충분했다. 뇌 하나만으로도 하루 종일 떠들 수 있을 정도의 무수히 많은 질병과 작용들이 존재했으니까.
“…훌륭하군요.”
마르셀 교수가 떨떠름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후 그는 더 질문을 하지 않고, 강의 계획서상에 나와 있는 내용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시험 일정이나, 과제 제출 등 일상적인 수업 내용들을.
일단 통과한 거겠지? 부디 다른 수업들은 이렇지 않길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모든 수업이 이렇게 긴장감이 흐른다면 분명 금방 지칠 테니까.
“오늘 수업은 이 정도로 하겠습니다. 김만덕 학생은 수업 끝나고 잠깐 기다리세요.”
첫날인 만큼, 마르셀 교수는 수업을 일찍 마쳤다.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난 강의실. 마르셀 교수는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혹시라도 당황했었다면 미안합니다. 하지만 앞으로 매 수업이 이렇게 진행되는 만큼 어느 정도 알려 줄 필요는 있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조금 당황하긴 했지만 괜찮았습니다.”
“후후, 적응력이 뛰어난 학생이군요.”
마르셀 교수는 ‘알려 줄 필요’가 있어서 그랬다고 했지만, 글쎄. 진짜 이유는 마르셀 교수만 알고 있을 터였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고, 그는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아까보다는 확실히 부드러워진 분위기에 그가 다시 말을 꺼냈다.
“이 수업은 들어도 좋습니다. 보아하니 뇌 쪽에 관심이 많은 학생인 것 같군요.”
“네. 정확히는 치매 분야입니다.”
“어려운 길을 정했군요. 뭐, 아직은 젊으니까 문제는 없을거라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짧게 인사를 한 후, 슬쩍 시계를 바라봤다. 한시라도 빨리 이 강의실을 빠져나가야 할 것 같은 느낌. 물론 이 뒤에 수업이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내 데이터가 맞다면, 그리고 이 분위기, 이 대화의 흐름, 이 모든 게 내가 생각하는 게 맞다면···!
“따로 생각해 둔 진로가 있습니까?”
“…예?”
“사실 아직 만덕 학생에 대한 기사를 제대로 안 읽어본 상태여서요. 따로 전공이나 진로를 결정해 둔 건지 궁금해서 말입니다. 치매 쪽이면 의대 희망인가요?”
하하…나는 멋쩍게 웃었다. 최대한 어색하게.
역시 이 느낌은 틀리지 않는다. 마르셀 교수는 마치 면접을 보듯 내 진로에 대해 물었고 쓸만한 인재를 노리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연구원 쪽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그러면 신경과학 쪽 연구원이 될 가능성이 높으려나요?”
“아직 구체적인 곳을 딱 정해놓은 건 아니지만···치매 치료제 개발이 가능한 쪽으로 가려고 합니다.”
실제로 아직 유전자 편집에 대한 연구도, 줄기세포에 대한 연구도 잠시 멈춘 상황이었다. 지금은 무작정 연구에 뛰어드는 것 보단 좀 더 멀리 볼 필요가 있었다.
‘캘리포니아 대학으로 온다면 좀 더 자유로운 환경에서 연구를 진행할 수 있을 겁니다.’
···실제로 생물 올림피아드 때 맥이 했던 이야기도 있고. 무턱대고 연구를 시작했다가 끝날 때까지 몇 년이 더 걸릴지 알 수 없는 상황.
지금까지는 운이 좋아서 금방 결과가 나왔지만, 앞으로 남은 과제들은 적어도 3년 이상은 붙잡고 있어야 하는 연구들이었다.
‘…3년은 무슨, 어쩌면 10년을 넘길지도 모르지.’
생명과학이라는 분야가 아직 개척되지 않은 데에는 이러한 이유도 있었다. 변수가 많고, 무엇보다 실험으로 삼을 수 있는 대상은 한정되어 있었다. 실험을 진행하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과정도 만만치 않았고.
그렇지만 인간과 가장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학문이기도 했다.
내 이야기를 들은 마르셀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만약 생물학과 관련된 연구를 진행할 생각이라면 의학 계열로 넘어오는 게 연구하는 건 더 편할 겁니다.”
“네?”
“도만 넘지 않는다면 이쪽은 안전지대니까요.”
안전지대? 미간을 좁히자 마르셀이 웃으며 말했다.
“과학자가 뇌 실험을 위해 대상자를 모집한다는 말은 좀 무섭게 느껴지지만···의사가 뇌 질병 환자를 대상으로 치료를 진행한다는 말은 믿음직하게 들리니까요.”
“…제가 들을 때는 둘 다 같은 것 같은데요?”
“후후, 그건 이미 만덕 학생이 연구원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있어서 그런 겁니다.”
좀 더 일반인의 눈으로 바라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라고 마르셀은 의미심장한 말로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그렇게 첫 수업을 마무리하고 기숙사로 향하는 길, 어째서인지 마르셀의 말이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연구원의 입장이라···.’
생각해 보면 전생 때 한국에 있으면서도 연구실에서 실험 대상자를 모집하는 건 매우 힘든 일이었다. 약물 치료나 임상 실험처럼 절차가 복잡하고 많은 검증을 거쳐야 하는 실험이 아닌 평범한 분석 위주의 실험이었는데도 말이다.
게다가 내가 하던 연구가 사람에게 직접 실험하는 단계까지 가본 적이 없었으니···이쪽 세계에 대해 무지했다.
‘…아직 배워가야 할 게 많네.’
비단 학문적인 것 말고도 사회적인 부분도 알아가야 할 게 많았다. 과거로 회귀해 왔어도 이미 많은 부분이 달라진 상황이었으니까.
그렇게 살짝 부담감을 가진 채 기숙사에 도착했다.
앞으로 적어도 한 학기 동안 지내게 될 제2의 집. 나는 곰곰이 지난날의 기억을 떠올려봤다. 과학고와 올림피아드 캠프 기간 같이 생활했던 룸메이트들의 얼굴이 지나갔다.
나···룸메이트 뽑기 운이 좋았던가···?
그렇게 불안함 98%와 미약하지만 약간의 설렘 2%인 마음으로 기숙사 문을 열었고,
“어, 너는···!”
현관에 서 있던 룸메이트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