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143)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143화(143/221)
143. 천재 (3)
143. 천재 (3)
“엘리엇?”
“반가워. 만덕.”
신입생 환영회 때 봤던 정장남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정장이 아닌 평상복을 입은 엘리엇.
그는 편한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내게 인사를 했다.
“왜 그렇게 놀라? 룸메이트 명단은 사전에 공지되었잖아?”
“바빠서 확인을 못 했거든.”
“흐음, 그럼 무브 인 데이(Move-in Day)때 오긴 했었고?”
무브 인 데이. 쉽게 말하면 신입생들이 기숙사로 짐 옮기는 날이다.
어차피 집이 코 앞이었기에 나는 기숙사 등록만 한 뒤, 집에서 쉬는 중이었다. 굳이 편한 집 놔두고 미리 단체 생활을 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오긴 왔었어. 등록만 하고 집으로 가서 그렇지.”
“뭐, 집이 근처면 그럴 수도 있겠네. 일단 들어와. 안 그래도 다른 룸메이트는 이미 다 짐 푼 상태거든.”
엘리엇은 자연스럽게 내부로 안내했고, 마치 집주인의 소개를 받듯이 나는 안으로 이동했다.
내가 머물게 되는 기숙사는 웰드홀(Weld Hall). 한국과고에 있을 때와는 확연히 다른 구조였다. 애초에 방 하나로 끝나는 형태가 아닌 총 여러 명이 하나의 가정집을 나눠 쓰는 느낌.
“방은 총 3개이고 한 명은 싱글룸이야.”
“누가 혼자 쓰는데?”
“나.”
씩 웃으며 말하는 엘리엇. 그는 손가락으로 방 하나를 가리켰다.
쩝.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와서 짐 풀어둘걸. 굳이 먼저 와서 짐을 풀 생각을 못 했다. 물론 올림피아드 캠프들이 연달아 있었기에 시간적으로도 힘들긴 했다만 그래도 싱글룸은 탐났다.
“여기는 공용 룸. 아마 저기 비어있는 책상이 네 거일 거야.”
“침실에 책상이 같이 있는 게 아니라?”
“침실은 잠자는 곳이니까.”
공부나 과제는 여기서 해야지, 엘리엇이 당연하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나도 모르게 과고 기숙사에서 지내던 대로 생각해 버렸다. 과학고에서는 방에 침대와 책상이 같이 있었고, 점호 시간 전까진 늘 김진수랑 문제 풀이를 해왔기에 ‘기숙사=야자실’과 같은 느낌이었다.
문득 떠오른 김진수 생각에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번에도 의대에 지원했으려나.’
한국과고를 떠나오고 난 뒤로 쌍둥이하고는 계속 연락했고, 김영재, 최한별하고도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 연락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1년 동안 같이 동고동락 했던 룸메이트. 김진수하고는 이렇다 할 연락이 없었다. 그렇다고 먼저 연락하기엔 좀 뭐랄까, 어색하다. 기브앤 테이크로 맺어졌던 관계인 만큼 아무런 목적 없이 안부를 전하는 것이 어려웠다.
“침실 같은 경우엔···. 보자, 저 침대가 비었네.”
“고마워.”
“뭘. 어차피 마지막 하나 남은 거 알려주는 건데.”
엘리엇이 가리킨 곳에는 빈 침대가 하나 놓여있었다. 다른 기숙사에는 침대도 개별로 가져와야 한다는 엘리엇의 말을 들으며 나는 들고 온 가방에서 짐을 풀었다.
내가 가지고 온 짐이라고는 간단한 세면도구와 침낭, 여벌 옷, 그리고 책.
짐을 다 꺼내고 난 뒤, 고개를 들었다. 엘리엇이 이상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린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설마 이게 다야?”
“응. 딱히 챙겨올 게 없어서.”
“아무리 그래도 너무 없는데. 지금 짐 푼 거···침낭? 침낭 맞지?”
캠핑 때나 사용할 법한 침낭을 침대 위에 풀어놓자, 엘리엇의 미간이 더욱 좁혀졌다. 그리고 가방에서 나오는 짐은 모조리 전공 서적들이었으니까.
한마디로 이렇다 할 생필품이 없었다.
…너무 대충 준비해 왔나? 다른 룸메이트들의 짐을 보니 바닥까지 쌓아둘 정도로 양이 엄청났다. 그에 비해 내 짐은 단출하다 못해 거의 없는 수준.
엘리엇은 “이게 바로 동양과 서양의 문화 차이인가?”라며 갸웃거렸지만 이내 어깨를 으쓱이더니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어쨌든 앞으로 잘 부탁해.”
“어, 그래. 나도.”
“더 이야기 하고 싶은데 약속이 있어서. 나중에 보자.”
그렇게 엘리엇은 기숙사 소개를 끝낸 후 밖으로 나갔다. 나는 텅 빈 방, 침대에 걸터앉아 노먼 교수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학술제가 끝나고 난 뒤, 오랜만에 만난 노먼 교수는 밝게 웃으며 나를 맞이해줬다.
‘유전자 편집과 관련된 연구를 더 진행하고 싶다는 말이군요?’
‘네. 이제 여기서 실험적인 부분만 더 추가된다면 이전 연구를 더 발전시킬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곽진환이 학술제 때 발표했던 내용은 여러모로 역사적인 일이었다. 특정 질환을 유발하는 유전인자 간의 연관성을 분석할 수 있다는 건 엄청난 일이었으니까.
치매를 일으키는 유전인자를 찾아 의도적으로 조작한다. 관련 유전인자가 몇 개든 간에 시간만 있다면 충분히 알아낼 수 있다.
또 모든 유전인자를 알아내지 못하더라도 주요 원인이 되는 단백질, 그 단백질을 생성해 내는 데 관여하는 유전인자만 알아낸다면 충분히 치매 증상을 완화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걸 위해서는 실험은 필수적이었다.
‘실험용 쥐와 같이 직접 실험을 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곽진환과 함께 했던 연구는 어디까지나 방법론 위주의 연구였다. 이렇게 하면 가능하다는 식의 연구만으로는 더 이상 진행될 수 없었다.
치매 치료를 위해서 실험은 필수적이었으니까.
그러나 노먼 교수가 곤란하다는 듯 미간을 좁혔다. 그는 선뜻 실험실을 빌려주겠다는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사실 말이죠, 다른 대학으로 오퍼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예? 다른 학교요?’
‘네. 물론 하버드도 좋습니다, 세계 1위 대학이니까요.’
하지만 노먼 교수는 이제 고향에 있는 대학에서 연구하고 싶다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가 말하는 걸 보아하니 단시간에 결정된 일이 아닌 것 같았다.
‘만덕 학생도 모르겠지만 이 나이가 되면 괜히 고향 생각이 많이 난답니다.’
‘하지만…하버드보다 더 좋은 연구 시설은 없지 않을까요?’
‘후후, 연구 시설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여기 아니겠습니까.’
노먼 교수는 손가락으로 머리를 톡톡 쳤다. 문득 전생에 그가 노벨상을 받게 되던 당시에 그는 하버드에 없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고향으로 가고 싶다는데 내가 말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더군다나 그가 노벨상을 받을 수 있던 것이 고향에 가서 뭔가 아이디어를 얻은 덕이라면? 더더욱 말릴 수는 없을 터.
‘다음 학기에 정식으로 이동할 예정이긴 합니다만…만덕 학생이 원한다면 이번 학기 땐 실험실을 사용해도 좋습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실험실을 사용한다는 건 단순히 기기만 빌리는 의미가 아니었다. 그 실험실의 주인이나 다름없는 교수와의 끊임없는 교류, 그리고 장기간 이어질 연구에 대한 거시적인 계획 등. 최대한 안정적으로 운영되는 게 중요했다.
노먼 교수의 실험실에서 한 학기 동안 실험을 진행하면 물론 편하긴 하겠지만, 그 이후에 오히려 다른 실험실에 들어가는 게 어려울 수도 있고.
고개를 젓는 내 모습에 노먼 교수가 살짝 미안한 듯 말을 꺼냈다.
‘지도 교수에게 여쭤보는 건 어떨는지요?’
‘지도 교수요?’
‘네, 아마 만덕 학생도 정식으로 신입생이 되었으니 지도 교수가 배정되었을 겁니다. 물론 임의로 배정된거긴 하지만요.’
지도 교수와 관련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던 노먼 교수는 ‘상담 이메일을 보내봐라.’라고 제안해 주었고, 그날 나는 새로 배정된 지도 교수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지도 교수라. 물론 전생의 지도 교수이자 불과 몇 달 전까지 봤던 김성진은 좋은 교수였다. 그렇기에 더 긴장되는 건 사실이었다. 이번엔 어떤 교수일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으니까.
지도 교수는 이메일을 보내자마자 [4시, 제 연구실로 오세요.] 라고 바로 답장을 보내왔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봤다.
‘1시간이나 남았네.’
살짝 여유를 부리며 침낭으로 들어갔다. 노트북을 꺼내 지도 교수 이름을 검색했다.
학교에서 임의로 배정해 준 지도 교수의 이름은 ‘에단 스털링’. 관련 논문만 수 십편.
논문의 내용은 그다지 어렵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쉬운 내용들도 결코 아니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전생 때 내가 봤었던 논문들도 몇 개 포함되어 있었다.
‘흐음, 일단 엄청난 사람인 건 확실한데.’
내 기억엔 딱히 남아있는 게 없었다. 미간을 좁히며 과거를 떠올려봤지만 역시나. 결국 나는 노트북을 덮고 눈을 감았다.
어차피 조금 이따 만날 테니 잠깐 눈이나 붙이자. 생각보다 침낭도 안락했기에 점차 눈이 감겼다. 노곤노곤한 기색이 몰려오더니 이내 온몸을 지배했다.
그래···. 요즘 좀 바빴으니까, 그리고 이제 더 바빠질 테니까···. 5분만 누워있자, 5분만···.
알람을 맞춰 놓고 나는 기절하듯 눈을 감았다.
“…?”
눈을 떴다. 낯선 천장, 아니 낯선 풍경이다. 분명 아까는 해가 떠있었는데…?
아까에 비해 심하게 어두워진 밖. 불현듯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도 그럴 게 온몸의 피로가 싹 풀린 듯한 기분, 그리고 꺼져있는 핸드폰 알람.
“…아 망했다.”
나는 마치 탈피하듯이 침낭을 벗어 던지고 기숙사 밖으로 달려갔다. 약속 시간은 4시.
현재 시각은 5시 58분이었다.
*
“반갑습니다. 김만덕 학생?”
“네.”
“자리에 앉으시죠.”
남자는 나를 소파 쪽으로 안내했다. 연구실 내부는 크리스 교수가 사용했던 곳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기에 내게는 익숙한 곳이었다.
사실 당연히 먼저 퇴근했거나, 문전박대할 줄 알았는데 에단 교수는 활짝 웃으며 나를 맞이했다.
자연스럽게 자리에 앉자, 에단 교수는 미리 끓여놨던 차를 찻잔에 부어주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깜빡 잠이 든 바람에…”
“하하하! 그럴 수 있죠! 저도 한번 잠에 빠지면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랍니다!”
이 사람 천사인가? 솔직히 이번 일은 입이 열 개여도 할말이 없었기에, 이대로 지도 교수에게 미운털이 박히는 건가 싶었다.
그도 그럴 게 서구 사회, 특히 개인의 시간을 중요시하는 미국에선 시간 약속은 신뢰의 상징이나 다름없었으니까. 그러나 에단 교수는 웃으며 내게 말을 걸었다.
“제 소개를 먼저 해야겠군요. 저는 이번 크리스 교수를 대신해 이곳에 온 에단 스털링이라고 합니다.”
“네. 저는 김만덕이고 관심 분야는—”
“—치매이지요?”
내 말을 자르고 들어온 에단 교수.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비로소 아까는 보이지 않았던 화려한 트로피들과 각종 명패가 눈에 들어왔다.
“반갑습니다. 천재 소년. 네이처에 올린 내용은 잘 봤습니다. 보니까 어린 나이에 꽤 흥미로운 연구를 진행했더군요? 게다가 16살에 하버드 입학이라…”
에단 교수가 재밌다는 듯이 웃었다.
언뜻 보아도 30대 중반, 아니 초반으로 보이는 외모. 지금까지 만나온 교수들이 머리가 희끗희끗했다는 점과 비교했을 때 그는 젊은 교수였다.
하버드는 학교 평가 세계 1위를 자랑하는 곳이다. 모든 교수가 이곳에서 일하기 위해 혈안이 된 상황.
그러나 교수로 채용되려면 웬만한 스펙 가지고는 어림도 없었다.
더군다나 이렇게 어린 교수들이라면 더욱더.
그는 살짝 입꼬리를 비틀며 내게 말했다.
“저도 어렸을 때 천재 소리 꽤나 들었지요.”
“…네?”
“김만덕 학생이 그렇게 대단한가요? 천재 소리를 들을 만큼?”
싱글벙글 웃으며 말하는 에단 교수.
···이 사람 말에 뼈가 있다. 아니, 가시인가? 뭐가 되었든 간에 나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마치 어색하다는 듯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이런 상황은 이제 익숙하다. 과학고에 처음 들어갔을 때도, 특별반에 처음 들어갔을 때도. 어쩌면 힘이 느껴지는 분위기 속에선 늘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벌어졌다.
이런 신경전에서 할 수 있는 건 세 가지밖에 없었다.
지거나, 비기거나, 이기거나.
그리고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때로는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었고, 이기는 것이 지는 것이 되기도 했다. 어떨 때는 비기는 것만이 정답일 때도 있었고.
나는 고민했다.
지금은 어떤 패를 내밀어야 할 때인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나는 내리깔고 있던 시선을 위로 올렸다. 삐뚜름한 미소에 화답하듯 싱긋 웃어 보였다.
“사람들은 다들 절 보고 그렇게 말하더라고요. 천재라고.”
이게 내 첫 하버드 지도 교수와의 만남이었다.